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山에 가보세요. 이른 봄의 북한산은 잔뜩 긴장해 있지만 한 편으로는 부풀어 있습니다. 붉은 군대 최고의 저격수 바실리자이체프가 칼라시니코프(kalashnikov)소총에 달린 스코프에 들어온 표적을 겨냥하며 날숨을 멈추고 방아쇠에 밀어넣은 검지에 힘을 주기 시작합니다. 실핏줄까지 팽팽하게 당기는 긴장함을 즐기는 저격수의 온몸은 부풀어 터진다고 해야하나요.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던 잿빛 흙은 수북이 쌓여 있던 갈색 낙옆을 헤치며 '나 여기 있소'하고 부풀은 얼굴을 내밀고. 나무는 거무죽죽한 가지마다 땅 속의 물을 잔뜩 끌어올려 박하사탕 가득 문 아이의 볼때기마냥 부풀어 오릅니다.
그 부풀어오던 삼각산도 봄이 무르익어가다보면 산달이 찬 산모처럼 한 생명을 토해 놓겠지요. 검붉은 흙 틈새로 여린 새싹을 내미는 봄날, 북한산은 뒤틀리는 몸을 가누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는 산모와 같아요. 생명을 토해내는 자연은 이런 점에서 사람과 흡사해요. 산모가 어린 것을 잉태하면 온 몸이 부풀어오지요. 기다림의 절정에서 '응~아' 하며 핏덩이를 쏟아낸 위대한 어머니의 몸은 생명을 잉태해낸 훈장처럼 튼 자욱이 잔뿌리마냥 얼기설기 남아 있더이다. 훌쭈그러든 산모의 배에 남아 있는 '흉터'. 이런 말씀은 애시당초 꺼내지도 마세요. 세상의 어머니는 다들 하느님이세요. 생명을 창조하잖아요. 교리 선생 말에 따르면 창조자이신 하느님의 보조자래요. 생명을 창조하는 엄청난 일을 훌륭하게 치루어낸 세상의 어머니들은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다시 봄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질긴 나무가지를 비집고 돋아난 어린 싹의 생김은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톱니를 닮았다는군요. 산비탈에 무성한 물박달나무의 새 잎도 그렇고 산그늘에 숨어 있던 노린재나무의 새 순도 그렇더군요. 매서웠던 겨울을 난 거무죽죽한 가지의 표피를 뚫고 올라오려면 누구 말따나 그 정도의 무기는 갖춰야 하나봐요. 톱니처럼 삐죽하게 날이 선 새순도 차츰 어린 아기의 앙증맞은 고사리 손으로 바뀌겠지요. 지난 주, 형제봉으로 올라가는 산길의 초입은 음습한 산그늘에 눌린 쥐색의 나무들이 안개처럼 종일토록 내리는 봄비에 한적한 봄날입니다. 오를 수록 산 그늘 사이로 노랗게 생강나무 꽃잎이 생뚱맞게 여기저기 피어서 눈을 홀리더라고요. 너무 고적한 탓인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고 그냥 둥둥 떠 있더라는 표현이 어울릴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잿빛과 갈색으로 먹을 친 수묵화 속에 노란 채색화가 들어온 탓인가 북한산도 깊은 침묵을 버리고 아연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꽃 이야기를 하라면 어디 생강나무만 있나요. 산 아래 쪽에는 산수유가 좁쌀을 펑튀긴 튀밥을 흩뿌렸는가 하면 국민대학 쪽으로는 바람에 폴폴 날리는 노란 개나리가 울바자를 두르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죄다 노란색이더라구요. 노란색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시나요? 희망이랍니다. 산수유가 그렇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와 개나리, 민들레가 샛노랗게 봄을 장식하지요. 그것뿐인가요. 봄이 무르익어가면 들녁에는 겨울을 이겨낸 배추가 길게 장다리를 뽑아 올리나 하면 노란 십자화를 푸른하늘 아래 눈부시게 들어내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봄비에 젖는 산자락에 꽃 소식이라니요. 그래요, 아직 북한산은 바다보다 깊은 잠에 취한 듯 겨울이었습니다. 귀를 스치는 바람이 아직 맵기만하고 겨울을 넘긴 산수유의 붉은 열매를 쪼아 먹는 새도 아직 보이지 않는 적막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나봅니다. 겨우내 꽝꽝 얼었던 얼음이 녹느라 졸졸 물소리를 내며 흘러가길래 스틱으로 얄푸시 남아 있는 얼음을 걷어냈습니다.
