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카일라스에서 중국 서북부 신장 우르무치지역을 가려면 카슈카르에서 일주일에 한 번 아리까지 오는 버스를 타거나 화물트럭을 타야했다. 아리까지 가는 것은 문제없지만 그곳은 검문검색이 철저하여 체크 포인트를 피해서 우회를 해야 안전하였다.
아리 외곽까지 가려면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 끝머리 지우곰빠에서 다르첸을 피해 아리방향으로 가다 아리를 비껴 멀리 돌아 가야했다. 올모룽링 그 길은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가는 곳 이었다. 이곳 또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유목민의 땅이었다. 유목민들이 풀을 찾아 돌아다니다 겨울에도 텐트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겨울에 추위를 피하는 흙벽돌로 지은 집에서 지내기도 한다.
본토에서는 집들이 이삼층으로 크게 지어 맨 아래층은 가축우리로 쓰고, 이층은 살림, 3층은 음식 저장창고나 살림집으로 쓴다. 구게지역의 흙벽돌집들은 본토처럼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소박한 이런 집들이 광활한 들판에 간혹 있다. 들판을 가다 허물어 진 흙벽돌집을 발견하고 날이 저물 때라면 그곳에서 바람을 피하며 노숙을 하였다. 그런데 허물어진 집에는 열에 아홉은 사람의 유골이 있었다. 집 중앙에 있는 유골들의 상태는 각각 달라서 바싹 마른 뼈들도 있고 어느 시신에는 천에 살점이 붙어 있기도 하였다. 왜 허물어진 집에 시신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 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감사할 뿐이었다.
요즘도 김장을 할 때 쓰는 두꺼운 비닐을 보면 나는 몹시 친근감을 느낀다. 노숙할 때 그 비닐은 따듯한 위안이며 안식처였었다. 길게 돌아다닐 때는 짐의 무게를 줄여야한다. 무게를 줄이는데 있어서 먹는 음식을 줄이기는 힘들다. 그래서 침낭도 가벼워야하고 옷도 단출해야한다. 그 대신에 나는 두꺼운 비닐을 가지고 다녔다. 땅을 고르고 비닐 한 겹을 깔고 침낭에 들어가 비닐 한 겹을 덮으면 티벳 고원의 여름에는 견딜 수 있다. 더욱이 바람 피할 장소에서는 따듯할 정도다.
그날 들판을 걷다가 먼 곳에 집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에 반가운 마음에 아삼삼하였다. 사람들이 있는 그 방향으로 걸었다. 가까이가자 티벳 염불소리가 들였다. 작은 흙벽돌 집 앞에는 두 분의 노스님들이 앉으셔서 독경을 하고 계셨다. 스님들 뒤에 사람들 몇 명이 앉아있고, 그 옆에는 짐을 실은 야크들이 있고 사람들이 서있었다. 나도 스님들 뒤에 앉았다. 열려진 문으로 천에 싸인 시신이 보이고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들판을 걸으면 빈집에 유골이 있는 사연이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티벳 염불 중 아는 단어가 나오면 기쁘게 따라했다. 공양시간이 되자 한 쪽에서 내 입에 침이 고이게 하던 고기 삶는 향기를 뿜어내던 솥단지가 열리고 한상 차려져 나왔다. 누구도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고 내 몫의 음식을 주었다. 이가 하나도 없는 노스님이 고기를 잘 드시는 걸 보기 좋게 보았다.
나는 돌아가시는 분이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하며 맛나게 귀한 음식을 먹었다. 공양을 하신 노스님들이 다시 한 번 독경을 하시고 나자 유족들은 문을 닫고 돌을 쌓아 대문을 반쯤 막았다. 자칼이나 여타 짐승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는데, 이 모습은 너무나 티벳 전통과 어울리지 않았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티벳 노스님들의 법식이 다른 게 느껴졌다. 뵌교의 예식 같았다.
천산민족으로 천산에 기대어 함께 살던 부족들은 기후가 나빠지며 동서東西로 흩어질 때 티벳민족은 지금의 티벳고원에 자리 잡았다. 부처님 법이 들어오기 전 티벳의 정신은 샤머니즘이었고 그 중심에 뵌교가 있었다. 티벳 몽골 우리나라 알래스카를 넘어간 아메리카 원주민들 까지 하늘과 소통하는 무당들이 음양으로 부족을 이끌었다.
티벳 사람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뵈라고 한다. 뵈의 어원을 나는 “뵈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추측한다. 뵈옵다, 뵈다는 어떤 신성한 대상과 만남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토착종교 뵌교가 생긴 것이다. 무속신앙에 불법을 받아들인 뵌교는 머리 깍은 모습과 붉은 색 가사까지 티벳 금강승 불교와 겉모습은 똑 같다. 수행과정도 비슷하지만 석가모니부처님 법이 아닌 뵌교의 깨달은 붓다라고 칭하는 톤빠(Tonpa)의 가르침을 따른다. 티벳 서부의 카일라스 구게왕국 지역을 샹슝(象雄:zhang zhung)이라하는데 이곳이 뵌교의 주 무대이다.
내가 망자에게 집을 주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이주장례를 본 올모룽링이 아마도 뵌교의 신앙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는 걸 나중 알게 되었다. 이것으로 티벳 장례풍습을 마친다.
에필로그
고려시대에는 불교 예법의 영향으로 화장이 많았고 유교의 이념으로 나라를 세운 조선은 매장이 주를 이루었다. 2017년 지금은 서양식 검정색 양복과 화장이 주를 이룬다.
얼마 전 경상북도 안동에 선배 아버님 장례식에 다녀왔다. 건과 지팡이를 짚은 참으로 오랜만에 전통장례를 보았다. 안동지방은 전통장례가 이어오지만 가족들의 합의로 서양식 검정 옷을 입던, 전통보다는 가벼운 삼베나 흰옷으로 하던지 선택할 수 있게 구비해 놓고 있다고 하였다. 돌아가시는 분이 생전에 원하는 대로 배웅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은 유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을 많이 마련해 놓아 원하는 대로 장례를 치르는 편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가는 길에 장례절차는 남은 자의 몫이고 돌아가는 길에 착한 결과만 가지고 간다는 사실을 알고 착하게 살며 때를 준비해야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티벳 장례문화 잘 이해하고 갑니다 관세음보살 ()
스님 고맙습니다. 올 한해 늘 좋은 날 되셔요. 옴 마니 파드메 훔, 연꽃 속의 보석이여!
일본장례문화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불교의 나라인 티벳에서 장례문화는 과연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본의 장례는 거지반 절에서 이루어집니다. 집안마다 찾아가는 절이 있어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올리고 장례도 절에서 하더군요. 신심은 잘 모르지만 동네마다 절이 많은 일본 생활 불교가 부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옴 마니 파드메 훔, 연꽃 속의 보석이여!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 모든 중생의 고통을 안고 가시는 나무 아미타불. 옴 아미 데와 흐리흐, 옴 아미 데와 흐리흐, 옴 아미 데와 흐리흐 훔!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옴 마니 파드메 훔, 옴 마니 파드메 훔, 옴 마니 파드메 훔, 연꽃 속의 보석이여!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옴 마니 파드메 훔, 연꽃 속의 보석이여!
고맙습니다..
좋은 말씀과 게시글 두번 읽고 갑니다
금륜님 고맙습니다. 옴 마니 파드메 훔, 연꽃 속의 보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