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 속, 속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 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김소월의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전문>
김소월의 시로, 젊은 시절 첫사랑의 상처를겪은 심정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한다.
아마도 시인에게 그 상대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 그림자 같은 벗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끝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이별하기 까지 두 사람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는 시절을 겼었겠는가.
상대의 마음이 어떨지를 확인할 수 없어 애태우는 화자의 심정이 3연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 / 울면서 나는 휘저어버리고 떠’난다는 내용이 그것이라 하겠다.
‘허수하다’는 ‘허전하고 서운하다’라는 뜻이니, 이별을 겪은 화자에게는 그저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만이 남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자는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힌다는 것을 절감하였던 것이다.
이미 나이가 들어 내 연애세포는 별다른 자극에도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지만, 까마득한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게 만드는 시라고 하겠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