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노동자를 위한 집단이라고?
우리나라에 노조라는 게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당시 파독 광부로 갔던 사람들이 귀국하여 다시 광산 생활을 계속하면서 소위 공상(公傷)과 노동조합(勞動組合;노조)이 도입되었다.
왜정시대에도 마루보오시(丸帽)로 상징되던 부두나 철도에서 상차(上車)와 하역(荷役)을 담당하던 사람들의 노동자 단체가 있었다고는 하나, 그 명맥이 이어지진 못했다.
독일에 광부로 가서 처음 접한 것이 소위 공상(公傷)이란 것이었다.
즉 일하다가 다치거나 갑자기 배가 아파서 결근을 해도, 그 이유만 그럴 듯하면 출근을 하지 않고도 정상 임금의 80%정도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꿈인가 싶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주다니!
그건 처음 접하는 신천지의 제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공상에 관한 문제나 노동시간, 복리 후생, 임금 등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관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상의하여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즉, 주인이 정한 세경에 동의하면 종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과 종, (아니 이런 표현조차 적절치 않다)
이태까지 보아왔던 그런 주종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과 협력, 그리고 대립적- 거의 수평적 관계에서 의사가 결정되는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그 광부들이 귀국하여 맨 처음으로 ‘작업’에 들어간 것이 ‘노조’의 결성이었고, 그 노조와 사측의 교섭에 의해서 근로 조건과 복리 후생, 공상비와 퇴직금, 이런 문제들이 제시되기 시작하였다.
광산 노조가 중심이 되어 탄생한 노동조합은 이제 막 산업화되기 시작한 우리 사회에서, 그 열악할 수 밖에 없었던 근로 조건을 타개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각 산업 현장에 우후(雨後)의 죽순(竹筍)처럼 생겨났으며, 이러한 노조 운동 중의 하나가 전태일의 청계 피복 노조요, LH사건 등이었다.
아무튼 이런 노조의 등장은 기업이나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하등에 반가울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걸 역사의 흐름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세월은 그런 아픔을 먹고 자란다.
노동 조합장은 노동자의 꽃이요, 별이다.
회사와 대등하거나 때로는 우월적으로 군림하고 막강한 파워와 막대한 자금으로 중놈의 연장 놀듯 하면서도 수입은 일반 노동자와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어디 조합장 뿐이랴. 노조 전임자라는 직책들이 있다.
즉 일반 근로는 하지 아니하고 노조 사무실에만 출근하여 한 부서를 맡아서 무슨 무슨 분과위원장이네 하고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물론 그들의 수입도 노동자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조합장 선거가 다가오면 광산촌은 축제의 장이된다.
갑,을 두 후보가 맞붙었다고 치자.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또는 출신지역이나 부서에 따라서 혹은 갑이, 아니면 을이 유리하다고 하는 부류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러면 노조 전임자(노조 부위원장 이하 각 분과위원장)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 밑에 돈을 대고 줄을 선다.
각 자리에 따라서 베팅하는 금액이 다르다.
그리고는 치열하게 선거운동이 벌어진다.
다시는 안볼 것처럼 상호 비방과 거짓 선전이 난무한다.
노동자는 잠시 천국에 간다.
어딜가도 대접 받고 술은 무한정(無限定)이요 무진장(無盡藏)이다.
한 발 가면 술판이요, 두 발 가면 싸움판이다.
선거야 선거야, 이제 가면 언제오리.
먹고 마시고 취하는 일에 한 푼의 돈도 들지 않는다.
갑의 캠프에서, 을의 본부에서 실탄은 계속 제공된다.
나중에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노동자가 자기가 차지할 수 있는 몫을 잃어버리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주어지는 것이 모두 공것이고 공술인양 먹고 마신다.
이렇게 하여 한 달여 지속되던 선거의 광풍은 끝나고 갑과 을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진다.
고도리 판과 선거판은 흡사하여 2등은 국물도 없다.
진편은 빚만 지고 승자는 희희낙락이다.
드디어 승자가 노조를 장악한다.
위원장이 자리하고 각 분과위원장에는 그 위원장에게 베팅했던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다.
논공행상의 시작이다.
이제는 본전 뽑을 일만 남았다.
사측과 임금협상을 벌린다. 7% 인상을 요구한다.
밀고 당기는 척하다가 4%인상에 합의한다.
임금 인상 요구폭을 줄여주었으니 사측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주머니가 그득해진다.
