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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도덕 판단교육을 위한 갈망
1. 도덕 판단교육의 문제
"아이들이 지녔으면 하는 덕목을 나열해 놓고 가르치라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도덕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토론하게 하고 그 속에서 판단하게 하라는 모순은 교사들을 혼란에 빠뜨린다."(p12-13)
“학생들에게 도덕수업 시간은 대부분 지루하고 의미 없는 시간이다. 예화로 가득한 교과서를 읽고 끝부분에 제시된 질문에 대해 각자 답을 말하고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활동은 아이들에게 지적인 도전을 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감정적인 흔들림을 주지도 못한다. 더욱이 자신들의 삶이나 문제들과 관련하여 특별히 의미 있는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못한다. 도덕수업을 받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받지 않는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덕교육은 교사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외면당하고 있다.” (김혜숙, 12-13p)
도덕적 인격은 단순한 덕목의 수용이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 주체적인 판단능력을 가지고 그러한 인격을 형성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p15 참조)
도덕교육이 도덕적인 인격을 교육하는 것이고 도덕적인 인격이 주체적인 도덕적 판단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도덕교육의 핵심이 도덕적인 판단능력의 함양에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p15-16)
Ⅱ 현행 도덕 판단교육에 대한 반성
1. 현행 도덕교육에서 ‘도덕 판단’ 개념
1) 콜버그의 딜레마 추론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도덕발달의 단계를 결정짓는 추론에 관한 그의 생각이다. 그의 도덕발달 이론은 피아제의 인자 발달 단계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추론을 결정짓는 요인은 인지구조이다. 인지구조란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 것을 해석하거나 해결해 나가는 추론의 방식, 즉 ‘평형화(equailbration)’를 위한 추론의 방식이다.
2) 헤어의 실천추리
일상 언어학파인 헤어는 정의주의자(emotivism)와 달리 도덕 판단에도 인지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 판단과 그 이유들 사이에는 사실 판단과 같은 논리적 필연성은 없다 하더라도 적합성(relevance)을 따져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도덕 판단의 근거에는 적합한 것도 있고 적합하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어떤 것이 적합하고 적합 안 한지를 가르는 기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연역도 아니고 귀납도 아닌 도덕적인 판단을 지배하는 제3의 논리가 있다고 막연히 생각한다.(p29-30)
여기에서 헤어는 좀 더 자신만의 논의를 전개시킨다. 우선 그는 사실 판단으로부터 도덕 판단을 이끌 수는 없다는 논리적 실증주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헤어는 그렇다고 도덕 판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도덕 판단 추리는 이러한 전제를 출발점으로 전개된다.
그는 우선 도덕 판단은 명령을 함의하고 있는 규정적 언어(prescriptive languge)로 보고 이 언어가 갖고 있는 논리성을 파악하였다. 규정적인 언어가 논리적인 측면을 갖는다는 것은 도덕적인 판단이 논리적인 측면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도덕 판단 역시 사실 판단처럼 논리적인 추리가 가능해진다.
헤어의 도덕 판단 추리는 대개 삼단논법의 형식을 갖는다. 이때 그는 “전제에 없는 것을 결론 속에 끌어낼 수 없다”는 일반 논리학의 원칙과 “사실 판단으로부터 가치판단을 도출 할 수 없다.”는 흄의 법칙에 따라 “전제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도덕원리(규정적 언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한 그로부터 도덕적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기본명제를 도출하고 그것을 추리 형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가 제시한 도덕 판단 추리의 논리적 형식은 다음과 같다.
대전제 : 자동차의 스프링을 부러뜨리면 안 된다. (규정적 언어)
소전재 : 속도가 지나치면 스프링이 부러진다. (사실판단)
판단 : 그러므로 지나친 속도로 자동차를 몰면 안 된다. (행위 판단)
도덕 판단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도덕적인 추론의 문제로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
도덕 판단은 사실 판단보다도 훨씬 많은 복합성을 가진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판단이다. 단지 덕목이나 원리를 대입하는 최소도덕으로는 도덕 판단이 제대로 이우어질 수 없다. (p50)
(박진환은 도덕 판단의 수월성을 위해서는 도덕 판단교육의 드뤠푸스의 전문가 모형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진환, “생각함을 키우는 어린이 철학교육”, 『윤리교육연구』 제7집, 2005, pp.2-3.)
롤즈의 정의론은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칸트의 도덕계약론에 근거해 있다. 계약론은 ‘합의’와 ‘의무’라는 두 개념을 전제로 한다. 롤즈는 합의의 절차가 정당하면 결론으로 나온 원칙 또한 정당해 진다고 본다.
