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지고는 못 살아”빚독촉브로커와 파산한 벤처
사회에서 만난 친구
오랜 만에 그가 찾아 왔다. 그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이다. 일 때문에 알게 되어 자주 만나다 보니 친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해관계로 만나서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다시 만날 일 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떠나면 만남은 유지할 수 있다. 그 친구가 그런 케이스이다.
그는 크리스천이다. 크리스천이지만 열려 있다. 그래서 대화가 통한다. 주로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데,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기 때문에 충돌할 일은 없다. 오히려 서로의 종교에 대하여 모르고 있거나 오해 하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 무덤가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자리에서 그로부터 이제 까지 들어 보지 못하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자살시도’에 대한 것이었다. 하도 삶이 괴로워 죽으려 하였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일이었다고 한다. 소주를 5병 사서 자신의 아버지 무덤가에서 마셨다고 한다. 소주를 마시고 술김에 바위에서 뛰어내리려 했다는 것이다. 안주 없이 마신 소주는 3병이었는데,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 다 마실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밀어 닥치자 온 몸에서 소름이 끼치고 전율이 일어나기 시작 하였는데, 일생동안 그런 무서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 순간도 거기에 있을 수 없어서 정신 없이 산 밑으로 내려 갔다고 한다. 그리고 버스를 탄 순간 안심했다고 한다.
이렇게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알 고 누군가 죽여주기를 바랬다고 한다. 그래서 차도를 무단으로 횡단하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 마다 차가 선다든가 피해갔고, 부딪치기 직전에 순간적으로 피해서 죽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하루 천원으로 버티고
그는 신불자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핸드폰도 오로지 수신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하루에 ‘천원’으로 버티는데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웠다고 한다. 그리고 일거리를 찾아 ‘도시의 들개’ 마냥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는데, 주로 전철을 활용했다고 한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거미줄 같이 전철과 지하철이 되어 있어서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는데, 역까지는 도보로 이동하지만 전철이나 지하철의 경우 염치불구하고 개찰구를 뛰어 넘는다고 한다. 그런 그는 한 때 잘 나가는 벤처회사 사장이었다.
벤처회사 사장이었을 때
그가 벤처회사 사장이었을 때 언젠가 광화문 부근을 지나다가 노숙자를 보았다고 한다. 너무 불쌍하고 안되 보여서 차를 세우고 ‘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주를 사서 마시지 말고 꼭 밥을 사먹으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 돈을 받은 노숙자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가 부도가 나고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자 하루아침에 그 역시 노숙자와 다름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그는 벤처회사 사장을 하였을 때 DJ정부시절 ‘신지식인’에 선정되어 청와대 모임에도 참석하였다고 한다. 외국에 비즈니스 출장도 다니고, 바이어 접대 등 수 백만원, 수 천만원의 결재를 하였다는 데, 빚쟁이가 되고 보니 천원 한장이 아쉬운 입장이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죽을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빚독촉’ 때문이었다고 한다.
빚쟁이로 내 몰려
사업을 하면서 기보 등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의 경우 액수가 너무 많아 평생 벌어도 이 번 생에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많은 돈이라 한다. 또 거래업체에 대한 미결대금도 있었는데 이 또한 부도가 나서 갚지 못한 것이라 한다.
거래업체 미결대금의 경우 삼백만원 짜리가 있었는데, 해당 업체의 사장은 밀린 삼백만원을 받아 내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그 업체는 거래하면서 그 이상의 이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부도가 나자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인격적 모독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모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돈을 받아 내는 채권대리인 즉‘브로커’로부터 당한 것에 비하면 약과라는 것이다.
깐죽거리는 빚독촉브로커
빚독촉브로커는 월급을 받고 고용된 사람인데, 일을 성사시키면 인센티브를 받는다고 한다. 월급은 적지만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에 채무자를 닥달 한다는 것이다.
