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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교육과 철학 그리고 논술
임 덕 준 (서울 진명여고)
Ⅰ.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 교육의 참담한 위기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더불어 토론하고 않고 자신의 주장을 직접 글로 써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서 아직도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와 문제풀이에 몰입되어 있는 현상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와 그에 비례해서 약화되어 온 학생들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은 매우 역설적인 비극이다. 이러한 비극의 근본적 원인은 입시 위주의 경쟁 자체라기보다는 경쟁의 왜곡된 기준이다. 따라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나아가 그 결과로서의 대학 교육까지 우리의 교육을 절대적으로 견인하고 있는 대학 입시 제도의 혁신적 변화 없이는 우리의 교육을 위기의 벼랑에서 구할 수 없다. 교육의 정상화는 의미 있는 탐구 활동을 통해 창의적인 사고력을 갖춘 학생이 입시라는 평가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해야만 가능하다.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의미 없는 경쟁의 기준과 방식이다.
논술과 구술 중심의 학교 교육은 위기에 처한 우리 교육의 유력한 대안임에 틀림없다.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논거를 요구하는 논술과 구술이 교육의 중심에 설 때, 학교는 발표와 토론, 독서와 다양한 체험 활동 등을 수행하는 탐구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논술과 구술은 그 자체로 탐구 수업의 방법적 요소이지만, 한편 모든 의미 있는 탐구 활동을 촉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평가 방법 혁신의 관건이다.
Ⅱ. 대학 입시 제도의 올바른 개혁과 논·구술 시험
1. 수능 중심의 입시 제도는 타파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교육을 왜곡시켜 온 가장 중요한 원인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시험’으로 약칭함) 중심의 대학 선발 제도이다. 주지하다시피 수능시험은 이전의 학력고사 중심 입시에서 만연되어 있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서, 탈교과적·통합교과적 문항의 평가를 통해 독서와 체험 교육을 활성화시켜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함양한다는 취지를 표방하면서 등장하였지만 당초의 목표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우리의 교육을 왜곡시켜 왔다. 왜 수능시험은 실패했을까?
가. 객관식 시험이 지닌 공정성은 환상이다.
수능시험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객관식 선택형 평가 방식에서 비롯된다. 선택형 평가는 ‘정답’을 전제로 하는 시험으로서, 이른바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고정 관념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그러나 형식적인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만연된 숭배는 매우 피상적인 논거에 입각해 있다. 수능시험은 출제의 총체적 난이도나 영역별 난이도에 따라 유불리가 결정된다. 수능시험 보는 날 각 언론사의 일차적 관심사가 난이도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객관성과 공정성이 의미 있으려면 최소한 평가하는 내용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단편적이고 고정된 지식을 그것도 선택형 문제로 평가하는 것은 학생들의 의미 있는 능력에 대한 검증 방법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의 다양한 해석과 창의적 재구성을 배제한 지식이란 오늘날과 같은 지식 정보 사회에서 별다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 시험이 의미 없지만 손쉬운 객관식 출제로 이루이지고 있는 것은 수능 시험이 지닌 허구적인 ‘공정성’의 신화 때문이다.
나. 객관식 수능시험은 학생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든다.
이른바 ‘객관적인’ 정답을 찾아야 하는 선택형 수능시험 체제 하에서 학생들은 지식의 수동적 수용자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선택형 평가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의 습득, 혹은 합의된 이해나 해석에 대한 평가에 그치기 때문에 학생들의 창의성, 문제 해결력, 비판적 · 논리적 사고력, 정보에 대한 분석과 통합 능력 등 고등정신능력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출제자의 의도나 교재에 담겨 있는 객관적인 내용만이 진리의 기준으로서 중요하다. 학생들 개개인의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바탕을 둔 비판적 문제의식과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는 무의미하다. 학생들은 갈수록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정답 찾는 게임을 반복하게 된다.
다. 수능시험은 학생들의 독서 활동을 약화시킨다.
수능시험은 교과서와 이를 보조하는 참고서가 절대적 진리의 체계로서 신성시되기 때문에 독서 교육을 위축시킨다. 수능시험이 학생들의 독서 활동을 크게 자극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수능시험 도입 시의 취지는 구두선에 그친지 오래다. 높은 난이도에 대한 비판과 피상적인 공교육 정상화 논리에 밀려 수능시험은 애초의 통합교과적이고 탈교과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과거의 학력고사로 변질됨으로써 독서 교육의 활성화에 기여하기보다는 단순한 문제풀이 참고서의 발행 부수만을 증대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수능시험을 잘 보기 위해 책을 읽고 토론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나마 논·구술 시험이 참고서 위주의 공부를 견제하면서 독서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라. 수능시험은 창의적인 사고력을 향상시키지 못한다.
객관식 수능시험이 우리의 교육을 위기에 빠트린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교육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기 위해서는 들어야 한다. 그러나 듣기만 해서는 말할 수 없다.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읽기만 해서는 쓸 수 없다. 창의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일반적인 생각들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각만 정답으로 강요하는 상황이 지속되어서는 창의적인 사고력이 발전할 수 없다. 수능시험에선 어떤 문제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전혀 묻지 않는다. 학생들의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는 때로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금기시된다. 진리의 역사가 얼마나 진부하고 권위적인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수능시험에 갇혀 있는 우리의 학교 교육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마. 수능시험은 고교의 교육과정을 파행으로 이끈다.
