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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어머니이냐? 누가 내 형제냐? “ 라고 이야기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조건과 자격을 단호하게 규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Jesus firmly defines the condition and qualification of the people of God’s kingdom by saying “Who are My mother and brothers?”
혈통이나, 업적이나, 열심이나 ,노력이나, 재산이나, 지위나, 훌륭한 인품, 도덕적 성취, 학식이나, 깨달음,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나라 백성 됨에 손톱만큼도 기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먼저 보여주신 것입니다.
Ancestry, achievement, zeal, efforts, wealth, status, good character, ethical level, education, enlightenment, etc, Jesus shows first none of them can be acknowledged to get qualified as the people of God’s kingdom through the minor episode.
그게 ‘예수인 나, 하나님인 나의 육적 어머니, 형제라도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Jesus is saying ‘even to Me, Jesus who is God, My physical mother and brothers are good for nothing.’
그게 쓸모 없는데 무엇이 하나님 앞에 우리의 조건과 자격으로 드려질 수 있단 말입니까? 없단 말입니다.
When the physical family of Jesus is good for nothing, what could be offered as our condition and qualification in front of God? Nothing.
따라서 여러분은 착하게 살아서, 업적 많이 쌓아서 천국 가는 것 아니에요.
Accordingly, you don’t go to Heaven by living nicely or achieving a good many results.
그것은 자식 잘 되기를, 사람답게 키우기 위해 학교 보냈더니, 우리 엄마 아빠 도와준다고 밖에 나가서 껌 팔아 온 놈하고 똑같은거예요. 졸업식에 갔더니 애가 오천원을 들고 교문 앞에 서 있어, “너 뭐냐?” “사실은 내가 학교 안다니고 엄마 아버지 도와드리려고 6년동안 껌 팔았어요.”
It is just like sending your son to school to be a good person, but he sells gums to help his parents instead of studying at school.
On the graduation day, when you go to the school to celebrate, he’s waiting for you in front of the school gate holding 5 bucks.
You ask, “What’re you doing here and where’s the money from?”
Then, the child says proudly, “In fact, I’ve been selling gums for six years to make money to help you, instead of going to school.”
그건 죽죠, 그냥 거기서.
If it happened to you, you would kill him on the spot.
그런데 예배당에서 그 짓들을 하고 있다 말입니다.
Then, people are doing the same thing in the church now.
뭔가 하나님께 자기가 보답을 한대요. 그리고 그 일이 하나님께 자격과 조건으로 받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걸 ‘자기 의’라고 한다 말입니다. 여러분.
They say they’re making a return for God’s grace.
Also, they think such efforts will be accepted as the qualification and condition of being God’s people by God.
Everybody, we call it ‘self-righteousness’.
그러한 복음의 현실을 사도 바울이 호세아서와 이사야서를 동시에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The Apostle Paul explains such a reality of the Gospel citing Hosea and Isaiah simultaneously like this.
(롬9:25~29)
25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내백성이 아닌자가 누구죠? 가시떨기 돌짝 밭, 내 백성이라 이게 누구죠? 옥토. 사랑치 아니한 자를 뭐예요? 가시떨기 돌짝 밭.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이게 복음입니다. 사랑받는 자가 되어지는게 아닙니다. 그냥 돌짝이고 가시떨기 인데 하나님이 뚫고 들어가서 사랑하는 자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로암미!)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어떻게 더 명확하게 설명을 해 줘요?)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나오죠? 큰 무리!)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12명, 12제자!)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 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Rom. 9:25~29>
25As he says in Hosea: “I will call them ‘my people’ who are not my people(Who are ‘not my people’? Thorns and rocks. Who are ‘My people’? The rich soil.); and I will call her ‘my loved one’ who is not my loved one,”(What does He do with the one who He doesn’t love? He’ll call them “My beloved ones”. This is the Gospel. We aren’t becoming the loved one, we are still the thorns and rocks, but God penetrates into us and makes us His loved one.)
26and, “In the very place where it was said to them, ‘You are not my people,(Lo-ammi!)’ there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the living God.’ ” (How can it be explained more clearly than this?)
27Isaiah cries out concerning Israel: “Though the number of the Israelites be like the sand by the sea (See? A big group), only the remnant will be saved. (12 people, 12 Disciples)
28For the Lord will carry out his sentence on earth with speed and finality. 29It is just as Isaiah said previously: “Unless the Lord Almighty had left us descendants, we would have become like Sodom, we would have been like Gomorrah.”
수 많은 큰 무리 중에 남은 자가 돌아왔는데 그 남은 자가 스스로 뭔가를 해서 돌아온 거예요? 씨 때문에 돌아왔단 말입니다. 씨 때문에! 돌짝 밭, 길가 밭, 가시떨기가 씨가 심기어지니까 옥토가 되어 남은 자 remnant 들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Among the big group of people, some remnants returned, but did they come back by doing something for themselves?
They came back due to the seed.
Thanks to the seed! When the seed was sown in the field along the path, rocky and thorny place, the field became the rich soil, the remnants.
That is the Gospel.
예수를 좋겠다고 수많은 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남은 자들에게만 복음의 비밀이 전해집니다.
Thousands people flocked together to follow Jesus, but the secret of the Gospel is conveyed to only the remnants among them.
그 남은자들의 모형으로 12제자가 등장하는 거예요. 나머지는요? 전부 길가 밭, 돌 짝 밭이요, 가시 떨기라는 것입니다.
The 12 disciples appear as the model of the remnants.
What about others?
