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에서 박타푸르로...2011.12.2＜52일차＞

[주인장]

<52일차> 2011년 12월 2일(금) 카트만두-->박타푸르, 맑음, 전기 없이 살아가기

  우리가 1주일째 머물고 있는 숙소는 카트만두에서도 유서 깊은 불교 사원으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소얌부나트(Sowyambunath)와 바로 인접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기에 올라가지 않았고 올라갈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 동안 중국에서 수많은 명찰들을 돌고 온 터라 관심이 가지 않은 탓도 있지만, 확실히 카트만두에 온 이후로 게을러진 탓이었다. 오늘 카트만두를 떠나 박타푸르로 이동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소얌부나트를 둘러보기로 하고, 오전 7시 아내, 창희, 동희와 함께 올랐다. 승희는 잠을 더 자겠다며 숙소에 남았다.

  소얌부나트의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이 절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찰 중의 하나다. 전설에 의하면 카트만두 밸리에는 큰 호수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 호수에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 뱀이 살고 있었다. 중국에 있던 문수보살이 티벳을 넘어 인도로 여행하려다, 이 호수에서 자라는 연꽃에서 대일여래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배를 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 문수보살은 그때 이곳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가엽게 여겨 깊은 생각 끝에 서북쪽의 산을 칼로 베어내니 호수의 물이 빠지면서 뱀이 사라지고 살기 좋은 분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때 만들어진 분지가 카트만두 밸리이며, 평평해진 산 위에 나타난 절이 소얌부나트라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얘기다.

  카트만두 밸리에 막 해가 떠오를 때 소얌부나트에 올랐다. 소얌부나트는 서북쪽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은 200~300m 정도 높이로 아침에 산책하기에 적당한 거리다. 길과 계단 주변엔 역시 원숭이들이 많았다. 워낙 원숭이들이 많아 이 절에 ‘몽키 탬플(Monkey Temple)’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카트만두 주민들이 원숭이들을 신성시해 전혀 해치지 않으며, 원숭이들 역시 사람들이 접근해도 달아나거나 긴장하지 않는다. 사람과 원숭이가 공존하는 절이 바로 소얌부나트다.

  이른 아침인데도 소얌부나트는 산책하고, 운동하고, 참배하기 위해 올라온 주민들로 붐비고 있었다. 절 한쪽에서는 전문 지도사의 지도 아래 요가로 몸을 푸는 주민들도 보였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자 절이 나타났다. 아래로는 아침 안개와 매연을 덮어 쓰고 있는 카트만두 밸리가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태양이 올라와 대지를 조용히 덥히기 시작했다. 정상에는 각종 신들을 새겨 넣은 탑과 함께, 크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살피는 지혜의 눈이 그려져 있었다.

  주민들은 탑을 돌면서 열심히 참배를 했다. 향을 피우고, 촛불을 밝혀 탑 주변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살림살이가 충분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정성은 다른 누구보다도 큰 것 같았다. 카트만두의 중심인 타멜이 생활 속의 문화유적이듯이 이곳 역시 주민들의 생활과 함께 하는 절이었다. 우리도 1개당 2루피에 파는 작은 촛불을 하나씩 사서 탑에 올려놓았다. 순박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친절한 이곳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소얌부나트를 한바퀴 돌아 내려오다 아내와 창희, 동희는 그림 그리기를 했다. 주변에 있는 나무나 탑, 신상(神象) 등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조용히 그리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주변의 사물들의 모습을 그리는 그들의 모습이 아주 진지했다. 아무래도 사물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 사물에 대해서 훨씬 더 깊게 이해하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소얌부나트를 돌아보고 숙소로 내려와 아침식사를 한 다음, 모두 짐을 싸 짊어지고 숙소를 나섰다. 1주일 동안 편안하게 묵었던 숙소를 떠나 박타푸르로 출발했다. 박타푸르로 어떻게 갈까 고민을 하다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물론 공공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우리 모두 집채만큼 큰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기 때문에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시내버스나 시외버스 모두 작은 승합차였는데, 큰 배낭을 메고 붐비는 버스를 타는 것 자체도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타면 버스의 절반을 차지해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 피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소얌부나트 앞의 사거리로 나오자 택시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먼저 가서 운전수와 흥정을 했다. 아내와 나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먼저 가서 운전수와 흥정을 할 정도가 됐다. 그 만큼 여행이나 간단한 영어를 통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게 된 것이고, 특히 영어로 대화하고 흥정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다. 한두 달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만큼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특했고, 흥정하는 모습만 지켜보니 편안했다. 결국 아이들은 치열한 협상 끝에 700루피(약 1만1200원)에 박타푸르까지 가기로 하고, 두 대에 나누어 택시를 탔다. 택시는 신나게 달려 30여분만에 박타푸르에 도착했다.

