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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그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현대어 번역본으로도 제대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만화로 그려, 그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라겠다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실록의 내용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쉽게 설명하기 위한 얼개를 짜는 작업부터 쉽지 않았을 터인데, 적어도 이 책은 그러한 의도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중국의 기록인 <삼국지>나 <초한지> 등은 이미 만화로 출간되어 있기에, 저자는 조선사를 만화로 그리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서 조선정치사 그중에서도 ‘<실록>에 기록된 정사를 바탕’으로 기획했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먼저 <실록>을 토대로 만화를 그리면서,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정치사를 위주로 하면서 주요 사건과 해당 사건에 관련된 핵심 인물들의 생각과 처신을 내용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점이 첫 번째 원칙이다. 두 번째는 ‘<실록>의 기록을 위주로 하면서 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를 적극 차용하고 필자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해석에 개입’하겠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은 역사 기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표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인 독자들을 주된 대상으로 삼되, 청소년과 역사에 관심이 남다른 어린이가 보아도 무방하게 그린다’는 점이다. 내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즐겨 앍었으니, 적어도 저자가 세운 마지막 원칙은 어느 정도 달성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거대한 기획의 첫 번째 책인 제1권은 ‘개국-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라는 부제를 달고, 고려 말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고려의 멸망과 새로운 국가 조선의 건국에 이르는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고려 말에 ‘북방의 호랑이’로 성장한 이성계와 그 일파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으로 내용이 시작되고, 공민왕의 죽음으로 좌절된 개혁과 이후 전개되는 혼란한 정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명나라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말머리를 돌리고, 자신의 뜻에 맞서는 인물들을 죽이면서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조선의 개국으로 ‘왕씨’로 이어지던 국왕의 성씨가 ‘이씨’로 바뀌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이뤄진 것이다.
사위어가던 고려 왕조의 불씨를 살리려던 최영과 정몽주 등의 고려 유신들은 끝내 조선 건국을 주도하던 세력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개국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은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는 삶을 택하게 되었다. 흔히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고사성어로 알려진 용어도 고려의 신하임을 자처한 이들이 두문동이라는 곳에 은거하여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끝내 무력을 통해 거사에 성공한 이성계가 마지막 고려 왕인 공양왕의 형식적인 선위(禪位)로 인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는 내용으로 1권은 마무리된다. 이러한 내용들은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고려사>에 기반하여 이뤄졋으니, 실상 조선 개국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아마도 이어지는 2권부터 본격적으로 <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조선 왕조의 역사가 소개될 것이라고 기대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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