All of them are the field along the path, the rocky and the thorny ground.
그런데 그 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이나 열심, 자격, 조건을 근거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남겨진 자들입니다.
By the way, the remnants are left not by the basis of their own efforts, zeal, qualification or condition, but by God.
그들은 원래 내 백성이 아닌 자, 사랑치 아니한 자, 즉 죽은 흙에 불과한 자들이었는데, 죽은 땅에 불과한 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이 남기시니 거룩한 ‘씨’에 의해 옥토가 되어 ‘내 백성, 내가 사랑하는 자’로 남겨진 것입니다. 정리가 되시지요?
They were originally ‘not My people’, ‘not My loved one’, that is, no more than dead soil and a dead field, but by the holy ‘seed’ God left, the dead field became the rich soil, remaining as ‘My people, My loved one’. Settled clearly, right?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씨가 심겨지지 않은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Then, what happen to those who the holy seed of God is not planted into?
오히려 예수라는 가시덤불과 돌 짝에 의해 멸망의 자리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Rather, they’re going to the place of ruin by the thorns and rocks of Jesus.
그게 은혜 밖에 있는 자들이에요. 화염검과 그룹으로 그냥 갇혀있어요. 그들에게는. 못 알아먹어요. 못 알아먹어요.
They’re the outsiders of God’s grace.
They’re just being blocked by the cherubim and the flaming sword.
They can’t understand the Gospel. They’re never able to understand it.
선악과를 드시고 하나님처럼 되시어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고 이 세상의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에녹성과 바벨탑 건설에 열심들인 이 세상의 건축자들은 진짜 모퉁이 돌이신 예수를 자꾸 내다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The builders of the world, who’ve eaten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and become like God, who judge right from wrong for themselves eager to build Enock castle and the Babel Tower representing the Utopia on earth, keep throwing out the real cornerstone, Jesus Christ.
그게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That’s the meaning of the expression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예수가 들어와야 휘장이 찢기고 예수가 들어와야 얼굴에 가려진 수건이 걷히는데 예수를 거부해요.
Only by Jesus’ coming in, the curtain will be torn, and only by Jesus’ coming in, the towel covering the face will be removed, but they still reject Jesus Christ.
왜? 자존심 상한다는 거예요.
Why? Because they feel it hurts their pride.
‘나도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어 있는데 왜 내가 무력한 자로 인정이 되야 되고 폭로가 되어야 하며 왜 내가 은혜만을 바래야 돼?’
‘I’m like God by eating the fruit the tree of knowledge, then why should I be acknowledged as a helpless and revealed, only hoping for the grace of God?’
그게 인본주의의 망령이란 말입니다.
That’s the specter of humanism.
그들이 바리새인들이었어요.
They were the Pharisees.
“왜 내가 예수만 믿어야 돼? 나도 제사 잘 지내고 있고 율법 잘 지키고 있고 착한 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내가 예수만 믿어야 돼?”
“Why do I have to believe in only Jesus? I sincerely practice the worship, observe the law, performing virtuous deed, then why should I only believe in Jesus?”
이게 가시떨기입니다. 돌짝 밭이에요. 이게 길 가 밭인 거예요.
That’s the thorny and rocky field. That’s the field along the path as well.
로마서 9장 30절 보세요
Look at Romans, chapter 9, verse 30.
(롬9:30~33)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Rom. 9:30~33>
30What then shall we say? That the Gentiles, who did not pursue righteousness, have obtained it,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31but the people of Israel, who pursued the law as the way of righteousness, have not attained their goal. 32Why not? Because they pursued it not by faith but as if it were by works. They stumbled over the stumbling stone. 33As it is written: “See, I lay in Zion a stone that causes people to stumble and a rock that makes them fall, and the one who believes in him will never be put to shame.”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 예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는 자들은 반석이신 예수에 의해 오히려 부딪힘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거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게 심판입니다.
It means those who don’t rely on the achievement of the blood of Jesus on the Cross, who don’t depend on the grace of Jesus, will be stumbled, put to shame and fallen. That is the judgment.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을 가져다 버리는 자, 즉 자기부인이 없이 예수믿는다고 하는 이들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기라는 우상을 더 살찌울 뿐, 그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Those throwing out Jesus Christ the foundation, that is, those claiming to believe in Jesus Christ without self-denial, can never bear any fruit.
They only fatten themselves as idols under the name of religion, and we don’t call it faith.
그래서 진정한 교회는 잘난체하는 인간들이 점점 줄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본받아라하는 인간들이 점점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본받으라는 말입니까… 돌짝밭에서 같이 죽자는 말입니까…
That’s why the number of wise apples should decrease fewer and fewer in the true church.
The ones who say ‘Imitate me!’ have to go away from the church gradually.
What on earth are they asking us to imitate?
Are they asking to die together to be the rocky field or what?
아닙니다. 여러분! 성도는 십자가를 지고 티끌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No way, everyone! We saints should go back to the status of dust bearing the Cross.
은혜로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고 오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세상이, 예수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되고 심판에 이른 것처럼, 예수만을 의지하지 않는 모든 존재들은 다 열매하나 없는 저주의 무화과나무가 되어 결국에는 말라 죽게 되는 것입니다.
Just like the world, which crucified Jesus on the cross who came to solve everything with His grace, was condemned and judged by Him, all beings who don’t depend only on Jesus will be the cursed fig tree without a single fruit and withers to death in the end.
