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한 것
정해영
세 살 된 아이가
울고 있다
막대사탕을 주어도
토끼 인형을 안겨주어도
발버둥을 치고 있다
말 대신 울음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점점 크게 들려오는데
엄마는
말없이 등을 내밀어
아기를 업는다
앉을 때도 같이 앉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다림질도 같이 한다
원래 한 몸이었던 둘
작은 심장이
둥글고 뭉클한 원적(原籍)에
닿았는지
뚝 울음을 그친다
틈 없는 밀착
소리를 죽인
더 큰 진동이 오래
아기를 흔들고 있다
가을이 깊어 갑니다. 깊어가는 이 가을, 정해영 시인의 시, 「뭉클한 것」 읽습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첫 연에서 다섯째 연까지 울음 우는 아기를 달래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친근한 정경입니다. 그 친근한 모습을 시인은 평이한 언어로 그려내고 맀습니다. 그러기에 친근하게 다가오는 시입니다.
울음은 아기들의 말입니다. 생각과 감정을 전하는 것이지요. 아기는 “말 대신 울음”입니다. 울음으로 자신을 표현하지요.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사탕, 인형을 줘 보기도 합니다만 아기의 울음은 오히려 커지고 발버둥까지 치지요. 이때 우리의 엄마들은 등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기는 엄마의 등에 업히지요. 그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엄마와 아기는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앉을 때도 같이 앉고/화장실도 같이 가고/다림질도 같이”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엄마와 아기 사이를 “원래 한 몸이었던 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심장이/둥글고 뭉클한 원적(原籍)에/닿았는지//뚝 울음을 그친다”고 했습니다. ‘한 몸이 되는 것’을 ‘원적에 닿았다’고 변주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적 변주가 독자들의 공감과 시적 울림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원적’은 ‘뭉클하다’라고 했습니다. 이때의 ‘뭉클함’은 ‘한 몸’의 느낌입니다. 순수하고 원초적인 느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우리는 ‘가슴이 뭉클하다’고 하지요. 엄마와 아기 사이는 인형이나 사탕으로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라 몸과 몸이 하나가 되는 사이입니다. 엄마와 아기는 참으로 뭉클한 사이입니다.
이 가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가을은 뭉클한 계절입니다.
첫댓글 우리는 점점 가을로 깊어 갑니다. 정해영 시인의 시 「뭉클한 것」 를 읽고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원래 한 몸이었던 둘, 자식을 품었던 어머니라며 다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시화 시킨 시인의 시력이 돋보입니다. 그 자식을 출가 시키고 나면 그 자리가 허전합니다 그래서 더 뭉클한 것이 내게로 다가와 빈 둥지 속에 뭉클함을 수북이 담아 놓습니다. 시평 감상 잘 했습니다.
접촉 위안(Contact Comfort)이라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생각납니다.
"틈 없는 밀착"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감동입니다.
엄마와 아기는 일심동체죠
엄마 품에서 떠나면 고마 골치아픈 자식
반복되는 이 일을 어찌하리오
은혜 두어번 갚은적도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