  박타푸르에서는 NGO(비정부기구) 활동을 하면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곰곰이의 소개로, 피콕 게스트 하우스(Peacock Guest House)에 여장을 풀었다. 박타푸르 중심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나타나는 다타트레야 광장(Dattatreya Square)에 있는 고풍스런 숙소였다. 2인실이 700루피, 3인실 900루피로, 5인 1박에 1600루피(약 2만5600원)로 저렴했다. 우리가 카트만두에서 지불한 숙박료도 1일 1600루피로 박타푸르와 같았지만, 카트만두에서는 방 하나에 4~5명이 들어가는 도미토리였던 반면 박타푸르에선 2인실과 3인실이 제공되어 편리했다.

  그런데 나중에 따져보니 박타푸르의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카트만두에선 숙박비에 아침식사가 포함돼 있었지만, 박타푸르에선 아침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박타푸르엔 아침에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직접 아침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감자와 양파, 계란 등을 사다가 볶고 삶아서 잼을 바른 식빵과 함께 먹기도 했다. 이를 위해 하루에 200루피의 부엌 사용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콕 게스트 하우스는 옛날의 전통 가옥을 개조해 숙박시설로 만든 곳으로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건물은 나무와 벽돌로 지은 오래된 건물로, 박타푸르 본래의 맛을 즐기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나무로 골조를 세우고 벽돌로 벽을 만든 건물은 3층으로, 각 층의 높이는 똑바로 서서 천장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낮았지만 복도와 방이 마치 미로처럼 연결돼 있었다. 특히 1층에는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목각 작업을 하고 있었고, 2층에는 전시실까지 마련해 다양한 목공예 작품들의 제작과정을 보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여장을 푼 다음 바로 카페 비욘드(Cafe Beyond)로 가 앞으로 우리가 1주일 정도 머물면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논의했다. NGO인 ‘비욘드-네팔(BEYOND-Nepal)’과 카페 비욘드에는 할 일이 널려 있었지만, 특별한 재주가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었다. 우리는 카페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홍보가 될 수 있도록 밖에서 보이는 현관 유리와, 내부 인테리어 및 메뉴판, 비욘드-네팔의 홈페이지 등을 정비하는 것을 돕기로 했다. 재료나 작업 도구 등이 모두 취약해 이를 준비하는 것부터 착수해야 할 것 같았다. 의욕은 강했다.

  오후 5시30분께 카페를 나와 숙소로 향했다. 길 가의 네팔 간이식당에서 모모(momo, 만두)와 완두콩 소스를 곁들인 뿌리(puri, 튀긴 빵)로 간식을 한 다음, 식사를 하기로 했다. 뿌리를 맛있게 먹은 다음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으나 대부분이 문을 닫아버렸다. 이미 정전으로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골목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문을 연 곳은 모모를 파는 간이식당과 포장마차밖에 없었다. 결국 조금 전에 먹은 모모와 뿌리로 해결한 것으로 하고, 내일 아침에 먹을 식빵과 잼, 사과 등을 사 가지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시간이 7시밖에 안됐는데도 한밤중처럼 깜깜했다. 정전은 우리가 카트만두에 도착한 둘쨋날부터 시작됐는데, 날이 갈수록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네팔은 만성적인 전력난에 시달리는 국가다. 전력의 대부분을 수력발전에 의존해 우기(몬순 6~8월)부터 9~10월까지는 그런대로 전력 사정이 괜찮지만, 건기가 본격화하는 11월 중순부터 3~4월까지는 제한송전을 실시하고 있다. 지역 또는 마을별로 정전이 이뤄지는데, 예고를 하고 전기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11월 중순에는 하루에 1~2시간으로 정전 시간이 짧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나 3월에는 18시간이나 정전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열악한 전력사정이라고 한다면 일반인들은 사실상 전기가 없이 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냉장고처럼 항시적으로 전력이 필요한 전기제품은 사용할 엄두를 낼 수도 없고, 컴퓨터 같은 다른 전기제품의 수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경제사정이 괜찮은 가정이나 상점에서는 축전기를 비치해 전기가 들어올 때 충전을 해 놓거나, 비상용 발전기를 준비해 정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11월~4월 사이에 네팔을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휴대용 전등은 필수품인 셈이다.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일상생활도 곤란하지만, 해당 국가의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는 한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의 생명선’이나 마찬가지다. 전기가 수시로 나가거나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면 산업 생산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가 없다. 당연히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경제는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다. 전기가 나가는 순간 공공기능 역시 마비될 수밖에 없다. 최빈국 네팔이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깜깜한 어둠만큼이나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요즈음 거의 매일 오후 6시 정도만 되면 전기가 나가고 있다. 정전이 시작되면 거리는 짙은 어둠에 휩싸인다. 전력을 비축해 놓았거나 자체 발전기를 돌리는 상점이나 가정에서 일부 전깃불이 새나와 거리를 비추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거리가 밝아질 수 없다. 전기를 비축하기 어려운 상점이나 가정에서는 촛불을 밝혀 일을 서둘러 마무리한 다음 문을 닫는다. 7시만 되면 거리는 한밤중처럼 어두워진다. 우리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데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잠에 들어 해가 뜨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