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소식을 받고 어린 시절 나주에서 바라본 노을을 떠올렸습니다. 저에게 시조는 노을처럼 붉기도 하고 그런데 붉음만은 아니어서 어두운 낯빛을 띠기도 하고, 때론 서운케 돌아눕기도 했으나 언제나 제 곁에 머물고 있는 고향이었습니다. 먼저 연로하신 부모님께 당선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정말 운명처럼 시조가 저를 부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지난 동아일보 신춘문예 기사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2014년 당선자들이 “물에 떴으니 문학의 바다로 나아가야죠”라는 문구 앞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문득 ‘나 또한 이제 물에 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방향키를 잡아야 할지는 이제 순전히 당선자들의 몫일 것입니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배를 타고 함께 가는 이들이 있으니 그 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저 또한 항해를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동아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용기를 북돋아주신 허형만 은사님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신 정윤천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와 함께 한 지송시회, 시빚기반, 죽란시사회, 손오작가회, 국제PEN광주 회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유은학원 제자들과 경진, 준원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물이 끓기 위해서는 99도가 아니라 100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마음에 품고 글을 썼습니다. 이 1도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 발을 더 내디뎠을 때 정상이 보이고 한 번 더 바라보았을 때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끓어오르는 1도의 열정을 품고 시조의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 가겠습니다.
△1971년 전남 나주 출생 △전남대 불어불문학과·조선대 국어교육과 졸업 △광주여상고 교사
● 심사평
심사위원 : 이근배 · 이우걸(시조시인)
기성 시인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신선 풍요로운 서정성 표현… 시대정신도 담겨
현대시조의 두 가지 요소는 서정성과 시대성이다. 음보율이나 시적 의장 등의 여러 기술은 서정성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고 현실성이나 현장성은 시대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신춘문예는 여기에 특히 참신성을 하나 더할 필요가 있다.
이런 항목들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마음에 두고 작품을 읽어 나갔다. ‘시나브로 꽃잎 날다’ ‘가을, 추사체로 읽다’ ‘시나브로 압구정을 배회하다’ ‘종로…해넘이 시간’ ‘동지팥죽’ ‘마당 깊은 집’ 등을 먼저 가려놓고 반복해서 읽었다. 투고자들의 작품 성향과 장단점을 발견한 뒤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어떤 기성 시인들의 기법이나 시어가 집중돼 있거나, 소재와 시각에 개성이 부족하거나, 음보율이 부드럽게 흐르지 못하거나, 서정성이 지나치게 빈약한 작품을 제외하니 맨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동지팥죽’과 ‘마당 깊은 집’이었다. ‘동지팥죽’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그 수련의 결실이 역력히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시대의식의 울림이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보았다. 물론 이 지적은 그의 응모작 전편에서 느낀 소감이다.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국 우리 두 심사위원은 ‘마당 깊은 집’을 선택했다. 이 시인의 응모작 전편에서 우리가 특징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다소 연소한 듯하면서도 기성 시인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점과 묘사 능력의 우수함, 그리고 시대의식이 작품 배면에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풍요로운 서정성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선의 영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안목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서 마침내 우리 시조시단의 돌올한 개성이 될 때까지 어떤 신고도 이겨낼 수 있는 열정과 분발을 당부하며 기꺼이 축하드린다.
이우걸·이근배 시조시인
[2019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고드름
고성만(광주광역시 북구)
창살의 봉인에서 해제된 집이 있다
유성우 지던 하늘 내 손에 쥐어진 별
여우가 삼켰다 뺐다 유혹하던 유리구슬
원추형 거꾸로 선 꿈에 맺힌 물방울
미세한 금, 새떼가 저 멀리 흩어진다
바람이 칼질한 공중 벌겋게 부푼 노을
지붕을 걸으며 조심조심 내려온다
내연의 열기로 밥을 짓는 처마 끝
또 하루 저물어간다 창살 다시 꽂힌다.
● 당선소감 / 고성만
“일상에 지친 독자 달래는 작품 쓰고파”
우물물 맛보러 가는 길 안내하듯 옹골찬 서사 담아내고 싶어
내 그리움의 영토엔 자주 눈이 내린다.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고, 고드름 주렁주렁 매달린 낡은 집 뒤 우물이 있었으며 우물 속엔 하늘과 바람과 별이 흘러갔다.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꿈을 꾸었다. 시인 되는 꿈을.
