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이 있어 퍼왔습니다.
선생님들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교사를 폄하하는 사회분위기에
곧잘 분노하기도 하였는데 이글은 오랫만에 보는 따뜻한 글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물론 전국의 교육현장의 대부분의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은
다들 이런 마음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헤치고 나가겠지요.
함께 읽어보고싶은 글이어서 길지만 옮겨봤습니다.
모두들 힘내시길....
감포 바닷가로 갔습니다. 졸업생 A/S를 위해서였습니다. A/S란 말을 써서 죄송합니다. 잘 나가는 시쳇말 한번 써 보고 싶었습니다. 상품 세상에서 살아가는 교육자의 자조는 아닙니다. 졸업한 제자들이 그리워서 만나려는데 이보다 더 그럴 듯한 명분이 요즘 있을까요. 우리 과 홈페이지에 이런 안내문을 올렸지요.
"감포 바닷가로 우리 교수들이 졸업생 A/S 하러 갑니다. 포항 경주 지역에 살고 있는 졸업생 중, 학창시절 못다 배운 게 있다고 생각하거나, 학창시절 잘못 배운 게 있다고 생각하거나, 졸업한 뒤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 좀더 다르게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하는 졸업생은, 그리고 세상살이가 그냥 쓸쓸하게 느껴지는 졸업생은 꼭 감포로 오기 바랍니다. 힘 닿은 데까지 A/S 하겠습니다."
제가 지방 사립대학의 사범대학 교수란 사실을 먼저 밝혀야겠군요. 우리 과 현직 교수는 물론 다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교수까지 불렀습니다. 감포로 가는 길에 졸업생 3명이 함께 국어교사로 있는 포항 대동고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어느 포항시민의 극진한 안내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산기슭에 있는 그 학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책상마다 컴퓨터가 켜져 있는 교무실은 화기애애한 듯했습니다.
교무실 한복판에 둘러앉아 있으니 다른 선생님들이 부러운 듯 곁눈으로 보면서 지나갔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우리 졸업생들이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들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는 예의상 과장된 표현도 들어 있었겠지만, 우리는 우쭐해졌습니다.
"셋 중 A/S 필요한 사람 있습니까?"하니 "이 선생이 시 쓴다고 학생들을 엉뚱한 쪽으로 몰아가려 하니 손 좀 써주고 가세요"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얼굴에 더욱 흐뭇한 기운이 돌았습니다.
포항 예술대전에 제자가 시를 출품했다기에 잠시 들렀다가 어둠이 몰려오는 포항 감포간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귀양지로 걸어가던 길이었습니다. 원효와 혜공 선사가 물고기 잡아먹고 "니 똥이 내 고기다"고 우기던 오어사 앞의 계곡도 지났습니다. 우리가 탄 차를 선도하는 제자의 자동차 불빛이 우리 앞을 더 훤히 비춰주었습니다. 오징어 배들의 집어등은 밤바다를 밝히고 있었지요.
횟집의 넓은 창문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지만 집어등 불빛만 보일 뿐 바다는 어둠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수업을 마친 제자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나둘 모였습니다. 졸업하고 처음으로 만난 제자도 있었지만, 모두들 학창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교사 노릇하는 제자들과는 동지로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제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선생보다 더 말을 잘하게 된 제자들이 대견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의 교육현장에 대해 참 깊고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제 7 차 교육과정 실시와 교원 성과급 지급 문제에 대해 하나같이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교직 생활을 하는 동문 부부는 둘다 C급을 받아, 스스로 'C급 선생이며 C급 부부'라고 쓴웃음을 지었지요.
저는 그들이 학생들을 위해 온몸을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손을 한번 잡아주는 것 이상의 힘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부가 더 궁금한 제자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살고 있을 제자들이었습니다. 출가하여 잘 사는 자식보다는 구박받고 못 사는 딸 자식이 더 그립다는 걸 우리 제자들은 알고 있을까요. 교직으로 나아가지 못한 제자들은 연락이 되지 않아 오지 못했을 것 같기도 했고, 연락이 닿았지만 교사들만의 모임일 것 같아 오지 않았을 것도 같았습니다.
