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회원 여러분께
25일 오후 출발점이었던 첫번째 절 靈山寺에 다시 들러 순례의 마무리를 고한 뒤 걷는 동안 고마운 짐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즈에(지팡이와 가사) 삿갓을 그곳에 두고 저녁무렵 도쿠시마로 들어왔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난 것입니다.귀국 날짜는 28일,이틀이 남았습니다.
40일의 고된 여정으로 얻은 짧은 휴가인 셈인가요?
어제는 나오시마(直島)엘 다녀왔습니다. 이 곳에서 다까마쓰(高松)까지 기차로 1시간,그 곳에서 배로 1시간을 가야
닿는 작은 섬입니다.행정구역상으로는 시코쿠의 가가와현에 속합니다만,지리적으로는 혼슈(本州)의 오까야마(岡山)에
훨씬 가까운 곳입니다. 그 곳에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작품을 살필 수 있는 미술관 마을이
있었습니다.Chichu Art Museum(地中美術館),Benesse Art Site,그리고 Art House Project家가 진행중인
혼무라(本村)마을이 그렇습니다.
地中美術館은 직선의 미가 살아 숨쉬는 곳,노출 콘크리트의 미학이 아름답게 발현된 곳,건축이 왜 예술인가를
긴 설명 필요 없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화장실조차 조금의 과장도 없이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
절제된 빛 혹은 조명의 사용이 가벼운 탄식과 감탄을 자아내는 곳,안도 다다오의 간명직절한 미의식이 불필요한
수식없이 그대로 드러난 곳,그가 왜 훌륭한 건축가인지를 말없이 웅변하는 곳,이런 건축가를 낳고 기른 일본이라는
나라가 은근히 부럽고 샘나고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베네세 아트 사이트는 안도의 건축과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이 행복하게 만나는 공간,자연에 인공(人工)이 아름다운
점을 찍고 있는 공간,하루쯤 머물며 산책하고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 즉 이에家 프로젝트는 本村마을에 남아있는 낡고 오래된 집들을 개수하여 예술가,건축가들이
그 공간을 자신의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으로 현재도 진행중인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한 곳의 신사,한 곳의 절,네 곳의 민가가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일련의 작업들도 퍽 흥미롭고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았습니다만,제 눈에는 마을 전체가 근대에서 시간이 멈춘 곳처럼
보였습니다. 생활이, 시간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기본이자 최고의 기술임을 상기시키는 곳,일본 근현대 생활인들의
소박한 미의식들이 시간이라는 체에 걸러지고 또 한편으로는 축적되어 마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 듯 커다란
미의 공간으로 용해되어 있는 곳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세또내해,시코쿠,혼슈로 둘러싸인 작은 섬 나오시마는 그 풍광 자체가 하늘이 베푼 설치미술이었습니다.
그 위에 인간의 예지와 영감이 덧보태져 맑은 햇살 아래 빛나는 곳이 나오시마 였습니다.
날씨까지 받쳐준 하루였습니다.이 곳에서 중반을 넘긴 뒤 맞이한 가장 화창하게 맑은 날,배를 타고 내린 포구
미야노우라(宮浦)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세또대교 너머로 번지는 노을이 형언할 수 없이 곱고 신비했습니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아무도 없는 3층 갑판 위에서 어둠이 온전히 삼켜버릴 때까지 시시각각 빛깔이 변해가는
그 노을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이 글이 시코쿠에서 보내는 마지막이 될 듯 합니다.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11월 27일 아침 四國 德島의 客館에서
興 善 드림
첫댓글 마지막 날에 편로도에서보다 더 깊은 감흥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고상하고 우아하고 깊이있는....
文字香 書券氣라고나 할른지...
시코쿠로 인해서 45일 동안 꿈을 꾼 듯 합니다.마지막이라고 하니 조금은 서운 합니다.
시코쿠 순례 후의의 뒤풀이가 아주 황홀합니다. 나오시마섬과 안도 다다오와 선상에서의 노을을 기억하겠습니다. 스님의 많은 편지글 덕분에 여기 앉아서 시코쿠섬을 순례한 듯 가벼운 흥분마저 돕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더 가까와진 것 같고요, 고맙습니다!
세또대교 너머로 번지는 아름다운 노을속에 감동, 그 자체로 서 계시는 스님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땀의 얼룩을 다 지워내면 달빛에 씻은 듯한 고요만이 내려 앉겠지요. <걷는 일>에 대하여 스님이 일으키신 마음 때문에 저희들은 <걷는 일>에 관한 책을 몇 권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인드라망과 같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파장을 일으킵니다. 성공적인 회향을 축하드리며 남은 이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