칠백살 먹어도 건재한 생명체. 어떤 말을 담아도 찰랑찰랑 엎질러지지 않는 그릇.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고유한 정형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우리는 왜 시조를 말하는가?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을 가장 짧은 시형으로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것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촌철살인!
시조의 멋을 사랑한다. 맺고 풀리며 휘어져 넘고 넝쿨지는 가락을 사랑하고 조운·정완영 이런 분들의 시조를 사랑하고, 대한민국 훌륭한 시인들의 시조를 사랑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우물물 맛보러 가는 길을 안내하듯 산뜻한 이미지와 옹골찬 서사를 담아내고 싶다.
시조를 삼십여년 귀동냥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이제 삼년여, 이 나이에 신춘문예라니 아, 나도 참! 삭풍의 시절에도 올곧게 시조의 자리를 지켜준 <농민신문>에, 염창권 시인을 비롯한 시조로 함께 놀아준 광주문학아카데미 시인들께, 밝은 눈으로 어두운 시 뽑아준 이정환·이달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린다.
고성만 ▲1963년 전북 부안 출생 ▲1998년 <동서문학> 신인상 시 당선 ▲광주광역시 국제고등학교 교사 명예퇴직 ▲문예지도사로 활동 중
● 심사평
심사위원 : 이정환 · 이달균(시조시인)
신선한 시어 차용, 맺고 푸는 음보의 능수능란함 좋아 첫수 초장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독자 마음 끌어들여
기해년 첫새벽, 시조시단의 종을 울릴 전령사는 누구일까. 한 해 동안 벼리고 벼린 칼날의 예리함과 다독이고 다독인 내면 서정을 동시에 갖춘 신예를 기다리는 마음은 설렌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손끝에 전해지는 짜릿함을 즐기면서 응모작들을 읽어나갔다. 퍽 고무적인 사실은 정제되지 않은 생경한 목소리, 혹은 시조형식에 갇힌 생각보다는 응축·운율이 동시에 살아 있는 작품들이 다수 있어 시조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선자의 눈길을 끈 작품은 ‘강물 강론’ ‘은유의 아침’ ‘고드름’ 등 세 편이었다. ‘강물 강론’은 강의실 모습을 시조로 옮겨온 발상의 참신함과 유려한 문체가 돋보였다. 그러나 둘째수 종장 ‘나루터 낡은 배 한척’이란 낡은 비유는 긴장감을 잃게 한 아쉬움이 있다. ‘은유의 아침’은 폭설의 시간을 점묘의 기법처럼 완성해가는 노력이 돋보였지만 풍경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내면의 깊이가 결여된 것이 흠결로 지적됐다.
이들 두 작품에 비해 ‘고드름’은 신선한 시어 차용, 빈틈없는 구성력, 맺고 푸는 음보의 능수능란함이 좋다. 첫수 초장에서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우리는 시적 완성도면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인 ‘고드름’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함께 보내온 작품 ‘섬진초등학교’에서는 동시조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역량도 엿볼 수 있어 흐뭇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시조의 이랑을 개척한다면 주목받는 시조시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밖에도 트럭에 팔려가는 돼지를 시산제에서 다시 만난 운명을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낸 ‘어떤 소풍’, 단수정형에 천착한 ‘엄마 생각’ 등도 내일을 기약해볼 수 있는 신인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부단한 정진을 빈다.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산다화 조리다 남도 삼백리를 졸다
김성배
입안의 잔칫상 성게알 톡톡톡
터지는 게, 맛있게 터지는 게 고로코롬
깨어진 하루가 홀딱, 파도에 젖었다
터져서 기쁘다니 지지고 졸이고
겁나게 그녀는 가난한 골목길
백내장 앓는 가로등 아래 서로 맛났나
익모초로 단 입술 떠난 그녀 상큼 쓰려,
고사리 고것고것 살리라 하는데
도라지 돌아 돌아서 오라는데 소식 없다
돌아오고 돌아가게 만드는 그녀가
돌아버린다, 저 섬에 돌아갈 땔 아는 건
갯바람 징허게 동백 헤아릴 때이다
● 당선소감 / 김성배
젊은 글 쓰고픈 쉰 넷, 이 세상 못이 되겠다
함박눈이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짜릿하고 말랑말랑한 전화를 받았다. 버스 안에서 얼음보숭이로 녹아드는 목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심사위원 분들이 모자란 나를 뽑아주신 뜻은 앞으로 못난 빈 구석을 채워가라는 말씀으로 새기겠다.
