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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학문적 토대는 성리학(性理學)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본질을 ‘이치(理)’로서 설명하고자 하는 학문이었다. 유학(儒學)의 한 분파에 불가했던 성리학이 조선에서는 절대적 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성리학의 이론을 정비한 주희(주자)는 비판조차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에 따라 주희의 학설을 비판하면 곧바로 올바른 학문을 어지럽힌다는 의미의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여겨져, 경우에 따라서는 단죄되어 유배를 당하기도 하는 일이 자행되기도 했다. 형이상학의 면모를 지닌 성리학의 역할은 철학적 논의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반면 실체를 증명하기 힘든 관념적 이론은 지난한 논쟁을 이끌어 헛된 정력을 낭비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은 평생 한국철학을 연구했던 저자가 조선시대 ‘성리학과 실학’의 면모와 해당 인물들을 탐구하려는 의도에서 출간한 성과물이다. 초판에 빠졌던 인물들의 이론을 조명한 내용을 첨가해 엮어낸 ‘증보판’이며, 아마도 초판은 조선 후기 ‘실학(實學)’의 의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던 시기에 펴낸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학계에서도 이제 ‘실학’의 실체와 의미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오히려 조선 후기 다양한 학자들의 움직임을 조망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이 책의 효용이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리학과 실학’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했던 성과물로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고려 후기에 들어왔던 성리학의 전개와 그 특징을 설명하는 내용에 이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겨졌던 실학이 발흥하게 된 사상사적 배경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학의 한 분파로서 ‘실학의 철학적 기반’과 과거 지식인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선비의 상과 그 정신’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서경덕과 이황 등 조선시대 유학사의 주요 인물들의 사상을 정리하여 개별 항목으로 서술하는 체제를 취하고 있다. 모두 11명의 학자들을 대상으로 각각의 인물들의 생애와 주요 저작 그리고 그들의 학문적 성과의 핵심들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고전시가를 전공하는 나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다만 ‘실학’이라는 개념에 집착하지 말고, 조선시대 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공부한다는 자세로 읽는다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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