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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근무하는 고궁박물관에 수장된 186만점이 넘는 유물을 ‘하루에 5점씩 보면 전부 보는 데 1천년이 걸린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방대한 규모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 질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박물관은 그야말로 각종 유물들을 수집하고 관리하면서, 그곳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해 소장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역사의 흔적을 찾고 또 배우기 위해서 박물관을 찾고, 그곳에 소장되고 전시된 유물들을 볼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양한 물건들을 수집하여 사적으로 전시장을 꾸민 이들도 있지만, 박물관은 공공기관으로서 공적인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물관에 무엇이 소장되어 있는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대체로 박물관에서 일정한 의도 아래 꾸며진 유명 전시품에만 눈길을 주는 경향이 있다. 많은 박물관들은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특별한 유물들을 전시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을 보기 위해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저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을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박물관마다 보유한 특별한 물품들을 자주 전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은 '북경 고궁발물관에서 가려 뽑은 옛 물건 18'이라는 부제로, 고궁박물관에 근무하는 저자가 수장품들 중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뽑아서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 내용이다. 수많은 소장품들 가운데 18개 품목을 선정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흔히 옛부터 전해오는 물건들을 '유물(遺物)'이라고 표현하는데, 저자는 그것이 간직한 시간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옛 물건'이라고 표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186만점의 유물들 가운데, 18종의 물건을 취해서 그것이 품은 의미와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적 흐름을 좇아서 선정된 ‘옛 물건’들을 순서대로 소개하고, 그것이 품은 이야기들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저자의 설명에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여. 중국 문화에 대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가 있었다.
저자는 가장 먼저 거대한 유적지(은허)의 발굴로 인해서 비로소 역사시대로 편입된 상나라의 세발 달린 청동솥을 통해서, 당시 청동기 주조 기술이 권력의 상징이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청동기의 주조가 당시 권력을 드러내는 방식이었으며, 그것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당대의 권력자들은 '세발 솥(鼎)'에 자신들이 추종하던 동물들의 문양의 새겨 위세를 드러냈으며, 중국의 고대 기록에 전래하는 '아홉 개의 세발 솥(구정)'이 천자의 상징으로 역할을 하던 상황과 그것이 사라지게 된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두 번째 항목에서 역시 중국 고대의 상나라에서 사용되던 술잔인 '굉'을 비롯한 다양한 '주기(酒器)'들을 소개하면서, 그것의 용도가 제사와 권력자들의 잔치에 활용되었음을 소개하였다. 이어지는 내용은 춘추시대에 만들어진 술 항아리에 새겨진 동물 조각들을 통해, 다시까지도 여전히 동물을 숭상하던 문화가 존재했음을 서술하고 있다.
치열한 권력의 쟁투가 벌어지던 전국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청동기에 사람의 모습이 새겨지게 되었음을 밝히고, 이때로부터 귀신과 조상을 구분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논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단순히 유물의 특징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변천 과정을 연관시켜 논하고 있어 그 내용 또한 유익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다섯 번째 항목에서 다루는 진시황의 병마용은 10여 년 전에 직접 그곳에서 보았던 광대한 풍경을 떠올리도록 했다. 병마용은 글자 그대로 방대한 규모의 병사와 말의 인형을 의미한다. 1974년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지금까지도 발굴이 이어지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진시황의 병마용들은, 사후 세계에도 그들이 자기를 지켜볼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의 산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밖에도 신선이 되고 싶었던 한무제의 욕망을 담은 박산향로는 이상적인 신선세계를 표상한 것이며,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사라질 수 있었던 고대의 문헌들이 감추어졌던 죽간들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다시 전해질 수 있었다는 내용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각각의 ‘옛 물건’에 담긴 의미는 물론, 그와 연관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중국 문화에 대한 풍부한 설명이 곁들여지고 있다. 옛 물건들의 사진과 함께 다양한 자료들을 보완해서 설명하는 저자의 안목이 충분히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모든 유물들이 그렇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남아있는 물건들은 귀하기 마련이다. 그나마 고대의 유물들은 고고학적 발굴이나 무덤의 부장품들을 통해서, 그 일부만이 전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소개된 18종의 '옛 물건'들이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중국 고대의 유믈들로부터 시대순으로 배열된 목차를 통해서, 현재 남아있는 물건들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의례나 권력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로 일상 생활 용품과 연관된 물건들이 주목받는 것은 현전하는 품목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위 오 촉 삼국이 천하를 다투던 '삼국시대'의 유물들은 적지 않은 수가 남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되는 옛 물건들의 품목이나 내용도 보다 풍부하게 소개되고 있다. 나에게는 특별히 벽돌이나 그림에 형상화된 죽림칠현의 모습과 에피소드들이 소개되는 '현 위의 인생'이라는 항목이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여기에 구리거울의 용도나 전쟁 중에 사용되었음직한 구리솥, 그리고 피처럼 빨간 땀을 흘려 '한혈보마'에 관한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황제로 등극했던 무측천의 존재는 당시 예술품에서 반영되어, 특히 당나라 대에 여성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아졌다고 논하고 있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중국에 정착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당시 중국을 변방에서 일어난 요나라가 지배했기 때문이고, 관음보살의 상이 많이 남아있는 것에서 당대 민중들의 희망이 번영되어 있음을 읽어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청자와 의자 그리고 옷칠과 의상 등에 대해서도 소개하면서, 마지막은 청나라 건륭제의 옥새로부터 시작해서 <시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그림을 소개하면서 '옛 물건'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있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시경>의 내용을 그린 미술품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마지막 항목에 '회귀'라는 제목을 붙였다.
아마도 박물관에 소장된 방대한 규모의 '옛 물건'들도 결국 당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던 물건들도 언젠가는 '옛 물건'으로 취급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중국의 옛 물건들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중국의 역사적 흐름과 함께 각각의 예술품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목시켜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재미있게 읽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물건들도 나름의 사연을 담아내고 있듯이, '박물관'의 소장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와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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