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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빌어먹을 풍기냉면!!
내가 처음 냉면 맛을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이웃에 사는 부잣집 막내의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 애 어머니가 외출을 하면서 점심으로 냉면을 시켜주셨다.
전화로 냉면을 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전거로 냉면이 배달되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부터 수없이 보아왔던 그 ‘금천냉면’집 물냉면이었다.
나는 그 냉면 맛을 4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단 한 방울의 국물도 남김이 없이 알뜰히도 먹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커다란 가마솥가에서 국수틀을 걸어놓고 기다란 봉에 여럿이 매달려 땀을 뻘뻘 흘리며 국수를 내리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그것은 어른들의 음식이요, 한량들의 식도락이었지 서민이나 아이들의 음식은 아니었다.
풍기에 냉면이 자리잡게 된 것은 아무래도 평안도 사람들의 집단 이주와 무관하지 않다.
친구 차동선이네로 대표되는 차씨들이 몇 몇 황해도에서 이주해온 것을 제외하면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은 모두 평안도 출신이다.
평안도와 함경도는 마치 남한의 호남과 영남 같아서, 그 앙숙이 아주 심하다.
그래서 함경도 출신은 풍기에 없다.
평안도 사람들이 풍기에 내려온 것은 알다시피 도참(圖讖) 사상에 근거한 것이었다.
1910년대, 조선이 망했다.
국망(國亡)!
나라가 망한 충격은 백성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남부여대해서 간도로 북간도로 아니면 연해주로, 지금은 중국이나 러시아 땅이 된 그곳으로 나라 잃은 백성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져 지금도 그곳에는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코레스키라는 희한한 이름을 갖고 많은 동포의 후예(後裔)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땅에 남은 사람들도 살 곳을 찾아 남하했다.
장차 북녘땅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니 남쪽의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찾아가라고 한 정감록(鄭鑑錄)의 지침을 따라 수 많은 평안도 사람들이 이주하였고, 그 제일(第一)의 지점이 금계(金鷄)산 아래 이수합류지(二水合流地)라고 하는 풍기였다. 뒷창락과 남원천이 싸고 흐르는 그곳이었다.
내 조부도 열 두 살 때 증조부의 손에 이끌려 달박(達朴)골에 정착하였다.
지금으로부터 백 여년전에.
사람과 함께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게 그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다.
시원한 동치미와 냉면이 바로 그들의 음식이다!! 보신탕 또한 평안도가 주류다.
내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남쪽으로 이주해 오셨지만, 평생 짠 음식과 고춧가루 등 매운 음식을 드시지 않으셨다.
소금이 귀한 지역이라 당연히 짠 것에 익숙치 않았을 것이고, 추운 지방이라 고추 농사가 성했을 리가 없다.
따라서 동치미나 냉면, 그리고 개고기가 자연스럽게 그들의 음식이 되었다.
개고기는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소화가 잘되고 부드럽고 맛이 좋아서 가장 사랑받는 고기였다. 지금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지시로 단고기라 한단다. 이에 대하여는 따로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풍기에는 지금 냉면집이 하나도 없다!!
일본에는 100년이 넘는 전통음식점이 천 개도 넘게 성업중이고, 맛의 고장인 이태리나 스페인, 프랑스등에는 그런 맛집이 셀 수 없이 많아서 그 지방 고유의 맛을 간직하고 산다. 백년 넘은 맥주집은 독일에는 즐비하고, 심지어 동구권 어느 촌가에 가도 대를 이어 비법을 간직한 저마다의 치즈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란을 겪고, 먹고 살기 힘든 세월을 살아서인지 전통 간장 된장 김치의 맛을 몇 대를 이어가는 집안도 드문 것이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풍기 사람이니, 풍기의 냉면맛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더구나 오랫동안 객지살이를 하니 고향의 맛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하지만 ‘금천냉면’이나 ‘서부냉면’으로 대표되던 그 맛은 지금은 온데 간데 없다.
냉면은 얼핏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 음식이다.
면과 육수와 약간의 고명만 있으면 된다.
한편으로 그렇게 간단하니까 조금만 달라져도 맛이 달라지는 것이 또한 냉면의 맛이다.
우선 면(麵)을 보자.
평야 지대가 없고 산지가 많은 평안도 특성상 면은 당연히 메밀이 주가 된다.
메밀은 모리소바라는 이름으로 일본넘들이 사족을 못쓰는 음식이다.
