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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인 저자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연애에 대한 기억과 생각들을 풀어놓는 내용이라는 것을 이 책의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이 결합되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자연과학의 기초를 이루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저자에게 ‘그림은 또 다른 우주’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림에 대한 저자만의 ‘열정’이 학자로서의 긴장을 풀어주는 수단으로 작용했을 터이고, 그에 못지않게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책의 내용을 엮어나갔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연애하는 상대를 만나는 시간처럼’ 그림을 그리고, 그에 맞는 생각들을 채워나간 글의 내용도 담담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정리된 생각일 터이지만, 저자는 ‘연애란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한 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고 단언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에는 모든 상대방의 모습과 모든 행동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실망했던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상대방이 보여준 매력의 한 조각만을 보고 그것이 전부라고 비이성적으로 믿고 바라보는 것이 연애의 본질이면서 동시에 연애의 비극’이라는 지적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다고 하겠다. 연애의 결과가 이별이라는 현실로 다가왔을 때, 시간이 흐르면서 힘들었던 경험보다는 서로 좋아했을 때의 아련한 기억만이 추억으로 남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이별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그로 인해 삶의 의욕조차도 꺾일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첫눈이 오는 날에도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상대에게 해주었던 사소한 이벤트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미 격정을 시간을 보낸 저자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은 비극이고 불행이지만, 항상 처음 같은 사랑은 기다리고 있으며 마지막 같은 사랑 역시 기다리고 있다.’ 이 말은 결국 추억을 추억일 뿐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현재의 시간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라고 이해된다. ‘세상엔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것이 있’으며, ‘서로 예의를 다해 사랑을 다하고 끝을 낸 상황에서 뒤늦게 불을 지피러 혼자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미련 없이!’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항상 강단에서 20대의 젊은 청춘들을 만나는 직업인지라, 저자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어색한 시간을 보냈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서툴고 위험하고 무모했던 연애’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항상 같이 있지는 않더라도 ‘가을 햇살 속 테라스에 앉아 그 사람을 기다리면서 느끼는 가을바람 같은 외로움’을 떠올릴 만큼 이제는 연애의 감정조차도 여유롭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연애에 대한 다양한 상념들을 정리하면서 저자는 이 책에 ‘추상화 같은 사랑의 모든 풍경’이라는 부제를 덧붙이고 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연애를 하고 또 겪었던 경험과 기억만큼은 독자들 역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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