무엇보다 수능시험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고교의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수능 시험은 영역과 과목을 선택해서 치르는 시험이다. 이러한 수능시험이 대학입시의 핵심적인 전형요소로 작용할 때,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으로 편성되어 있으면서도 수능 시험의 선택에서 배제되는 과목과 영역에 관련된 학교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특히 고교 3학년의 경우 자신이 선택한 수능시험의 영역이나 과목과 무관한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다른 과목 공부에 열을 올리는 것은 너무도 흔한 광경이 되었지만 교사들은 이를 제지할 수 없다. 교사가 학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수능시험 공부를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객관식 선택형 수능 시험은 학교의 내신 평가 방식까지 왜곡시키게 된다. 수능시험이 대학입시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학교 수업은 수능시험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학교 교육의 모든 것은 수능 시험을 기준으로 의미와 가치가 결정된다. 독서, 발표와 토론, 실험 실습, 외국어 시간에 외국어로 말하기 등이 참고서 문제풀이보다 수능시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학교에서 외면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바. 수능시험은 사교육을 확대시킨다.
수능시험이 대학 입시의 중심에 있을 때 당연히 수능과 무관한 과목의 수업 및 교과 이외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교육은 외면되고 선택 영역과 과목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맞춤형 사교육이 입시 경쟁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단순한 문제 풀이를 통해 대비할 수 있는 객관식 시험은 사교육을 더욱 조장한다. 입시 준비의 투입과 산출의 비례 관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교육을 막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독서 역량과 사고력 등 사교육이 통하지 않는 탐구 능력이 경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탐구 활동은 공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학교에서의 평가 결과가 중시되어야 한다.
학교 내신의 비중이 늘어나면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또 다른 사교육이 증대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대단히 비합리적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학교 교육이 계속해서 수능시험과 같이 단순한 지식에 대한 객관식 평가 위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학교의 수업이 탐구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활동에 대한 수행평가가 활성화된다면 내신 대비 사교육이 존립할 터전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공교육이 죽고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평가의 대상과 기준이 공교육 밖에서 이루어지는 데 있다. 혹자는 성적 부풀리기 등 학교 내신의 문제를 지적하겠지만, 사실 성적 부풀리기의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는 원천적으로 부풀리기가 불가능한 석차 대신에 평어(수,우,미,양,가)를 중심으로 내신을 반영한 대학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 수능시험은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수능 시험은 고교 교육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대학의 경쟁력도 떨어뜨린다. 현재 입시 제도가 수시와 정시로 이원화되어 있는 가운데 수능과 내신, 논구술 등 다양한 전형 요소가 복잡하게 반영되는 상황에서 수능 성적 위주로 대학에 간 학생들이 통계 조사 결과 고교 내신 성적이나 논·구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 비해 대학에서의 성취도가 가장 나쁘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독서하지 않고 발표와 토론 활동을 하지 않고, 실험이나 실습을 하지 않고 오직 수능 시험을 위한 선행 학습과 참고서 문제 풀이에만 몰두해 온 학생들이 대학에서 학문적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초등에서 중등학교까지 각종 국제적인 학력 경시대회에서 최상위권의 성과를 보이는 우리 학생들이 대학에만 가면 학문적 관심을 상실한 채 유희적 소비문화에 빠져드는 것은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극복되어야 한다.
아울러 전국 단위의 수능 시험은 대학을 수능 점수에 따라 서열화시킴으로써 대학 간의 공정한 경쟁을 차단시킨 채 학벌 체제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능시험의 총점제와 전체 등급 대신에 영역별 표준 점수와 등급제로 완화되어 대학을 서열화시키는 가능성이 줄어들었으며, 수시 제도의 확대에 따라 수능의 절대적 영향력이 감소되어 왔다는 점, 그리고 2년 뒤부터는 수능시험에서 영역별 등급만 남게 됨으로써 앞으로 그 역기능은 상당히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 논술과 구술 시험이 공교육 정상화의 잠정적인 대안이다.
우리의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지식의 양을 평가하려 하지 말고, 의미 있는 것에 대한 창의적 관심과 상상력을 평가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 수능시험은 중장기적으로 입시에서 폐지되거나 등급(현재 영역별 9등급)의 완화와 함께 최소한의 자격시험으로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의 평가를 본질로 하는 논술과 구술 시험이 수능보다 비중이 강화된다면, 객관식 시험과 암기 위주의 입시 교육으로 마비되어 온 학생들의 사고력에 변화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양과 학문적, 시사적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말하는 능력은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능력일 뿐만 아니라, 민주 사회에서 교양인이 지녀야 할 보편적 능력이다. 논술이 입시의 중심이 될 때 학생들은 교과서와 참고서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다양한 책을 읽고 생각하고 함께 토론하고 실험 · 실습하면서 탐구하는 정상적인 교육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Ⅲ. 논·구술 시험과 관련된 쟁점들
논술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논·구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바른 이해가 그토록 녹녹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쟁점들을 검토하면서 사고의 혼란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1. 논술은 대학별 논술 시험만을 의미하는 것인가?