Ⅳ. 립맨의 합당성 개념과 그 구현 방안
합당성 개념의 특징
립맨은 과거의 세대가 후손들에게 물려준 덕목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가 지식과 지혜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지식과 지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식은 원인과 결과, 목적과 수단과 같은 합리적 관계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필요했다. 하지만 지혜는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없어서 일종의 솔로몬의 판단과 같은 것에 의지해야 할 때 필요하다.”
이성과 지식과 논리로 무장한 합리성이 더 이상 우리를 바르게 안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답을 포기할 수는 없다. 최선의 것을 찾아야 한다. 립맨은 이 최선의 것이 합당성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합당성은 규범적인 개념이고 평가적인 개념이다. 우리의 판단을 최선의 것이 되게 하는 혹은 우리의 판단이 최선의 것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p99)
그렇다면 립맨이 말하는 합당성이 가진 특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실천성 (실천이 갖는 맥락성, 맥락에 대한 민감성, 실천력을 위한 주체성)
립맨은 합당성을 논의하면서 가장 먼저 대비한 개념은 합리성이다. 그에 의하면 합리성은 이성과 논리이며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확립된 지식의 체계이다.
그렇다고 해서 립맨이 롤즈처럼 합리성과 합당성을 배타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립맨은 합당성을 “판단과 관련된 합리성” 혹은 “판단에 의해 조절된 합리성”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합리성과 합당성이 구별되는 맥락은 ‘판단’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판단은 실천적 지혜의 영역에 있다. 따라서 합당성은 실천의 영역에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용주의 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도구주의(instrumentalism) 역시 실천력을 중시한다. 제임스는 퍼스의실험실 속의 도구주의를 실제의 삶의 영역 속으로 끌어들였다. 삶 속에서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이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라고 하였다. 또한 어떤 주장들이 해결될 전망이 없이 대립될 때에는 그것들이 우리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하라고 말하였다. 참과 거짓을 가리기 까다롭다면 실천적 측면에서 따져 보라는 의미이다.(p102)
듀이는 이러한 도구주의를 정치와 교육이라는 실천적 문제에까지 확장하고 있다. 특히 립맨은 이러한 듀이의 실용주의적 이론과 실천적 입장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립맨의 실천적 판단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결정적인 동기는 1986년에 있었던 콜롬비아 대학의 학생소요사건이었다. (베트남 반전운동을 중심으로 대학의 주요시설을 점거하며 경찰과 충돌하여 문제가 된 사태) 립맨은 학교의 관계자들과 학생들은 자신의 갖고 있는 신념만을 따를 뿐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 어릴 때부터 올바른 ‘의사소통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한다. 이러한 이유로 립맨은 1969년 7월에 교육학자였던 샵(A. Shap)과 함께 IACP(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Philosophy for Children)를 세우고 어린이를 위한 판단력과 의사소통능력 향상을 위한 ‘Philosophy for Children’이란 프로젝트를 실시하였다.
결국 립맨이 합당한 판단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가 실천의 문제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문제의 연속이며 그 해결의 과정이다. 그것은 선택을 필요로 실천적 문제들은 어느 경우든 판단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삶의 문제들은 대부분 관련되는 지식이나 덕목(가치, 원리)을 그대로 적용해서 해결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합리성에 기반을 둔 원리나 원칙 혹은 논리적인 정당성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p104)
오늘날 토론대회나 논술에서 제시되는 도덕적 문제들은 각각의 주장이 갖는 원리와 가치의 충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결책 보다는 평행선을 달리는 주장만이 있을 뿐이다.
‘립맨이 실천적인 판단의 전문가로 자주 예를 드는 것은 의사와 판사이다. 그들은 모두 법과 의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실천에 필요한 원칙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개별적인 상황에 처해서는 그 원칙들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의사의 경우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 하더라도 그의 병리적 상태를 결정짓는 다양한 고려사항들은 물론 심리적 상태까지 고려하면서 병에 대한 판단과 치료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판사도 마찬가지이다. 법전에 판결에 대해 명시되어 있고 그에 따라 판결을 하면 되지만 실제의 사법적 상황은 매우 복합적이다. 단순히 명시된 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문제들이 많다. 따라서 맥락에 맞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김혜숙, 2008: 104-105)
만일 실천적 맥락이 없이 원칙과 규칙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아 같은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도덕적인 문제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도덕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우 개별적이고 특수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표준적인 덕목이나 보편적인 원칙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적용에 있어서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급속히 변하는 세상은 너무나도 생소한 도덕적인 문제들을 우리 앞에 쏟아 낸다. 인간 복제나 안락사 문제, 그리고 인터넷에 의해 발생하는 각종 도덕적 문제들은 우리가 예전에 갖지 못하던 문제들이며 우리들은 아직 그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어떤 내용적 가치도 원칙도 마련하지 못하였다. 새로운 가치와 원칙의 구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기대어 선 가치와 원칙들의 적합성을 끊임없이 따져 보아야 한다. 합리성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주어진 지식이나 가치에 대한 절대적 신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도덕적 실천 판단에 관한 정답을 찾기란 힘든 일이다.” (김혜숙, 2008: 106)
새로운 문제들은 합리성으로만 해결될 수 없고 새로운 판단기준이 필요한데 그것은 실천적 측면의 합당성이다. 립맨은 합당성이 실천적 판단을 전제로 한 개념으로 실천적 판단이 가져야 할 궁극적인 기준이라고 하였다. (p106)
립맨에 의하면 실천적 합당성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맥락에 대한 민감성이다.
