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예수님의 기도 중 한 구절을 깊이 묵상해 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 이것은 예수님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었던 기도입니다. 한순간도 잊어버린 일 없이 그분의 사명을 마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실 때도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어서 42절에 보면,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어려우셨으면 예수님께서 두 번씩이나 기도하셨을까 묵상해 봅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볼 때 내 뜻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심지어는 우길 때가 많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나고 보면 후회할 일을 자존심과 교만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까지도 하느님의 일과 연결시켜서 해석을 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왜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는가를 묵상해 볼 때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 30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따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확신입니다. 나를 의식하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나의 스타일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문제들이 나로부터 비롯되며, 나를 벗어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 자신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을 느끼고, 고난을 받으시는 일이 전혀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의로운 주장에는 반드시 의로운 방법이 따라야 합니다. 주장만 옳다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결코 폭력이나 혁명의 방법을 일으키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지는 방법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하는 방법이 약하지만 만약 불의한 방법을 택하면 옳은 주장까지도 의심을 받게 되고, 결국은 낭패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에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과 순종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신앙 성숙도의 중요한 기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위에서부터 온 권위가 비록 고통스럽다 해도 순종할 줄 알며, 겸손하게 자신을 비우고, 화해자의 삶과 섬기는 이의 삶을 살게 될 때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 ‘과연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묵상해 보게 됩니다.
첫째, 하느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라는 기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은 오래전에 감추어졌던 비밀이요, 하늘의 섭리입니다(에페 3,9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메시지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의 완벽한 요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위해 죽기로 겸심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결코 사교장이나 친목회이거나 자선이나 봉사나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에수님께 대한 초점이 흐려질 때 세상의 상대적인 가치들이 일어납니다.
둘째,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은 바로 십자가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남을 해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침묵입니다. 즉 대신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느님의 뜻이라면 예수님ㄴ의 방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화해자의 모습이요, 종의 모습이요, 고난받는 어린 양의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개입시키지 않는 일입니다. 성경은 나를 희생시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요(요한 12,24), 내가 가난해져서 다른 사람을 부유하게 하는 일이요, 내가 고난을 받아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구원을 받게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2코린 1,6). 결코 우리의 주장, 우리의 견해 등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이 땅에는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만 있다면 우리 자신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의 자아를 충동하며 우리의 욕정을 자극할 것입니다. 그리고 허영과 교만, 욕망의 문을 넓힐 것입니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소리쳐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사탄에게 말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높이 들어 그분을 경배하며 그분께 찬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