물가가 4%이상 올랐으니, 임금 4%인상은 실제로는 제로 성장이다. 그래도 숫자가 늘어났으니 반발하는 사람도 없다.
쌀은 일반미로 계약하고 정부미를 섞어서 들여와 배급한다. 그 차액은 물론 노조 몫이다. 광부들에게 1년치를 계약하면 쌀장수도 대박이 난다. 정부미 혼합 비율을 조금만 더 늘려도 엄청 이문이 남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미곡상들은 서로 카르텔을 형성하여 노조 직원들을 후히 대접하고 쌀값에 난매가 형성되지 않도록 담합한다.
이외에도 피복비, 광열비, 사택배당등 노조가 혀를 댈 구석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기에 노조 위원장 한번하고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면 빙신 중의 상빙신이라 했다.
이것이 과거 광산노조의 모습이었지만, 오늘날 노조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국해이원까지 한 권모씨의 신고 재산만 30억이 넘으니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현대 자동차가 또 연례 행사처럼 파업에 들어갔다.
귀족 노조의 파업이다.
평균 연봉만 억대에 이르는 그들의 파업은 하등의 정당성도 이유도 없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사에 다름이 아니다.
근로자 평균 임금이 억대에 이른다면, 노조 전임자의 수입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거다.
현금(現今)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현기차의 노조가 저지른 과오다.
그들이 임금을 조금씩 만이라도 비정규직에게 양보했으면 그런 차별적 문제가 생길 수가 없다.
사측에서는 한 사람을 정규직화 하는데 수천만원씩 추가된다면 이를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억대 연봉에서 천만원씩만 줄여도, 아니면 백보 양보해서 상당기간 임금을 동결만 해도, 그 돈으로 비정규직을 얼마든지 구제해줄 수 있다.
노조가 노동자를 못살게 하는 노노갈등의 원천이 여기에서 생겼다.
우리는 울산이 디트로이트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벌써 중국이나 미국, 그리고 동구권에서 생산된 현기차의 숫자가 국내생산량을 추월했다.
그 강성 노조가 없는 곳을 향하여 해외로 또 해외로 진출 할 때, 현기차 노조는 누굴 상대해서 싸울까?
공동화(空洞化) 되어 버린 울산!
이건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다.
그들의 파업으로 당장 하청업체의 노동자는, 그 현기차 노동자들 보다 훨씬 더 박봉에 시달리는 그 노동자들은 일거리가 없어 놀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노조가 노동자를 죽이는 일이다.
같은 현대 그룹의 제철, 철강도 생산에 차질을 빚고, 현대 하이스코나 글로비스도 일거리가 없어진다.
노조가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하는, 노조가 회사를 살려서 더 많은 노동자를 불러들이는 그런 윈윈 하는 세상이 하루 빨리 왔으면 얼마나 좋겠나!!
진정 百年河淸인가.
癸巳 立秋節
豊江
첫댓글 모든 노동조합의 경우가 위와 같지는 않지요. 지극히 일부의 예를 변별없이 일반화시킨 우를 범하셨네요. 저는 전교조의 강원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잠시 학교를 휴직하고 전임으로 근무중입니다만, 현장의 일반 조합원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있습니다. 오히려 몇가지 수당이나 맞춤형복지등은 전임기간동안 지급이 안되기 때문에 어찌보면 임금이 하락된것이죠. 양대 노총이라고 일컫는 한국노총에 소속된 사업장들은 대부분이 어용노조의 색을 띠고 있으나 민주노총산하의 16개 산별노조에 가입된 노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기차등이 소속된 금속노조가 가장 많은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위원장이나 지부장이라고해서 돈방석에 오른
것처럼 왜곡하는것은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시작은 70년대가 아닌 광복직후, 1945년경 설립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줄여서 전평)이라는 조직이 최초의 노동조합이었습니다.
노조는 꼭 있어야 되지만, 현실을 무시한 노조는 없어야 되겠지요.
밥에 돌이 몇개-%로는 형편 없지만- 그런게 들어있으면 사람들은 밥이라 하지 않고 돌밥 줬다고 화를 내지요.
많은 선량한 조합에 어용노조나 현기차 노조 같은게 끼어있으면 전체 노조가 다 욕먹게 되지요.
그리고 내가 예시한 것은 70년대 광산촌 풍경이고 100% 진실에 입각한 거지요.
나도 그걸 보편화 시킬 의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노조의 시초는 어찌 되었든 광노가 가장 활발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