가. 대학별 논술 시험은 변화의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논술은 교육 개혁의 핵이다. 그동안 대학에서 실시해 온 논·구술 시험이 학교 교육 현장에 창의적 비판적 사고력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독서와 토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정상적인 논·구술 시험이 지니는 이러한 순기능은 지속되어야 한다. 본고사 - 예비고사 - 학력고사 - 수능시험 등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굳어져 온 단편적 지식을 위주로 한 주입식 암기 교육과 객관식 선다형 및 주관식 단답형 평가 관행에서 학교 교육이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논·구술 시험이 변화를 견인해야 한다. 현재 고1부터 점수제가 폐지되고 등급화됨으로써 수능시험의 영향력이 약화되겠지만 그 결과 저절로 학교가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탐구 공동체로 변화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장기적으로 대학별 논술 시험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의 ‘통합형 논술’ 입시가 교육의 정상화와 의미 있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논·구술 대입 시험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발표와 토론 수업이 활성화되고 정착되어 간다면, 대입 논술 시험은 점차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고 폐기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각 교과별로 수행하는 정상적인 탐구 수업과 평가는 물론 초기에는 대학 논술과 구술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도구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활성화되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상적인 공교육 자체를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학교가 통합형 대입 논술 시험 준비 기관으로서 대학 입시 들러리의 역할에만 머물게 된다면, 공교육은 대학별 고사에 예속된 채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독서, 토론, 논술 등이 공교육의 일환으로 확고히 정착되어 있는 어떤 교육 선진국도 대학 자체로 실시하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대학이 현재 절실히 고민해야 하는 것은 수능 시험이나 논술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대학 교육을 통해 우수하고 경쟁력 있는 학생을 육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진정으로 대학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원칙적으로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며, 학생과 학부모의 입시 과소비를 부추기는 대학별 시험은 장기적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2. 대학에서 실시해온 논술 시험은 모두 진정한 논술 시험인가?
가. 많은 대학에서 실시해 온 본고사 형태의 변형된 논술은 금지되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대입 논술이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그동안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을 중심으로 논·구술 시험을 도입한 지 언 10년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대학이 논술 시험을 통해 우리의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자 하는 진정한 의지가 있었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대학의 재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 선발 시기를 다양화하고 논술과 구술 시험의 막대한 전형료를 챙겨 온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그리고 다수의 대학에서 논술과 구술 시험을 왜곡하여 ‘적성 인성 검사’와 ‘심층 면접 시험’이란 이름 하에 이른바 금지된 본고사 형태의 시험을 실시해 온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본고사 형태의 변형된 논술이 금지되어야 하는 것은 사교육의 확대라는 부작용 때문만은 아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본고사 형태의 대학별 고사로는 학교의 교육이 정상화되지 않고 사고력 중심의 탐구 활동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요 대학이 통합형 논술 입시 방안 도입의 명분과 이유로 수능과 내신의 등급화에 따른 변별력 약화를 내세운 것은 논술을 통한 교육의 정상화보다는 이른바 ‘우수 학생’ 선발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나.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은 지켜져야 한다.
그동안 적지 않은 대학이 입시의 변별력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논술 시험을 왜곡되고 변형된 본고사 형태로 실시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서울대를 비롯하여 상위권 대학이 발표한 통합형 논술 중심의 대학 입시안에 대하여 적지 않은 언론과 교원단체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논란 끝에 지난 8월 말에 교육부가 늦게나마 교원단체와 학부모 시민단체 등의 비판에 직면하여 논술고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은 정상적인 논술 고사의 정착을 위해 바람직한 결과이다.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논술고사는 제시된 주제에 대해 필자의 의견이나 생각을 서술하도록 하는 시험’이라는 정의에 입각하여 단답형 또는 선다형 문제, 정답이 있는 단순 지식을 묻는 문제의 출제는 금지되었다. 특히 논란이 된 외국어 제시문을 출제금지 유형으로 결정한 것은 논술의 본래 취지에 부합되는 일이다. 외국어로 된 제시문의 해석 없이는 논술 자체가 불가능한 시험이라면, 그것은 논술 시험이라기보다 외국어 시험이기 때문이다.
3. 대학의 우수학생 선발 자율권과 공교육 정상화의 가치는 대립하는가?
가. 공교육의 정상화 없이 우수 학생을 육성할 수 없다.