그런 브로커와 대면 하였을 때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욕설이나 협박 등은 없지만 은근하게 몰아 부치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이런 브로커의 행태에 대하여 “깐죽거린다”라는 표현을 썼다. 깐죽 거리면서 “도둑질이라도 해서 빚을 갚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밀어 붙이고 인격적으로 모욕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모욕과 수모를 겪으면 주먹을 몇 번이나 폈다 오르렸다 하는데,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브로커를 향해 거의 주먹이 나갈 지경이라는 것이다. 브로커는 일부로 이렇게 약을 올리는데, 어느 경우 얼굴을 대면서 “쳐봐, 쳐봐”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분을 이기지 못하고 치면 그 즉시 구속이라 한다.
그래서 깐죽거리는 이야기를 몇 시간에 걸쳐서 듣고 오다 보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라 한다. 그래서 잠자기 전에 소주를 마시는 버릇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깐죽거림이 한 두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용된 브로커들의 일이고 하는 업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점심전이나 저녁먹기 전 허기진 시간에 깐죽거림을 당했을 때 밥맛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너무 미안해
그런 고통을 6년이나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기(氣)’가 모두 빠져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만났을 때는 많이 변해져 있었다. 기가 어느 정도 살아 나 보였기 때문이다. 어려운 고비는 어느 정도 넘긴 것 같아 보인다. 달리 표현하면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아내와 자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노숙자가 되거나 죽었을 지 모른다. 그런 그는 늘 아내와 두 자녀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한창 커 나갈 시기에 다른 아이들 처럼 해 주지 못한 것을 말한다. 돈이 없다보니 학원비를 줄 수 없어서 미안 하였고, 더구나 가족이 아프기라도 하였을 때 병원에 갈 처지도 못 되었을 때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빚을 갚기 위한 눈물겨운 이야기들
사실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몇 차례 블로그에 올렸다. 2008년 올린 글 (어느신용불량자의 꿈, '제로베이스'만 된다면, 2008-07-17)이 메인에 올라가서 댓글이 많이 달린 적이 있었다. 그런 댓글에서 빚을 갚아 극복한 눈물겨운 스토리를 많이 보았다. 그 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이너스 인생에서의 출발
한때 저도 어려운적 있었지요.세상을 몰랐던 나이에 몇푼번다고 아낄줄몰랐던 시절.하지만 내 능력을 벗어나면 절제하는 마음의힘과 순수한마음이라도 있었기에 이렇듯 다시 섰나모릅니다. 단 한번의 내 한계 능력을 벗어난 어리석음으로 십몇년을넘게 빚으로인한 가난을 벗어나기위해 허비하며 작은 희망이라도 잡고자 또 수년을 노력하며 지금은 내몸하나 안주할수있는 작은 소망하나 이뤘읍니다.가난이란길 진짜 서럽습니다.외로움.소외감.시선.부러움.....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마음 모를겁니다.전 어디 디델구석도 없었읍니다.셋방살이하는 부모님.살려구 발버둥치는 형제들을보며 셋방하나 구할돈이라도 구걸하러갔던 내마음 그리고 말없이 돌아서오던 그날이 눈에선합니다.그때의 눈물이 ... 이것이 세상을 알게된 첨입니다. 그리고...마이너스 인생에서의 출발... 집에선 라면하나.그리고 일자리에서 한끼...그리고 두세달후엔 집에서 라면대신 밥한끼... ~~모든건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봅니다. 전 "20년 걸렸읍니다".
(풍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제 일 같아..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제 일 같아..리플까지 꼼꼼히 읽어봤습니다. 저 역시 중소기업을 3년반하다가 작년 말에 망해서 상황이 아주 안 좋습니다. 어차피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3년반간 좋았던 적도 많았으니 현재 상황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채무가 6억5천 정도네요. 에휴^^. 회사가 무너지던날 직원들과 마지막 회의하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절 믿어준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투자자분에게 죽을죄를 졌으니.. 너무 마음이 아파 몇일간 잠도 못자고 공황상태로 한달은 지낸거 같습니다.