우리가 우리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의 은혜에 맡기는 것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정말 미련하고 유약하고 미련하기 그지없는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From the worldly view ruled by the principle of power, entrusting our whole life to God and God’s grace seems nothing but a totally stupid, weak and ridiculously unwise image.
그러나 그게 바로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을 경험하는 진짜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에게 알려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However, that’s what God truly wants His church to know that the real wise life is experiencing the real power of God.
(고전1:18, 23~24)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Cor. 1:18, 23~24>
18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23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a stumbling block to Jews and foolishness to Gentiles, 24but to those whom God has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of God.
여러분! 여러분이 부인되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약자로 폭로되는 것이 여러분이 유약해지고 미련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Everybody! Self-denial and being revealed as the weak through the Cross doesn’t mean you become weak and stupid.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From there, God’s power appears.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할 때 강함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That’s why God said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여러분의 인격을 개발하고 고양하여 훌륭한 도덕적인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가는 것이 아닙니다.
You’re not going to Heaven by developing virtuous personality and becoming an ethical being.
그것은 부산물일 뿐이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They’re just a byproduct, not the purpose itself.
그렇게 예수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가시덤불과 돌 짝 밭과 길가 밭의 상태에 있는 이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게 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비유 뒤에 붙어 있는 예수님의 비유 해설에 나와 있습니다.
Not knowing Jesus, how the people will live in this world, who stay in the state of the thorny, rocky field along the path, is explained right after the parable.
(마13:18~23)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Matt. 13:18~23>
18“Listen then to what the parable of the sower means: 19When anyone hears the message about the kingdom and does not understand it, the evil one comes and snatches away what was sown in their heart. This is the seed sown along the path. 20The seed falling on rocky ground refers to someone who hears the word and at once receives it with joy. 21But since they have no root, they last only a short time. When trouble or persecution comes because of the word, they quickly fall away. 22The seed falling among the thorns refers to someone who hears the word, but the worries of this life and the deceitfulness of wealth choke the word, making it unfruitful. 23But the seed falling on good soil refers to someone who hears the word and understands it. This is the one who produces a crop, yielding a hundred, sixty or thirty times what was sown.”
예수님께서 길가 밭, 가시떨기, 돌 짝 밭의 상태를 설명해 주시는데 먼저 길가 밭은 천국 말씀이 떨어지게 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말씀을 얼른 빼앗아 가는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Jesus explains the state of the field along the path, thorny and rocky.
First, the field along the path is the state that when the Words of Kingdom are given, the evil comes and snatches them away.
예전에 어떤 부흥사는 길가 밭을 설명하시면서 설교시간에 조는 사람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Explaining the field along the path, a revivalist once likened it to the people who’re dozing off during the sermon.
말씀이 떨어지는데 마귀가 졸음을 주어 말씀이 하나도 귀에 못 들어가도록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He said while the message given, the evil also gave them sleepiness to prevent the Words from being heard.
그러니까 절대 졸지 말라는 것이지요.
That’s why we mustn’t doze off during the sermon, according to him.
피곤하면 졸수도 있는 겁니다. 고작 예수님이 설교시간에 졸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 이런 비유를 드셨겠어요?
Dozing off could happen when tired.
Would Jesus give the parable to merely warn us not to nod off during the sermon?
길가 밭의 상태는 그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상태를 잘 표현해 주는 에피소드가 창세기에 나옵니다.
The state of the field along the path means more serious than that.
An episode representing the state well comes in Genesis.
(창19:12~14)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13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Gen. 19:12~14>
12The two men said to Lot, “Do you have anyone else here—sons-in-law, sons or daughters, or anyone else in the city who belongs to you? Get them out of here, 13because we are going to destroy this place. The outcry to the Lord against its people is so great that he has sent us to destroy it.” 14So Lot went out and spoke to his sons-in-law, who were pledged to marrya his daughters. He said, “Hurry and get out of this place, because the Lord is about to destroy the city!” But his sons-in-law thought he was joking.
롯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제 곧 불타 없어질 소돔에서 나가야 한다고 사위들에게 전했습니다.
After receiving God’s prophecy, Lot told his sons-in-law to leave Sodom destined to be burnt to the ground.
그랬더니 사위들이 그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Then, they regarded it as a joke.
왜요? 소돔이 좋았거든요.
Why? Because Sodom was good for them.
소돔이 주는 쾌락과 소돔이 주는 편안함과 소돔이 주는 세상 적 행복이 복음의 필요성을 잡아먹어 버린 것입니다.
The pleasure, easefulness and worldly happiness Sodom provided swallowed up the need of the Gospel.
내게 지금 부족한 주는 없는데 왜 또 다른 복음이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It’s like ‘I lack nothing now, then why should I need another Gospel?’
여기가 좋은 데 왜 자꾸 여기서 나가라고 하냐는 것이지요?
It’s like ‘I like it here, then why do you keep forcing me to leave here?’
그게 바로 길가 밭들이 처한 상태인 것입니다.
That’s the situation the field along the path is in.
아울러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삶과 행위에 대해서도 자족하며 사는 자들 또한 길가 밭의 상태입니다.
Also, like the Pharisees, those living in the satisfaction about their life and deeds are also in the state of the field along the path.
바리새인들은 세리나 창기들을 보면서 ‘하나님 저는 저들과 같은 죄인으로 살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릴 정도로 자신들의 삶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Looking at a tax collector or a prostitute, the Pharisees were confident enough with their life to the degree of praying ‘God, thank you for letting me not live as a sinner like them’.
그들에게 거룩한 씨인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To them, the Words, the holy seed fell.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 그러자 그들은 그 거룩한 씨를 죽여 버렸습니다.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has come’, then they killed the holy seed.
