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사랑 제가 처음 기차를 탄 이야길 했던가요? 초등학교, 우리는 국민학교라 했고 부모님은 소학교라고 불렀지요.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지요. 그때 꿈에 그리던 기차를 처음으로 탔답니다. 에게게~ 꼴난 기차를! 예, 그때 기차를 탄 거는 세상이 뒤바뀌는 큰 사건이었지요. 기차역이 제가 살던 시골에도 있었는데 제 여행 반경(외가집)이 전부 버스로 다니는 길이어서 기차를 탈 기회가 없었거든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산모랭이를 돌아가는 기차가 칙칙폭폭 하얀 연기를 뽑아올리며 지나갈 때는 하염없이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걸랑요.
지금처럼 10월 어느날, 엄마가 챙겨 주신 벤또를 넣은 가방에 삶은 달걀하고 사과라든가 사이다를 집어 넣고 기차에 올라 타던 걸 잊을 수가 없네요. 차창에 앉아서 지나가는 시골풍경을 보며 한눈을 팔 수가 없더라고요. 꿈만 같았어요. 어쨎건 어둑할 무렵 경주에 도착해서 내렸지요. 아침에 출발한 게 일곱여덟 시간 걸린 거 같아요. 지금이야 두어 시간 남짓 걸릴 건데. 역전에는 온갖 기념품을 파는 손수레가 즐비하게 늘어서 꼬마 손님을 반겨주더라고요.
이 촌놈들이 내리자마자 단번에 기념품을 사기시작했어요. 쪼대(찰흙)로 만든 첨성대에 길죽한 펜꽂이가, 사진 한 장 끼울만한 책상에 놓을 수있는 기념품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음으로는 길죽한 자. 한복 지을 때 필요한 자였을 거예요. 그것도 덜컹 사버렸지요.
여관에서 콩나물과 무우채나물 같은 그린필드가 즐비한 시원찮은 저녁도 엄청 맛나더라고요. 저녁을 먹고는 뭘 하겠어요, 어린 초등학생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자를 칼삼아 칼싸움을 벌리고 우당탕 마냥 신나더라고요. 걸어다니는 게 아니라 붕붕 날아다녔다고요. 부모님 감시를 벗어난 꼬마들이 누리는 달콤한 자유가. 자유란 여간 좋은 게 아니더군요. 여학생들은 이불 아래로 다리를 묻고서는 노래를 불렀던가 조잘조잘 이야기하느라 정신을 놓고 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 이런 게임을 했던 게 생각나네요. 아임 그라운드 산 이름 대기, 백두산. 한라산. 태백산.....태극기가 바람에 나붓깁니다. 영화배우 이름 대기, 엄앵란, 김지미, 최은희, 김승호, 박노식........왜 신성일이 빠졌잖아. 아~ 참내, 신성일은 우리가 고등학교 들어가고난 다음에 데뷰했걸랑요. 머스마들은 말타기에다 배게싸움까지 벌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던 게 수학여행 첫날이었습니다.
첨성대와 불국사를 거쳐서 포항 바닷가에서 오징어를 줄에 꿰어 놓고 햇볕에 말리는 것까지. 눈에 보이는 거 다 신기하대요. 아참~ 바닷물이 짜다는 걸 그때야 알았지요. 교과서에서 당연히 배웠겠지만 난 순구라거니했어요. 그 넓고넓은 바닷물이 어찌 짤 수가 있냐고요. 동화에 나오잖아요. 소금을 만드는 맷돌을 바다에 빠뜨려서 바닷물이 그리 짜게 되었다는 이야기 기억나질 않나요? 그건 이야기에 불과하다고요. 그럼 바닷물을 소금물로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소금이 필요할 건가요. 소금이 한정없이 들 텐데 말예요. 그 때 내가 이랬지요. '어라~ 선생님이 후라이 깐게 아니네.' 저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큰 깨달음을 깨친 여행이었어요. 이래서 현장 학습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에이 후라이 까지 마라. 너들 자전거 바차놓고 십리 길 걸어들어가는 깡촌에서 산 것도 아닌데 무슨 갑오경장 때 이야길 하느냐고?' '또 해수욕장에 가보지도 않았단 말이냐?' 하모요. 해수욕장을 어떻게 가요. 기껏 낙동강에 나가 물놀이하다가 마는 시절이었다고요. 수학여행에서 배운 걸 이야기하다가보면 오늘밤을 꼴딱 세워야할 판이니까 그만 할래요. 마지막 날이었던가 캄캄한 새벽엘 우릴 깨우더라고요. 후랫시를 비쳐가며 토함산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시월 새벽은 몹시 추웠어요. 