곳곳마다 그 향과 맛이 다르다.
그들 처럼은 아니더라도 냉면에 메밀을 써야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풍기 냉면에는 메밀이 없다. 고구마 전분에 밀가루에 그리고 눈가리고 아웅 하는 정도의 메밀을 첨가하여 냉면이라고 내놓고 있다.
비단(非但) 풍기랴! 전국 대부분의 냉면집이 다 이러하다.
나는 다만 풍기만은, 그 냉면집들의 후손만은 그 참 냉면의 오리지날리티를 지켜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마치 전복죽에 전복이 없는 그런 식의 냉면, 냉면에 구수한 메밀이 빠진 그런 걸 면이라고 ‘팔고’ 있었다.
평안도 1세대들은 이제 다 가고, 2세와 3세가 주류가 된 지금에 그 오리지날한 냉면을 기대한 것이 무리였을까?
아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들은 단순히 냉면을 ‘파는’ 행위를 뛰어넘어 그들 조상들의 오리지날리티를 잇고 더욱 빛낼 ‘의무’가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나는 상기하고 싶은 것이다. 돈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밀가루는 20Kg 한포에 2만원이 안되지만, 같은 무게의 메밀쌀은 23만원이 넘는다!!
그러니 한 그릇에 7천원 받는 것으로는 제대로된 냉면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어중간한 메밀쌀, 그러니까 쌀로 말하면 껍데기를 제거하지 아니한 현미 같은 것을, 그것도 조금만 넣어서 냉면이라고 파니, 차라리 강원도 막국수만도 못한 것이다.
일본넘들은 그 메밀쌀을 다시 벗겨서 거의 속 씨눈 같은 걸로도 소바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는데, 한 그릇 - 실로 한 주먹도 안 되는 양에 십만원도 넘는다.
메밀은 알다시피 찰기 즉 글루텐 성분이 없어서 뭉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적당한 온도, 적당량의 물을 조절하기가 어렵고 또 많은 힘이 필요해서 여성들이 뭉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이를 연구하고 실험하여 100% 메밀로만 만드는 집이 횡성 인근에 있는데, 인내심이 없는 인간들은 기다릴 수 없어서 못먹는다. TV 몰카에서도 검증 받은 집이다.
나는 가위를 내오는 냉면집엔 가질 않는다.
‘우리 면엔 메밀이 없어요.’하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메밀은 그 특성상 질길 수가 없기에 가위가 필요 없다.
그래서 공자님은 차라리 파는 술(沽酒)은 드시지 않았나 보다.(논어 鄕黨편)
육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육수는 애초에 동치미였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쇠뼈 우려낸 걸로 메밀 국수를 말아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다 잡은 꿩은 최고의 요릿감이었을거다.
그 고기로는 고명을 하고 뼈로는 육수를 내었다. 매를 이용한 꿩사냥은 고구려 시대 이래로 전통적으로 훌륭한 사냥법이었다.
하지만 때 맞춰서 꿩을 잡기란 지난(至難)한 일이라, 손님 접대할 일이 있으면 닭을 썼으니, 그래서 생긴 말이 ‘꿩 대신 닭’.
태백 황지에 가면 황해면옥이란 냉면집이 있었는데, 언제나 가마솥에 닭을 삶아낸 육수로 냉면을 만들었다. 닭은 반 마리 또는 한 마리씩으로 백숙이 되어 술안주로 나오고 그 육수를 식힌 것에 약간의 동치미 국물로 간을 하여 맛있는 냉면이 제공되었는데, 그 피난 1세대 영감도 오래전에 죽었다.
육수는 소뼈 중에서 사골만 쓰는 게 아니라, 잡뼈를 주로 쓴다. 즉 소를 해체하여 얻어지는 앞다리나 목뼈, 마구리 갈비뼈, 엉치뼈 등을 사탯살과 함께 일차적으로 찬물에 담궈 핏물을 제거하고 이를 고아서 식혀 기름기를 제거하고 소금간을 한 후 희석하거나 동치미 국물로 희석하여 사용한다.
동치미로만 육수를 하기도 하는데, 소금에 절인 무 배추 갓 등을 찬물로 희석하여 쓴다.
김치 냉장고가 대세인 오늘에 땅에 묻은 동치미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아, 그 시원한 감칠 맛이란!