(유이)
흘린 눈물 만큼,땀 만큼
저희 가정도 IMF의 여파로 10년전 부도가 났었죠. '"부도"라는 단어 자체가 내 인생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줄만 알았던 시절이었어요,, 현실은 너무나 냉담했고 호시절때 내 도움 받은 이들도 내가 지들에게 연락올까 겁내던,,,기막힌 상황이었지요. 그 참담함 이란,,물질 보다 인간의 배신감에 더 멍들었다고 할까요.. 지금은 모으는 수준까지는 못돼도 애들 다 반듯하게 커주었고 건강함에 감사하면서 살아 가고 있어요..
(희망)
두번씩이나 부도를 맞고
저는 두번씩이나 부도를 맞고 두번의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첫번은 10년이 걸렸고 지금은 5년정도 되었는데 조금씩 복구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그모습 많은 동감이 갑니다.반드시 일어 설것입니다. 꼭 일어서세요. (mchhkh)
하루 천원으로 때우며
저도 4년전 사업실패와 부도, 이혼. 자살까지 시도하고 님과 같이 하루 천원으로 때우며 살아가든 시절이 있었습니다..아니 하루 천원도 없어서 밥을 굶으며 살아가든 나날이였습니다..동종업계에서는 알만한 사람이여서 자존심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전화조차 못하고 가족에게도 버림받으며 살아왔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에 서글픔과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노숙 생활은 아니였지만 잠은 친구의 사무실 책상위에서 자고 이런저런 컨설팅을 해주며 나의 지식을 님과 같이 빼앗기는 신세였죠..적자나는 회사를 한달만에 정상화 시켜놓으니 회사를 대표가 매각하고 반복되는 생활에 구걸을 해서라도 밥을 먹을수 있는 노숙자가 더 부러울때가 있습니다..그래서 한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결단에 필요하더군요. 결혼한 누나집으로 염체 불구하고 들어갔습니다..짐은 옷가지 한가방 뿐이고..그곳에서 식사가 해결되고 나니.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더군요..제로에서 최저의 밑바닥에서 다시작하자 였습니다. 저와 연관된 경력을 바탕으로 가장 강하고 자신있고..실패하지 않는 아이템이 무엇일까..자본금 없이 할수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판단하고 결론을 내린것이..업계의 제품을 판매하여주고 수익을 남기는 것이였죠.,,.사실 영업은 젬병이였지만..한끼의 식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죠..여기서 음식에 대한 문젠해결하고 300 만원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하고 또 발전하고..레별업을 시켜서.이제는 동종업계의 2위자리까지.. 2년만에 이루었습니다.. 저역시.신용불량에..부채에 정말힘들었습니다..그리고 은행을 전혀 이용할수 없었구요..신용불량자에게는 손발을 묶어놓코..전쟁에서 싸우라는 것이드군요..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예전의 한끼 식사를 생각하니 두려울것이 없었습니다..그래서 마지막 신규 업을 시작한지 7개월만에 23억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모든것은 자신의 생각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도 언젠가는 성공할수 있을것입니다..용기잃지 마시고 파이팅..하세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
그래도 가족이있어 행복해요
불과4년전만해도 아파트에 상가에 고급 승용차에 참 많지않은 나이에 금전적으로 과분하게 살았죠. 윗글을보며 삶이 무언가 싶네요?
무리하게 요식업에 뛰어들어 만삼년만에 재산 다잃고 2억되는 빚만 남았네요. 누굴 원망할수도없고 모든게 다 내잘못이니... 지금은 가족의 도움으로 조그만 식당을하며 재기를 꿈꾸죠. 정말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 제모습은 참담했겠죠.
