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 9:24)
인간은 죄 아래 있기에 선을 행할 수 없고 의인은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이가 있다면 이들의 의는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다른 의다. 이처럼 세상에 없는 다른 의가 주어지고 그 의를 근거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들을 성도라고 한다.
우리가 인간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심판이 당연한 죄인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아 의인 된 것은 놀라운 은혜고 영광이며 상이다. 그래서 성도라는 신분에 담긴 내막을 알게 되면 자기에게 의의 가능성을 두지 않고 다만 의가 되셔서 모든 죄를 덮으시고 의롭다는 선언을 받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본분으로 삼게 된다.
성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로 이루신 하나님과의 화목의 관계에 마음을 둔다. 그리고 항상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 이러한 성도 됨은 죄인인 인간의 본래 자리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따라서 성도는 선한 인간이 되어 선한 일 행하는 것이 예수께 영광이 된다는 헛된 생각을 품지 않는다. 자신의 본래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만으로도 성도로 부족함이 없으며 그것이 예수님께 영광이 됨을 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믿음조차 인간과 무관한 하나님의 은총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순전히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선택하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기의 뜻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 된 관계로 함께하게 된다. 인간의 본래 자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의를 행할 수 없는 무능한 자로 의로 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일에 하나가 된다. 누구에게도 자랑할 자기 것은 없고 죄를 용서하시고 의인이 되게 한 십자가만 자랑한다. 이것이 성도의 영광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죄인 된 인간이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 된 것이 하나님께 받은 놀라운 상이며, 성도가 되어 십자가를 자랑하고 증거하는 복음의 일에 참여하게 된 것이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인간의 일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수고와 공로가 근거와 이유가 되어 누리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상을 죽은 후에 천국 갔을 때 생전에 행했던 열심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생각한다. 목사는 상을 미끼로 교회에 수고할 것을 강조하고, 수고하지 않은 믿음은 게으른 것이며 천국에서 상을 받지 못한다는 말로 협박한다. 이러한 거짓말에 매인 사람들은 열심히 달음질하는 것을 바른 신앙으로 알고 상을 받기 위해 힘쓰게 된다.
이러한 신앙생활에 자유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스스로 성도라고 하면서도 성도에 담긴 하나님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상 받은 자로 존재하는 자유가 없고 상을 받기 위한 수고만 있게 된다. 이것이 자유가 없고 자유를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만 된다. 우리가 교회 문턱을 넘는다고 성도 되는 것 아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복음을 알 수 없고 믿음 또한 불가능하다. 구원도 천국도 선을 행할 수 없는 우리가 넘볼 영역이 아니다.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은 오직 심판과 지옥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부르심으로 성도라는 신분을 얻고 복음에 눈이 열리고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된 모든 것이 도무지 받을 수 없는 상과 영광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한순간도 놓치면 안 된다.
이처럼 성도는 상을 받았고 영광된 신분의 사람이기에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 안에서 부족하거나 미흡한 것이 없는 상태로 시작하며 자신의 노력과 수고로 부족하고 미흡한 것을 채워야 할 것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 이루신 완성을 모르는 것이 복음을 모르는 것이고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받기 위해서 열심히 달음질하는 수고에 힘을 쓰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를 위해 달리는 향방 없는 달음질이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경쟁심을 유발한다. 물론 바울이 경쟁심을 유발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한 속성이 그런 뜻으로 알아먹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달리기 때문에 자신이 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함께 교회를 다니며 형제라 하면서도 서로 더 잘해야 한다는 경쟁 관계가 된다. 이러한 경쟁심에서 상급의 차등이라는 사탄의 것이 나온다.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는 말은 숫자가 아닌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속하여 한 몸으로 있는 하나 된 관계다. 그렇다면 개인이 받는 상은 없고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여 하나 된 성도로 받는 상만 있으며 여기에 차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결국 상급의 차등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된 몸의 관계를 부정하는 사탄의 사고방식이며 천국은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성도는 십자가의 피의 공로라는 단 하나의 방식과 원칙에 의해서 존재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가 죄로 규정되고 예수님의 피만 의로 드러내는 것이 성령의 일이다. 그래서 성도는 성령에 붙들려 인도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은 의미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된 관계로 달음질하는 것이며 이들 한 사람이 상을 받는다. 성도 된 상이 썩지 않을 면류관이라는 완성품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는 말은 상을 받는 한 사람의 달음질을 본받으라는 뜻이다. 자기의 상을 위한 개인적인 달음질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가 아니라 나 하나가 승리하고 상을 받고자 하는 혈과 육의 싸움이기에 버림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바울이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라고 말한 것은 바울도 개인의 공로와 업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버림을 당할 것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기 몸을 쳐서 자기의 것은 배설물 같은 더러운 것으로 돌리고 그리스도의 피에 복종하게 하는 것이 바울의 달음질이며 이러한 방식의 달음질에 참여한 그들이 상을 받는 한 사람으로 함께 하는 성도다.
-은석 교회 신윤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