학창시절 여학생 회장을 하며 대학 문화를 이끌었던 여자 제자는 그날 참석한 제자 중 교직에 있지 않은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그 제자는 몇 번이나 자기가 지금까지 헛되이 살지 않았으며 지금도 떳떳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힘주어 말했습니다. 저도 그 제자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만 "너 같은 사람이 꼭 교직으로 나아가야 우리 교육이 더 참다워질 것이다"라 말해주었을 뿐입니다. 교직 진출에 실패한 제자들의 아픔이 새삼 환기되었습니다.
유난히도 쌀쌀했던 작년 12월 어느날 교원임용고사 시험장 앞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잔주름 늘어난 제자들을 만났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그런 제자들을 위해서 더 확실한 A/S를 해야 했습니다. 그 제자들에게 더 큰 빚을 지고 있어서일까요.
우리는 살아오고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자정이 지나서 철조망 걷힌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간간히 해안 경비대의 서치라이트가 검은 하늘을 가르고 있었지만, 파도와 굵은 자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파도란 얼핏 바다 위에서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매 순간 에너지를 전달받으며 물이 제자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파도 소리 속에서 한 제자가 소리 질렀습니다.
"선생님, 그때 울었죠?"
우리나라의 한문학을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달(李達) 선생의 동산역(洞山驛)이란 시를 함께 읽었지요.
농가의 젊은 아낙네 밤 깊어 먹을 게 없어
비 맞으며 남의 보리 몰래 베어 숲 속 길로 돌아왔지
푸른 땔나무 물기 젖어 연기조차 일어나지 않아
방 안으로 들어오니 어린 아이들 옷자락 당기며 울부짖었지
그때 그 제자는 선생보다 먼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아, 정말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선생과 제자가 강의실에서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공감을 이루고 머리를 맞대며 세상에 대해 분노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정의 모습이 앞을 가렸습니다. 경쟁심과 돈에 대한 경배가 교정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졸업생 A/S 간다'하니 '드디어 졸업생 인증제를 도입했군'하지 않았겠습니까.
젊은이들은 일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일신의 테두리를 벗어난 가치에 대해서 호기심조차 가지지 않는 그들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파도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거세게 밀려오는 까닭은 무엇이냐고요. 파도가 품어올리는 포말이 대답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도 소리칠 때 입가에 거품이 생기지 않느냐고요.
우리의 이야기판은 숙소로 옮겨졌습니다. 동녘이 희미해져 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코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 앞에 마지막으로 남은 제자가 말했습니다.
"교육은 마음을 공부하고 마음을 닦게 하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 말이 저를 떨게 하였습니다. 마음 닦게 하지 않는 것이 어디 교육이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제자는 마음을 바라보는 방법과 마음을 누르는 방법, 마음을 닦는 방법에 대해 꽤 자상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어름에서 쓰러졌습니다.
동해는 늦잠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기 때문이겠지요. 눈이 부셔 일어나 보니 제자들은 모두 떠나갔습니다. 토요일 수업을 거르지 않기 위해 새벽에 서둘러 떠난 모양입니다. 모든 계산도 끝내고 말입니다. 교수들이 또 제자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나 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4년 전 안동의 제자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3년 전 영덕의 제자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2년 전 영주의 제자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답니다.
박봉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A/S를 빙자해 제자들 주머니를 털게 한 것일까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남은 세월 동안 몇번이나 더 너희들에게 이런 부담을 주겠느냐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안학교인 경주 화랑고등학교에 들렀습니다. 스스로 마음 닦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자가 근무하는 곳입니다. 마침 가을 축제 개막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축제 개막식에 동네 유지들이 다 모였습니다. 뒷뜰 시화전을 구경하러 건물을 가로질러 가는데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 공부의 집'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작품 중에는 자기 마음을 바라본 경험을 나타낸 시가 적지 않았습니다. 제도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제도 교육을 거부하는 학생들이 그곳에서 마음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니는 대안학교가 마음을 닦는 학교라는 사실이 우리 제도 교육의 실상을 암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곳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돌아오니 홈페이지에 제자의 글이 올라 있었습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이곳에서 꼭 필요한 교사가 되는 일이 선배의 임무이고 제자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날 그 감포에서 나약해지고 있는 초심을 다잡았습니다. 말로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감포 앞 바다보다 더 넓은 바다를 저는 보았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도 초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달라진 교정과 각박해진 풍속을 탓하지만 게을러지고 나약해진 저 자신을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옅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요.
제자들은 저의 초심도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분발하여 더 진지하게 지방 사립대학의 교정을 지켜가라고 질책하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도 저는 A/S 하러 갔다가 A/S 받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