자기들은 이미 제사도 잘 지내고 있고, 율법도 잘 지키고 있고, 착한 일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또 회개를 해야 하고, 왜 예수라는 이름을 믿어야 하냐는 것이었습니다.
They thought they practiced the worship well, observed the law well, doing virtuous things eagerly, so what were the reason for them to repent again and believe in the name Jesus anyway.
복음이 떨어지는데 마귀가 얼른 집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It’s the case the Gospel has fallen but the evil snatches it away quickly.
그게 길가 밭입니다. 그들은 절대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That’s the field along the path. They can never enter the kingdom of God.
그러니까 하나님보다 이 세상이 너무 좋아 자신의 건강, 재산, 명예, 인기 등에만 관심을 갖고 사는 모든 인간들이 전부 길가 밭입니다.
In other words, all people who love this world so much and have interest only in their own health, wealth, honor and popularity are the field along the path.
거기에는 성도라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There is no exception for the people called saints in the case.
내가 지금 세상것으로 복되다고 생각하는데 왜 복이 또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그 사람 모두가 바로 길가밖에 있는 것입니다.
Those are the ones standing along the path who think ‘I’m blessed with the earthly things enough, then why should I need another bless?’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너무나 행복한 분들, 복음이 제대로 안떨어집니다.
To the people too much happy in this world, the Gospel doesn’t fall properly.
그래서 견딜만큼 여러분에게 고난,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으라고….
That’s why God allows you to have sufferings and hardships bearable to make the Gospel be heard.
그게 바로 길가밭인 것입니다.
That’s the field along the path.
두 번째로 돌 짝 밭입니다.
The second is the rocky ground.
그런 그림은 출애굽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The rocky ground refers to the state of the people who receive the Words with pleasure, but fall down pretty soon encountering ordeals and persecution.
Such an image can be seen in Exodus.
(출14:10~12)
10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Ex. 14;10~12>
10As Pharaoh approached, the Israelites looked up, and there were the Egyptians, marching after them. They were terrified and cried out to the Lord. 11They said to Moses, “Was it because there were no graves in Egypt that you brought us to the desert to die? What have you done to us by bringing us out of Egypt? 12Didn’t we say to you in Egypt, ‘Leave us alone; let us serve the Egyptians’? It would have been better for us to serve the Egyptians than to die in the desert!”
“차라리 애굽으로 돌려 보내줘!” 그러고 있는 거예요.
“Rather, send us back to Egypt!” the Israelites are shouting.
환난과 핍박이 오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차라리 애굽으로 돌려보내줘!”
Confronting ordeals and persecution, while God’s words given, they begged “Send us back to Egypt!”
환난과 핍박이 오니까 금방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 분께 등을 돌려요.
At the coming of the ordeal and persecution, they betrayed God soon turning their back.
여전히 하나님보다 현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자들이죠. 그게 돌 짝 밭입니다.
They still cherish the earthly reality more than God. That is the rocky ground.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그런 이들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In short, it’s the state of people who believe in God somehow, but the purpose of believing God isn’t God Himself, but to obtain something from Him.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바벨론 포로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성전에 제단이 두 개였다고 합니다.
According to historians, there used to be two altars in the Temple of Jerusalem before the Captivity of Babylonia.
실제로 발굴을 해보니까. 하나님을 그렇게 열심히 섬긴다고 하는 인간들이 제단을 두 개를 두고 섬겼더라는 것입니다.
The excavation of the site confirmed those who had argued to serve God so eagerly actually had been serving two altars.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안 주는 것을 얻어내는, 바알에게 아세라에게 분향하던 제단. 두 개가 있었어요
One for God and the other for Baal and Asherah to get from them what God didn’t allow. There were two altars.
그래서 예수님이 “재물과 = 맘몬과 (그게 바알이고 아세라 잖아요), 맘몬과 하나님을 어떻게 동시에 섬기니? 이 도둑놈들아!” 말씀하신거예요.
That’s why Jesus said, “How can you serve God and wealth (= Mammon, that’s Baal and Asherah) at the same time? You thieves!”
그러니까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 70년을 확 보내버렸어요.
So, God sent them away as the captive of Babylonia for 70 years.
그 때 이후로 그 나머지 재단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After that, the other altar disappeared.
그건 안 된다는 거예요.
It means serving two altars is incompatible.
그게 바로 하나님을 버린 거예요.
Such thing is to desert God, indeed.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의 힘도 섬기고.. 그게 바로 버린 거라는 말입니다.
Worship God and worship the power of the world…that’s deserting God.
그건 예수 믿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역시 영원한 하나님 나라보다는 이 세상 것에 집착하고 있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죠
Such thing is far from believing in Jesus.
Everybody, it’s also the image of humanity obsessed with the earthly things rather than the kingdom of God.
이 세가지 밭이 전부 뭐예요,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인 것입니다.
What are the three fields? They are Adam who ate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to become like God.
그리고 ‘그 상태로는 절대 천국 못 들어 간다’, 생명나무를 화염검과 그룹으로 감추어 둔 상태예요. 그 상태. 그 상태는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And ‘You can never enter Heaven’, this is the state of hiding the tree of life with the flaming sword and cherubim. That situation, it’s the state of ruin.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뚫고 들어가 너희 눈과 귀를 열었다” 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But, I penetrated into you and opened your eyes and ears”, says Jesus.
