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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를 돌아보면,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일이라고 여겨진다. 대략 10살 즈음부터는 부모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고, 때로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 전부터 미리 동의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가도 아들의 마음이 외식이나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한 적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모녀가 함께 여행을 하고, 그 여정을 소개하는 이 책의 내용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마흔여섯의 산티아고’라는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행의 일정은 바로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함께 걷는 것이다. 더욱이 동반 여행을 기꺼이 수락하고, 전체의 대략적인 일정을 10대의 딸이 주도하여 짰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여겨졌다.
이 책은 40대의 엄마와 10대의 딸이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순례(巡禮)’라는 표현은 본래 종교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의미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독교의 성인 중 하나인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어 많은 이들이 그곳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특정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일상에 지친 이들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자 모녀 역시 34일 동안 프랑스 국경에 소재한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의 북서쪽에 위치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약 800Km의 코스를 선택해, ‘엄마와 딸이 아니라 다정한 동무가 되어 길 위에서 살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순례길에 나서기 전에 체력적으로 어느 정도의 준비를 했겠지만,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오로지 걷기만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매일 걷는 거리가 일정하지 않기에, 때로는 다른 일정보다 더 긴 거리를 힘겹게 걸어야만 하는 경우도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때로는 모녀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더욱 의지하는 관계를 키워나갔다고 한다. 더욱이 그 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이들과 저녁에 숙소에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그것이 순례를 마친 다음에도 이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하루치의 걸음이 끝나면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썼’으며, ‘순례길의 하루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지만 순례의 진짜 의미는 보통의 시간을 잘 통과하는 데 있’음을 절감했다고 말하고 있다. 실상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순례길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결심을 동반하지만, 적어도 순례길에 나선 순간부터 그저 종일 걷는 일이 일상이라고 할 것이다. 주위의 풍경을 관찰하면서 여유롭게 걷는 일정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그저 빨리 걸어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하는 빡빡한 여정이 교차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홈스쿨링을 선택해서 혼자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딸과의 동반 여행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면서, 두 모녀의 ‘순례길 이야기가 세상의 많은 엄마와 딸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해외로의 여행을 결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완화되다가 발병자가 급증하는 재유행이 반복되면서, 이제 사람들의 일상은 코로나19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이 상황이 처음보다 많이 완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순례길을 포함해서 해외로의 여행은 여전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기억을 간직하고 틈틈이 ‘순례길 걷듯이 날마다 걸었다’고 밝히고 잇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포함해서 전국적으로 걷기 위한 길들이 조성되고 있는 만큼, 주말이나 휴가 기간을 활용해서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걷는 것도 좋겠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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