학생들의 삶의 경험이 탐구의 텍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
경험과 자연의 관계나 경험의 재구성 과정을 보여준 ‘경험이론’이었다. 이는 한 사회에서 시민 개인이 직접 겪거나 당한 생생한 경험은 시민성 형성에 토대가 됨을 말해주었다. 기존의 시민성교육을 보면 직접적이지 않은 경험들, 나쁜 경험들, 경험과 이반된 지식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경험이론을 통해 도출된 ‘질적 직접성’이라는 속성은 시민이 겪는 여러 사회 문제나 상황에 대해 기초적이고 침투적인 성질을 부여하였다. (서용선, 「존 듀이 철학에 나타난 시민성 개념의 교육적 재해석」)
유스(G, Yoos)의 일차적 측면(primary aspect)의 개념들 (박진환, 고차적 사고력 교육, p122 참고)
따라서 질적 직접성이나 일차적 측면을 무시한 채 같은 가치나 원칙을 적용해서는 일천적 합당성을 가질 수 없다. (p107)
도덕적인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그 상황에 관련된 도덕적인 표준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지만 그러한 표준들이 중용으로서의 적합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고유한 맥락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유연한 적용과 함께 원리나 가치들이 좀 더 실천에 있어서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립맨은 정당한 이유와 원칙을 대는 일이 실천적 판단에 있어서 구문론적 접근(syntactical approach)이라면 맥락을 파악하는 일은 실제 상황이 가지고 있는 의미까지도 파악하는 의미론적 접근(semantical approach)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듀이 역시 맥락을 중시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과 환경, 즉 맥락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상황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단일한 대상이나 대상들 간의 집합도 아니다. 우리는 고립된 상태의 대상들이나 사상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맥락을 이루는 전체(cotextual whole)와 연관해서 대상들과 사상들을 경험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경험에 비춰 볼 때 고립된 대상이나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대상이나 사상은 우리를 둘러싼 경험되는 세계, 즉 하나의 상황의 특수한 일부이며 측면이다.”
우리는 인식주체로서 맥락에 대해 고려를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맥락을 떠나서 생각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맥락에 대해서 생각한다기보다는 맥락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이다.
결국 실천적 합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기 위한 이유를 갖는 것 이외에도 문제가 속한 맥락이 갖고 있는 시간과 공간적 배경은 물론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의 입장과 감정, 그리고 그 문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관점 등 좀 더 폭넓게 맥락을 읽을 필요가 있다. 즉 맥락에 대한 민감성이 아주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적 지혜를 강조한 것도 롤즈가 반성적 균형을 강조한 것도 결국은 실천적 맥락에 따른 차이를 중시하는 실천적 합당성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김혜숙, 2008: 109)
결국 실천적 합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주체성의 개입이다. 다시 말해 그 판단이 내가 자발적으로 한 판단인가 하는 점이다. 립맨은 교육의 목표가 자율적인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율적인 사람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세상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이해하려 하고 자신이 되고 싶은 인간의 개념을 스스로 키워 나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자가 실천적인 삶의 맥락에서 분별력을 가지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김혜숙, 2008:109-110) 자기 판단력이 있어야 우리 삶에 대한 실천적인 힘을 갖는다는 것이다.
2) 다측면성
맥락에 대한 고려는 자칫 반정초주의가 갖는 상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 립맨은 이를 경계하며 기준이나원칙이 필요성을 강조한다. 합당해지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합당성이 일차적인 규범적 기반을 갖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 있으며 나아가 각각의 기준별로 동시대의 사람들이 널리 인정하는 표준이 존재한다. 우리들의 판단은 그러한 기준이나 표준을 근거로 이루어지며 따라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을 띤다고 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실처적 지혜의 표준으로서의 도덕적인 덕이 있고 롤즈에게 반성적 균형의 표준으로서 합리적 선택에 의한 원칙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합당해지기 위해서는 기준이나 표준이 있어야 한다. 바로 비판적 측면에서의 검토이다.
