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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꿈
- <방법서설>을 읽고
임영근
1. 달콤한 맛
작년 사무실 이사할 때였다. 짐을 다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빠뜨린 짐이 없나 살펴보며 청소를 하는데, 한쪽 구석에 낡은 책이 한 권 떨어져 있었다. 촌스런 노란색 표지의 책을 집어 들어 보니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까지 <방법서설>의 명성만 듣고 한 번도 책을 들춰본 적이 없었다. 책을 펼치자 낡은 종이 냄새가 확 풍겨왔다. 오래된 활판 인쇄 글자가 깨알처럼 밝여 있었다. 몇 쪽 훑어보는 순간, 부끄러움 대신 지금까지 내가 속아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심술이 났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가운데, 시골 할머니 집에 갔더니 먹음직한 초콜릿 상자가 있어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양말만 가득 들어있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번 경우는 정반대로, 양말 상자인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정말 먹음직한 초콜릿이 가득 들어 있는 격이었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논증으로 일관하는 철학책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많았고, 코기토로 유명한 <방법서설>이니 당연이 논증으로 가득 찬 빡빡한 책일 것이라 생각해 왔는데, 한 눈에도, 유려하고 감성적인 에세 풍의 글이었다. 왜 이런 멋진 글이라고 누구하나 말해주지 않았나 하는 괜한 심술이 생겨난 것이다.
그 뒤로, 새로운 번역본으로 마음에 맞는 분들과 방법서설을 자세히 읽어볼 기회가 생겨 즐겁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마침, 플라톤의 메논을 함께 읽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데카르트와 비교할 수 있어서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2. 오래된 꿈
<방법서설>은 첫 문장부터 자못 매력적이다. “양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그 시대부터 이백년 뒤에 나타날 인권 선언을 연상시키는 문구이다. 아니, 어쩌면 이 문장이 인권 선언에 강력한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누구나 양식 또는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 선언에 대한 특별한 논증은 보이지 않는다. 이성은 천부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것이므로 이성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방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목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 당시에도 이성이 인간적 특징으로 널리 받아들여져서 굳이 논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때문이었을까?
플라톤의 <메논>에도 이와 맥이 닿는 내용이 있어 자못 흥미로웠다. 소크라테스가 노예 소년과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그때까지 이렇다 할 교육을 받아 보지 못한 소년이었다. 메논과 대화를 나누던 소크라테스가 진리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영혼이 애초부터 지니고 있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하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노예 소년 아무라도 불러줄 것을 청한다. 그래서 등장한 이 노예 소년이 면적이 8제곱미터인 정사각형을 찾도록 소크라테스가 이끌게 된다. 정사각형이 무엇인지, 즉 정사각형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4제곱미터의 정사각형(1제곱미터의 정사각형 네 개)에서 8제곱미터의 정사각형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순전히 논리적인 추론만으로 누구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은 불멸할 뿐 아니라 여러 번 태어나고 여기 지상뿐 아니라 하데스에 있는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영혼이 배우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단 하나를 상기한 사람”이 지치지 않고 탐구해 간다면 “다른 모든 것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신화화된 설명을 걷어내고 보면, 정의에서 출발해서 엄밀한 추론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기하학이나 대수학에 딱 들어맞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추론을 통해 얻어진 결론은 논박될 수 없는 확고한 지식이 된다. 이런 추론은 인간인 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순수 논리적인 과정이다. 데카르트는 이런 플라톤의 주장에 공감하여 이성이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졌다는 선언을 논증없이 전개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신의 철학을 확고부동한 토대 위에 올려놓고자 한 것도 플라톤처럼 이런 수학적 진리의 확실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제반 학문에 대해 다루는 1부에서 데카르트는 특히 수학에 끌렸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나온다. 근거의 확실성과 명증성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 토대가 그토록 확고부동한데도 이 위에 더 탁월한 것을 세우지 않았는지 의아하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당시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도 “한 가지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참된 지식만 있을 것”이라며, 논쟁의 여지없이 참인 진리라는 플라톤 이래의 철학자들의 오래된 꿈을 데카르트 또한 꾸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이런 꿈을 실현해 줄 방법을 찾을 때이다.