입시 문제의 갈등을 우수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의 입장과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중등교육의 요구 사이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것은 진부하면서도 왜곡된 것이다. 공교육의 정상화 없이는 우수한 학생 자체의 육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대학이 우수학생을 유치하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학생이 우수한 학생인지에 대한 진지하고 반성적인 성찰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수능시험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는 점수제가 폐지되고 등급제로 변화됨으로써 변별력을 상실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능시험이 절대적인 변별력을 지니면 지닐수록 교육의 정상화가 요원해지고 창의적인 학생을 키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논술과 구술 시험에도 이와 유사한 위험성이 있다. 그 비중이 지나칠 경우 학교 교육은 대학별 고사에 예속됨으로써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공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수 학생 육성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나. 학생 선발 자율권이 반드시 대학별 고사의 출제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입시 제도에 대한 무지와 막연한 불안, 고교 입학 후 처음 치르는 정기 고사에 긴장과 거부감, 현재 예상되는 자신의 내신 성적에 대한 불만족, 3년 후 한 번의 시험만으로 입시에 성공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 등이 혼합되면서 고교 1학년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보인 내신 중심의 새 입시 제도에 대한 반발을 등에 업고 발표된 통합형 논술 중심의 입시는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학생 선발의 자율권이 반드시 대학별 고사의 출제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동안 논·구술 시험을 본고사 형태로 실시해온 많은 대학에서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내신 중심의 입시를 불신하고 대학의 학생 선발권만을 강조한 보수 언론의 여론몰이에 대학과 교육 당국이 휘둘린 것은 아닌지 반성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수능 시험이건 논술 시험이건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이 가진 능력과 소질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 번의 평가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만회가 불가능한 잔인한 경쟁이며 상당한 정도로 운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불합리하다.
4. 통합형 논술이 모든 교과 내용을 통합하는가?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논술 시험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논술은 기본적으로 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성격은 앞으로도 유지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제 조건은 대학별 고사로서의 이른바 통합형 논술 시험의 비중이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형’ 논술이라 해서 모든 과목의 모든 교육 내용을 통합할 수는 없다. 인문사회 과정의 논술은 아무리 통합형으로 출제한다 하더라도 윤리를 포함하는 철학과 국어, 사회 등의 교과 내용을 벗어나기 어렵다. 통합형 논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논술 시험에 ‘통합되지 못하는’ 다수의 일반 교과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위험성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합형 대학 논술 시험이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는 시험으로서 정당성을 지니려면 모든 교과에서 자신의 정상적 교육과정에 따라 탐구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대입 논술 시험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전제는 대학 입시에 ‘올인’하는 현실에서 성립되기 어렵다. 올해 학년 초에 학생들의 촛불 시위 등 진통은 겪었지만 내신 중심의 2008학년도 새입시 제도가 1학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학교의 수업 분위기가 살아나고 발표와 토론 등 탐구 수업의 싹이 트고 있는 현 시점에서 통합형 논술이 입학의 당락을 가르는 시험이 된다면, 정상적인 학교 수업은 다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5. 논술 교육은 사교육을 확대시키는가?
가. 학교 교육과정이 통합형 논술에 맞춰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학교의 교과별 수업이 주제를 중심으로 통합교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도, 대학별로 이루어지는 통합형 논술 시험 자체를 직접 수업 내용으로 다루기는 어렵다. 학교의 수업은 기본적으로 각각의 과목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별적인 수업을 통해 이른바 통합형 대입 논술 시험을 대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과정에서 통합형 대입 논술 시험에 맞춰 수업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양한 교과에서 배운 내용을 통합하는 주체는 궁극적으로 학생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교육에 충실한 학생의 힘만으로 통합형 논술 시험에 맞는 통합적 사고력을 성공적으로 갖출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소박한 것이다. 결국 통합형 논술 시험 자체를 겨냥한 별도의 입시 준비가 불가피하게 되며, 그 결과 중등교육은 파행을 피할 수 없고 사교육은 멈출 수 없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통합형 논술 시험이 보완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
나. 논술 사교육은 근본적으로 논술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학교가 아직도 수능 중심의 입시 준비 기관으로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일부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교육에 의존하고자 하는 심리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논술 능력은 단기간의 준비로 성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이며, 획일화된 모범 답안을 숙지하는 형태의 대체적인 논술 사교육은 역설적으로 논술의 본질에 역행하는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교육 대신에 교육방송을 통해 논술 시험을 대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육 당국의 논리도 빈곤하기 짝이 없다. 아직도 수능시험을 대비시킨다는 명분으로 수동적인 ‘관람 학습’ 방식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교육 방송 강의를 정부의 주도 아래 실시하고 있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지만, 창의적 비판적 사고력을 평가한다는 논술 시험을 일방적인 강의 형태로 대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참으로 납득할 수 없다.
다. 논술 시험 준비에 대한 사교육 효과는 회의적이다.
사교육이 등장하게 되는 다양한 요인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을 통해 받는 논술 시험 대비의 효과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수능 시험을 위한 문제 풀이와 같이 예상되는 논술 주제와 모범 답안을 기대하면서 또 다른 문제 풀이 학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교육 논술 공부는 논술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며 철학이 요구하는 비판적 창의적 사유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공교육을 통해 논술 교육이 활성화되고 정착된다면 사교육은 점차 축소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학교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 결과가 입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사교육의 비중 감소는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모든 사교육이 동일하게 평가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공교육이 직무유기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독서와 토론 위주의 논·구술 사교육은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공교육에서 흡수해야 하는 일이지만 최소한 수능 대비 사교육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와 객관식 문제 풀이 훈련을 위주로 하는 사교육과 독서와 발표, 토론, 쓰기 등을 위주로 하는 일부의 논술 사교육은 그 유의미성에서 달리 평가되어야 할 측면이 있다.