(1) 비판적 측면
비판적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다. 립맨은 비판적(critical)이라는 말의 어원이 기준(criteria)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합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기준은 우리의 판단에 객관성과 신뢰성을 준다.
(p112) 립맨은 메타기준(meta-criteria)가 메가기준(mega-criteria)이라는 개념도 사용하고 있다. 메타기준은 기준의 적절성을 알아보는 기준, 즉 기준에 대한 기준들로서 적절성(relevance), 강력성(strength), 일관성(consistency) 등을 들과 있으며, 메가기준은 아주 높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서 판단을 할 때마다 암묵적으로 전제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규제적 이상으로 인식론의 메가기준은 참이며, 윤리학의 메가기준은 옭고 그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판단을 할 때는 항상 옳고 그름이라는 대전제를 규제적 이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준이나 표준은 잠정적인 것이며 언제든지 좀 더(p114) 적절한 근거들에 의해서 변경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맥락에 따라서 항상 재검토되어야 한다. 결국 잠정적인 기준이나 표준에 의한 판단은 모두 잠정적이다. 립맨은 이러한 측면에서 비판적 측면이 반성적 측면을 가진다고 하였다. 우리가 내린 판단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현재의 맥락에 적합한 것인지를 항상 반성해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립맨에 의하면 반성적 사고는 “자신의 채택하고 있는 근거와 절차와 관점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또한 반성적 사고는 “선입견이나 편견, 자기기만을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알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절차에 대한 사고이면서 동시에 내용에 대한 사고”라고 말한다. 따라서 반성적 특성을 가진 비판적 사고는 메타인지적인 사고이며 동시에 자기수정적인 사고이다.
(P115) 특히 립맨은 인간 판단의 오류 가능성을 이유로 비판적 사고에 있어서 자기수정(self-correct)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이것은 우리들의 지적 겸손을 요구한다. 그래야 자신의 한계는 물론 독단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류가능성에 기초한 지적 겸손을 토대로 반성적 측면을 갖지 않고는 우리의 판단은 비판적 측면을 확보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합당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기준을 가지고 자기의 판단을 반성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어떻게 그 판단의 합당성 여부를 구별할 수 있는가. 단순히 기준을 가지고 있거나 표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합당성이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좀 더 적절한’ 기준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엄격한 논리적 판단이 맥락에서는 형식 논리의 타당성이 기준이 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실천의 맥락 속에서 형식 논리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형식 논리는 추상적이고 기호적인 언어를 추구하는 반면 우리들의 일상 언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논리적 실증주의자들은(p116) 윤리적 언명에 대한 판단을 포기하였으며, 헤어는 어떻게든 그러한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실천삼단추리라는 다분히 형식적인 판단을 도모한 것이다. 그래서 립맨은 형식 논리와 함께 비형식 논리에 주목하였다. 립맨은 비형식 논리를 바탕으로 실천적 맥락에서의 합당성을 가름하는 새로운 평가개념을 도입하는데 바로 ‘평가 원칙(value-principle)’이다. 립맨은 정확성(precision), 일관성(consistency), 적절성(relevance), 수용가능성(acceptability), 충분성(sufficiency)이라는 다섯 가지의 평가원칙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평가원칙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판단이 가져야 할 합당성의 기준이다. 나아가 립맨은 그 평가원칙이 따라야 할 표준까지 제시하고 있다.(박진환, 고차적 사고력 교육:235-241) 기존의 비형식 논리의 오류 목록을 평가원칙과 연결시켜서 ‘합당성을 세워 주는 타당성표’로 제시하고 있다.
실천적 합당성이 갖는 맥락에 대한 민감성은 이러한 ‘평가원칙’을 기준으로 하고 ‘타당성표’를 기준으로 하는 자기 수정적 반성의 과정을 거친다. 물론 이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오류가능성을 토대로 한 겸손과 자기 수정적 태도이다.
(2) 창의적 측면 (p117)
비판적인 측면은 주로 현재 가지고 있는 기준과 근거 혹은 표준을 중심으로 판단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기준이나 표준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상황을 만나거나 비판적인 검토 과정에서 판단에 오류가 발견되었을 경우에는 새로운 기준과 표준 혹은 판단이 필요하다.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좀 더 창의적인 측면이 필요한 것이다.