오래전 글이 밥이 되길 바랐고 그렇게 기웃거렸다. 나를 두고 앞서간 누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들은 기억도 못할 김선향이란 이름으로 시를 쓰던 누나,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행복한 뒤끝은 없었다. 나 역시 어머니의 오랜 병상 생활로 어려워진 집안을 어떻게든 해야 했지만 능력이 닿지 않았다. 솔직히 나의 시는 밥벌이가 될까 시작했지만,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오히려 시라는 양귀비를 맛들이곤 중독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 삶이 어려워서 포기했고 도움이 될까 다시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그렇게 공모전 상도 몇 번 받았다. 오오, 행복한 지옥이여. 제대로 되는 거 없이 이 일 저 일 늑대처럼 순례했다. 글이 내가 잘할 수 있는 하나라 생각했지만 또 다른 좌절의 시작이란 걸 몰랐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글이란 걸…. 그때의 나를, 더더욱 지금의 나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부족했는지를…. 누나를 보내고 뒤이어 아버지까지 보내고 난 뒤 얼음물에 빨래하던 퉁퉁 부은 내 손에 박힌 동상처럼 나는 혼미했다.
요즘은 글 쓰는 젊은 친구들이 적어진 듯하다. 그만큼 힘든 탓일까. 천연기념물, 멸종위기동물이 되어가는 이 시대 서러운 수컷들의 운명인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살짝 쉰 쉰넷, 시어 꼬부라져도 총각김치는 총각이듯 젊은 글을 쓰고자 한다. 스스로 못났기에 이 세상의 못이 되겠다. 잘 박히겠다.
■김성배 ▲1965년 경북 문경 출생 ▲2000년 ‘자유문학’ 시 부문 당선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부지부장 ▲등대문학상·해양문학상·거제문학상 수상.
● 심사평
심사위원 : 이근배 · 이송희(시조시인)
아픈 기억, 남도의 맛과 향기로 상상력 극대화
문학은 새로운 감각의 언어와 신선한 양식을 요구한다. 기존의 관습과 제도에 충실한 언어는 다분히 소통의 도구로 떨어지기 쉽다. 삶의 구체성을 담아낸 언어는 관습과 제도, 그 바깥에 존재한다. 시는 습관으로 굳어가는 언어의 형식을 벗어나려고 하는 지점에서 싹을 틔운다.
올해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산다화 조리다 남도 삼백리를 졸다’(김성배), ’술잔의 실루엣이 내걸린 골목’(강대선), ‘새들의 망명정부’(김수형), ‘햇귀 한 줌, 갈피끈 되다’(최평균), ‘천상열차분야지도’(김경태) 등이다. 논의 끝에 김성배의 ‘산다화 조리다 남도 삼백리를 졸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김성배의 ‘산다화 조리다 남도 삼백리를 졸다’는 의성어와 의태어, 남도의 방언을 적절히 배합해 살아 있는 말맛과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특히 ‘조리다, 졸다’, ‘터지는 게, 맛있게 터지는 게 고로코롬’처럼, 유사발음의 언어를 반복적으로 활용하여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심사위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종장 처리에서 음보가 다소 불안해 보이지만 신인의 패기로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적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음도 주목된다. 여기에 음악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나 가치가 상당했다. 이 작품의 진정한 미학은 화자가 가지고 있는 편 편의 아픈 기억을 남도의 맛과 정서, 산다화의 쓰디쓴 향에 연결 지어 상상력의 폭을 극대화한 데 있다. 한편 이 시조에서 의성어와 의태어의 과도한 남발은 오히려 작품의 진정성을 떨어뜨리고, 말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부디 초심을 견지하여 시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또 한 사람의 신인을 맞으며 축하를 보낸다. 낙선자들께도 위로와 정진을 빌며, 시조 창작의 행복한 길에 동행해주시기 바란다.
[2019 영주일보 당선작]
고무공 성자
고윤석
어라, 쪼그만 녀석 여간내기 아니었네 엉덩이 뻥 내질러도, 허리를 작신 밟아도 도무지 쓰러지지 않네, 두 손 들 줄 모르네.
