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프탈렌
이숙희
홀로 살던 어머니 집에서
옷장 정리를 한다
직녀만큼 베 잘 짰던 외할머니 덕에
시집올 때 해온 명주옷이며
무명 적삼과 치마저고리, 버선코와 속곳도 보인다
바지저고리며 모시 두루막 같은 남자 한복도 있다
준비 해놓고도 사용 못한 아버지 삼베 수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어쩔 줄 모른다
엄마의 장롱에선
옥양목, 포플린, 뉴똥 원단까지 고스란히 누워 시체놀이를 한다
듬성듬성 휴지에 싸 넣어두었던 나프탈렌 좀약,
약기운 다 날아가도 냄새는 여전해
매미 허물처럼 종이 거푸집만 남아 세월을 노래한다
엄마는 나프탈렌처럼 서서히 기화되어 왔다
양기 다 빠진 엄마 몸은
좀약 쌌던 휴지처럼 거죽만 남아
앙다물고 용~써보지만
메마른 울음, 소리 없는 웃음으로
다만ㅡ
베틀북 같은 기억의 저편
씨줄 날줄 지긋이 누르고 있다
이숙희 시인의 시, 「엄마는 나프탈렌」을 읽습니다. 이 시가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끄는 것은 ‘엄마’를 ‘나프탈렌’으로 변용한 것입니다. 극단적인 낯설게하기입니다. 극단적인 닟설게하기가 시, 첫째 연 “홀로 살던 어머니 집에서/옷장 정리를 한다”로 시적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시인의 발상은 극단에서 시작하지요. 극단의 발상이 시적 발견으로 이어질 때 좋은시가 될 가능성을 높입니다.
시인은 엄마가 생전에 아끼고 그 애착만큼 정성스레 관리하던 옷들인 “무명 적삼과 치마저고리, 버선코와 속곳”에서 그리고 “옥양목, 포플린, 뉴똥 원단”에서 나프탈렌 냄새를 맡게 되고 그 나프탈렌 냄새에서 엄마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생전에 아끼던 옷과 옷감들은 이제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정리해야 할 것이라서 오히려 엄마에 대한 기억은 더 간절할 수 있을 것이다. “나프탈렌 좀약,/약기운 다 날아가도 냄새는 여전”합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나프탈렌 냄새처럼 여전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나프탈렌 약효의 기화 과정을 엄마의 노쇠과정에 비유하고 있어 시적 설득력을 배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행 “베틀북 같은 기억의 저편/씨줄 날줄 지긋이 누르고 있다”에서 보여주는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어머니의 베 짜던 모습을 떠올리며 베짜기의 기본인 ‘씨줄’과 ‘날줄’로 엄마의 생전 삶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감정 절제와 감각적 표현으로 시적 울림을 높이는 작품입니다. 반복해서 읽으면 이 시의 더욱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냄새입니다.
첫댓글 엄마의 장롱, 나프탈렌에서 맡은 엄마 내음...
삶의 고단한 바느질이 많은 추억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