6. 대학입시제도는 어떻게 바뀌어도 우리 교육의 위기는 극복될 수 없는가?
입시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도 사교육은 감소될 수 없고 학생들의 고통은 완화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제도 변경에 따른 혼란과 시행착오 속에서 학생들은 실험대상만 될 뿐이라는 것이다. 대학 서열과 학벌 타파 없이는 어떤 대입 제도의 변경도 무용지물이라는 진보 진영의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라는 이러한 냉소적 회의주의는 대단히 무책임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냉소적 사고는 교육 현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통찰, 현실적인 대안의 부재를 은폐하는 지나친 이상주의나 왜곡된 교육에 안주하려는 보수주의 양측 모두에서 나올 수 있는 허구이다. 양측의 회의주의가 지닌 허구적 성격은 경쟁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입시 중심 교육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동일한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을 살리는 길은 경쟁의 종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주입식 교육을 사고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경쟁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아야 한다.
Ⅳ. 도덕 윤리과 교육과 논술
1. 도덕 윤리과 교육의 현실
현재 도덕 윤리 교과는 주입식 입시 교육 체제 하에서 무의미하고 손쉬운 암기 과목으로 전락하여 외면 받고 있다. 우리의 도덕 교육은 삶의 생생한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쟁점에서 유리된 채 기존의 관습적 도덕 규범과 고정관념을 강요하고 있으며, 평가 영역에서는 화석화된 지식을 기준으로 한 우리들만의 무의미한 정답 찾기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도덕 문제에 대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으며, 진지하고 비판적인 문제 의식은 터부시되고 있다. 교과서와 참고서가 진리를 독점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박탈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도덕 윤리 교과가 지닌 교육적 특수성, 즉 객관적 사실과 법칙을 탐구하는 과학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삶과 규범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견해의 차이를 존중하는 가운데 올바른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모색하고 내면화하는 학문이라는 성격을 망각한 채, 획일적인 정답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수업과 평가의 근본적 오류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도덕 과목을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암기 과목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참담한 상황에서 벗어나 논술과 구술 시험의 핵심 교과로서 거듭 태어나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키우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만연해 있는 선다형 객관식 지필 평가의 관행을 과감히 타파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 대입 논술의 성격과 도덕 윤리 교육
가. 대입 논술 시험의 근본은 철학과 윤리학이다.
논술은 특정 교과목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특히 ‘통합형’ 논술은 당연히 다양한 교과의 내용과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교과의 지식과 개별적 문제들을 가장 근원적 차원에서 통찰하고 다양한 논의 결과를 개념적 일관성을 가지고 통합하며 비판적 논리에 입각하여 논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철학 시험의 성격을 지닌다. 철학 중에서도 현대 사회 제반 문제를 중심으로 가치와 규범, 옳고 그름을 다루는 윤리학과 앎과 진리를 다루는 인식론은 논술이 다루는 핵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출제한 논술 문제를 조금만 살펴보더라도 논술이 얼마나 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논술에서 제기되는 질문과 제시문이 다양한 인문 사회 과학 및 자연 과학적 담론을 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것들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주로 묻는다는 점에서 논술은 개별 교과에서 다루는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 있다. 논술이 지닌 이런 근원적, 총체적, 통합적 논증적인 특성이야말로 논술이 본질적으로 철학과 윤리학 시험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나. 논술 시험의 철학적 성격이 사교육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논술과 구술을 대비하는 사교육 시장이 번창한 이유는 첫째, 논술이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철학적 사유가 생소하고 난해하다는 점과 둘째, 그렇게 생소하고 난해한 철학적 성찰 능력의 신장을 수능 중심의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한 학교가 외면하고 있으며, 셋째 철학적 사유의 난해함과 학교의 무관심에 비해 대입 수시 모집의 증가와 논·구술 시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들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언급하고 싶은 놀라운 비극적 사실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논술에 가장 친화적인 철학이나 논리학 과목을 교양 과목으로 개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이를 선택하고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논술과 구술 시험이 특정 교과가 책임지고 전담하기 어려운 일종의 ‘주인 없는 시험’이라는 사실이 ‘논술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논술에 대한 공교육의 놀라운 무관심과 직무유기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다. 도덕 윤리 교과는 논술 시험을 주도하면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논술에 대한 공교육의 직무유기는 중단되어야 한다. 사교육에서 번창하고 있는 논술 교육을 학교에서 흡수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 교육에서 논술이 요구하는 철학적 성찰과 논증 능력은 당분간 도덕 윤리 과목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논술 시험이 요구하는 것과 정상적인 도덕 윤리과 교육이 요구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윤리 과목이 비록 진부한 예절과 덕목의 훈화나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통일 안보 교육으로 많이 훼손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직간접적으로 철학이나 사상을 포괄하는 과목은 도덕 윤리 과목 뿐이다. 따라서 도덕 윤리 과목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성과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논술과 구술 시험을 주도적으로 대비하는 과목이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철학이나 논리학 과목은 안타깝게도 현재 학교 교육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다. 물론 철학 과목이 교양 선택 과목으로 개설되어 있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학교는 전국적으로 극소수(철학은 전국 3.0%, 논리학은 전국 0.9% 채택)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내신 평가에서 배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수능 중심의 입시 교육에서도 소외된 채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대체적인 실정이다. 공교육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철학 교육이 논·구술 대학 입시를 발빠르게 상품화시켜 온 사교육 시장에서 커다란 수요를 창출하면서 환영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 수능 중심의 입시 제도는 윤리와 철학 교육을 황폐화시켜 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근본적으로 철학과 윤리 교육에 대해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특정한 주제나 문제에 대해 획일적인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객관식 선다형 출제 방식도 문제이지만, 그 정답의 기준이 교과서와 참고서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도 진정한 윤리와 철학 교육에 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도덕 윤리과 교육이 사회 탐구 과목의 하나로서 교과서 중심의 수능 대비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도덕 윤리 교사들은 수능 대비를 명분으로 논술과 구술 시험을 외면하는 것이 일종의 직무 유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때라고 본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존재하는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객관식 선다형 시험으로 정답을 끊임 없이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파시즘적 횡포다.
