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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빚어낸 사랑의 메타포
- 김재미 시집 <별을 닮은 그대에게>
최 봉 희(시인, 글벗 편집주간)
문학이란 문(文)과 배울 학(學)을 합쳐 문학(文學)이라는 어휘가 된다. 말 그래도 풀이하면 글에 관하여 배우는 깨달음의 학문을 말한다.
문학의 본질은 예술성(藝術性)과 감수성(感受性)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문학은 예술적 감각과 감성을 근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은 언어를 매개체로 하여 인생을 형상화하는 하나의 예술이다. 이러한 문학의 하나인 시는 릴케가 말했던 것처럼 시는 체험인 것이다. 그 내용에 있어서 인간의 삶에 대한 체험을 가치 있게 재현하는 하나의 예술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러한 문학의 특성을 미국의 비평가 윈체스터(T.C. Winchester)는 영원성, 보편성, 개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문학의 소재는 삶의 경험과 일상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 거리일 것이다. 문학은 그 대상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현실의 재현이라고 생각할 때 모방론을 내세우고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효용론이 된다. 또한 작가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때 표현론에 이르고 문학 작품 그 자체라고 말할 때는 존재론 혹은 객관론이라고 정의를 하기도 한다.
문학은 사랑을 기본속성으로 한다. 그래서 문학은 사랑이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남녀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사랑을 표현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사랑을 기본 속성으로 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창조력과 내용과 형식을 하나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솜씨 혹은 역량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교적인 부분이 필요하다면 그 반대로 감성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감성적인 면으로 풍부한 감수성을 기반으로 하는 감동과 감격, 합리성, 독자에 대한 배려 및 주의력, 재능, 이해와 깨달음, 독서라는 토양, 존경과 평가가 필요로 한다.
시는 읽음으로써 독자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체험을 토대로 많은 이들에게 더 큰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 문학을 통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상상만 하면 미래로도 갈 수 있고 과거로도 갈 수 있다.
그래서 시는 사랑의 체험이고 미의 운율적 창조라 하는 지도 모른다. 김재미 시인은 머리말에서 “시는 마음으로 들려주는 사랑의 언어”라고 간파하고 있다. 아울러 “시는 그리움 한 조각 한 조각 하얀 백지 위에 새겨 넣는 일이며 잊혀져가는 젊음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공감한다.
김재미 시인은 언제나 책과 함께 사는 시인이다. 그의 일상이 언제나 책과 함께 하는 직업 때문인지 인간의 본질을 부단히 탐구하는 노력에 힘을 쏟고 있다. 부단한 독서와 꾸준한 습작을 통한 언어적 조탁에 노력하고 있다.
시인은 2006년 제34회 계간 e문학 인터넷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더욱이 2007년 계간 <글벗> 겨울호를 통해서 그의 작가적 역량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한 월간 <문학의 창>, 월간 <좋은생각>을 통해 그의 필력을 입증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가정의 우환과 개인 사정으로 인해 잠시 문단에서 떠나 있었다.
그의 글의 소재는 다양하고 다채롭다. 섬세한 언어로 사랑을 말하고 인생을 풀어내고 있다. 때론 동시처럼 맑고, 때론 깊은 맛이 우러나는 인생의 달관과 초월, 그리고 깨달음이 있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주변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몇 년간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금 기지개를 펴고 다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재미 시인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시는 마음이 들려주는 사랑의 언어라고 말한다. 듣는 이가 있고 읽어주는 이가 있어야만 시는 그 의미를 갖고 존재의 가치를 갖게 된다. 시는 추억의 일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며 어린 시절의 꿈꾸었던 꿈의 파편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김재미 시인이 추구하는 문학은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과 그리움을 후세들에게 전하고 들려주고 싶은 노래인 것이다. 그 때문일까? 시인은 그리움 한 조각 한 조각 하얀 백지위에 새겨 넣는 숭고한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잊혀져가는 젊음을 추억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의미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움, 가족에 대한 사랑, 자연 을 통한 자아 성찰 등 내면에 내재한 사랑과 그리움을 키워왔다. 그 그리움은 때론 인생을 대변하듯 고통과 외로움이 따르고 종국에는 사랑으로 혹은 존재의 의미로 승화된 시풍을 지닌다.