누르면 꼭 그만큼 이 악물고 튀어 올라 가슴속 숨긴 깃발 하늘 높이 흔들다가 다시금 지상에 내려 낮은 곳을 살피네.
마음조차 둥글어서 각진 세상 품은 걸까? 진자리 마른자리 아래로만 길을 찾는 속 텅 빈 고무공 성자, 걸음마저 탱탱하네.
● 당선소감 / 고윤석
덤덤하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가슴 속에 회오리를 일으켰다.
까마득한 산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멍하니 기다리던 나락 같은 날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투명한 햇살이 눈송이처럼 포근하게 안겨 오는 아침, 어느 산머리에 올라가 돌처럼 뭉친 응어리를 펑펑 쏟아 놓고 싶었다.
무슨 조화였는지 교실 창가에서 말라 죽어 가는 화분 속 꽃들을 보며 학생 때 외운 음보를 떠올려 ‘환경미화’란 제목으로 쓴 첫 작품이 중앙일보에 덜컥 실린 이후, 달콤하게 때론 처절하게 숱한 시간을 태웠다. 그렇게 열병을 앓다 ‘아, 나는 천재성이 없구나’라는 씁쓰름한 자각과 함께 10여 년 외도하다 방황의 발걸음이 이끈 곳이 다시 시조였다. 세상일이 그렇듯 시는 천재성보다 치열한 산고 속에서 태어난다는 깨달음과 함께.
기뻐해 주는 동료 시인들의 축하 전화를 받으며 고독감에 몸부림쳤던 이 여정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이끌어주신 윤금초 선생님과 그리고 늘 내 일처럼 응원해주는 장은수 회장님, 조성문 시인, 박희정 시인, 임채성 시인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동문과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흔들리는 발걸음을 잡아 주고 현대시조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라는 채찍을 가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삶과 사람을 노래하리라.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장모님의 건강을 빌며 묵묵히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아내 조인옥과 지수, 지영, 지형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약력
1961년 충남 서산 출생. 한양대 졸업. 동국대 법학박사. 현직 교원. 제17회, 제18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동상 수상. 2017년 중앙시조 백일장 11월 장원 수상
● 심사평
심사위원 : 김영란(시조시인)
“평범한 사물의 속성 예리하게 포착, 주제를 단아하게 들어앉혀”
등단제도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되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화려한 등단을 꿈꾸는 작가들의 로망은 단연 신춘문예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번 응모작들은 신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노련하고 탄탄한 수준급의 작품들이 많아 신인 등용문인 신춘문예 심사가 아니고 기성작가의 문학상 심사를 하는 듯 했다.
전국에서 보내온 400여 편의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행복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당선작을 고르기 위해 작품을 추려내면서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작품 수가 많기도 했지만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의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도저히 판가름을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의 이름값에 가까운 신선하고 패기있는 작품이면서 정형시인 시조의 운율과 맛을 잘 살려낸 작품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손에서 내려놓기가 아쉽고 미안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서형국, 조우리, 조경섭, 이형남, 허순옥, 고윤석의 작품만 남겼다.
서형국의 ‘바람 우체부’는 감각적인 표현들이 신선했으나 마지막 수까지 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 조우리의 ‘후드티’ 등 작품은 대부분 5수 6수 짜리였는데 끌고나가는 힘은 있었으나 압축과 절제라는 시조의 묘미를 살려내는데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 조경섭의 ‘세한도를 읽다’는 무리 없는 편안한 전개는 좋았으나 잡아끄는 매력이 조금 부족했다. 이형남의 ‘정물이 되는 저녁’은 이미지가 선명하고 깔끔했는데 당선작으로 선택하기에는 다소 가벼웠다.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한 것은 허순옥과 고윤석의 작품이다. 허순옥의 ‘널문리 아리랑’은 시대성이 부각되는 작품으로 시조의 속성을 잘 살려냈지만 뒷받침하는 작품들의 힘이 조금 모자랐다. 고윤석의 작품은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수준이 균일했다. 정형시 전통의 율격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쉽고 편안하게 이끌어나가는 품이 한두 해 닦은 실력이 아니다. 특히 ‘고무공 성자’는 평범한 사물의 속성을 예리하게 포착해 작품 안에 주제를 단아하게 들어앉혔다. 시조단의 내일을 이끌어나갈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