3. 도덕 윤리 교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가. 윤리과 교육은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하는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
도덕 윤리과 교육의 위기는 어떤 의미에서 도덕성의 타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정말 도덕성의 파탄에 따른 큰 재앙은 파시즘이나 전체주의 체제에서 보듯이 맹목적인 추종과 집단적 광기에서 나온다. 따라서 잘못된 주장이나 악덕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일방적 주장이나 덕목을 근거에 대한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근거에 대한 비판적 사유 없이 특정한 주장이나 이념, 덕목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실천하는 품성이야말로 파시즘적인 비도덕의 전형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국기에 대한 맹세’로 시작되는 일방적인 안보 교육 탈피해야 한다. 반성과 비판이 없는 국민 교육은 맹목이며 공허한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지니는 것이다.
나. 윤리과 교육에 철학의 수혈이 있어야 한다.
윤리과 교육에 필요한 비판적 논리적 사고는 ‘철학함’을 통해 향상된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논술이 요구하는 ‘철학함’은 철학적 지식이나 사상사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며 반성적인 사유 활동이다. 도덕 윤리과 교육이 논술을 주도하는 교과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철학과 진정한 의미의 윤리학으로부터의 수혈이 절실히 필요하다. 철학적 사고와 단절된 이제까지의 도덕 윤리과 교육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학이 없다. 규범에 대한 명료한 인식, 규범의 타당한 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토론, 규범의 정합성에 대한 탐구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덕교육에서 너무도 중요한 철학적 측면이다. 철학(함) 없는 윤리 교육은 맹목이며 본래적 의미에서 불가능하다.
특히 고교의 윤리 선택 과목은 논술 주도 과목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점에서 근래에 고교 도덕과 선택과목 개선 심의회에서 ‘윤리와 사상’(6단위)와 ‘가치와 사고’라는 과목을 설정하기로 대체로 합의한 내용은 바람직하다. 사회과와 내용이 중복되는 ‘시민 윤리’라는 일반 선택 과목을 없애는 대신, 기존의 ‘전통 윤리’ 과목을 흡수하면서 비중을 강화한 ‘윤리와 사상’은 논술 시험이 기본적으로 철학과 윤리 사상을 배경으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가진다고 판단된다. 물론 ‘윤리와 사상’이 기존의 사상사적 접근 방식을 탈피하고 탐구 수업이 가능한 주제 중심의 내용 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논술과 관련하여 더욱 주목되는 것은 제반 윤리적 쟁점과 가치 갈등에 대한 논리적 분석 능력과 사고력 신장을 과목의 특성으로 설정한 ‘가치와 사고’라는 과목의 설정이다. 앞으로 ‘가치와 사고’라는 과목이 단순한 작문 시험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제반 가치 쟁점들에 대한 비판적 사고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논리적 글쓰기로서의 논술 시험에 적응하는 능력을 함양시키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 도덕 교육과 도덕과 교육은 구분되어야 한다.
넓은 의미의 가치와 인성을 강조하는 도덕 교육은 모든 교과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대중 매체를 비롯하여 가정과 학교, 사회 생활 전반에 걸쳐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도덕 교과 수업에서는 늘상 접하는 가치나 도덕 문제에 대한 반성적,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각각의 생활 영역에 따른 덕목이나 가치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는 발상은 매우 관념적이고 실효성이 없다.
예절의 습관화나 덕목의 훈화를 강조하는 인성 교육 대신에 주제나 이슈에 대한 사고와 토론을 강조하는 접근 방식이 덕목이나 가치를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합의된 덕목의 습관화가 아니라 합의된 가치나 덕목들이 삶 속에서 충돌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가치나 덕목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구체적 삶에서 우리가 주로 직면하는 도덕 문제는 선과 악, 덕과 악덕의 갈등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가치, 규칙과 규칙, 덕목과 덕목들이 충돌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적 갈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토론이 생략된 채 이루어지는 덕목의 습관화와 실천의 강조는 공허하고 실효성이 없으며 허위의식과 맹목을 조장할 뿐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의식이 왜 그토록 이중적이고 위선에 빠져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덕목 중심의 교육으로는 덕을 함양할 수 없고 협소한 공동체적 관점의 주입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의식을 키울 수 없다.
