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해가 갔다.
하긴 12년이 지나면 또 소의 해가 올 것이고, 또 12년이 지나면 또 올 것이고, 아마도 인간이 이 지구 위를 떠나는 날 뒤에도 소의 해는 또 오고 갈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난 소의 해가 좀 심상찮았다. 우선 시를 많이 썼다. 그리고 그 시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그해가 지나고 그 시들은 나에게 회의와 반성의 화살로 날카롭게 박혀왔다.
그 무렵에 정치평론가 손호철의 글을 한 편 읽었다.
나에게 손호철은 냉소적 진보주의자로 분류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어서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같은 '꽈'에 속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허물을 남에게서 발견하는 것 같은 불편함이 동반되어서였을 것이다.
흔히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데 그 손호철은 진보진영의 끊임없는 세포분열을 일으키게 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의 냉소는 아마도 나를 겨냥한 것처럼 아팠다.
그는 현재 진보진영의 무력함을 말하면서 소수의 변절자들보다도 무절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던 것 같다.
어느쪽에 서 있지도 않았으니 변절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 무절파이다.
나는 갑자기 오금에 힘이 빠졌고, 그 손호철의 말을 곱씹으면서 내 시들을 오버랩시켜 보았다.
물론, 내가 어느 진영에 서 있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내 시는 어디에 있다는 말일까?
근본적인 반성과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되려면 자신만의 아우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를 쓰는 자신만의 문법과 세상을 향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시는, 그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온기가 빠져있었다.
이것은 몹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개인주의로 포장해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한방임주의는 나의 다른 얼굴처럼
아프게 떠올랐다.
광주에 있었으면서도 광주에 있지 않았고, 용산에 있었으면서도 용산에 있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지금 그런 거창한 사건을 말하면서 나는 또 빠져나가려고 얍삽한 생각을 굴릴 테니 말이다.
근본적으로는 삶의 궁극을 말하기 전에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싸우고 돌아서고 화해하고 하는
일상의 얼굴들을 나는 너무도 무시해 왔다는 것이다.
송경동이 끔찍한 고통을 겪다 시집을 냈고,
박래군이 용산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잡혀 들어갔다.
삶의 얼굴은 다양하지만, 진실은 하나다.
나는 그 진실마저도 모른체했다.
고뇌할 일은 없다.
다만, 내게 주어진 삶을 영혼을 다해 살았는가가 문제다.
'영혼을 다해'라고 성긴 그물 쳐 놓고 빠져나가지 말고
시대적이며 조직적이며 예술적인 책무를 다했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작년 한해 나의 냉소에 상처를 입은 다른 온소들에게 미안함을 말하고자 한다.
조동례가 너무 추워서 북으로 간다고 한다.
추워서 북으로 간다고?
이것도 삶의 아이러니이고 슬픔이다.
다음 주에 간다고 하니 소들이라도 모여서 막걸리 한 잔 부어 보냈으면 좋겠다.
그날 막걸리 값하고 고구마 값은 내가 낼 테니 다들 모이자고.
모일 소들 : 이상인, 박철영, 장애선, 정동진, 윤석진, 조동례, 송태웅
그리고 소몰이 목동들도 다들 모이시쇼.
2010년 1월 27일(수) 저녁에 꽃뜨락으로.
금요일은 학형 형 시집출판기념회인데, 하루 걸러 또 만나는 것도 괜찮지, 뭐.
겨울엔 불 다숩게 때서 막걸리 마시는 것이 제일이지.
첫댓글 태웅아 내가 장작 한짐 질머지고 간다. 그 정도면 한턱 와장창 쏜거지?
누구 머슴 하나 불러서 짊어지고 와. 애선, 동진에게도 전화좀 때려 주고.
차를 같이 타고 가게 어디서 만나서 가면 좋겠구만
내가 조은플라자 앞으로 갈게, 같이 가자.
추워서 북으로 간다, ~ 역설의 힘이다. 난 너무 뜨거워서 남으로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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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몰이 목동이 드디어 나타나셨네. 이따 늦게라도 보십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