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얘기했으니 길 수 밖에, 하루에 한 문단씩 읽는 걸 추천
하지 않음
문학적인 느낌으로 얘기하고 싶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라이샤 라고 말하자. 좀 있어 보이기도 하잖아. 사실은 내 속 여행에서도 그 아이는 나오고, 전혀 다른 생김새로, 전혀 다른 나라 이름 같게, 라이샤라고 등장한다. 선행학습겸, 본명을 쓴다면 나는 감성에 취해서 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하니까, 본 이름에서 이질적이고 먼 가명을 칭하고 싶다.
라이샤를 처음 만났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애와 나는 같은 반에 배치되었고, 그 애가 내 짝이었다. 완전 요약 해서 말하면, 라이샤는 나를 좋아했다. 그리고 다른 여자 아이들도 나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뭉뚱그려서만 파악하고, 진짜 날 좋아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사람들이 나를 흘깃 흘깃 쳐다보는 것이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그냥 다 그런가 보다 무시했었다. 그런 무시로 라이샤는 상처를 받았다. 아마 그애도 내가 첫 사랑이었을 테지, 아니아니 그냥 첫 사랑도 아니고 풋 사랑 격에 가까운, 그저 얼굴이 자기 취향이라서, 그런 이유로 나를 좋아해 주었다. 나는 그때 라이샤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눈독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 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여자에 대한, 저 봉긋하게 솟은 무언가가, 저 긴 머리가 한참 궁굼할 때다. 나쁘게 말하면 여흥에 불가하는, 금방 식는 감정이었다. 그런 경우의 여자아이들 중에는 라이샤의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참 나빴지. 내 딴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지만, 나를 좋아했던 많은 아이들에게는 나는 카사노바, 혹은 팔랑마음(너무 쉽게 사랑한다. 아, 금사빠)으로 보였다. 라이샤도 마찬가지로, 몇달 체 가지 못해서, 나의 호기심과 어린 욕망이 섞인 그 관심법들에 정이 식어버렸다. 이내 라이샤는 나를 싫어했다. 뭔가 좋아했던 남자를 나쁜놈 나쁜놈 얘기하는 그 의도가 맞다. 그 애가 나를 싫어할 만한 이유가 또 있는데, 내가 그 아이를 답답하게 여겼다. 나는 예전부터 연상의 사람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 조건이 유효할 정도로 나는 애정결핍증이 많았다.(대게 애정결핍증은 부모에게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가진다. 즉,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엄마같은 아빠같은 애정을 받고 싶었다.) 그들의 어른스러움과,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안다는 것, 그리고 넓은 품으로 나를 끌어안아 준다는 이미지가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눈을 가진 소년에게 때론 멍청하기도 하고, 털털하고 순진한 소녀는 따분하고 왜 저러나 의문이 들게 한다. 나는 그래서 라이샤를 싫어했고, 라이샤는 시크한 매력이다 라고 여겼다가, 이제 정이 빠지니, 싸가지 - 나쁜놈 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라이샤가 나로 향한 짧은 사랑이 끝이 나면서 라이샤와 내가 서로 대화를 할 날은 없었다.
1년이 지났다. 나는 그 시절부터 열 일곱이 반토막 날 때까지 애정결핍증이 한계치에 도달했다. 나는 그 어떤 사랑이나 연애를 해보지도 못했고, 내 스스로 여기기에 그 누구에게도 애정을 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만화 캐릭터에게 내가 좋아할 말들을 담은 말풍선을 그려넣어서 혼자 애정받는 상상을 하기까지도 했다. 그리고 그게 현실의 사람을 대입하기까지 하는 상황이 왔다.
어느날 우울한 아침을 맞이하며 침대에 누워 공상에 빠질 무렵에, 문득 기억을 정리하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첫째는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나를 왕따시킨 주범이었다는 것(이 사항은 나중에 제대로 다뤄질 듯하다), 둘째는 라이샤가 나를 좋아했다는 것. 앞서 말했듯이, 내가 여기기에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확실하게 나를 사랑했다. 라고 알게되니까 그게 정말 중요하고 대단한 것 마냥 취급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의 상상이 버물러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입으로 "ㅁㅇ이가 양시원 좋아했잖아." 라고 확인사살 받았다.(그 누군가가 라이샤와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는 점에서 더 설득력이 풍부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다. 라는 생각이 드니 라이샤가 너무나도 고마웠고, 그렇게나 무시했던 내가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애정결핍증이나 왕따 후의 우울증 등등과 섞여 지더니, 사랑이라는 형태까지 도달했다. 사실상 시작은 앞서서 얘기했던, 상상의 대상을 대입하려다가 알맞은 대상을 찾았기에, 일종의 역할놀이마냥 "얘는 나한테 무척 사랑받는 역할이야"라고 세뇌를 했던 것이었다.