라. 윤리과의 모학문을 철학과 윤리학으로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도덕 윤리과 교육의 학문적 배경을 철학과 윤리학으로 분명히 설정하여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물론 교과 교육학과 도덕 심리학 등도 도덕과 교육을 위해 필요한 학문적 영역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배경 학문으로서 가지는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도덕 윤리 교육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학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 철학과 윤리학을 중심적 모학문으로 설정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학제적 성격을 고수하려는 일부 윤리 관련 학회에서 착각하듯이 ‘국민윤리’ 과목에서 ‘국민’이란 두 글자를 삭제한다고 해서 윤리학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마. 중장기적으로 도덕 윤리 과목과 철학 논리학 과목은 통합되어야 한다.
인간과 사회, 자연에 대한 근원적이고 인문학적인 성찰과 탐구가 위축되어 있는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어, 영어, 수학 등 도구 과목에 대한 객관식 문제 풀이 교육에 경도되어 있는 중등교육에서 보편적인 인문 교양의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의 생활과 사회가 세계화와 정보 통신의 격랑 속에서 원자화되고 기능화 되면 될수록 오히려 삶과 세계에 대한 반성적, 근원적, 총체적 사유는 더욱더 의미를 지닌다. 학생들로 하여금 인간과 사회에 대해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주체적인 가치관을 확립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 선진국에서와 같이 넓은 의미의 철학이 인문적 교양 교육을 선도해야 한다. 어떤 학문 어떤 교과든지 심층적 탐구와 반성적 고찰이 이루어지게 되면 철학적 사유와 만나게 된다.
철학이 지니는 이러한 중대한 의미를 직시한다면 현재의 공통 필수 교과인 도덕 윤리와 교양 선택 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는 철학과 논리학이 통합되어 교육과정 상의 공통 필수 과목이 되어야 한다. 도덕 철학과 윤리학이 철학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윤리학이 철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철학으로부터 분리된 도덕과 윤리에 대한 탐구는 온전할 수 없다. 아울러 철학과 윤리 교육이 통합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교사 자격증 표시 과목도 ‘철학’이나 ‘윤리·철학’으로 변경되어야 할 것이며, 이에 따라 교원 양성과정에서도 철학과와 윤리학과의 통합이나 최소한 교원 양성의 다양한 통로가 개방되어야 할 것이다.
바. 교과서 중심의 수업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수업과 평가가 교과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다양한 독서 교육은 불가능해진다. 이제까지 수능 시험이 대학 입시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교과서와 참고서 중심의 수업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입시의 중심이 수시 입학 제도의 확대와 함께 내신과 논·구술 시험으로 변화됨으로써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방향으로 급속히 변화되고 있다. 더 이상 수능 시험을 핑계로 독서와 토론 교육을 외면하는 수업이 계속되어선 안될 것이다.
특히 기존의 도덕 윤리 교과서는 참을 수 없도록 진부한 사고와 거침없는 독단적 언명들로 가득 차 있다. 도덕 교과서 검정 기준의 유연성(교육 과정의 대강화)에 바탕을 둔 교과서의 과감한 혁신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좋은 교과서라면 교과서 밖의 인간과 세상의 삶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교과서 이외의 책이나 자료를 접할 수 있도록 고무시켜야 한다. 그러나 교과서 개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과서에 예속되지 않는 탄력적이고 창의적인 수업이다.
물론 논술을 대비하는 데 교과서 대신 무조건 고전과 양서를 많이 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제시문의 출처가 되는 고전을 읽었는지의 여부는 논술 능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으로 읽고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좋은 책을 정리해서 요약한 자료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의미 있는 주제에 대한 다양하고 대립적인 시각을 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단순하게 요약한 내용이나 긍정적 시각으로만 소개하고 자료보다 주제를 논쟁적으로 다루고 있는 자료가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사. 무엇보다 토론 수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 함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토론 수업을 확대해야 한다. 토론은 모든 형태의 고정관념과 맹목적 편견에 대한 비판적 활동이다. 모든 주제는 토론에 부쳐질 때 그 확정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토론은 진실한 해결을 향한 논리의 싸움이며,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격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토론은 공존과 평화의 방식이기도 하다. 토론이 없는 곳에선 독단이 지배한다. 독단은 집단적 편견을 낳으며, 집단적 편견은 선과 악의 경직된 흑백 논리에 힘입어 상대의 비방과 파괴로 이어진다. 광기와 폭력은 토론이 없는 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특히 요즈음 자신과 다른 주장이나 그 논거에 대한 진지한 경청 없이 일방적인 마녀 사냥이 난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토론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듣지 않는 자는 비판할 자격이 없다. 비판적 토론은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아. 호기심과 흥미를 담은 주제 중심의 수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이 병든 것은 의미 있는 것에 대한 관심 대신에 죽은 지식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도덕 윤리과 교육은 생활에 밀착된 주제들에 대한 창의적인 질문과 합리적인 토론, 자유로운 사고를 차단하고 근거가 불충분한 피상적인 시각을 유일한 정답처럼 단정하고 주입시킴으로써 도덕 교육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켜 왔다는 점에서 환골탈퇴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덕적 진리는 뻔하지만 단지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은 타파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둘러싼 도덕 세계는 항상 대립과 갈등,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도덕은 암기와 실천의 대상이라기보다 고민과 토론의 대상이다. 도덕은 더 이상 우리의 삶에서 소외되지 않고 인간화되어야 한다.
