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
박선자
저녁 밥상에 호박잎을 쪄 놓고 먹지 못한다.
다섯 살 어린 시절 생각나 목이 미였다.
엄마는 강 건너 마을에 복숭아 팔러 가시고,
두 살 된 동생이랑 집을 본다.
해는 벌써 중천에 걸려
이른 점심을 감자 두 개 물 한 그릇으로 배를 채웠다.
동생은 방문턱에 걸터앉아 거북이 목을 하고
삽짝 밖을 한없이 바라보며
엄마 언제 와 하며 울먹였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 어두워지는데
엄마는 오시지 않고
배고파 보채는 동생 달래려고
담장에 걸린 호박잎 뜯어서
수제비 끓여 보겠다는 마음에,
아! 이를 어째
성냥불 켜질 못하네
호박잎 수제비는 생 풀떼기가 되어 버렸고.
빈속은 쪼르륵 꼬르륵,
배고픔과 무서움에 깜깜한 밤 동생을 부둥켜안고 울던
그날이 생각나,
맛있는 호박잎 보기만 하여도
가슴 아린 먹먹함이 스며든다.
박선자 시인의 시, 「호박잎」을 읽습니다.
시, 「호박잎」은 1960·70년대를 살아온 세대의 체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그 시대의 우리나라는 가난했습니다. 세계에서 몇째 가는 빈국이었습니다. 당시는 대가족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지요.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집에서 장녀가 엄마 대신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습니다. 장녀라고 해 본들 열 살을 조금 넘기지 못하거나 갓 넘기는 정도였지요. 시, 「호박잎」에 등장하는 장녀는 첫째 연 “저녁 밥상에 호박잎을 쪄 놓고 먹지 못한다./다섯 살 어린 시절 생각나 목이 미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다섯 살입니다. 지금도 ‘호박잎’을 보면 다섯 살 그때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엄마는 강 건너 마을에 복숭아 팔러 가시고,/두 살 된 동생이랑 집을 보”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엄마를 기다리는 동생을 달래는 동안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 어두워지는데/엄마는 오시지 않고/배고파 보채는 동생 달래려고/담장에 걸린 호박잎 뜯어서/수제비 끓여 보겠다는 마음에,” 시적 화자인 ‘나’가 준비했으나 “아! 이를 어째/성냥불 켜질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 간단한 성냥불을 못 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성냥도 귀했을 뿐 아니라 성냥이 있더라도 불량해서 어린아이는 제대로 켤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호박잎 수제비는 생 풀떼기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날 “배고픔과 무서움에 깜깜한 밤 동생을 부둥켜안고 울”었던 것입니다. 시적 자아인 ‘나’는 그날의 기억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아픔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박잎 보기만 하여도/가슴 아린 먹먹함이 스며”들어 지금도 “저녁 밥상에 호박잎을 쪄 놓고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시절의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것입니다. 가난으로 인한 아픔이 에너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에게는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어린시절 시골 할머니가 쪄 주신 호박잎이 생각납니다.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우리네 어린 시절은
다 그랬지요.
육이오 지나고 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슬픈 사연들 가슴에
품고 악착같이 살았어요
즐감하고 갑니다
화이팅~
^-^*
모두가 육십년대에 지나온 지금은 그때 그시절 생각만 해도 눈물이 글썽 입니다.
난 부엌에 매달아 놓은 보리밥을 호주머니 넣고 먹든기억과 키가작아 내려 먹다가 업질러 혼나는기억 들이 생생 합니다.
추억을 되살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5살이면 성냥불
켜기가 당연히 힘들지요.
시인님의 목 멤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생각하니 호박잎 많이도 먹었네요 그 시절로 다시 가라하면
나는 못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