립맨은 비판적인 측면이 대개 수렴적인 특징을 갖는다면 창의적인 면은 확장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하였다. 창의적이라는 것은 당혹스러워하면서 문제를 만들어 내고 도전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립맨은 창의적인 측면의 핵심개념으로 새로움, 문제성, 도전, 발견, 발명, 구성 등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3) 배려적 측면 (p121)
립맨이 비판적·창의적 측면과 함께 중시한 것은 배려적 측면이다. 이것은 주로 감정(emotion)과 관련이 있다. 특히 행동을 이끄는 동인으로서 감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다마오지(A. Damasio)의 연구는 감정의 역할에 경험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감정을 느끼는 뇌의 부분이 손상된 환자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결정이나 선택을 내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합당성과 관련하여 립맨은 감정을 크게 두 가지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내용으로서의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기능에 관여하는 절차로서의 감정이다. 우선 내용으로서의 감정에 대해 특히 다마지오의 느낌(feeling)과 감정(emotion)에 대한 구별에 주목한다. 다마지오에 의하면 감정이 인간과 환경과의 생태학적 관계(고소공포증이나 일에 대한 두려움 같은)에 의한 것인 반면 느낌은 유기체 내의 상태(무릎관절의 아픔이나 어깨 결림)라고 구별한다. 그러므로 느낌은 조절이 쉽지 않은 반면 감정은 조절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립맨에게 감정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기보다는 적절하게 조절되었을 때 가치 있다. 합당한 감정을 갖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합당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맥락에서 립맨은 감정과 감정의 표현을 단순히 심리적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판단으로 본다. 예를 들어서 적절한 재판의 과정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무참하게 짓밟는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를 보면서 분노를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판단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노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원인으로 해서 생긴 단순한 심리적인 결과라기보다는 관타나모 수용소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판단이 게재된 인지적·행동적 분노이다. (p123)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이 적절한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감정들에 의해서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립맨은 감정적 합당성 여부가 주로 맥락을 고려한 실천적 합당성과 비판적인 측면의 합당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감정이나 표현이 맥락에 맞는 것인가 하는 점과 감정의 종류나 표현방식의 이유가 적절했는가 하는 두 가지 점에서 감정의 합당성은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용으로서의 감정이 판단의 결과라면 절차로서의 감정은 판단의 과정에 게재한다. 예를 들면 비판적 측면에서 기준이 비교와 구별을 가능하게 하듯이 감정도 비교와 구별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점을 설명하기 위해 립맨은 엘진(C. Elgin)의 아이디어를 인용하고 있다. 엘진은 감정이 판단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절차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하였다.
① 초점 맞추기(Focusing) : 감정은 우리들이 일정한 대상에 초점을 맞추도록 돕는다. 우리가 주목할 것을 결정하게 해 준다.
② 준거 틀을 형성하기(Framing) : 감정은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일정한 태도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일정한 틀을 제공한다.
③ 내면화 시켜 주기(Embedding) : 감정은 어떤 대상이나 생각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주면서 하나이 신념이 되도록 돕는다.
④ 강조해 주기(emphasizing) : 감정은 대상을 돋보이게 하고 두드러져 보이게 하면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관심의 방향을 조절해 준다.
감정은 민감성의 패턴과 방향과 정도, 그리고 균형감을 준다고 볼 수 있다. 립맨은 이런 점에서 감정이 중요한 인식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였다.
립맨은 감정이 판단의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적극적으로 배려적 사고(caring thinking)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나는 배려함이 단순히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 사고의 한 형태이거나 한 차원이거나 혹은 한 측면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배려함이 대안을 찾고 관계를 발견하거나 만들어 내며 나아가 관계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과 같은 인지적 작용을 수행할 때 그것은 일종의 사고인 셈이다.”
립맨은 판단에 미치는 배려적 측면을 정서, 행동, 감정이입, 가치부여, 규범의 다섯 가지 특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선 립맨은 정서나 행동도 하나의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고와 감정과 행동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화를 내거나 문을 발로 차는 행위 등도 일종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립맨은 “사고의 결과가 최소한의 판단이라면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최대한의 판단”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립맨은 행동적 사고(active thinking)라는 표현을 쓰면서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감정에 의해 관심을 가지게 된 대상을 돌보고 보존하고자 애쓴다. 감정이 생각을 일정한 방향으로 불러일으키고 조절할 뿐 아니라 행동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감정이입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립맨은 이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감정과 관점으로부터 몇 결음 뒤로 물러나서 다른 사람의 감정과 관점을 상상해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면 맥락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다. 존슨(M. Johnson)은 감정이입적인 상상은 우리가 서로 공유하는 세계에서 살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의 몸짓과 행동과 지각과 경험과 의미와 상징과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게 해 주는 매우 중요한 행위라고 하였다.
(우리는 비판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감정’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감정이나 ‘정서’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정서가 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판단력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 판단력 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판단을 통해 올바른 정서를 갖고 이를 표현하고 실천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립맨이 배려적 측면을 감정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치의 문제를 덧붙이면서 매우 중시한다. 물론 감정적 합당성은 그것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감정이 일정한 관심을 갖게 하고 그 관심이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부여에 따라 규범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는 면에서 가치는 좀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립맨이 배려적 사고를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 말은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판단의 과정에서 개재헤는 감정의 핵심은 관심이며 이 관심은 주로 가치부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국 실천적인 맥락에서 합당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단지 합당한 사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합당한 감정을 갖고 합당한 결정이나 선택을 내리며 그에 따라 합당한 행동을 취하는 모두를 의미한다. 이러한 합당성은 비판적이고 창의적이고 배려적인 측면이 골고루 갖춰져야 획득될 수 있다.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측면만으로 합당성을 이룰 수 는 없다.