3. 방법의 발견
자신만의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추구하는 철학자라면 우선 방법론을 탐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가 자신의 방법론을 먼저 세우기로 결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무엇에 기대어 우리의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할 방법을 세울 것인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수학 말고는 뾰족하게 기대할 만한 곳이 없어 보인다. 데카르트 역시 기하, 대수, 논리학에 기대어 방법을 세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세 가지 학문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수행한다. 논리학과 관련해서는 삼단논법을 비롯한 여러 규칙이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설명해 주는 데 도움이 될” 뿐이라고 비판한다. 고대의 해석에 대해서도 “도형을 고찰하는 일에 매달려 있어 상상력을 지치게 하지 않고서는 오성을 활동시킬 수 없고,” 근대의 대수에 대해서는 “몇몇 규칙과 기호에만 우리를 잡아매고 있기 때문에 정신을 계발하는 학문이 아니라 정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애매모호한 기예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세 가지 학문의 결함을 비판하며 장점만을 가진 규칙을 네 가지로 정리해 제시한다.
1)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2) 검토할 내용을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3)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갈 것.
4) 완별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행할 것.
이렇게 제시한 내용을 보면 일반적인 추론을 수행할 때 거쳐야 하는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규칙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방법을 찾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건축을 예로 들어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길게 동기를 설명한 의도는 무엇일까? 한 사람의 뛰어난 설계자가 이성적 기획으로 도시를 건설해야 아름답고 질서 잡힌 도시가 될 수 있듯이, 내 스스로 낡은 토대를 허물고 완전히 새롭고 참된 토대 위에 학문을 세우고자 한다는 취지이므로 지금보다 훨씬 짧은 글로도 충분히 취지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을 스파르타니 현명한 입법자니 하면서 여러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이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삼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달콤한 초콜릿이 아니라 진한 다크 초콜릿의 씁쓸한 맛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어쨌든, 네 가지 규칙에 대해 데카르트는 대단한 자부심은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간단한 규칙으로 기하와 대수에서 “제기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모든 일에서 이성을 가장 잘 사용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그리하여 “대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의 문제에도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학문의 원리는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므로, 이제는 “철학에서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일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4. 개연적 지식(doxa)과 확실한 지식(episteme)
철학의 확고부동한 토대를 세우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완성하기 전까지 임시로 거처할 집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이성에 의해 판단 내리길 망설이고 있을 때에도 내 행동이 우물쭈물하지 않기 위해서” 몇 가지 잠정적인 도덕 격률을 마련하게 된다. 그런데, 임시로 살 집이 옹색함을 벗어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첫째,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고, 종교를 확고하게 견지하며 가장 온건하고 극단에서 먼 의견에 따라 나를 지도한다.
둘째, 행동에서 확고하고 결연한 태도를 취하고 아무리 의심스러운 의견이라도 일단 취하기로 했다면 확실한 것인 양 따라야 한다.