능선을 타고 올라온 안개가 어깨에 걸려 아련한 대성문루까지 훠이훠이 단기로 올라갑니다. 푸른 솔이 보이면 소나무 그늘에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숨가쁜 능선에 오르면 봄비에 젖어가는 시가지를 내려다 보면서 느릿느릿 올라왔지요. 대성문루에 걸터 앉아 따끈한 시루떡을 한입 베어물고 향기 그윽한 녹차를 따르면서 안개비가 내리는 대성문 마당을 지켜보았지요. 거무죽죽한 회나무인가 가죽나무 아래로 화사한 산행 옷을 입은 젊은이 몇이서 김밥을 펼쳐놓을 곳을 고르는 듯 했지만 안개비에 젖어가는 산 어디에도 그들을 반기는 낌새는 없었어요.
봄비에 곱게 젖은 백련사 앞마당. 복사꽃이 매듭마다 화사한 꽃봉우리 볼려나 베낭을 풀었습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다리쉼을 하며 단조롭게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시작한다지요. 이 비가 그치면 눈부신 햇빛 아래 소리없이 핀 작디 작은 풀꽃들이 녹두알만한 제 생명들을 불꽃처럼 꿰어 달고 하늘에 빗금 그으며 당당히 서서 흔들리겠지요. 잘 보세요. 땅끝에 억센 뿌리를 얽어내리며 여린 꽃을 내미는 일년초가 얼마나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지. 천지에 이름모를 풀꽃들이 펼치는 꽃잔치를 누구는 '꽃들의 섹스'라고 하더이다. 무척 육감적인 표현이라지만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치열한 생명의 본능을 이름한 거랍니다. 멀리 더 많은 씨앗을 흗뿌리기 위해 화장과 분칠을 하고 벌과 나비를 꼬이는 찬란한 섹스의 현장이 봄볕 아래 펼쳐지겠지요. 연분홍 루즈와 보라빛 아이세도우를 칠하고 잘 먹은 파운데이션 위로 상큼한 그늘도 만들고. 샤넬 넘버 파이브로 마감한 샘 많은 꽃들의 자랑을 무심히 보셨다면 그대가 죄 많은 게지요.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이 없음을 고백하는 꼴이잖아요. 사람도 그러한가요?
이따금 비가 오고 바람이 풀밭을 스쳐지나가겠지요. 그 많던 꽃들이 그만 우수수 떨어지면 꽃 진 자리에 차마 더렵혀진 제 발을 내밀 수 있을까요. 어지러이 흩날리는 풀꽃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차고 맑은 슬픔이 산 가득히 내려앉고. 비 내리면 개울물 소리 졸졸졸 그 푸른 심줄 터져 흐르는 소리. 눈을 어지럽히던 풀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이제 지는 꽃은 보지 않겠습니다. 피는 꽃만 보지요. 그런 욕심, 그런 소망, 그런 이기심으로 진정 부활이 가져다 주는 생명의 의미를 알아챌 수야 없겠지요. 후두둑 빗방울을 떨구고 스쳐지나가는 봄바람처럼 마음을 비워야 하겠지요.
안개인가 봄비인지 종일토록 젖어가는 북한산. 계곡을 타고 엷은 안개가 자욱이 올라가고 있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봄 산행길의 끝매김은 늘 백련사 앞마당 바위턱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불어 마시며 내려온 산을 올려다 보는 거지요.
제가 작년 봄날, 복사꽃이 한창이던 백련사 앞마당에서 온갖 상념에 잠기던 때 끄적여본 글을 읽어 볼까요. "............백련사 계곡에는 한창 매화꽃의 진홍색과 진달래의 선홍색 꽃잎이 참아온 생명력을 터트리네요. 톡~, 톡~ 겨우내 참아온 기다림이래도 그리움이래도 좋습니다. 그대는 생명의 계절 부활주간에 사순시기를 지내며 소망해왔던 그 무엇을 터트리고 있나요? 부활은 이렇 듯 그 무엇을 소망하고 참고 기다려온 인고의 기억까지 톡 터트리는 생명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을 잘 보내셨다면 생명을 터뜨리는 그대의 떨림이 진홍색 포도주를 머금은 투명한 크리스탈 잔을 튕기는 명징한 소리 같을 거예요. 또한 그대의 맑은 영혼은 얼마나 예쁘게 피어날까요. "
저 때문에 백련사를 다녀와서 속았다고 따지던 분이 있을 정도로 봄이오고 진달래가 필 때면 제 마음은 늘 백련사 앞마당에 머물지요. 공갈기와라고 시멘트로 틀을 짠 조잡한 기와 위에 퍼런 페인트 칠한 새마을회관같은 절이 무슨 정취가 있겠습니까. 아마 북한산에는 절이 백 여개가 넘지 않을까요? 고풍스러운 삼천사, 승가사, 소림사 , 도선사, 영화사, 일선사, 백화사.... 다 젖혀두고 하필이면 날림 공사한 듯 초라한 백련사에 맘을 빼앗겼느냐 하시면 드릴 말씀 없지만 '하얀 연꽃'인지 '백송이 연꽃'이란 말인지 하여간 백련사란 절 이름이 멋 있지 않나요. 아무튼 백련사 앞마당에 복사꽃이 가지가 휘청일 정도로 만발할 때면 목련은 우아하던 꽃잎을 다 떨구고 그 뒤로 숨가쁘게 펼쳐올라가는 초록의 물결이 진달래 능선과 맞닿는 그 푸르름 속에 외로운 섬 백련사를 전 사랑할 수 밖에 없답니다. 투명하게 울리는 풍경소리는 덤으로 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바위턱 앞의 우물가, 앵두나무 가지끝에 영롱한 빗방울이 싹이 트는 매듭마다 수정처럼 달려있어요. 아무리 궁리를 해도 황홀하게 가슴을 적셔주는 몇 방울의 보석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를 집어낼 수 있을까요. 수정, 크리스탈, 다이아몬드.... 아무리 아름다운 이름을 가져다 대보아도 무심한 광물질과 비교할 게 아니잖아요. 이 영롱함, 빛남, 기쁨.....환희. 오~ 주님!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 어느 것 하나 당신이 불어넣어 주신 숨결과 절묘한 배려. 어느 것 하나 빠트린 게 있을까요. 팍팍한 세상살이, 왠지 밀리는 기분으로 찾아든 산행에서 당신을 이렇게 만나다니요.