제가 잘살때 도움도 되지않았고 약간은 무시했던 부모님과 형제들이 지금에 가게를 차리는데 도움을 주었을때,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지... 요즘은 세달된 딸을보며 많이 웃어요. 힘들어도 딸만보면 그냥 힘이나요. 인간관계가 그렇죠. 잘살?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참 그땐 폼도잡고 돈도 많이쓰며 큰소리?죠. 친구요? 이젠 돈없으면 못만나요! 친구도 안?지만 만나면 공짜가 없으니까... 그래도 가족이있어 행복해요. 한번도 쉬는날없이 일하며 놀러도 못가지만 일끝나면 집에갈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날 기다리는 가족이 있으니.... 열심히해서 빚도갚고 잘살아야죠. 바닥에 떨어지니 모든게 현실이고 진지해요. 윗글보고 다시한번 힘내요. 감사합니다.
(평상심)
가장 중요한건.. 독한 마음가짐..
재기하는게 그리 불가능하지도 않고.. 파산신청 안하고 해보신다고 하셨는데.. 한번 해보세요.. 저정도의 마음으로는 좀 어렵습니다.. 저는 19살 가출.. 30살때까지.. 미친듯이 벌었습니다.. 80년대 후반이었는데, 하루 2시간이상 자본적도 없구요.. 100만원 모아서 제로베이스 가실 생각으로.. 그정도 생각이 아니라.. 100만원 모아서.. 채권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갚으신다는 독함으로.. 그런 마음이라도.. 정말 힘드실겁니다.. 저는 그 당시 젊음이라는 무기라도 있었으니까.. 저역시 가출한 동안.. 학교도 다 마치고.. 군대도 현역 갔다오고.. 다 했습니다만.. 우유배달 한탕 뛰고, 노가다 뛰면서.. 그렇게 1년 버티니.. 월세낼 만큼은 금새 모이더군요..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집니다.. 물론 그 후에도 별거 다 했었죠.. 다 필요없습니다.. 정말 힘들면.. 그런 생각은 배부른 생각입니다.. 고단한 하루를 알코올로 날린다.. 가능하면 힘들게 힘들게.. 제로 베이스로 올라가셨음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건강은 꼭 챙기시면서..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까꿍이)
도서관에 길이
IMF때 공장문닫고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개월 전에 신용보증기금 빛도 참고로 저는 최종학력이 고졸입니다.
(바담)
12시간 맞교대 하며
저 한참유행한 자살사이트에 약까지 구입의뢰한 사람입니다.김대중정부때 카드..폭발적인 현금서비스와 대출로 국내경기부양하고 대량빚쟁이를 만들때 저도 그돈으로 주식상투잡고 인생막접을려고 했습니다.
지금 나이 41 중소기업에서 12시간 맞교대 2년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빚은 배드뱅크와 신용회복위원회 두군데서 갚아나가고 있고요.일용직..나가면 일있습니다.안산에 한번가보세요 인력파견회사가 100군데 넘습니다. 저도 일용직다니다 정식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공무원그만두고 택시할때 50된 손님이 한말이있습니다.살려고 하면 언젠가는 한번쯤길이보인다.
ps 철야 잔업 하루도안쉬고.. 강영호씨말처럼 거의 1년동안 회사에살았습니다.일만하고 죽는줄알았죠. 너무힘들어서..죽는다하고 일한번해보세요
(나두 한마디)
저도 신불이었어요.
다음에 댓글은 처음달아 봅니다.. 얼마전에야 다 갚는데 8년 갚았습니다...한번은 출근을 해야 하는데 진짜 십원한장 없어서 출근을 못했습니다...여기저기 빌려봤지만 못빌렸습니다...그때 정말친구한테 말했더니 " 어림없다!!"는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그친구 지금도 만나지만 그때처럼 친하지는 않지요. 처음 얼마안된빛이 이자붙고,..대환하고,...연체돼서 총상환에 또 이자붙고,..베드뱅크하구... 나중에 알았는데..저같은 사람이 300만명인가 돼더군요...그때가 돼서야 공익광고 협의회에서 광고하데요..카드막쓰다가 수렁에 빠지는 사람을 클로즈업하는 광고...ㅋㅋㅋ 그후로 저는 성격이 괭장히 개인적으로 됐어요..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생기더군요. 여하튼 신용불량자말고도 거기에 준하는 분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루빨리 힘낼수 있는세상....희망이 있는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저는 팔짜라는 미신을 믿거든요...언젠가...언젠가 살만한 시간이 오리라 굳게 믿습니다...