주문진 장덕리의 동치미 막국수, 양양의 공항막국수, 강릉의 예향막국수가 유명하나, 동치미 국수의 백미(白眉)는 고성의 백촌막국수다.
동광 농공고 뒤 언덕에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집은 함경도식과 평안도식의 짬뽕이다.
흔히들 평안도식 냉면은 물냉면이요, 함경도식 냉면은 비빔면이라 하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호칭이다.
함경도 면은 냉면이라 부르면 안된다. 그냥 비빔국수다.
평안도식은 어디까지나 육수가 있는 것이고, 이를 차게하면 냉면이요, 육수룰 데우면 온면또는 온반(溫飯)인 것이다.
함경도는 조선조 세종 시대에 김종서등을 시켜 여진쪽의 침입을 막고 6진(六鎭)과 4군(四郡)을 개척한 땅이다. 동해의 북쪽과 두만강을 잇는 웅기, 회령 등이 속한 지역이다.
이 땅을 개척하여 너른 영토는 안정적으로 확보하였으나, 그 땅에 살 사람이 없어서 울진(울주), 포항 등지의 경상도 사람을 이주시켰다. 그래서 함경도 음식은 경상도 음식의 아류(亞類)에 지나지 않는다.
경상도 지방에는 지금도 밥식해라는 것을 곧잘 만들어 먹는다. 나도 가자미 식해를 떨어뜨리지 않는데, 그 맛은 사철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한 것이다.
애초 식해는 횟대( 흔히 햇대기라 부르는 배가 하얀 물고기)를 원료로하여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약간의 소금간을 하고 여기에 밥과 엿기름을 넣어서 삭힌 것이다. 일주일만 삭히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요즘은 횟대가 귀해서 가자미나 명태를 주로 쓴다. 이렇게 삭힌 식해를 국수에 고명으로 쓴다.
함경도 개마고원 일대는 감자농사에 최적인 장소다.
지금은 김정은이가 스키장 만든다고 공사를 벌인단다.
거기서 나는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만들면 면발이 참으로 질겨진다. 여기에 위의 얼큰한 식해를 얺져서 비벼먹은 것이 함경도식 국수다.
그러므로 함경도 국수는 원재료가 감자 전분이라서 질기다. 지금은 그조차 없어서 고구마 전분으로 대신하지만.
따라서 함경도식은 비빔국수지 냉면이 아니다. 함경도식 비빔냉면이라 부르는 것은 무식의 극치에 속한다.
공치 고등어 통조림을 갈아 넣고 추어탕이라고 팔고 그걸 좋다고 사먹은 행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금 냉면의 오리지날리티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곳은 강릉에 딱 한 집이 있을 뿐이다.
워낙에 냉면을 좋아해서 서울 평창동이며 온갖 맛집을 다녀보고, 부칸 출신 탈북자가 경영하는 그런 집에도 가 보았으나, 모두 윗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맛이었다.
풍기의 남하 1세대가 모두 고인이 되고, 그 후손들이 가게만 물려받았을 뿐 가계(家係)를 물려받지 못하였고, 태백의 황해냉면, 영주집, 도계의 뚱보냉면, 양양의 단양면옥등 오리지날한 냉면 맛을 지켜오던 이들이 모두 저 세상으로 갔다.
그러나 다행히 30여년 전 도계 뚱보냉면 주인이 살아있을 때, 거기서 만금의 수업료를 내고 그 진수를 전수 받아서 냉면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집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냉면을 먹었다. 어금니에 지긋이 씹히면 구수한 면발의 맛이 혀 뒤 끝을 적시고 시원한 육수가 목구멍을 화려하게 하는 그런 냉면을!
癸巳 八月中旬
豊江 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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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강릉갔을 때, 푸른늑대님께서 사주신 그 냉면 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전 풍기냉면 맛은 잘 모르겠더군요. 방울꽃님, 잘 지내시나요? 통 연락이 없네요. 안부 전해주세요.
냉면 박사시네요~! 저는 어느것이 진짜 냉면인지 모르겠어요. 다들 가위질을 해야겠더군요.
만물박사님! ㅎㅎ
냉면설명하면서 온갖것들 주렁주렁
엮인 이야기..
잘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하는사람들
늑대님앞에 데리고가면
꼼짝못할텐데...
까페통해서 제가 이렇게 댓글다는것도
영광이옵니다~ ㅎㅎ
냉면의 유래에 곁들이해박한 이야기들 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