"우리가 느리고 쓸쓸하게 걷고 있는 동안/ 나무는 지루한 모든 것을 온몸으로 흡수하여 찬란한 꽃잎으로 바꾼다./ 한순간에 핀다./ 그런 순간을 포착하는 자만이/ 봄의, 사랑의, 환희의 탄성을 지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얼굴엔 목련이 핀다." 신문에서 본 아름다운 연시를 그대에게 보낼까요 말까요.
산에 다녀와서 친구에게 쓴 편지를 꺼냈습니다. "... 그 겨울의 강이 풀리고, 강언덕에 생기가 돌면서 사람들은 이게 어인 일일까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들의 육신과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영혼에 무언가 따뜻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어두웠던 시야(視野)가 차츰 차츰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꽃이 피고 있었고, 그들의 영혼에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육신에 새 살이 돋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입을 열고 이름을 부르면, 아무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허공에 있던 그 이름을 불리운 존재들이 그대로 몸이 되는 사건이 이들 백성들의 눈앞에 전개되었습니다.
꽃을 부르면 꽃이 피고, 하늘을 부르면 그 하늘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오는 그런 놀라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으라면 낫고,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고 걸으라 하면 걷게 되는, 그래서 말씀이 곧 그대로 몸이 되는 창세기의 창조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봄이 와도 꽃을 시새움하는 꽃샘바람이 한차례 불기 마련이어서 칼바람이 어느날 붑니다. 나사렛 예수를 향해 덥친 이 바람은 다시 팔레스타인 땅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 말았습니다. 봄은 꺽인 듯 했고, 계절은 뒤바뀌어 동장군(冬將軍)이 주인이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낙망한 사람들은 자기 거처로 하나 둘씩 돌아갔고, "인생사에 원래 봄은 없는 것이야"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겨울에 순응해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그 "낳고"의 비밀스러운 기적을 만드신 하느님께서 그냥 계실 분이 아니지요. 십자가라는 고난의 절정을 보면서 봄을 포기당한 백성들이 무너져내리려 할 때, 하느님은 생명의 부활을 기여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죽음이 생명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성서는 이를 가리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생명의 힘찬 능력을 얻고 싶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영혼의 봄을 만끽할 수있는 새로운 차원의 자유를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그렇게 봄의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일입니다. 긴 겨울의 동토를 뚫고 생명의 기운이 샘솟는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곧 들판에는 개나리와 철쭉이 피어날 것입니다. 나비들도 찾아들 것이고, 새들은 활기를 되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도 새롭게 피어나고, 새롭게 비상(飛上)할 것입니다.
그런 계절의 꿈을 그대에게 꽃피우기를 빌면서...."
********** 생명을 움티우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내내 가슴은 벅차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이 많아지고 들숨과 날숨이 가빠집니다. 새싹을 비집어올리고 천지에 가득한 꽃 잔치를 벌이는 부활을 앞두고 치열한 사순을 보람 있게 보낸 형제님과 자매님들에게 제 꽃 소식이 도움이 되었음 합니다. 쓸모없는 잔소리라 타박마시고 막 뜰에 피기 시작하는 목련의 우아한 자태를 눈여겨 보시며 부활의 기쁨을 함께 해요. * 바실리 자이제프는 영화 "enemy at the gate" 의 주인공으로 독일군과 맞붙은 붉은 러시아 최고의 저격병이다. one shot one kill. 대단한 사격솜씨를 가지고 있는 군인으로 레닌그라드에서 500명에 달하는 독일군을 사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