“교회들아 내가 너희들의 눈과 귀를 열었어, 너희도 그렇게 멸망되어야 돼. 죽은 흙이니까 열매 못 맺는 죽은 흙이니까. 그러나 내가 은혜로 오직 은혜로, 너희들의 도움 하나도 받지 않고 오직 은혜로 너희들에게 뚫고 들어와 너희들에게 새 생명을 주었어. 그런데 너희들 공로 아직도 자랑할 꺼야?” 묻는 거예요.
“You churches, I’ve opened your eyes and ears. You were also doomed to perish in that way because you were dead soil that couldn’t bear any fruit.
However, through grace, nothing but grace, I’ve penetrated into you and given you the new life without your help.
Then, are you still boasting about your achievement?” Jesus is asking of us.
하나님 나라 가서는, 우리는 이 사실을 다 깨닫고 그냥 하나님 말씀에 죽으라면 죽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In the kingdom of Heaven, after realizing all of this fact, we’re living the obedient life of the Cross, the life of Jesus Christ who would do anything by the one word of God.
그래야 그 나라에 모반과 반역이 없을 것 아닙니까.
By doing so, there’ll be no more rebellion and treason, right?
그거 배우고 가시면 되는 거예요.
That’s what you are learning here before going to Heaven.
하나님 나라 가면 그냥 영원히 할 착한 일, 그거 몇 개 여기서 더 하고 오라고 여러분 인생에 보낸 것 아니란 말입니다.
You haven’t been sent to your life to do some more good deeds, which you’re supposed to do forever in the Kingdom.
왜 하나님은 우리 성도를 좋은 밭이다 라고 말씀하시고는 여전히 길가와 가시떨기와 돌 짝 밭의 모습을 그냥 놔두고 지켜보시는 걸까요?
Even after calling us saints ‘a good field’, why does God only watch us have the image of the field along the path, the rocky and thorny ground?
너희들의 실체를 올바로 직시하라는 거에요.
It’s because God lets us face up our true nature.
그리도 너희들 안에 심겨진 그 생명의 위대함을 보라는 거예요.
Also, God asks us to see the greatness of the life planted in us.
그래서 우리 안에서 자꾸 우리의 길 가 됨과 돌 짝 밭 됨과 가시떨기 됨을 폭로시키는 거예요.
That’s why our true nature of the field along the path, the rocky and thorny ground in us is being revealed continuously.
“너희들은 죽은 흙이야, 그런데 너희 안에 그 새 생명이 너희를 살려내는 거야.”
“You’re the dead soil, but the new life in you makes you revived.”
생각해 보세요. 밭에 생명이 있어요? 씨에 생명이 있어요?
Think about it. Where does the life exist, in the field or in the seed?
밭에 생명이 있어요?
What, in the field?
누가 “밭” 그랬어, 지금.
Somebody just has said ‘in the field’.
씨에 생명이 있지요! 밭에 무슨 생명이 있어요.네?
The life is in the seed! What on earth in the field, common!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네.
Gee, we might need to start over, huh?
생명은 밭에 심기어진 씨에 있는 거지요.
Listen, the life is in the seed sown in the field.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 옥토로 만드는 것을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에요.
To plow up our field to be rich soil isn’t the purpose of our life of faith.
이 돌 짝 밭 같고, 길가 밭 같고, 가시떨기 같은 내 속에 새 생명의 씨가, 오직 은혜로 심겨졌다는 것을 깨달아서, 여전히 길가 밭이요, 가시떨기 밭이요, 돌 짝 밭인 자신의 모습을 폭로 당함에도 거기에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그 새 생명의 씨의 능력을 의지해야 되는 거예요.
By realizing the fact that the seed of life has been sown in us only by grace, who’re still like the field along the path, the rocky and thorny ground, we don’t give up hope or lose courage, despite being revealed our true nature of the field, only relying on the power of the seed of the new life.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새 생명이 있고 반드시 내 안에서는 열매가 맺히고야 말거라는 믿음으로, 은혜의 십자가를 꼭 붙드는 걸 ‘옥토’라고 하는 거예요.
Despite our state, with the faith that the new life is in us and its fruit definitely will be born in us, we hold tight the Cross of mercy, and that’s ‘the rich soil’.
그게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맺는 ‘열매’ 예요.
That’s ‘the fruit’ you’ll bear in this world.
자기 부인의 열매, 십자가 지는 삶의 열매인 것입니다.
It’s the fruit of self-denial, the fruit of bearing the Cross.
그들이 마지막 날에 반드시 옥토로 완성이 되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They’re completed as the rich soil on the last day that produces a crop, yielding a hundred, sixty or thirty times what was sown.
누구에 의해서? 예수에 의해서.
By whom? By Jesus Christ.
그런데 이 세상 속에서는 내 안에 들어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이걸 자꾸 하나하나 비워가고 폭로당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싹 비워지고 예수로 가득 차게 될 때 거기서 진짜 예수의 열매, 갈라디아서 5장22절 성령의 열매, 소유격이 아니라 주격이라 그랬죠? 성령이 맺으시는 열매가 나타나는 거란 말입니다.
However, we’re occupied by too many things in us in the world, so by empting them and being revealed our ugly nature one by one, we empty ourselves and fill them with Jesus Christ.
From there appears the real fruit of Jesus Christ, the fruit of the Spirit in Galatians, chapter 5, verse 22. Didn’t I mention it’s not the possessive but the subjective case?
The fruit the Spirit bears comes out in us in the end.
그래서 복음이에요 여러분에게 열심히 밭 갈아 업어서 옥토 되라고 하면 그게 무슨 복음입니까, 중노동이지.