기준이 있지만 그 기준에 메이지 않아야 하며 그 적용에 있어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어떤 한 측면이 없이 합당성을 이룰 수 없다. 탐구과정 혹은 숙고의 과정 속에서 세 측면이 역동적으로 함께 기능한다. 타가드의 다중적 정합이 병렬분산처리방식에 의해서 처리되듯이 이 세 가지 측면이 주는 다양한 고려사항들과 기준과 원리들이 병렬적으로 관련지어지고 상호작용하면서 합당함이라는 감각을 찾아 나간다.
3) 공동체성
[협력적 상호작용이 필요한 이유]
“경험의 한계, 인식의 한계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오류가능성이 클 수 있다. 그러므로 혼자서 아무리 다양한 장치를 사용해서 합당성을 확보한다고 해도 그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판단은 공동체 속에서 함께 탐구될 때 좀 더 합당해진다. 합당성은 공동체적인 특징을 가져야 좀 더 합당해지는 것이다.” (p129)
"구성원들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나 토론을 통해서 탐구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들은 물론 다양한 질의 비판적·창의적·배려적 측면의 도구들을 공유하게 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판단도구를 활용해서 공동체적 판단을 얻는 것이다.” (p129)
-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긴밀하게 연결됨. 하버마스는 지나치게 이성에 근거한 목적 합리성만을 강조된 것을 비판하며 인식적 합리성 이외에 도덕적 합리성과 미학적 합리성을 첨가하였고 이러한 세 가지 합리성이 조화를 이루는 포괄적인 합리성으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론을 전개한다. 그의 이론의 핵심은 사람들은 의사소통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정보나 경험을 교환하고 탐구를 통해 의미를 명백히 하면서 사실이나 가치에 대한 공동의 이해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상호주관적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스프로드(T. Sprod)는 이를 “해석학적 탐구 서클”로 비유하고 있다. 그 이유는 “참여자들은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평을 병합하려 시도한다. 그러한 탐구는 참여자들의 그 공동체로의 병합(사회화)을 초래하고 공동의 이해를 위한 일종의 유연성(변화와 혁신)을 낳을 수 있는, 현실과 사회에 대한 공유된 상호 주관적 이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립맨의 합당성이 가지는 공동체적 특징은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립맨은 타인과의 대화가 내면의 대화가 되면서 개인의 사고력이 발달되고 판단력이 향상된다는 비고츠키의 의사소통에 대한 강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탐구 과정에서 결론이 나지 않는 것에 대해]
“물론 공동체적 판단이 항상 합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합의에 이를 수도 있고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합의에 이르는 것이 최선이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난감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공동체적 탐구나 숙고의 과정 속에서 내가 가진 오류가 드러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정보나 내가 가지지 못한 다측면적인 도구들의 섬세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이 나의 최종적인 판단을 좀 더 적절하게 이끌게 될 것이다. 나의 개별적 판단이 공동체적 합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p131)
탐구의 결론은 시간이 흘러 탐구가 진전된 후에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과 상관없이 결과물은 주어진 토론 시간에 필연적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결과물이 단정적인 결론의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능한 견해들이거나, 문제에 대한 정의 혹은 평가적인 인식의 성장일 수도 있다. 확답이라기보다는 드러내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최종적인 답이 주저이지 않더라도, 지적인 움직임에 대한 어떤 감각 혹은 인식에 대한 어떤 느낌은 있을 것이다.