토함산을 올라 동해 일출하고 석굴암을 보려는 일정이었어요. 그땐 석굴암에 그냥 출입했거든요. 서두른 탓인가 해가 뜨기에는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토함산 정상에서 오돌오돌 추위를 몸으로 홈빡 견뎌냈어야 했답니다. 끔직한 추위였어요. 식당이 두어 개 있었던 게 기억 나는데 돈이 있는 친구들은 다들 우르르 식당에 들어가서 추위를 피하더라고요. 그럼 넌? 전 돈이 한푼도 없는 터라 밖에서 발을 동동 굴러가며 추위를 견딜 밖에. 창문으로 보이는 식당 안은 지상천국이 따로 없더라고요. 오댕하고 우동을 훌훌 입김을 불어가며 먹는 친구들이 부럽기 짝이 없더이다. 저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돈을 써버린 동무들은 저랑 똑같이 떨고 있을 밖에. 아~ 돈을 막 써버린 게 후회막급이더라고요. 전 고모님하고 진외가 할아버지가 수학여행 간다고 인사를 갔더니 여행 가서 쓰라고 용돈을 두둑히 챙겨주셨는데 첫날 경주역전에서 꼴난 기념품 사느라 다 써버린 게 아니겠어요. 다른 동무들보다 용돈이 두둑했었는데도. 참 그때는 여행같이 집 나설 때면 어른들 집을 찾아가서 꼭 인사를 드리고 가야할 정도로 어른 공경이 대단했어요. 덕분에 용돈을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앞뒤가 꽉막힌 게 얼마나 답답했던지. 돈이 없어 뭘 사먹을 형편이 못되더라도 그냥 식당 안에 들어가서 동무들 자리에 끼어 앉았으면 좀 좋았을까요. 벌벌 떨며 기다린 동해 일출이 그리 대단할 줄이야. 온통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둥그런 해가 둥실 떠오르는 모습은 장관이더라고요. 그때 하늘을 꽉 채운 아침 해를 두고서 맹세했답니다. 이제 돈을 함부러 쓰지 말아야 겠다고 조막만한 손을 거머쥐며 이 어린이는 굳세게 굳세게 맹세합니다. 이렇게 말예요.
수학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가방을 풀었지요. 할머니하고 엄마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제 행동을 살피더군요. 가방에서 꺼낸 할머니 선물로 이가 빠지고 온통 칼싸움 흔적이 남은 자를 내밀었지요. 칼싸움하느라 움푹움푹 이가 빠진 자를 보며 할머닌 얼마나 실망했을까요. 그리곤 부서지고 색갈이 빠진 첨성대 볼품 없대요. 찰흙이 한 웅큼이나 나오는 각종 기념품 부스러기를 내밀었으니 엄마와 동생들까지 망연자실할 뿐. 맏아들이, 장손이 처음으로 집을 나서 수학여행 다녀온 결과가 이럴 줄이야.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더라고요 정말. 아~ 엄마 드린다고 포항에서 오징어 한 축을 샀던 게 있었는데 돌아다니느라 죽죽 찢어 씹고난 뒤에 남은 오징어 몇 마리가....아~ 기분 정말 참혹하더이다.
그 다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수학여행을 다녀올 때면 절대 기념품 같은 것에 돈을 쓰질 않았어요. 토함산 동해 일출을 우러러 보고 한 맹세를 잊을 수가 있나요. 돈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운 셈이지요. 제가 배운 경제 교육 1호입니다. 암요, 토함산 꼭대기에서 벌벌 떨며 배운 걸 쉽사리 잊을 수는 없지요. 기념품을 살 작정이래도 마지막 날 사야 잃어버릴 염려가 없을테니. 이게 지나쳐 짠돌이라고 한때 '뙛놈'이라고 부르대요. 하도 구두쇠 노릇을 하니까. 이래저래 사람이 커가면서 배우는 건 학교 교실 안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더라고요. 현장 학습이 최고가 아닌가요? 그래서 울 아이들은 초등학생 방학 때면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떠났거든요. 친구들도 같은 심정이었겠지요. 울 아들은 스위스 루체른에서 사준 시계를 로마 현지 시간에 맞춰놓은 채로 몇 주간이나 지내는 걸 보니 여행이 주는 배움이란 대단한 거라고 생각 나네요. 아들한테 부모로서 뭔가 유익한 추억을 남겨줬다고 흐뭇해 했지요.
제 무식한 거 밝힐까요. 난 수학여행 간다기에 하필 싫어하는 수학이 뭐람. 여행 가서 수학 문제 푸는 게 무슨 여행이라고 군시렁군시렁 거렸지요. 말랑말랑한 국어여행했음 좀 좋아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