특별히 그의 시는 추억을 반추하듯 세상을 겪은 아픔을 그리움으로, 혹은 사랑으로 빚어내는 메타포에 주목하게 된다. 대표적인 시가 바로 비유와 상징을 극대화한 <저물 무렵>, <홍시를 먹다>, <꽃잎 물들다> 등이 그런 작품이다.
투명하리만치 색 고운 붉은 너
한 입에 쏙! 넣으려니
맵시 좋은 몸 한 곳, 버짐 같은 흠집
눈곱인 듯 떼어내 먹을까? 망설이다
그것도 저의 일부려니
뜨거운 태양 온 몸 받아 내며
바람 잘 날 없던 많은 날
잔가지에 긁히며 잘 익혀낸 너처럼,
이 몸 속 흐르는 물도 선명하고 달다면
이 몸 새겨진 거뭇한 상처들도
먼 후일 약속의 흔적들이라면
금세 차오르는 침, 꿀꺽
입 안 가득 태양마저도 삼켜 버린다
- <홍시를 먹다> 전문
그의 시적 표현은 우리말의 어감을 살리는 언어의 조탁을 통해 운율적 요소를 잘 살려내고 있다. 특히 홍시를 태양으로 표현한 시적 표현은 그의 시적 역량을 가늠하게 한다.
더욱이 선시적인 함축된 언어 사용은 물론이고 회화적 이미지를 제대로 살린 표현에 주목할 만하다. 하루를 끝마치는 저녁 무렵 하루를 정리하듯 차 한 잔을 준비하면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속에서도 그는 차를 즐기는 시간 속에서 나름대로의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
고즈넉이 엎드린 하루 / 먹빛 휘장 드리우고 / 홀로 앉아 / 찻물을 올린다 // 보글보글 / 입김 불면 날갯짓하는 물 그리메 / 하얗게 하얗게 날아오르다 / 사라지는 것 못내 아쉬워 // 잡아도 / 잡히지 않는 길 / 자꾸만 헛손질인 것은 // 놓아야 할 손 / 놓지 못하는 허허로운 춤사위 // 쪼르르 / 맑은 물 길 따라 / 출렁이는 마음 둥 둥 둥 // 그래, 지금은 뜨거운 순간 / 잠시 머물다 갈지라도 / 참 좋은 시간
- <저물 무렵> 일부
더욱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인이 나이가 들면, 초조해지고, 젊음이 부러워지는 법이다. 그렇지만 시인에게는 그 시간이 성숙의 시간이고 깨달음의 시간이기에 참 좋은 시간이 되는 것이다.
특별히 그의 시에 주목한 것은 아픔을 그리움으로 승화시키는 사랑의 메타포가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목화솜 이불>,<코스모스의 말>, <물새의 사랑>, <길>, <그대 그리움으로 남아라>, <아카시아 꽃, 그 흰 밥> 등이다.
시집올 때 혼수로 해 온 해진 이불
늘어진 실밥 잡아당기니 후두두 은비늘이 무성하게 바람을 일으킨다
습기 잃은 피부의 가려움증에 긁어 날리는 부스럼과도 같은 바람
묵직하니 세월을 산 그것은
아직도 고운 태 간직한 원앙의 다정한 모습 그대로인데
마른 가지 바람 잘 날 없던 위태로움, 그 무게에 웅크린 어깨가 들썩
허연 한숨만 가득한 듯
한 땀 한 땀 임 위해 쏟았던 손길 이제야 보니 엉성하건만
그 이불 속에서 발장난 하던 소도둑 놈 같던 남자, 여우같던 여자
바짝 마른 장작 확 달아오르다 재가 되길 바랐던 일은 선명하지.
허나 이를 어찌하나, 허송세월만 산 것은 아님에도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이를 어찌하나
삐거덕거리는 뼈 마디마디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니
녹슨 가위로나마 과감히 잘라내 버릴까 늘어진 실밥 붙잡고 멍
마음의 항거에도 싹둑 이불깃 한 귀퉁이 잘라내려니
섬뜩 제 목숨 줄 코앞인 양 쇳소리만 요란하게 헛손질만 거듭한다.