셋째, 운명보다는 나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하고 세계의 질서보다는 내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 대목은 개연적 지식(doxa)과 확실한 지식(episteme)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에서는 엄밀하고 참된 지식을 추구할 수 있고 그것이 참임을 증명할 수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이런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플라톤의 <메논>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페리클레스나 테미스토클레스처럼 탁월한 정치가의 예를 들면서 탁월함은 가르쳐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확실한 지식이라면 수학문제처럼 누구에게나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뛰어난 정치가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그런 탁월함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망나니로 소문이 나 있었다. 이런 것으로 보면 정치적 탁월성은 가르쳐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쳐질 수 없으므로 참된 인식, 즉 에피스테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개연적 지식이 에피스테메에 비해 덜 가치롭거나 무용한 것일 수는 없다. 오히려 플라톤은 올바른 개연적 지식을 에피스테메와 같은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어떤 길을 가는데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지만 올바른 확신(doxa, <메논>의 번역자는 doxa를 확신으로 번역하고 있다.)을 가지고 올바르게 인도한다면 에피스테메와 실질적 효과에서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정치적 탁월함을 지니는 사람들은 올바른 확신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그래도 올바른 확신(doxa)이 에피스테메보다 더 못한 것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플라톤은, 올바른 확신(doxa)은 묶여있지 못하고 늘 달아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올바른 확신(doxa)을 에피스테메처럼 확고한 인식으로 묶어 둘 수 없다는 뜻이다.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개연적 지식(doxa)을 확실한 지식인 에피스테메가 되도록 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일상 생활, 특히 정치와 관련된 분야에서 에피스테메는 아니지만 그것과 똑같은 위상을 가지는 개연적 지식(doxa)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데카르트가 말한 세 가지 격률이 이런 올바른 개연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덧붙여 “이성을 계발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치고 자신의 방법에 따라 진리 인식을 계속해 나가면서 극도의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개연적 지식을 참된 지식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만족감이 확신에서 온다고 한 점이다. “모든 덕과 선을 얻기 위해서는 잘 판단하면 족한 것이고, 이에 대해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만족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격률을 확보하고 보니, 나머지 다른 의견을 버리는 데 아무런 주저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의심스럽고 잘못되기 쉬운 점들을 반성하면서 정신에 스며든 오류를 뿌리 뽑을 수 있게도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의심하기 위해 의심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회의론자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고 드러내놓고 말한다. 회의론자와 데카르트의 회의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점에서 드러난다. 회의론자는 확실한 지식을 거부하지만 데카르트는 제일원리의 발견을 통해 확실한 지식의 체계를 세우려 한다.
5. 제일원리
중세 스콜라 철학 또한 제일원리에 기반을 둔 철학이므로, 제일원리를 철학의 토대로 삼는다는 발상이 그렇게 새로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신의 자리에 과연 무엇을 제일원리로 세울 것인가? 데카르트의 주된 관심이 이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은 “오직 진리 탐구에만 전념하려고 하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버렸고, 이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다보니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코기토가 나온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회의론자”를 또다시 명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기토, 이 명제의 “진리는 아주 확고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자신하고 있다. 회의론자가 쓰는 회의라는 방법으로 회의론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편으로는 스콜라 철학, 다른 한편으로는 회의론을 극복하려 했던 데카르트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신 대신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지 드러난다. 실체이자 본질로서의 정신. “본질은 오직 생각하는 것”이며, “어떠한 물질적 사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즉, “정신은 물체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며, 심지어 물체보다 더 쉽게 이해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플라톤처럼 영혼불멸의 사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설령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신은 스스로 중단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데카르트는 코기토 명제를 증명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명석 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석 판명한 인식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일반적인 규칙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명제의 진리성을 보장하는 것은 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
제일원리에서 신을 몰아내고 인간 정신을 새롭게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분명 해 보인다. 그런데, 이어서 신의 존재 증명에 몰두하는 모습은 제일원리를 추구하던 모습과 잘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해서 나보다 더 완전한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고찰한다. 인간 본성이 불완전하므로,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것이 나온다는 것은 모순이며, 따라서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신에 의해 완전성이라는 관념이 내 속에 넣어진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데카르트가 이렇게 신을 끌어들인 것은 우리 이성의 명증성을 신으로부터 보장받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관념은 어떤 진리의 토대를 가지고 있는데, 완전하고 진실된 신이 이런 토대 없이 관념들을 우리 속에 집어넣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을 가정함으로써, 자연학을 탐구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6. 자연학의 길
데카르트는 제일원리에서 연역하여 “철학의 난제들과 관련하여 자신을 만족시킬 만한 수단과 몇 가지 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 법칙들은 신이 자연 속에 확립시켜 놓은 것이고, 또 그 개념을 우리 영혼 속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반성만 한다면 세계에 있는, 또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그 법칙이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대목 또한 플라톤이 <메논>에서 말한 ‘상기론’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그 당시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배척하고 자연을 자연 그대로 탐구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 출발인지도 모르겠다.