자. 통합 교과적(학제적) 탐구 수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는 다양한 맥락에 대한 이해와 지식 정보를 통합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삶에서 직면하는 인문 사회적 주제들은 특정한 교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교과와 분야가 중첩되면서 발생한다. 따라서 도덕 윤리 수업은 이제까지의 수능 대비 교과서 정리 및 암기 중심 수업에서 탈피하고 개별 교과의 벽을 넘어서서 주제를 중심으로 통합 교과적인 프로젝트 수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러한 탐구 수업이야말로 도덕 윤리과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면서 여러 학문의 단편적 지식을 기계적으로 결합하거나 나열하는 것을 정당화시켜 온 이른바 ‘학제적 접근’ 방식의 진정한 의미를 복원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 복제에 대한 탐구 수업을 위해서는 생명에 대한 응용 윤리학, 인간과 자연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철학적 사유, 종교적 관점 등과 함께 국내외의 관련 규정과 보도 내용, 경제적 파급 효과, 심지어 생명 공학에 대한 자연 과학적 지식 등 다양한 분야의 탐구 결과가 활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통합형 대입 논술이 이름과 달리 모든 교과의 내용을 통합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입시에서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과 도덕 윤리 수업이 통합 교과적 탐구 수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차. 다양한 탐구 활동에 대한 수행평가가 강화되어야 한다.
‘학생은 가르치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평가하는 대로 움직인다.’ 교실을 활기찬 탐구 공간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탐구 활동에 대한 평가의 부재 때문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인위적인 시험 상황이 아니라 실제의 정상적인 수업 상황에서 의미 있는 모든 과정을 수시로 평가하는 수행평가를 확산시켜야 한다. 논술과 구술 능력은 수행평가의 핵심적 내용이자 탐구 수업이 도달하고자 하는 근본적 목표이다. 발표와 토론 뿐만 아니라 독서 활동과 학생들의 논술 능력을 평가하는 정상적인 수업과 정기 고사를 통해 활성화되어야 한다.
수행평가는 학생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평가 자체가 없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탐구 활동을 평가하지 않는다면, 결국 무의미한 암기 능력만 평가될 수밖에 없다. 무의미한 평가야말로 불공정한 평가이다. 점수에 과민 반응하는 학생과 학부모, 학교 관리자들에 의해 계속 견제를 받아야 하는 교사들에게 무의미하지만 잡음이 없는 지필고사 중심의 손쉬운 평가(일부 수행평가에서도 정답 찾기의 모순이 계속되고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교실 공간에서 진정한 교권을 확보하고 ‘살아 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함께 평가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의 고단한 논쟁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파. 교과서 검정제를 통해 교재의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논술과 구술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도덕 윤리 교과서의 다양성을 통해 컨텐츠의 질적 향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서 검정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도덕 윤리과의 오랜 숙원이었던 검인정제가 기존의 타 교과에서와 같이 국정제와 거의 차이가 없는 획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어서는 곤란하다. 도식적인 생활 영역에 따른 덕목과 가치 체계, 그에 따른 상세한 목차가 교과서 검정의 기준으로 강요되는 것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도덕과 교육이 다원적 민주주의와 정보화의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려면 국가는 검정 기준으로서 교과 교육을 통해 도달해야 할 목표와 요건을 제시하고, 교과서 구성 및 서술의 다양화, 수업 방식의 창의적 운영 등을 위해 교육과정의 대강화하는 것이 요구되며, 내용의 적정화를 통해(Less is More) 교사와 학생들로 하여금 수업 내용과 방식의 선택에서 자율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Ⅴ. 맺는 말
이제 온 국민의 관심사인 대학 입시를 위해서도 제대로 된 공부가 점점 필요해지고 있다. 정상적인 논술과 구술 시험은 우리의 교육을 암기 교육에서 생각하는 교육으로 변화시킬 커다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도덕 윤리과 교육은 전에 없는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그 전제 조건은 철학과의 만남과 통합이다. ‘철학함’을 담은 윤리 교육을 통해 논술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비판적 사고력의 함양에 진력해야 한다는 것은 ‘통합형 논술’이라는 일부 대학의 입시 제도에 편승하자는 단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기존의 윤리 교육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자신의 본래 터전인 철학적 비판적 사유를 과감히 수용하여 환골탈태를 하는 길만이 생존과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변화의 근본 목적이다. 이러한 변화의 요구를 외면하고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예절의 습관화와 덕목의 일방적인 훈화로 대변되는 권위주의적인 인성 교육과 함께 정체불명의 시대착오적인 국민 윤리 교육에 안주하면서 진부한 암기 과목의 하나로서 명맥을 유지하려 한다면, 종국에는 학생과 교사,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여 타율적으로 폐지될 운명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