- <목화솜 이불> 전문
시 <목화솜 이불>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픔과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의미의 반추가 멋지게 드러낸 수작이다. 화학 소재로 만든 요즘의 이불과는 확연히 다른 솜이불을 통해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 그리고 부부의 삶을 통해 사랑의 애환이 남아 있고 인생의 의미가 담겨있는 이불이다.
새로운 문명 앞에서 천덕꾸러기가 된 목화솜 이불은 어쩌면 잃어버린 사랑을 재생하기 위한 몸부림일지 모른다. 그만큼 늙었고 세월을 감당하기 위해선 힘겨운 작업인 것이다. 가위로 잘라내야 하는 인생과 사랑의 아픔을 담은 이야기가 있는 사랑의 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특별히 눈에 띄는 표현은 '은비늘이 무성하게 바람을 일으킨다'라는 표현이다. 노령화 시대에 접어든 요즘 어느 노년 부부의 애틋한 삶과 사랑의 이야기로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김재미 시인의 시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자주 등장하는 '바다'라는 시어이다. <산산이 부서져야 할 것>, <물새의 사랑>, <우물 안 개구리의 외출>, <밀물을 기다리며>, <그리워서 흐르는 눈물> 등이 작품에서 그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그러면 김재미 시인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푸석푸석한 피부에 들러붙은 검은 저것은,
한 몸처럼 자신을 새겨놓는 저 그림자는 무엇일까?
매일 맑은 물에 담근 머리에선 상큼한 샴푸 향이 아닌
세월을 산 비릿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바다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푸른 비늘이 반짝 손톱 끝에 걸린다.
<중략>
맨얼굴로도 복사꽃 같던 한때
아랫배의 싸한 통증에 몸살 앓던 그때가 그리운 건
감춰야 할 게 더는 없는 마음의 부재인지도 모를 일.
하지만, 바다가 아닌 거울 속에서 바다가 보이는 건
아직도 여자가 되고 싶은 가슴이 남아 있었나 보다.
- <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일부
바다는 시인이 추구하는 이상향이자 꿈꾸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바다가 아닌 거울 속에서 바다가 보이는 건 / 아직도 여자가 되고 싶은 가슴이 남아 있었나 보다.세월 속에서 나이를 속일 수 없고 신체적 변화도 숨길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작가가 꿈꾸는 세상은 젊은 웃음, 역동적인 삶, 젊음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시어 '푸른 비늘'에서 보는 것처럼 '은비늘'이 되기 전에 거울 속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는 복사꽃 같던 젊은 때를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새 들고 흥얼흥얼 굴 까던 여인
그 옛날 황금빛 고운 모래,
하얀 맨발 드러내고 다정히 걷던
젊은 웃음을 기억해 내지
썰물에 밀려난 밀물이면 어떠한가?
곧 돌아올 뱃고동 소리에 맞춰
뚝배기에선 보글보글
뜨끈한 정을 끓여줄 텐데.
- <밀물을 기다리며> 일부
또한 바다는 추억이 있는 젊은 웃음이고 청춘이다. 산산이 흩어지고 부서져야 할 존재이면서 다시 태어나도 바다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요동치는 가슴으로 푸른 바다를 마시고 두근거리고, 혼자이면서도 파닥파닥 살아있는 존재, 외롭지 않은 삶의 현장이자 젊음이 있는 공간인 것이다.
파도가 부서진다! / 부서지는 건 파도만이 아닌 / 이글거리며 빛을 뿌려대는 태양 / 높이 쌓아올린 벽 너머 / 징, 울리며 요동치는 가슴 // 거친 풍랑 속에 / 방황하던 청춘, 아직 죽지 않았다 / 부서져야 다시 태어날 그 무엇이라면 / 나 역시 산산이 흩어져야 할 존재
- <산산이 부서져야 할 것> 일부
쉼 없는 날갯짓으로 / 바다를 마시고 / 바람의 속살거림에 / 두근두근 파닥파닥 /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 나는 한 마리 물새 / 구름을 벗 삼아 / 사랑을 하고 있다네.