<방법서설> 마지막 부분에서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힌 대목이 인상적이다. “전적으로 순수한 자연적 이성만을 사용하는 사람이 옛날 책들을 신뢰하는 사람보다 더 올바르게 내 의견을 판단해 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옛날 책들을 신뢰하는 사람”이라고 온건하게 표현했지만, 데카르트의 문제 의식을 자극한 사람들은 이들 스콜라 철학자들이다. 그중에서도 극명하게 데카르트를 자극한 사람들은 강단의 소수 의사들, 스콜라 의학자들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하비의 혈액 순환론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 “우리가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되는” 것은 “기술의 발명을 위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의심할 여지없이 이 삶에서 으뜸가는 선이자 다른 모든 선의 기초인 건강의 유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한 대목에서 보이듯이 데카르트가 의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의학에 대한 관심은 강단의 소수 스콜라 의학자들에 대한 실망과 적대감으로 변했을 것이다. 당시의 스콜라 의학자들은 갈레노스나 아비세나 같은 고대의 학자의 문헌 연구에만 몰두할 뿐 실제적인 임상 활동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중세 대학 내의 신학부, 철학부에 대한 의학부의 상대적 열등감이 더욱더 문헌 탐구로 내몰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의사들은 이발외과의나 직인에 속한 외과의사들이었다고 한다. 15, 16세기에 해부학이 새롭게 발전하고 이발외과의나 일반 외과의사들 사이에서 실제 임상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립한 의학 기술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데카르트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앙브루아즈 파레라는 이발외과의가 야전 병원에서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국왕 외과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파레는 자신이 발견한 치료법을 집대성한 의학서적을 프랑스어로 출판했으므로, 이런 사실을 데카르트가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스콜라 철학과 스콜라 의학의 사변적인 성격에 맞서 실용 학문으로서의 의학 연구의 필요성을 데카르트는 절감했을 것이다. 이런 실용적인 정신이 다른 자연학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 활동에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7. 씁쓸한 뒷맛
1930년대 초, 독일 출신의 쿠르트 괴델이라는 젊은 수학자의 논문 한 편이 수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담은 논문이었다. 수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정연하고 엄밀한 논리적 체계로 구성된 수학 체계 내에서도 참, 거짓을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적어도 하나 이상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순 없는 확고한 수학의 기초, 수학의 토대를 추구하던 20세기 초반의 수학자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아마 이들 수학자들은 철학의 확고한 토대를 세우려고 했던 데카르트의 후계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플라톤,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오래된 꿈은 깨어진 것인가.
방법서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데카르트의 생각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궁금해진다. 데카르트가 끼친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이 수없이 논의되고 있지만, 내가 특히 주의 깊게 보고 싶은 부분은 물질과 정신이 한데 얽혀 있는 생명 활동과 관련된 것들이다. 데카르트 이후로 기계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토록 그가 발전을 갈망하던 의학 분야에서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가, 20세기가 들어서야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이 극복된 뒤에야 제 길을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은 물질과 전혀 다른 실체이고 물질적 사물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생명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기관의 배치만으로 생명 활동의 본 모습을 탐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질과 물질이 만나 비물질의 활동, 곧 생명 활동이 생겨난다. 따라서 물질이라는 관점만으로도 생명 현상을 완전히 해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질과 정신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으로는 생명 활동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생명의 신비가 곧 풀릴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생명의 경이로움이 우리들의 삶과 사유에서 영원한 원천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뿐.”
- 카를 마르크스
첫댓글 달콤하고씁쓸한꿈,
가을입니다
선생님, 왠지 올 가을은 씁쓸한 맛이 당기네요.
개연적 지식과 확실한 지식, 독사와 에파스테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우리는 늘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고 그 카리스마에 열광하곤 합니다. 하지만 에피스테메가 때로는 얼마나 위험한 광기를 불러들이는가도 생각해봅니다. 에피스테메는 무소불위의 총칼이 되어 그 프레임에 벗어나는 것은 사정없이 잘라내고 배제시키고 파괴하는 경향성을 잉태하고 있지 않은가요. 에피스테메는 스스로 고취되고 고양되면 언제든지 독단과 폭력이라는 무시무시한 가부장적 제국주의적 괴물로 바뀌어 왔습니다.