[탐구 과정에서 공동체성의 중요성]
콜버그의 정의공동체 역시 공동체를 강조한 이론이다. 그런데 그의 이론은 공동체를 강조한 듯이 보이지만 자유에 기반을 둔 이론으로 개인적인 판단의 질을 높이는 의미에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이지 공동체 자체를 중요시한 것은 아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목적-수단의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공동체적 합당성에도 똑같이 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비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판단의 질을 높이는 과정에서 공동체적 접근을 중시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의 판단에 미치는 공동체의 영향력을 사실적 측면에서든 당위적 측면에서든 중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개인의 판단에 공동체가 관여한다는 의미는 그 결과가 단순히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공동체적 판단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결과적인 측면에서 보면 개인의 판단력 강화는 역으로 공동체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의 논의를 거쳐 자율적 판단력을 향상시켰다면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자율성이 아니라 공동체적·사회적 자율성에 기반을 둔 공동체적·사회적 판단의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자율의 개념을 공동체로부터 떼어 내어 순수하게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어떤 개인도 진공의 상태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듀이의 말처럼 인간은 유기체-환경 시스템 안에서 그것에 의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적인 판단이 공동체적 합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는 공동체 자체의 합당성을 획득하는 길이기도 하다. (p131-132)
4) 규제적 이상성
립맨에게 있어서 합당성은 판단의 목적이면서 판단의 기준이다. 모든 실천적 맥락에서 판단의 과정은 합당성을 이상적 목표로 해서 합당성의 규제를 받는다. 즉 합당성을 모든 판단이 가져야 할 규제적 이상(regulative idea)으로 보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판단은 주로 추론을 통해 얻어지지만 의미에 대한 판단은 해석이나 번역을 포함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것이든 판단은 관계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추론은 근거와 결론과의 관계이며 해석이나 번역은 어떤 의미와 다른 의미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립맨은 판단을 “차이와 유사, 동일성, 인과, 상호의존성 등과 같은 관계들의 표현”으로 아주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판단은 진리의 구조는 물론 의미의 구조를 세우는 일을 포함한다. 이해는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인데 그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판단이기 때문이다.
[판단은 인격을 구성하고 인격은 삶의 질을 구성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세상과 삶, 그 안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과 삶과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대하는 방식도 판단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판단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단은 단순히 판단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 준다.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고 해석하는지를 보여 준다. 순간순간의 인지적·감정적·행동적 판단들이 실행되고 누적되면서 ‘나’라는 인격을 형성해 가는 것이고, 다시 판단은 그런 ‘나’를 바탕으로 일어나면서 나의 인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립맨은 판단을 인격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판단이 인격의 표현이고 인격에 따라서 삶의 질이 결정된다면 결국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판단이다.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말은 좀 더 양질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양질의 판단, 즉 합당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립맨은 합당한 판단의 목적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의 질에 있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으로 둔 것과 다르지 않다.
[공동체의 합당성과 민주주의의 가치] p135
인간의 삶은 대개 개인적인 차원과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두 차원의 판단 역시 합당성을 규제적 이상으로 한다. 립맨은 특히 공동체 판단이 합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구조(정책, 원칙, 절차의 네트워크)가 합당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서 민주주의를 꼽고 있다. 결국 립맨이 그리고자 한 세상은 합당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합당한 공동체로서의 민주적인 세상이다. 개인과 공동체가 모두 실천적 문제에 있어서 맥락과 주체성을 중시하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이고 배려적인 고려를 통해서 좀 더 합당한 판단력을 가지기를 원한 것이다.
[정리]
결국 립맨의 합당성 개념은 “실천적 맥락에서 판단이 가져야 할 규제적 이상으로서 다측면성과 공동체성을 통해 맥락의 특구성과 판단의 객관성을 동시에 포괄하는 반성적 균형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식론적 측면에서 립맨의 합당성 개념은 정초주의와 반정초주의의 사이에 있다. 그러므로 립맨의 합당성 개념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와 중요의 개념, 롤즈의 합당성과 반성적 균형, 타가드의 다중 정합성과 같이 맥락적 객관주의의 입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2. 합당성 규현을 위한 철학적 탐구공동체
1) 합당성과 철학적 탐구공동체
철학적 탐구공동체는 퍼스의 탐구공동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퍼스는 과학자 집단이 논거의 정당성, 강력한 증거 등을 준거로 해서 비판과 토론을 통해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점을 착안하여 이를 탐구공동체라고 불렀다. 립맨은 탐구공동체에 철학이라는 개념을 덧붙여서 철학적 탐구공동체를 창안하였다.
철학과 탐구, 공동체라는 개념을 ‘합당성’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1) 합당성과 ‘철학’
철학을 정의하는 것은 철학자들도 꺼려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어원을 보면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며 그를 위해 끊임없는 질문과 음미와 반성을 거듭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를 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철학은 세상과 삶에 대한 본질이나 궁극적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 하위 학문으로 실재를 묻는 형이상학, 앎이 무엇인지를 묻는 인식론, 선을 묻는 윤리학, 아름다움을 묻는 미학, 사유의 절차를 묻는 논리학이 있다.