- <물새의 사랑> 일부
물새의 사랑에서 보이는 것처럼 시인에게 '바다'는 생명이기도 하고 울컥 치미는 멀미가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별이 있는 고통과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어둠이 바다를 감싸 안을 때면 별이 빛나는 그런 빛나는 인생의 현장이자 성숙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사각의 긴 틀 안, / 바다도 아닌데 순식간에 / 밀려오고 쑥 빠져나가는 물결에 / 순간 아득해지는 세상
아직도 멀기만 한 목적지인데 / 점점 뒤엉키는 머릿속 / 멈추지 않는 흔들림에 / 울컥 치미는 멀미
- <우물 안 개구리의 외출> 일부
모르게 다가왔던 가을 / 산과 들과 강과 바다에 / 붉고 노란 자리옷만을 남기고 / 떠나가고 있습니다
- <가을의 이별> 일부
밤하늘의 어둠이 바다를 감싸 안아 / 별을 담아내듯 / 나도 그렇게 별을 담아 / 쉼 없이 빛나는 생을 살고 싶어.
- <그럴 수만 있다면> 일부
강물에 흘려보내면 너른 바다로 흘러가 / 이별의 고통도 잊을 줄 알았는데 / 너무 비인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라.
그리고 시인에게 바다는 추억이고 사랑이며 그리움이 있는 공간이다. 바다의 시작은 강이고 호수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흘러가듯 바다에는 언제나 바람이 존재한다. 그 바람을 이겨내고 어둠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사랑이 꽃피고 추억을 반추할 수 있 것이다. 그래서 바다라는 공간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 깨달음의 공간이기도 하다.
몸살에 축 늘어졌던 몸은 어느새 열꽃까지 핀다.
꽃눈이어야 할 붉은 꽃이 여기저기 돋아 눈물까지 쏟게 하는,
그리워지는 것들이 영사기 속에서 줄줄 빠져나오는 순간
어느새 나는 깊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 <그리워서 흐르는 눈물> 일부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 앉아
하얀 입김 불어 뿌옇게 바랜 창에
그리운 너의 얼굴 그리려니
내 얼굴이 그곳에 있지 뭐야
훌쩍 넘겨버린 시간이었음을
네 얼굴에 새겨진 나를 보고 알았어
세월이 새겨준 닮은꼴의 둥근 마음
- <벗에게> 일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재미 시인은 시를 맛깔스럽게 이끄는 또 다른 힘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에서 삶의 섭리와 인생을 깨닫고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인지 그의 시는 난해하지 않은 편안함이 있다. 오히려 시가 가슴에 잔상으로 남듯이 자연스럽고 술술 익히는 매력이 있다.
상큼한 가을바람 / 귓가에 살며시 스쳐갑니다 / 높디높아진 가을 하늘에 / 어둠이 몰려오면 / 잠시 스쳐갔던 바람의 향기 / 여문 달빛에 스며듭니다. // 높아진 하늘만큼 / 가슴에서 더욱 풍성해지는 사랑 /
맑은 샘물 같던 당신의 미소가 / 밤하늘에 걸려 / 유난히도 선명해지는 오늘 / 별을 닮은 그대 위해 / 작은 사랑의 노래 흥얼거립니다.
- <별을 닮은 그대에게> 전문
반쪽자리 가슴 / 휑하니 들고나는 바람 // 낮도 아니요 / 밤도 아닌데 / 뒤에서 너울거리는 / 저것은 무언가 // 휩쓸려 간 세월은 / 간 곳 없는데 / 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 / 긴 그림자 // 정녕 잘라낼 수 없는 / 가슴의 너울인가
- <사랑의 그림자> 전문
그의 시에는 동화적인 스토리가 있고, 사랑에 대한 열정, 순수한 서정도 있다. 특별히 <사랑의 그림자>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말의 어감을 살린 탁월한 언어의 조탁이 눈에 띈다.