데카르트는 에피스테메,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여 '방법적 회의'라는 유용한 사고기술을 브랜드화하였고 그에 따라 근대 주체의 탄생이라는
그에 따라 근대 주체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장을 열어제꼈습니다. 덕분에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지만,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적, 인종주의적, 종교근본주의적, 생태파괴적 사고의 씨앗을 뿌린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만일 데카르트가 고대회의주자들이 갖추고 있던 덕목, 즉 지식에 대한 상대주의적 태도 다시말하면 세상과 삶에 대한 열린 태도와 개연적 지식까지도 포용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데카르트의 주요한 업적인 방법적 회의는 고대회의주의자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겼던 진주들은 진흙속에서 보지 못하고 그 조개껍데기만 주워올린 격은 아니었는지.....그럼에도 당시의
그럼에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개인 주체의 발견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목도하게 된 것은 아닐런지.
우리는 개연적 지식을 홀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 개연적 지식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에피스테메 앞에서는 불가한 일입니다.
독사~개연적 지식은 각각이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가 주도하며 얻어낸 판단과 선택에서 오는 지식입니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의 이분법적 접근으로 얻는 객관식 정답이 아닌 각기각색의 스팩트럼에서 도출되는 다양한 주관식 해답들입니다. 그러므로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확실한 지식, 에피스테메가 거점적인 지식이라면 (그렇기에 언제든지 바뀔 가능성이 있는 한정적인 '절대적지식')
개연적 지식, 독사는 거점을 중심으로하여 사고하되 창의적이고 발랄한 상상력을 허하며 때로는 거점을( 확실한 지식을) 전복시키는 혁명성도 잉태하고 있는 거겠지요.
그것을 꿰뚫어본 고대회의주의자들은 판단중지 혹은 판단유보라는 '쉼표' 에포케라는 사고기술을 끌어들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질주 뒤엔 한숨돌려 걸어온길을 뒤돌아보는 반성적 사고도 중요한 철학적 덕목일테니까요. 그리하여 상대를 존중함으로써 얻는 마음의 평정, 아타락시아에 한껏 고무되는 그 정신적 충만함, 그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던 거겠지요.
자신을 극단에 내몰지 않고 조율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곧 행복감일테니까요.
그러고보면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품격있는 철학적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에게 님의 시선에 공감합니다.
다음 번 강의는 쭉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흐미~ 에게님~ 아예 독후감을 하나 써라~^^
영근형.. 형의 글은 정말 달콤할뿐만 아니라, 쌉쌀한 다크 초코렛 맛이 납니다..뭐랄까요.. 부드럽고, 다정하고 사려깊고..그러면서도 묵직한 글의 느낌이 참 참 좋습니다...글을 통해 형을 더 많이 느끼고 알게 되는 즐거움이 큰 아침~^^
원장님~ 넘 정확한 표현!^^
@애향 오반장님까지 그렇게 봐주시면 고마울 따름.
수에게 안부 전해주시고.
형 글의 잔영이 계속 마음에 남아 하나 더.... 누군가를 '흠모' 한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습니다..형을 오랫동안 보아 왔고, 지금 처럼 오랫동안 보면서 지낼 수 있슴 좋겠단 바램이 새삼 드네요... 흠모할 대상이 있다는 게 제게 축복~^^
너무 사심이 들어간 거 아니냐?
네 글이나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여.
김혜성 원장 흠모하는 사람은 더 많아 보이고.
@알레프 무슨 말씀..
형글과 제글은 다릅니다.아주..
형 글이 좋긴 하지만, 전 또 탈출할 수 없는 제 나름의 쓰따~~~일~^^
그 다름이 흠모의 이유이지 않을까 싶은데요?~ㅋ
@김혜성 두 분의 심상치 않는 러브라인~.두 분도 만해에서 만리장성?ㅋㅋ~
@알레프 사심에 한표 ㅋㅋ
푸하하하~저 한참을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반세기 소년들이신 두 분, 넘 귀엽고 사랑스러우십니다. 남자들의 나르시시즘도 참으로 유쾌재기발랄하네요~~^^
적극 권장, 응원합니다.
단, 이 땅의 아드님들이여~'엄마'한테도 그렇게 다정다감 사근사근 나긋나긋 오글오글 좀 해보시라~
장미에게 유리관을 덮어준 어린왕자의 세심한 손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