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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원효 그리고 균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향가 연구를 주변의 한시와 관련시켜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그동안 향가는 신라에서부터 고려시대 전반까지 이어온 문학 양식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25수의 향가 작품은 <삼국유사>에 14수가 전하고, 고려시대 승려 균여에 의해 창작된 ‘보현시원가(普賢十願歌)’ 11수가 전부이다. 고려의 예종에 의해 창작된 ‘도이장가’나 정서의 ‘정과정’을 잔존형 향가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그 작품들은 이미 고려가요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쓴 ‘향찰(鄕札)’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향가는 당시의 우리말 발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지만, 그것을 해독할 수 잇는 작품에 소수에 지나지 않아 여전히 완벽한 해독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있기도 하다.
꾸준히 향가 연구에 노력을 기울여왔던 저자가 새롭게 펴낸 책으로, 그동안 향가에 한정하여 다뤘던 문학사적 관심을 ‘신라 종교시 관련 내용을 포함’하여 다룬 성과물이라고 하겠다. 이 연구는 신라시대의 뛰어난 학승으로 평가되고 있는 의상과 원효의 한시들을 분석하여, 향가가 지닌 ‘불교시’로서의 면모를 보완한다는 성격을 지닌다고 하겠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 탄생한 작품이 고려시대 균여의 ‘보현시원가’임을 드러내면서, 불교가 전사회적으로 주류적인 종교의 위치를 차지했던 당시의 문화사적 위상을 짚어본다는 의미가 있다고 이해된다. 더욱이 승려인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 역시 불교와 관련된 내용들을 주로 다루고 있기에, 그 안에 수록된 향가들 역시 불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서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신라시대의 불교가 ‘화엄불국’을 지향했음을 전제하면서, 그 논거의 하나로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의 가람 배치와 그 의미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화엄불국’은 일종의 불교적 이상향으로 설정한 개념이지만, 또한 ‘현실적으로 구현된 <화엄경>의 세계’로서 ‘신라 나름의 불국토설’이라고 파악할 수도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7세기 중엽 활동했던 승려 의상의 <법성게>가 ‘일상의 언어와 구별되는 비유와 상징을 활용한 시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당대의 향가는 물론 고려시대 균여의 ‘보현시원가’에까지 그 연원이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향가 연구에 있어 신라시대 승려들의 한시를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7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승려인 원효의 <대승육정참회>라는 장편의 게송은 불교에서 중시하는 ‘참회를 위한 여러 유형의 관법을 구상하여 제시’한 작품으로 향가 ‘원왕생가’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파악하였다. 주지하듯이 원효는 귀족 중심의 불교를 민중을 위한 불료고 확장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이는 민중들의 역량에 맞추어 염불과 참회만으로 성불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제시되었다. 당대의 문화사를 점검하면서 ‘원효의 참회 체험은 대중불교에 대한 성과와 함께 신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고 하였다. 아울러 신라시대 의상과 원효의 사상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균여가 창작한 11수의 향가 ‘보현시원가’로 이어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 불교시’의 연원을 신라시대 승려들의 게송에서 찾고자 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저자가 당대에 널리 퍼졌던 ‘화엄사상’에 주목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현전하는 향가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불교 용어와 개념을 적절히 파악하는 것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시대 이후에도 승려들의 선시(禪詩)와 게송에도 그대로 이여졌기에, 불교시의 맥락에서 이들의 성과를 살피는 것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물론 조선시대 이후에는 유학(儒學)의 일파인 ‘성리학(性理學)’이 주류적 이념으로 등장하면서, 불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쇠퇴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이어지는 불교 사상사의 측면에서도, 초기라 할 수 있는 신라시대 승려들의 시를 탐구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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