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 꽃 피는 하늘/김진아
어릴 때 동생과 내 취미는 별을 보는 것이었다. 별자리 그림책을 들고 쌀쌀한 가을과 추운 겨울 하늘 아래 둘이 함께 들떠 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였지만 별을 보는 순간만큼은 추위를 잊을 정도로 즐거웠다. 별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 사춘기 때였다. 하늘에 박혀 있다고 생각한 별이, 알고 보니 저 먼 바깥세상의 행성이라는 사실이 나를 매혹시켰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또 다른 세상, 이 생을 마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비밀의 섬처럼 여겨졌다.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그 시기였다.
열다섯 살 생일 아침, 키우던 새끼 강아지가 죽었다. 내 소홀함 때문에 강아지는 밤새 말라 버린 물병 앞에서 메마른 입을 벌린 채 죽은 것이다. 고독과 홀로 싸웠을 녀석을 생각하면 11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람들은 동물이 죽으면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동물이 죽으면 동물들끼리만 모여 사는 고요한 별로 간다고 믿는다. 녀석이 도착한 별은 저 별들 중 어떤 것일까. 별을 보며 강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오른다. 몇 년 뒤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루는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오늘 밤 사자자리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기막힌 정보를 들었다. 무려 백 년에 단 한 번 떨어지는 별똥별 잔치였다. 매혹적인 소식에 무서운 사감 선생님도 그날 밤만큼은 옥상에 올라가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다. 새벽 3시까지 하늘 무료 관람권을 얻은 나와 친구는 담요와 따끈한 코코아를 들고 기숙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디를 가나 짝꿍이던 우리는 끝도 없는 수다로 지루한 기다림을 채웠다.
열 시쯤 되자, 드디어 별똥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대한 것보다 더 완벽한 축제였다. 저쪽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머리 위로 선명하고도 긴 빛의 꼬리를 달고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때 반대쪽 하늘에서 또 하나의 별똥별이 떨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네 시간 동안 대략 오백 개가 넘는 별똥별을 봤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별똥별은 떨어질 때 '삐~융'하고 신기한 소리를 내며 빨갛고 파란 불씨를 공중에 쏘아 댄다. 마치 요술 지팡이가 빛을 뿜으며 요술을 부리듯 귓가를 청명하게 만드는 환상적인 소리를 낸다. 나란히 누워 하늘을 관람하던 우리는 꿈꿀 수 있는 온갖 소원을 빌었다. 별똥별 하나가 한 가지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우리는 수백 개의 소원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싱싱한 열아홉 꿈들이 밤하늘에 넘쳐흘렀다. 서로 소원을 터놓지는 않았지만 한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연의 힘은 극적으로 순수해서 마음 깊은 욕심을 깨끗이 씻어 간다. 덕분에 우리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소원을 빌었다. 서로의 행복을 외쳤고, 서로의 건강을 바랐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친구는 하늘나라로 갔다. 추락사였다. 죽기 전까지 한동안 의식이 있었다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나는 죽은 강아지를 봐야 했던 생일 아침을 떠올렸다. 친구를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친구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라 한동안 밤하늘을 바라볼 수 없었다.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별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을 떠나 비로소 자연과 하나가 되었는데 어떻게 한곳에만 머물 수 있겠는가. 나는 친구의 영혼이 수많은 별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제 하늘을 보면 상여 꽃이 보인다. 친구의 얼굴만큼 빛나는 영혼도 보인다. 오늘도 나는 별에 매혹된다. 밤은 길이다. 다음 세상으로 건너가기 위한 영혼이 밟는 길이다. 간혹 사는 일에 지쳐 기운이 빠질 정도로 울고 나면 밤하늘을 유영하는 수만 개의 상여 꽃을 바라본다. 그들이 내게 전해 주는 생생한 영혼의 기운, 사랑하는 이들을 내려다보는 그 따뜻한 시선에 위로받는다. 그것이 오늘날 나를 버티게 하는 가장 자연적인 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