(2) 합당성과 ‘탐구’
[탐구의 현대적 의미, 퍼스, 듀이, 립맨의 입장에서]
현대적 의미의 탐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퍼스이다. 그는 탐구를 “의심으로부터 생기는 곤혹감을 안정된 신념으로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이끌어 나가는 행위”로 본다. 이때 안정된 신념을 획득하는 방법으로는 고집에 의한 방법 권위에 의한 방법, 선험적 방법, 그리고 과학적 방법 등 네 가지의 전형적인 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퍼스는 그중에서도 과학적 방법이 새로운 신념을 구성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과학적 방법은 논거의 정당성, 강력한 증거 등을 준거로 비판과 토론을 통해 각각의 신념들을 검증해 나가는 절차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스는 철학을 비롯한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탐구는 과학 실험실에서의 방법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탐구에 대한 이론을 심화시키고 일상과 교육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킨 사람은 듀이다. 듀이는 무엇보다 과학탐구와 가치탐구를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사실 판다나도 가치 판단도 모두 유기체-환경의 시스템 속에서 세상을 이해해 나가기 위한 탐구의 소산이며 모두 도구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과학적 탐구가 항상 새로운 비판에 열려 있듯이 가치의 영역들도 언제나 비판적인 탐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특히 듀이는 사실에 대한 탐구이든 가치에 대한 탐구이든 그들은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하였다. 듀이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탐구를 ‘문제해결의 과정’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크게 불확정적 상황을 전제로 문제를 설정하는 단계, 가설이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단계, 그것들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추론의 단계로 나누었다. 이것은 이후의 학자들에 의해서 문제해결의 알고리즘으로 재구성되기도 하였다.
탐구의 원천이 불균형이라는 문제성(problematicity)에 있다면 탐구를 계속적으로 가동시키는 에너지는 오류가능성이다. 퍼스에 의하면 오류가능주의(fallibilism)는 “우리의 앎이 결코 적대적이지 않고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의 연속체 안에서 언제나 이리저리 헤엄치고”있기 때문이다. 앎의 속성은 불확실성 혹은 불확정성이다. 립맴은 지식이나 신념의 오류가능성을 넘어서 우리가 가진 인식도구들의 오류까지도 언급한다. 단순히 판단의 결과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인식도구들에 형식적·비형식적 오류가 있어서 판단이 잘못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탐구는 끊일 수 없다. 그 탐구의 결과가 정답이거나 확정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탐구를 통해서 좀 더 나은 답, 즉 합당한 판단을 도출해야 한다. (김혜숙, p143-145)
(3) 합당성과 ‘공동체’
“탐구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이끌면서 우리에게 좀 더 합당한 판단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바로 공동체이다. 공동체적 합당성을 중시한 립맨에게 합당성과 공동체성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지적 한계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은 이런 점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작업 기억 용량이 극히 한정되어 있고 장기기억 역시 안정적이 못하다. 우리의 주의력도 매우 선택적으로 대상에 주목하기 때문에 정보나 자료의 획득이나 해석에 있어서 편협성을 갖게 하게 쉽다. 뿐만 아니라 이미 획득하고 있는 공동체적 정향이 나의 판단을 불공정하게 이끌 수도 있고 유사성 효과(similarity effect)에 의해서 기존의 틀에 얽매이기도 한다. 좀 더 합당한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인이다.
개인에게만 의지해서는 합당성을 획득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적 사실이기도 하다. 특히 어느 비범한 개인의 합리적인 성향이나 비판적인 태도에 기대어 적절한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무모한(p146) 것이며 결국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차원의 방법적 규범이 필요하다. 타가드의 개인적 병력분산처리방식의 판단 과정이 구성원들에게 분산되어 일어나는 ‘공동체적 병렬분산처리’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합당성을 찾아가는 탐구와 숙고의 과정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계 협동적으로 이루어 나간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개인의 인지적·심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좀 더 합당한 것을 찾아내도록 해 주는 훌륭한 장치이다.”
공동체적 병렬분산처리는 주로 공동체 내에서의 대화나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누군가 맥락에 대한 고려를 들추어내고 누군가 감정에 대한 고려를 제안한다. 질문이 제기되고 각자의 신념이 드러나며 기발한 상상을 통대로 한 가설과 대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다양한 신념과 입장 그리고 다양한 과점들이 드러난다. 비고츠키는 이를 간정신의 내정신으로의 재생산(intrapsychical reproduction of interpsychical)이라고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 각자의 개인적인 판단력이 신장된다. 립맨은 “생각은 대화”라고 간명하게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공동체에서의 탐구가 판단의 합당성을 가져올 뿐 아니라 구성원들이 그 과정을 내면화함으로써 개인의 합당한 판단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동체에서의 탐구가 가지고 있는 이중의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공동체에서 함께 탐구해 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회화과정이기도 하다. 자연스런 대화나 토론의 과정에서 세상이 가진 표준이나 기준 그리고 다양한 관점들을 접하게 되고 그것들을 검토하고 반성하면서, 동시에 인식주체로서의 자발성을 유지하고 발휘하면서 주입이나 교화 없이 진정한 사회화의 과정을 겪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율적 사회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획득해 나가는 것이다.”(김혜숙,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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