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기호학, 리파떼르, 유재천 역, 민음사, 1993.
‘기호학’이란 언어 텍스트를 기호로 변환하여 해석하고자 하는 학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제목으로 보아, 상징과 은유로 점철된 시 텍스트를 기호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시도한 내용일 것이라고 파악된다. 분명 시를 기호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것에 일견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터이지만, 분명한 표지를 지니는 기호의 특징으로 보아 또한 그러한 방법론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줄일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오랫동안 시를 전공하면서 연구방법론으로 굳이 기호학이나 구조주의의 관점을 적용하지 않았다. 어떤 문학 작품도 창작 주체인 작가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으며, 또한 텍스트에는 창작 당시의 문화와 사회적 상황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품의 해석은 단지 기호학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변환하는데 그치지 말고, 작가와 독자 그리고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구방법론에 공감하기 힘들었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내용에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취한 이론적 목표를 ‘모든 서구문학에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시적 담화의 가장 유익한 접근법은 언어학이라기보다는 기호학’이라고 규정하면서,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가 ‘19세기와 20세기의 프랑스 작가들의 예’를 사용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언어 관습과는 다른 시 텍스트를 분석하는 방법론의 하나로서, 기호학은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그것을 프랑스 문학이 아닌 한국의 시 텍스트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는 면이 있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 책은 먼저 ‘시의 의미’에 대해서 저자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 시의 원문과 해석을 제시하고 있으나, 기호학이 언어의 표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프랑스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번역문만으로 저자가 설명하는 바를 적절히 이해하기 힘들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더욱이 텍스트의 행갈이조차 원문과 달리 줄글로 제시되어, 프랑스문학 전공자가 아닌 독자에게는 쉽게 이해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여기에 시 텍스트에서 ‘기호생산’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아가 ‘텍스트 생산’에서 기호의 의미가 어떻게 전환되고 확장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이어서 텍스트의 뜻으로부터 의미로의 전환은 ‘해석항’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한다고 전제하고, 작품의 이해와 해석의 방법론으로서 기호학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적시하고 있다. 나아가 작품을 독자들이 지각하는 다양한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텍스트의 기호학’이라는 항목으로 상세히 설명하면서, 기호학이 시의 해석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관한 결론으로 이끌고 있다. 실상 책을 읽는 동안 프랑스 문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저자가 사용하는 낯선 개념들에 쉽게 공감하기 힘들었으며, 사례로 제시되는 프랑스 시들의 해석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나로서는 저자의 방법론을 선뜻 시도하지 않겠지만, 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의 하나로서 기호학을 활용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