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33] 가족을 이끄는 터치의 힘

[이관순]

월간 목마르거든 5월호

이관순의 손편지[233]

21.5.13(목)가정의 달

가족을 이끄는 터치의 힘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왜 개나리는 꽃이 노랗지?” 그러자

엄마가 “개나리가 간밤에 노란색 꿈을 꾸어서 그래.” “그럼 나도 노란

꿈 꾸면 개나리가 되겠네.” 엄마가 웃으며 아이를 꼭 안아줍니다.

올봄에도 그 천진무구함이 화사하게 살아났습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친지가 모임에서 말했어요. 한 아이가 엄마 모르게 의사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주름살 펴는 데 얼마예요?” “왜? 넌 펼 주름이 없는데?”

그러자 아이가 “엄마가 나만 보면 주름이 생긴데요.” 그러면서 어린이 날

받은 용돈을 꺼내 보입니다. 웃음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의 순진무구함이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어버이 날, 외출에서 집으로 돌아왔더니, 식탁 위에 패랭이꽃 네 송이가

유리병에 꽂혀 있습니다. “웬 꽃?” 내 물음에 아내가 일곱 살 손녀를

가리키며 칭찬합니다. “은작이가 공원에서 어버이 날 선물로 가져왔대요.

엄마랑 아빠랑 두 송이면 될 텐데 남은 두 송이는 뭐지? 했더니 할머니

할아버지 것도 있대요. 기특하죠?” 그 말에 아이를 두 팔로 꼭 안아

주었습니다.

핵가족으로 사는 아이들의 가족 개념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빠진 지

오래됐습니다. 아이들이 말하는 우리 가족엔 ‘아빠, 엄마, 언니, 오빠,

동생’만 있고, 조부모는 셈법 밖에 있지요. 우리 집은 3대가 같이 살다

보니 조부모도 가족이란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겼나 봅니다.

미국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사건> 사망자들의 마지막 말에는 세상

일이란 없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매시지는 한 결 같이 가족에 전하는

사랑의 고백만 있을 뿐이죠. “여보 사랑해. 부디 애들하고 행복하게 살아.”

목숨이 분초를 다투며 재깍재깍 타들어 갈 때, 사람들은 가족을 찾았어요.

어머니, 아버지, 여보, 내 아들아... 인생의 가장 큰 보람과 가치는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을 등지면서 알려주었지요.

가족 간의 사랑은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부대끼고 살면서 쌓입니다.

전투를 통해 전우애가 싹트듯, 희로애락을 함께 품지 못하면 가족이라도

‘지척이 천리’가 되고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을 은유하는 말 중에 ‘함께 그리움의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죠.

세월에 시달리면서 생겨나는 고운 정 미운 정이, 살갑고 애처로움이,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만들고 그리움의 집 짓기를 합니다.

칼로 물을 베지 못하고 풍우 한설에 모난 돌이 둥글어지듯이, 남남으로

만난 부부도 세월이 흐르면서 닮아갑니다. 그 둘 사이에 자녀가 태어나

가족이 형성되죠.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은 ‘터치’ 에서 시작됩니다.

스킨십, 언어, 눈빛, 생각의 영역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이애미 대학의

티파니 필드 박사는 ‘사람이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심오한 언어가

‘터치’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터치로 시작된 가족 간의 끊임없는 터치가 혈연의 연대를 단단히

잡아줍니다. 운동경기에서도 하이파이브 같은 동료 간 접촉이 많을수록

승률이 높았다는 연구 보고도 터치의 힘을 강조합니다.

전화로 트롯 맨과 팬이 만나는 TV조선 ‘사랑의 콜센터’를 보다가 80대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임종을 못 지켜 마음에

늘 걸렸다며 ‘불효자는 웁니다’란 노래를 신청합니다.

이를 열네 살 정동원이 들려줄 때 사람들 마음은 촉촉이 젖습니다.

그리움의 원형인 어머니, 불효자와 같은 그리움의 터치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에 근본임을 가르칩니다.

“내가 수천 번도 넘게 말했지만, 세상에서 부모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직업은 없다”라고 한 오프라 윈프리. 소크라테스는 “자기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벗하지 마라.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

이라고 했습니다.

아내이자 평생 친구가 있는 가정이야 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하늘이 내린 귀한 선물이죠.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쌓이는 곳,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입니다.

“엄마 고마워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 그만 울자.” “아들, 사랑한다.”

오가는 1초의 짧은 접촉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이 만드는 그리움의 집 짓기는 완성도를 높여가겠죠.

가족끼리 오가는 터치 속에서.

[이관순]

손녀가 준비한 어버이 날 꽃.
엄마 아빠 + 할머니 할아버지 4송이

[이관순]

칭찬을 받고는 뿌듯해 하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