(미소소리)
아직 끝이 안보입니다
정말 사는게 뭔지 싶네요. 저도 작년에 어쩌다 알게 된 사람하고 사업을 벌였다가 그간 모아놓은 돈 싹 다 까먹고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심정으로 낚시대 챙겨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람을 만나기 싫어 낚시대 드리워놓고 하루종일 굶기도 했었죠.
저도 현재 마이너스이고 이 글에 나오는 분처럼 제로베이스를 만드는 것이 현재 목표입니다.
한 때는 몇 만원 짜리 고지서 못내는 것도 질색했던 사람인데, 요새는 어쩔 수 없이 많이 둔감해져버렸네요.
현재는 이를 악물고 일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끝이 안보입니다. 열심히 해서 살아내야죠.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아…)
제로베이스... 그날이 제게는 세로 태어나는 날
눈물 나네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제 처지에... 천원짜리 한장들고 김밥을 사먹어야 하나 사발면을 사서 물을 많이 부어서먹어야 하나... 얼마전의 일입니다 물론지금도 신불... 사채 은행 다갚았습니다.
그런데 국세만큼은 탕감이 안된다더군요.그럴줄 알았으면 세금먼저 갚고 다른돈 남겨두었으면 파산신청이라도 할수 잇었을텐데... 남들에게 피해안주고 혼자짊어지고 내 힘으로 언제든 세금만 갚으면 된다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지금도 하루하루 근근히 ... 휴~ 제로베이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날이 제게는 세로 태어나는 날일 겁니다... 사발면에 김밥한줄 함께 먹을수 있는 날은 얼마나 행복한지...
(독거돌싱)
하루 두 탕씩
저도 6년전에 신불자엿지요. 주식으로 8천날리고 빛 3천 남기고,,회사 그만두고,3천갚는데 누구한테도 손 안벌리고 딱 3년 반 걸리데요.
밑바닥에서 일해서 월급80만원 받고,80만원중에 75만원 빚갚는데 ?습니다. 일당제로도 해볼려고 햇지만 일당제는 버는 족족 나가더군요,월급으로 받어야 그래도 빚 갚을수 있습니다. 일할떼가 없다고요? 큰회사라던지 사무직,편한데만 찾는가보군요, 그분께 하루 일을 두탕씩 해?냐고 물어보세요.전 빚갚기위해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까지일하고, 9시에 알바시작해서 새벽 2시까지 일도 해?습니다. 저도 아무것도 모르고,처음 일해보는 곳에서 죽도록 열심히해서 80만원에서 시작해서 2년만에 월급 250만원까지 받어?습니다. 지금은 그회사 나와서 그계통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기가 두렵고 힘들지 시작하고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LCH)
가족이 힘이란 말에 공감
가족이 힘이란 말에 공감합니다. 그냥 월 100만원이라도 받겠다.... 사정이 좀 그러니 실력을 믿고 일하게 해주라... 누구의 도움없이 자리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후에는 다시 일어설수 있습니다.
(희망봉)
서울역에서 노숙할 때
글 ?일엇습니다...저도 10년전 서울역에서 노숙한 때가 생각이 나네요... 참고로 전 소규모회사를 운영하고 있답니다..연락이 닿는다면.꼭 연락 주셔요.