아, / 꽃잎이 물들었구나! // 빨 주 노 초 파 남 보 / 무지개다리 건너 와 // 소망 하나 가득 / 꽃망울로 터트렸구나 // 하아, 그래 /
나도 어여삐 물드는구나
- <꽃잎 물들다> 전문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의 인식은 이처럼 그리움으로, 깨달음으로, 희망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그리움과 희망은 다시 눈부신 시가 되어 꽃(언어)으로 피어난다.
마침내 그의 시적 열정은 세월을 훔치고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사랑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꽃은 다름 아닌 개망초, 아카시아, 바람꽃, 목련꽃이다.
빈터 어디든 좋다고
유월의 해가 뜨면
해살거리며 웃기 시작하는 개망초 꽃,
봄빛 가득 품었던 어미 닭
동글동글 알을 낳으면
유독 환해지던 엄마 얼굴과 닮았지.
<중략>
바람은 기억할지도 몰라
말간 얼굴로 피어난 그 꽃 볼 때마다
살짝 눈 감으며 미소 짓는 이 마음을
- <보리밥 속에 핀 개망초꽃>
살짝 감은 눈 너머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
'얘야, 이거 정말 맛있단다. 많이 먹으렴.'
달짝지근한 꿀 꽃, 한 입 가득 오물오물
맛나기만 한데 왜 엄마는 울상이었을까?
싸한 마음에 덮치는 공복
어느새 연신 먹어댄 고슬고슬 하얀 밥
차오른 포만감에 실실 웃어댄다
기억의 문 열고, 바보처럼.
- <아카시아꽃, 그 흰 밥>
가난하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꽃은 개망초이고 아카시아다. 배고파서 굶주렸던 어린 시절, 시인의 추억은 가난하지만 사랑이 있어서 넉넉했다. 그래서 그 넉넉함은 행복한 웃음꽃이 될 수 있었다.
파릇파릇 앉은뱅이 냉이 / 길가는 아낙 유혹하는 / 어느 봄날에 / 꽃샘추위도 반갑다 / 가슴에 품었던 새 한 마리 / 꿈을 찾아 파닥파닥 / 기지개 켜지 // 아! / 바람도 춤추며 노래하는데 / 나도 바람꽃으로나 피어날까
-<나도 바람꽃으로 피어날까> 일부
무에 그리 / 할 말이 많아 / 꽃으로 화하여 / 하늘만 바라보나 // 무참히 스러질 삶, / 한때의 사랑은 / 순결한 여인처럼 / 활짝 피었구나. // 내 간절한 기도 / 하늘에 전하려니 / 그리움은 모두 / 살포시 남아라.
- <목련꽃 아래서> 전문
나이가 든 성숙한 여인네의 꽃은 바람꽃이고 목련꽃이다. 봄에 핀 사랑의 열정은 숨길 수 없는 화사한 꽃으로 활짝 피어난다. 하지만 시인은 그 꽃은 곧 스러지고 마는 한때의 젊음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짧은 사랑이지만 열정적이고 역동적이다. 그 때문일까? 성숙한 여인의 사랑은 가슴에 잔상으로 남아있고 추억으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의 열정은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 말하듯 꽃나무에게 말한다. 씨앗을 품고 꽃을 피울 수 있는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듯 반복해서 말한다. 마치 시인이 독자에게 언어로 풀어 말하듯 쉽게 편안하게 부끄럼이 있어도 당당히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 그래
씨앗을 품고 매번 고운 얼굴로 먼저
화답하는 내 말을 잊지는 마
바람의 꾐에 얼굴만 붉혔던 일도
한 사람을 기억하며
나이 많은 몸임에도 꽃을 피우는 나를
잊지는 마
- <꽃나무의 말> 전문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꽃나무와의 대화를 통해 빚어낸 표현이 그렇고, 호소하듯 편안하게 말하는 회화적, 의미적 요소가 더욱 빛난다. 시인의 꽃은 오직 한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순수와 열정의 꽃인 것이다.
지금까지 그리움과 사랑을 언어로 꽃피운 김재미 시인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함께 활동하는 시인으로 감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참신한 시적 상상력을 계속적으로 펼쳐보길 소망한다.
앞으로도 김 시인의 문학적 열정을 지면에서 자주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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