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두움 사이의 선택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있다
(사순제4주일2024.3,10)
2역대 36:14-17,19-23; 에페 2:4-10; 요한 3:14-21
요한 복음 말씀에는 상징성이
엄청나게 풍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방금 들은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도 그러한 예의 하나를
보게 되는데, 그 내용은 예수께서
니코데모스와 나누신 대화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
그 내용 중에서 “들어 올리는 것,”
영원한 생명, 어둠과 빛이 언급되는데,
- 이 모든 것이 빛을 거부하고
진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하느님의 큰 사랑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본문의 맥락을
되새기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 내용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렇듯 요한 복음 말씀에는 많은
묵상적인 구절이 나오는데 그런
구절을 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저는 오늘 요한 복음 말씀에 대한
설명을 좀 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요한 복음 말씀은
마태오, 마르코, 혹은 루카 복음
말씀만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한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삶과
공생활에 대한 성숙한 묵상으로
1세기 말에 쓰여진 복음 말씀입니다.
요한 복음 말씀은 프롤로그
또는 서론으로 시작합니다.
프롤로그는 예수님 이야기의 핵심
– 즉 예수님의 오심, 예수께서
누구이신 지, 예수님의 메시지,
예수님께서 당하신 거부, 죽음
그리고 부활을 발표합니다.
그 다음에 그 발표 내용은
그 복음 말씀의 나머지 전체를
통하여 놀랍도록 묘사된 상징적인
사건들로 실지 행동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렇게 전개되는 사건들
중에서 그 첫 번째 사건은 가나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인데, 예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요한 복음 말씀의 이야기는 보통
여러 단계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이야기의 기본적인
단계의 의미는 예수님의 연민의 정이
혼인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동이나
버린 신혼 부부를 당혹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의미이며, 두 번째 단계의
의미는 더욱 중요한 의미로 구약의 물을
신약의 새 포도주로 바꾸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의미로 요한 복음 사가는
예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요?
탈출기 19장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연기와 불과 지진으로 영광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 사가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가나에서 열리는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더 자신의 신성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인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이 여인을
초대하셔서 그 여인의 삶을 바꾸고
복음을 믿게 하셨다는 데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예수께서 마시실
물을 드린 데 대한 대가로 예수님
스스로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주실 영생에 이르는 샘물이 될 물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씀을 해 주실 때,
예수께서는 그 논의를 새로운 차원,
즉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샘솟게 될 하느님의 은혜를 주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이 멸시받는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
이미 시작된 수확 – 즉 그 수확을
위해 곡식이 다 익어 들판이 이미
하얗다고 말씀하실 때 – 예수께서는
수백 년이 된 문화적 장벽과 편견을
허무시고 예수님의 말씀의 전파
가능성에서 느끼시는 절박함과 흥분을
표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절정은 초막절 축제 때
일어나게 됩니다. 이 초막절 축제
기간 동안에는 항상 눈에 띄는 물
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러한
물 예식은 에제키엘 예언자가
본 환영을 기념하기 위하여
거행되었지요.
에제키엘 예언자는 메시아 시대에
성전에서 물이 넘쳐 흘러 유다 땅을
모두 비옥하게 하는 것을 환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한 환영은 그 시대에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쏟아 부어 내려 주실 풍성한
축복에 대한 이미지였습니다.
– 그런데 그 시대가 이제는 실질적으로
예수님의 사목활동을 통하여 지금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 축제 기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에
대제사장은 사람들과 행렬을 이루어
실로암 연못으로 내려와서 은으로
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후에 모든 백성이 그 대제사장을
따라 성전 성소로 돌아가 에제키엘이
본 환영을 기념하고 메시아의
새 시대의 축복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대제사장은 제단 위로
그 물을 부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던
가운데, 예수께서는 극적인 방법으로
하시던 말씀을 뒤바꾸셨다고 요한 복음
사가는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 사가는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받게 되는
성령을 언급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의미를 이 장면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살려주는 친숙한
연례의식을 반복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던 도중에
예수께서는, 벌떡 일어나셔서, 당신께서
바로 이런 모든 희망의 실현이라는
발표를 하시는 것입니다. – 즉 예수님
당신께서 바로 지금부터 하느님의 성령의
풍부한 축복이 넘쳐 흐르는 새로운
성전이 되심을 발표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육체적으로도 그러했지만,
아마도 영적으로도 항상 완전한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는 재빨리 그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온전히 다 하느님의 빛 속으로 완전히
들여놓는 데에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그 과정은 그 사람이 예수님께 대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지칭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처음에 그 사람은 예수님을
그저 “예수님이라는 분”이라고 말한 다음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나중에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어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인식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은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주님 저는
믿습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속에는 요한 복음 사가의
다른 수준의 의미들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신체적으로 완전하고, 영적인 시력의
회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반면에,
자신들이 완전히 깨우쳤다고 생각하는
일부 바리사인들은 어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한심한 사람들에게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내용은
저로 하여금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예수님과 니코데모의 대화 장면으로
되돌아오게 해줍니다.
예수께서는 복음 말씀을 통하여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요한 복음서에 나타난 이기들은
대부분 거절의 이야기입니다.
영적 빈곤과 영적 파탄의 시기에
요한 복음 사가가 쓴 것처럼 빛은
어둠 속에서 비추어지지만 어둠은 그
빛을 파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달라졌습니까?
우리 시대의 정신적 빈곤과 파산은
만연한 소비주의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아무것도 없이 있어야 할 필요성에서
분명하게 잘 드러나 보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어떤 비용도 너무 큰 비용이 되지
않으며, 그 어떤 부채도 너무 무거운
부채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안락과 쾌락과 더 나아가서
급기야는 성인 장난감을 얻어 가지기
위해서는 그 비용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전쟁을
함으로써 우리가 더 많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파산적인 생각에 따르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교황께서는 전쟁을 두고
“인류의 패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국이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적절한 방법으로 다른 모든 평화적인
선택지들을 제쳐두고 폭력을 계획할 때,
우리에게 희망적인 미래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어둠의 길이지 결코 빛의 길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께서 니코데모에게 빛과
어둠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성을
경고하신 지 오래되었지만, 그 선택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여전히 선택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한 선택은
하느님의 판단이 어디로 떨어지는
지를 결정할 선택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세상 끝날때.까지 선택과정 이겠죠!🙏🏻🙏🏻🙏🏻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아멘.아멘!
감사합니다 ~^^
🙏💕
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빛과 어둠의 선택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따를 수 있는 은총과 깊은 믿음을 청하며..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말씀 감사합니다.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3월9일]
📖말씀: 루카 16,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묵상
사랑은 말이 아니고 실천입니다. 사랑은 관심과 배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에게 선택된 백성인 우리는,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답게 친절과 온유와 용서를 실천하며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기도
영원하신 아버지, 언제나 제가 살아서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수 있게 당신의 자비로움으로 이끌어주소서.
💒실천해보기•곁에 있는 이웃에게 배려하기
♧복음화발전소 제공♧
신부님! 좋은말씀 김사합니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시고 복된 사순절되세요.🙏❤🙋♀️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3월10일]
📖말씀: 마태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 묵상
매년 되풀이되는 사순절 행사가 형식과 관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오소서 성령이시여, 제 마음에서 어둠과 이기심을 몰아내 주시고 추수 때에는 풍성한 소출의 결실을 얻게 해 주소서.
💒실천해보기
•단식하며 기도하기
♧복음화발전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