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로 말미암아
장현숙
미자 씨가 수요장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부터다. 2400평 과수원에 자두, 복숭아 포도 대추 철철이 과수 농사를 지었다. 딸 셋을 낳아 키워 다 제 몫을 하여 떠나고 남편과 둘만 남았다. 이제 좀 쉬어도 될 것 같건만 미자 씨의 억측은 끊이질 않았다. 도리어 더 뻗어나갔다. 동네에서 경운기 끌던 기세를 몰아 운전면허증을 따기로 했다. 인근 도시에서 운전 연수를 했다. 연수를 마치고 근처 시장에서 국수를 사먹곤 했는데 수요일에는 시장이 빈틈없이 북적됐다. 요일장이 선다는 것이었다. 점포 없이도 한자리를 얻으면 무엇이든 팔 수 있단다. 미자 씨는 수요장에서 과일을 팔기 시작했다. 어렵게 딴 운전 솜씨도 뽐내고 일주일에 한 번 씩 하는 바깥나들이도 여간 만족스러운 게 아니었다. 직접 농사지은 신선한 과일을 싸게 팔 뿐 아니라, 그녀 특유의 친화력으로 단골도 꽤 많이 생겼다. 아이 손을 잡고 오는 알뜰한 젊은 엄마, 대형 마트 보다 시장 정서가 좋아서 온다는 중년 부인. 심지어 부근 공장에 다니는 외국인 근로자도 있었다. 그들은 과일을 사고파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네들 삶을 미자 씨에게 털어놓곤 했다. 미자 씨는 그렇게 맘이 넉넉했다.
“아유! 도꾸 여사님 요즘 많이 좋아지셨네요.”
미자 씨가 도꾸 여사라라고 부르는 것은 할머니가 ‘도꾸야 도꾸야.’ 하며 개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5년 전 그 할머니는 활동 도우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시장에 나오곤 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중풍으로 거동까지 불편했다. 경직되어가는 몸만큼이나 마음도 우울해져갔다. 할 수 있는 게 차츰 줄어들고 만날 사람도 점점 없어졌다.
어느 날 옆집 개가 강아지를 세 마리 낳았다. 할머니는 강아지 보러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활동 도우미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강아지를 보는 순간 몸도 맘도 붕붕 떴다. 강아지가 눈앞에 어른거려 도우미가 오지 않는 일요일은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그녀와 함께라면 십 분이면 충분히 갈 길을 혼자서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지팡이로 휘청휘청. 한 시간은 더 걸렸다. 그러다가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먹이고 씻기고 저지레하면 처리하고 애지중지 정성을 다 했다. 강아지가 커는 만큼 할머니 삶의 의지도 커져갔다. 요즘은 온전하지 못한 몸이지만 강아지를 태운 유모차를 휘적휘적 밀며 혼자서 시장 나들이까지 하신다.
“내가 요즘 도꾸 때문에 얼마나 바쁜지 몰라. 내 아픈 것도 다 잊고 살어!”
복숭아 한 소쿠리를 사서 유모차 아래 수납 간에 넣어 달라고 하신다. 그리고 느린 걸음으로 비틀거리며 유모차를 밀고 간다. 도꾸도 앞발을 유모차에 걸치고 고개를 쭉 빼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시장 구경을 한다.
미자 씨가 잘 한 일 중에 하나가 딸을 셋이나 낳은 것이다. 두 사위가 번갈아가며 과수원 일을 도와주는 게 여간 고맙지 않다. 결혼을 앞 둔 셋째 딸은 엄마랑 여행을 하겠단다. 부산 해운대, 그 찬란한 바다를 딸과 함께 둘이서 여행했다. 겨울 바다의 운치는 해수욕철의 복작거림보다 훨씬 좋았다. 더구나 부산의 날씨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자유로울 만큼 그리 춥지도 않았다. 미자 씨와 딸은 아침 바다를 보려고 호텔에서 나왔다. 어제 밤엔 차량 통행이 통제되었던 도로가 아침엔 열렸다. 부지런한 여행객들이 바다에서 떠오르는 금빛 태양을 맞으며 느긋하게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엄마와 딸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엄마가 딸을 데리고 왔을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엄마가 앞서 걸었고 딸은 강아지를 끌고 몇 발작 뒤에서 따라갔다. 그때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갔다. 사람들이 다 건넜으니 그 차는 움직였고 운전자는 뒤 따라가던 강아지는 미처 보지 못했다. ‘깨갱’ 강아지의 뒷다리가 차에 치였다. 딸이 놀라서 강아지를 안아 올렸고 순간 뒤돌아선 엄마가 딸의 뺨을 후려쳤다.
“왜 애를 안지 않고 끌고 다녀서 사고를 당하게 해!”
엄마는 잽싸게 강아지를 뺏어 안고 동물 병원이라도 찾는지 두리번거렸다. 딸은 피 묻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빌딩 사이로 숨어들어갔다. 그 엄마의 애는 대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