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기억록] 이태영을 기억하여 기록하다오연서의 기억록. 소외된 여성들의 편에서 길고 긴 투쟁을 이어간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모든 인간이 평등하길 바랐던 이태영 박사를 기억하여, 기록하다.www.youtube.com
△기억록☞ 이태영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기억록 기억하다에 부가해서 설명드리자면...
저는 이태영 박사님에 대해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습니다.
이태영 박사님은 워낙 유명하신 분이죠.
부군되시는 정일형 박사님도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셨던 분이십니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인한 합병으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 남편 되시는 정일형 박사님과 함께.
이태영(1914년 8월10일~1998년 12월17일)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정일형 박사가
부군.
아들은 정대철 전 의원.
손자가 정호준 전 의원.
2살 때 광산업을 하던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와 두 오빠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어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를
졸업한 뒤 남편의 응원으로 1946년,
30대 시절에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52년 고둥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지만...
하지만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야당 의원 정일형의
아내라는 것을 트집 잡아
판사 임용을 거부하자
1954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합니다.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야당 국회의원의 아내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소박맞은 아내, 첩, 시국사범들이
그녀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게 되었고,
이들을 변호하면서 법률이
남성에게 유리하도록
적혀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가족법 개정과
호주제 폐지운동에
앞장서며 1994년까지
활동하다가 은퇴하십니다.
1996년에 당선을 장담했던
아들 정대철이 9시 뉴스
앵커 출신의
신한국당 박성범
후보에게 패해 낙선하자
정신적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그에 따른 악영향으로 노환까지
겹쳤는지는 몰라도 치매에 걸려
2년 간 가족도 못 알아보고
지내시다가 1998년12월17일에
별세하셨습니다.
장면총리, 남편 정일형과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이자 정치적
선배로 꼽을 수 있는 분.
정일형이 김대중과 같은 계보에서
활동한 인연도 있었겠지만,
민주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5.16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해 폐인처럼
지내던 김대중 의원에게
자신의 후배이자
비서 이희호와의
결혼을 주선한 사람도
바로 이태영 박사입니다.
1998년 세상을 떠난후,
서울특별시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
남편 정일형 박사와 함께
합장되었습니다.
이 두분의 아드님은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정대철 민주 평화당 상임고문입니다.

이분들의 손자가 정호준 민주평화당
19대 국회의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