(세뇌를 하는 것은 나의 우울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꾀다. 즉, 지랄하는거지)
아무렴 라이샤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 누구를 좋아할때보다 심박수가 빨랐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파도 같은 기운들이 가득했다. 그런 상태는 삼무곡에 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고, 막 삼무곡에 오기 시작했던 일기장에도 그 아이의 이름이 서너번 적혀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리고 그 사람과 미치도록 별짓을 다 해 보고나서,(대뜸 상상하실 음란 파티와는 아주 멀다.) 그 애는 잊혀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전까지 계속 되었었다. 잊혀졌다는 것은, 도망쳤다는 것,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 그렇기에 심해에 꽁꽁 묻어두었던 파편들은 별거아닌 물결들에 빠져나와서, 수면위로 서서히 올라왔다.
항상 그 아이의 얼굴, 그 아이와 같이 있었던 짧은 시간들이 번복해서 재생되고, 급기야 전혀 다른 사람임에도 비슷한 면이 보인다고 그 아무개에게 상상으로 라이샤의 옷을 입혀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개에게 무척 미안해야 한다. 누구에게 라이샤를 투영하든지. 그 사람은 라이샤가 아니다. 그냥 지나가는 김 아무개다. 그렇게 잘만 아는 나임에도, 라이샤와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을 포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사랑이 내 그릇에 다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굳이 꼭 잊어버려야 된다는 강박과, 시작하는 의도가 역할놀이 였다는 것에 대한 꺼리낌이 있다. 그것이 이유였다.
ㅡ그저 감정일 뿐이다. 그저 그 감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단지 그 뿐인데 너는 무얼 더 찾고 있는 것이냐.
아아 저는 아직도 그 아이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미치도록 합니다. 결국 그때와 지금의 그 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그 아이를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 아이를 만나면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고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ㅡ만나고 싶은가?, 만나면 된다. 만나러 가라
솔직하게 저는 그 아이를 만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평생 안했던 페북에 가입해서 그 아이와 이름이 같은 수십명의 담벼락을 오르락 내리락 했고, 그 아이와 친한 친구였던 애들의 이름도 검색하고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전혀 찾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 아이가 다닐지도 모르는 고등학교도 찾아보았지만, 그 아이에 대한 것은 없었습니다. 흔적이라곤 싸이월드에 인삿말 올린거 밖에!
ㅡ그래서 만나지 못했느냐
그렇습니다.
ㅡ내가 왜 너가 찾으려는 그녀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린 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ㅡ네가 그토록 바라는, 너를 좋아하던 그 아이는 네 머릿 속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나러 가라고 하시지 않았
ㅡ 만나러 가라. 네 머릿속으로, 만나러 가라. 처음만나는 입장으로
아아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만날지 몰라도, 이 밖으로, 삼무곡을 나가서 그애가 있을지도 모르는 고등학교로 가서까지 그 애를 만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ㅡ 그럼 안 만나면 될 거 아니냐.
..?
ㅡ 어찌나 간단한 일이더냐,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만나기 싫으면 만나지 마라.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서 안달이 났느냐
ㅡ 간단해져라, 머리를 비워라, 그래 지금을 즐겨라, 너는 별것도 아닌 걸 갖고 그렇게 고뇌에 가득찬 철학자처럼 뵈고 싶고 잘난 천재의 고심을 연출하고 싶겠다만 그걸 보는 다른 이들에겐 그저 쇼 일 뿐이다. 쇼라고, 쇼.
ㅡ 너는 즐기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이다. 그래 그러면 즐긴다는 것을 가장 잘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해지라고! 그저 느끼라고!
너는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쓸 필요가 없었다. 굳이 요상한 가명 붙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나는 그 시절의 이민영을 보고싶다. 근데 지금의 이민영을 보고 싶은진 모르겠다. 과거에 미련을 가진 내 모습을 툭 털어내고 싶다." 이 한마디 하고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하면 되었다. 그렇게 고상한 척 있는 척 다하며 행위예술을 의도한답시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단 말이다! 행위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내 모든 행위에 허세가 없는 것이란 말이다. 멍청아! 하나하나 다 틀렸다!
(울었음)
ㅡ 너는 즐기러 온 사람이다. 너는 즐기러 온 사람이다. 너는 즐기러 온 사람이다. 세번 강조했다. 네게 항상 얘기했던 것이다. 감정은 그저 감정이다. 우울장애? 강박장애? 그거 다 개 뻥이다. 말 이라는 것은 약속일 뿐이다. 너희가 너희를 공감하고자, 공명하고자 만든 약속일 뿐이다. 진정 그것이 너를 자살시키지도 않고, 너를 외톨이로 만들지도 않는다. 자살하는 것은 너고, 외톨이가 된 것도 너다. 한마디만 더 하겠다. 인생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간단하고 단순한 반복이다.
음.. 글쓰다가 스승님에게 뚜둘겨 패 맞고 콕 찝은 확실사살을 당하고 나니, 할 말이..
..
나는 불금의 축제때 이 이야기의 소녀를 첫 사랑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사랑을 했던 것이 이 소녀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첫 사랑이라고 떠벌리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 순수에 근원에 있는 사랑을 느꼈던 첫 사람이라서 였다. 뭔가 다른게 끼어들어가지 않은 느낌으로, 그저 완전히 사랑에만 미쳐버렸던 처음 이었다.
첫댓글 감정을 포옹하다까지 읽었는데 표현너무좋다
내가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모두 내 머릿속에 살고 있었군 감사합니다
시원~~~하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