That’s why it’s Good News, the Gospel.
If it tells you to plow up for yourself, how come it’s the Gospel; it’s just another hard labor.
돼요? 안 되는 걸 어떻게 할려고 해요.
Can you? It’s impossible, then why try?
얼마나 갈아엎으려고 애써 봤습니까.
We’ve tried to plow ourselves up so eagerly, haven’t we?
이번 주부터는 절대 우리 남편에게 바가지 긁지 말아야지.
It’s like one day, you swear “I won’t nag my husband from now on.”
그 날 저녁에 반 죽이잖아요. 옥토 안 돼요.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가 여러분을 옥토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But, you kick his ass on the same evening, right?
We can’t be the rich soil on our own.
It’s Jesus who makes the rich soil out of us.
우리를 예수 안에 넣어서 이 세상의 풍랑 위를 걷는 자로 만들어 주셨으면서도 이 세상의 풍랑 속에 그대로 놔두시면서, ‘너희들은 풍랑을 딛고 일어선 방주 안에 들어있는 성도야.’ 이것을 경험하게 해 주시는 것처럼, 옥토로 이미 만들어놓고 길 가 밭, 돌 짝 밭, 가시떨기의 삶을 경험하게 해주시는 거예요.
Just as while God has put us in Jesus and made us the ones walking on the waves of the world, He still lets us stay in the storm of the world to make us experience the fact, ‘You’re the saints in the ark that has overcome the storm’, God also allows us to experience the life as the field along the path, the thorny and rocky ground even after He has made us into the rich soil.
‘그럼에도 너희 안에 들어있는 새 생명이 너희들을 완벽하게 완성해내고 말거야.’ 이걸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Despite your pathetic state, the new life in you will finally complete you as the rich soil.’ That’s what God teaches us.
따라서 세상은 가시떨기와 돌 짝으로 인해 멸망에 처하게 되지만 우리 성도는 우리 안에서 폭로되는 가시떨기와 돌 짝의 모습을 통하여 한 발짝 더 예수님의 은혜 뒤로 숨게 되는 것입니다.
Accordingly, while the world is doomed to ruin through the thorns and rocks, we saints can hide behind the grace of Jesus one step closer through the image of the thorns and rocks revealed in us.
그게 남은 자이고 자기가 부인되어져 가는 성도의 삶이며 그게 바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삶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옥토가 될 수 없어요.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를 붙드세요. 은혜 속으로 자꾸 슴으시란 말이에요.
That’s the remnants and the life of self-denial that produces a crop, yielding a hundred, sixty or thirty times what was sown.
Everybody, we can’t be the rich soil for ourselves.
Hold tight Jesus in you. You should keep hiding in the grace of God.
그렇게
그래서 두 비유가 붙여 있는 거예요. 마태복음 13장 29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가라지 들을 그냥 놔두라고 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 중요한 단어가 나오니까 보고 가죠.
That’s why the two parables are put together.
In Matthew, chapter 13, verse 29, there are important words in the scene that God ordered to let the weed grow, so let’s check them out first.
(마13:29)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Matt. 13:29>
29“ ‘No,’ he answered, ‘because while you are pulling the weeds, you may uproot the wheat with them.
이 ‘가만 두어라’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쉴레고’라는 단어는 ‘허락하다, 용납하다, 용서하다’라는 뜻이 포함된 단어입니다.
The ancient Greek term ‘sullego (συλλέγω)’, translated into ‘no (let them grow)’, also has the meaning ‘allow, accept and forgive’.
가라지는 가만 두어라! 허락해라, 용서해라 용납해라! 뭐를? 가라지를.
It means ‘Let the weeds grow! Accept, allow and forgive! Forgive what? The weeds.
왜? 너희들이 나중에 알곡으로 추수가 되기 위해선 그 가라지가 뽑히면 안된대요.
Why? For ourselves to be harvested as the grain of wheat, God says the weeds mustn’t be pulled out.
그러니까 성도들, 알곡의 인생 속에서 가라지가 꼭 있어야 되요 없어야 되요?
So, in the life of grains, us saints, are the weeds indispensable or not?
가라지가 뽑히면 같이 뽑혀 죽는다니까… 있어야 된다는거죠.
Since we die together along the weeds when pulled out, they have to be with us.
왜 그 가라지를 심어놔요?
Why does God allow the weeds planted?
우리 인생에 이 세상에 왜 하나님이 가라지를 죽은 흙들을 왜 허락하십니까?
Why does God allow the weeds, the dead soil to exist in our life and in the world?
우리의 거룩, 성도의 성숙을 위해서. 가라지들은 뭐하는데 쓰이는 거예요?
For our holiness and for the maturity of saints.
What’s good for the weeds?
쉴레고. 용납하고 용서하고 허락하고 받아들여주는 나의 거룩의 훈련의 도구로 쓰여지는 거예요.
Sullego (συλλέγω). They’re used as the training tool to build our holiness that accepts, forgives, permits and embraces them.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길가 밭, 돌짝 밭, 가시떨기의 그 상태 또한 나의 그 은혜 속에서 온전히 완성될 성도인 나의 완성에 필요한 것이라 놔두는 거예요.
Likewise, God lets the state of the field along the path, thorny and rocky ground in our mind because it’s also needed for the maturity of us who’ll be completed wholly as saints in the grace of God.
그러나 내 안에 들어있는 그 생명의 씨는 반드시 너희를 알곡으로 추수해 내고야 만다. 이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이게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인 거예요.
