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한사랑 박순록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떨고 있다.
놀이터 앞에 우뚝 서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 어쩐지 이번 가을에는 더 외롭게 느껴진다.
지난여름에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탓일까? 더욱더 비쩍 말라 보이는 나뭇가지가 측은해 보인다.
늘 주민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주민들의 아늑한 쉼터.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요. 여유 있는 아낙들이 모여서 온갖 수다 늘어놓는 만남의 자리.
온 동네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가슴 넓은 이장 같은 나무. 모여 앉은 이들의 희로애락을 아무 대꾸 없이 다 들어주었지.
느티나무와 인연이 된 지 어언 25년.
지나칠 때 가끔은 부끄러울 때도 있다. 아이들 어릴 때 동네 아낙들과 수다떨며 거짓말도 했을 것 같아서.
이른 봄 살랑살랑 불어 대는 봄바람에 가녀린 연한 잎새 하늘하늘 나부낀다.
햇살 따사로운 오월에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녹음 드리워 나그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며 잠시 쉬어 가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애달픈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준다.
풍요로운 가을에는 고운 옷 갈아입고 뭇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서에 일조를 하고, 찬 서리에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마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에 자양분이 된다.
그런데 지난여름에는 느티나무 아래에는 모여드는 사람이 없었다. 이른 봄에 아파트 관리실에서 어설픈 이발사가 멋쟁이 노신사의 헤어스타일을 다 구겨 버렸기 때문이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마치 80년대 청소년들의 스포츠머리스타일로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가을비 처량하게 내리던 날 하나둘씩 떨어지는 나뭇잎은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마저 더 서럽게 느끼게 한다. 본의 아니게 찾아오는 사람들 귀찮다고 손사래를 치고 베풀지 못한 삶에 대한 대가인지.
옛말에 '정승집 말 초상엔 조문객이 문전성시지만 정승이 죽으면 대문 앞이 황량하다'는 말이 있듯이 느티나무 그늘이 무성할 때는 누구나 모여들고 쉬어 가더니만 그늘 없는 빈 둥치뿐인 나무 아래엔 인적마저 드물었다.
느티나무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데 지혜롭지 못한 자들의 어설픈 가위질로 지난날의 융성함을 되찾으려면 아마도 수년은 흘러야 회복되리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매사에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봄여름에 게으름 부린 농부에게는 가을에 거둬들일 알곡이 없고, 학업을 게을리한 학생에게 수능시험의 고득점은 기대하기 힘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봄여름 가을 나름대로 조금 바빴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시작을 해 보았다. 어설픈 작품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합평을 청하기도 했었다. 남들 앞에만 서면 얼굴이 붉어지고 떨려서 말을 잘할 줄 몰라 말하는 법도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첫걸음의 균형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배움이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바닷가의 동글동글한 조약돌도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에 씻기고 깎여서 다듬어졌겠지.
지난날 일기장에 때로는 연습장에 써 놓았던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글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정리를 해 본다.
신혼일기도 있고, 육아일기 등 내 삶의 향기가 서려있는 일기들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니 그때 그 시절이 눈앞에 그려진다. 섬섬옥수 고왔던 손에도 어느새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지고 있다.
외로움이 밀려오면 우울감도 함께 스며들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울타리를 치고 애쓰며 산다.
플라타너스의 고엽들이 나뒹구는 황량한 거리를 걸으면 누구나 쓸쓸함에 젖게 된다. 오늘따라 홀로 서 있는 저 느티나무가 더욱더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온 마을 사람들의 비밀을 다 품고 있지만 그저 입 다물고 묵묵히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