(OOO)
2008년 올린 글에 대한 댓글 중 일부이다. 글을 보면 재기하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 듯한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루 천원으로 버티면서 밤낮으로 일하여 빚을 모두 갚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재기하는 방법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한 글, 또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글도 있다. 모두 빚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형벌과 같은 삶
그 친구는 빚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고 하였다. 빚으로 인하여 죽음 직전까지 내 몰렸기 때문에 빚만 없으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하에서 그가 재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패한 벤처사업가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 주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이번 생에 다 갚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빚을 안고 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이번 생에서 댓가를 톡톡히 받고 있다. 마치 저승사자와 같은 빚독촉브로커와 마주 않아서 깐죽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은 바로 고문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곳 현실이 바로 ‘지옥’임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형벌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그의 희망은 아내와 함께 ‘귀농’하는 것이라 한다. 그것도 바다가 가까이 있고 강이 있는 따듯한 산자락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바다나 강이나 산에서 필요한 만큼만 먹거리를 구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2012-02-11 진흙속의연꽃 |
출처: 이 고뇌의 강을 건너 원문보기 글쓴이: 진흙속의연꽃
첫댓글 부루나님 뼈저리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윗글처럼 저도 12`3년전에 같은 처지를 경험했지만 저는 제로베이스 였읍니다.
23년의 정든직장과 45년의 인생잔액은 48만원에 불과했읍니다.
그러나 불법인연으로 몇년 안돼어 전국에 불교용품을 공급하는 불교통상까지 운영하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윗글과같은 처지의 여러분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그들의 재활에 7년여를 힘써봤지만 결국은
저홀로 출발점에 다시 서있더군요.
자세히 쓰자면 퇴직 2년전부터 지금까지 약 12~3년이 제인생 거의 전부였던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했던것 같습니다.
다음에 인연이된다면 자세히 애기할 때가 오겠죠.
감회가 깊었읍니다.
저도 이민과 다단계..의약분업에 빚을지고..
자식 둘 대학보내느라..카드값 결제일이 오면 죽을꺼 같고..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았습니다.
죽을려고 해도...죽지 못했습니다
죽는게 무서워서..ㅎ
언제 뵈면 가슴시원하게 말씀올리지요
이젠 그 자식들이 커서 ..희망을 갖게 해 주네요
잘 사는 것보다..건강하고 빚없이 화목하게 사는걸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날 입니다
_()_
부루나님은 참 좋은 분이시군요..대부분 사회에서는 피하고 잊어버리는 관계를 아름답고
용기를 주시니 읽어내려가면서 잔잔한 감동이
요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좌절하는데 많은 보탬이 될듯 싶네요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감사올립니다
_()_
부루나님~
대부분 어려울때 돈부탁을 하시는 상대방이
자기 주변에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들이 대상이랍니다.
처음엔 은인~ 나중엔 웬수가 되는데
결국 결과가 좋지 않으니 은인과 웬수로 나뉘어지는듯 하네요
이제는 좋은 가족도, 친구도
냉철한 판단력과 지혜가 없으면 너무나 쉽게
나쁘고 모진 인연이 될수도 있답니다.
그때는 정말 남의 빛만 없으면...
하고 하다 하다 안되면 우울증에 가정파탄~
그리고 자살미수..본인도 힘들지만
지켜보는 가족들도 무척 힘들어 하지요
부루나님은 밑바닥까지 갔다 오셨다니 이 세상이
더 황홀하고 더 경건해지며 더욱 더, 성실하게
살 이유가 여기에있네요~ 물론 가족들도 대단하지만
그런데 윗글의 친구분은 자기 의지가 강한분인것 같습니다.
대부분 막다른 골목에 왔을때 자기 자신을 오픈 안하고
더욱 더 기발한 한탕주의로 가기가 쉽거든요
다른곳에 가서 투자대상자를 섭외하고, 또 다른곳에 가서 거창하게 이야기를 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꾼이 되어가는 거랍니다.
진실된 친구나 가족은 바로 바른말을 하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또한 마음이 열려있지 않으면 헛수고가 되기 십상~
우리가 살면서 감사하여야 할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윗글을 보고
모두들 각자 더 진실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할듯 싶네요-()-
네 스님
진실돼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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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코끝이 찡하네요~ 저도 저런 경험의 소유자..사실 옛날에 구정물에 손 안담그고 살았는데
제 손보시면 아마 놀랠겁니다. 못하던 파출부서부터~ 억척같이 살아온 이유는..그래도
가족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지금은 행복합니다.
빛 독촉에 시달리지 않아서요~
동감.동의합니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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