However, the seed of life in Me eventually will harvest you as the grains.
This is the message of the Parable of the sower.
This is the meaning of the Parable of the wheat and the weeds.
그래서 하나님이 새 언약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새 마음을 준다.
So, in the new covenant, God promises ‘I give you the new heart.’
새 마음을 준다.
Give the new heart.
마음 밭을 새 마음으로 바꿔준다.
Change the field of heart into the new one.
근데 그 온전한 새 마음이 되기 위해선 여러분의 그 전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이 땅에서 처절하게 경험하게 가셔야 해요.
But, to get the new heart wholly, we have to identify how dirty and ugly our old mind was on the earth extremely.
그래야 그 새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죠.
By that way, we’ll know for sure how precious the new heart is.
그래서 길가 밭, 돌짝 밭, 가시떨기의 그 옛 마음을 여러분이 아주 뼈에 사무치게 경험하고 가셔야 해요.
That’s why we have to experience our old sinful heart of the field along the path, thorny and rocky to the degree of piercing our heart.
여러분이 가끔 실수하고 좌절하고 절망할 때 실패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 앞에 너무 죄송하죠.
When we sometimes make mistakes, are frustrated, depressed or fail, we’re very much sorry to God.
그리고 그 삶이 행복하지도 않아. 잠깐 쾌락을 맛 봤는데 그것 때문에 몇 달 몇 년을 죄책감으로 고생해요.
Also, the life of pleasure on earth isn’t quite happy. We just tasted the pleasure for a moment, but suffer from the sense of guilt about it for months and years.
책지적 죄책, 벌치적 죄책은 사망, 그건 없어졌지만 책지적 죄책이라는게 우리에게 남아있어요.
We have the guilt conscience for sin and the liability of the punishment for sin, whose result is death. The latter has been cleared up, but the original guilt conscience for sin still remains in us.
책치적 죄책이라는 건 그 일을 저지름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들어있는 그 내 안에 남아있는 그 괴로움, 고통스러움, 성도에게만 있는 그 거.
The guilt conscience for sin is the agony and anguish remaining in us through committing sinful behavior, the feeling that remains only in the heart of saints.
그걸 왜 남겨두셨겠냐구요?
Why did God leave it in us?
돌짝 밭, 가시떨기, 길가 밭의 상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를 너희들 한 번 경험해 보라는 거예요.
God requires us to experience how painful the state of the field along the path, thorny and rocky is.
잠깐은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어떤 결과가 너희의 삶에 초래되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Though we’re briefly happy, God wants us to see what result is caused in our life, everybody.
자 그렇게 우리의 인생 속에 가라지들이, 길가 밭, 돌짝 밭, 가시떨기들이 우리의 완성을 위해 소품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Just like that, the weeds, the field along the path, the thorny and rocky field are being used as God’s tools and props for our completion.
그 상황 속에서 여러분은 예수를 붙드셔야 돼요. 십자가를 붙으셔야 돼요. 그래서 예수와 십자가를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셔야 돼요.
In the circumstance, we have to grab Jesus Christ.
We have to hold the Cross.
That’s why we have to learn about Jesus Christ and the Cross over and over again.
성령은 이 땅에 여러분의 그 눈과 귀를 열어주러 오신 것이지 여러분에게 무슨 입에 거품이나 물고 쓰러졌다 일어나는 이런 거, 다른 종교에도 다 있는 거, 그런 거나 경험해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The Holy Spirit came here to open your eyes and ears, not to give you some experience like foaming at the mouth, falling down and standing up again, prevailing in other religions.
정 그런 게 보고 싶으시면 나중에 저한테 한 번 오세요. 제가 한 30초 떠 드릴께요, 여러분 눈 앞에서…
If you really want to see such things, come to me later, and I’ll fly in the air about 30 seconds in front of your eyes.
공중부양이라는 거 아세요?
Do you know what levitation is?
여러분 그 것은 제가 절에서 배운거예요.
I learned it from a Buddhist temple.
그러면 그런 기적 원하시면 거기 가세요.
If you want that kind of miracle, just go there.
그게 여러분의 신앙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What good is such a thing to your faith?
여러분 눈 앞에서 태평양 바다가 갈라져도 하나님의 선택에서 여러분이 제외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즉시 뒤돌아 서서 하나님께 ‘나 다시 애굽으로 보내줘’ 라고 할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Everyone, even though the Pacific Ocean were to be divided in front of your eyes, if you’re excluded from God’s election, you are the ones who would turn your back and say to God ‘Send me back to Egypt again!’
그런 건 우리들의 신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That kind of miracle isn’t helpful to our faith at all.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깨달으세요. 십자가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시란 말입니다.
Just be aware of the merciful words of God. Go into the words of the Cross.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에 떨어지는 모든 가라지, 인생채찍, 사람 막대기, 여러 가지 이해하기 힘든 사건, 상황. 다 뭐예요?
Accordingly, all those things such as the weeds falling in your life, the whip of life, the human rod, or unreasonable accidents and circumstances, what are they?
합력되어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도구들일 뿐입니다.
They’re just the tools used by God working for the good in all things.
생명이 있는 씨앗은 비바람과 타는 듯한 뙤약볕을 맞으면 열매를 맺어요.
The seed holding life bears fruit after enduring the storms and the burning sun.
죽어있는 씨는 비바람이 불고 뙤약볕이 내리쬐면 타죽던가 쓸려 내려갑니다.
The dead seed will be swept away by the storm or burnt to death by the scorching sun.
하지만 여러분은 생명이 있는 씨잖아요.
However, you’re the seed with life, aren’t you?
생명의 씨가 들어가있는 좋은 밭이잖아요.
You’re the good soil holding the seed of life.
거기에 왜 비바람이 좀 몰아치고 타는 듯한 뙤악볕이 내리쬔다고 해서 왜 나에게 이런 걸 허락하느냐고 여러분이 하나님 향해 삿대질 할 수 있습니까?
Then, encountering a little bit of storm or blazing sun, how dare you accuse ‘God, why did You allow me to suffer such things?’ shaking your finger at God?
열매 맺으려고 하나님이 그러시는건데
God does that to make you bear fruit.
잘 견디세요 그러니까 이기라는 말입니다.
Just hang in there, riding out the storm and the sun.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That’s why Jesus tells us saints if a kernel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produces many seeds.
왜? 여러분이 그러한 것들을 다 경험하고 나를 부인해 가는 삶이 내 옛 사람이 죽는 삶이잖아요.
Why? It’s because the life of experiencing such things and denying ourselves is the life of dying our old selves.
그 죽는 삶, 씨가 되어서 내가 죽는 삶을 살 때 내 안에서 열매가 맺히는 거룩의 완성이 되는 거예요.
Only when we become the seed and die, living the life of dying, we can bear the fruit in us and complete our holiness.
참 많이 했네요. 오늘 여러 가지… 다 연결이 되세요 여러분? 성경은 그렇게 재미난거예요.
We’ve learned so much today.
Can you make the clear connection of today’s contents, guys?
The Bible is that much fun, isn’t it?
무슨 사회개혁을 하고 좋은 일을 하면서 착한 일 하면서 잘 살자?
Let’s live virtuously doing good things and reforming the society?
누굴 위해서?
For whom?
자기 가치 향상을 위해서.
For the improvement our own worth.
그게 죄란 말입니다.
That’s the sin!
아니예요.
No, you mustn’t!
그런 건 자기가 부인되어지면 당연히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격발되게 되어 있어요.
Through self-denial, such thing will be naturally provoked as the love for God and our neighbors.
그 때까지 가만이 있으세요. 좀 참아주세요.
So, hold still until then. Just be patient a little longer.
그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이 ‘야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 죽을 데가 없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죽냐? 야 돌아가자 모세야!” 그랬을 때 모세가 뭐라고 그랬어요?
In front of the Red Sea, when Israel said, “Damn it, let’s go back to Egypt. Did we come all the only to die here? Hey, Moses, let’s go back!”, then what did Moses say?
‘야 이 놈들 열심히 가르쳐야겠네. 이거… 야! 너희들 마음 밭을 다시 갈아 엎어야 되겠다’ 이랬습니까?
Did he say, “Blimey, I must give those bastards a much harder lesson. Hey, you, come here! You must plow up your field of mind again!’?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촛불 들고 나가서 사회개혁 하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주가 어떻게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지 너희가 한 번 봐라
Instead of rushing forward to reform the society holding candles in your hand, be still and look carefully how God leads this world.
그리고 너희들 마음 속에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해야 할 일이 눈 앞에 보이거든 그 때 겸손하게 숨어서 해라.
And only when you see what to do as the people of God in your mind, you do the work modestly and secretly then.
그게 우리 안에 있는 예수가 드러나는 진짜 선인 거예요.
That’s the real virtue that reveals Jesus in us.
뭘 그렇게 할 일들이 많아요 이 시대의 교회는…
What so much to do for you in today’s church?
그래서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 그런 거예요.
That’s why the Apostle Paul said ‘I face death everyday’.
날마다 죽어야 날마다 부활할 거 아닙니까.
We have to die every day so that we revive every day, don’t we?
내 속에 새 생명이 있는데 내 옛 사람 때문에 이 새 생명이 발휘가 안돼요.
Despite being in us, the new life can’t be revealed due to our old selves.
근데 내가 날마다 죽으면 새 생명이 날마다 조금씩 살아나죠
But, if we die every day, the new life becomes alive little by little every day.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부활해요,
So, we die every day and revive every day.
자면서 하나님 나 오늘 뗏장 덮습니다. 일어나면서 아이고 나 부활했네요.
We say ‘God, I kick the bucket tonight’ when sleeping, and ‘My God, I’ve revived!’ when waking up.
이게 성도의 삶 이예요.
This is the life of saints.
누가 우리의 내일을 보장해 줍니까?
Who guarantees tomorrow for us?
매일 죽는 거예요. 매일 티끌 됨을 인정하고 부인하는 거예요.
We die every day. We must accept our being dust and deny ourselves every day.
하나님, 저 꼭 붙들어 주세요.
God, please hold me tight.
열심히 기도하면서 그냥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Praying hard, we merely go the way.
여러분의 열매가 뭐라구요?
What did I say your fruit is?
자기 부인과 십자가예요.
It’s self-denial and the Cross.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는 티끌 됨. 돌짝 밭, 가시떨기, 길가 밭의 모습, 가라지 됨의 모습.
Being dust appearing in your life.
The image of the field along the path, the thorny and rocky ground and the weeds.
그 속에서 열심히 폭로 당하시고 여러분의 실체를 폭로 당하시고 거기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욱 굳게 붙드십시오.
Please be revealed your true nature eagerly in the image, and from there, hold the Cross of Jesus Christ tighter.
그게 착한 삶이고 열매 맺는 삶 이예요.
That’s the virtuous life bearing fruit.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이해가 가시죠?
The Parable of the sower, got the picture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