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의 낙랑이 과연 한반도에 있었던가?
낙랑관련 기사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20년(서기 37) 왕은 낙랑을 습격하여 멸하였다.
대무신왕 27년(서기 44) 9월에 한나라 광무제가 군대를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았으므로,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겨울 10월에 왕이 죽었다.
모본왕 2년(서기 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 을 쳤으나, 요동태수 제융이 은혜와 신뢰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서기 37년 고구려가 낙랑을 멸하자, 한나라 광무제가 서기 44년 9월 낙랑을 정벌하여 다시 군현을 설치하였습니다. 10월 대무신왕이 죽은것을 보면 9월 광무제의 정벌 결과 전사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때 고구려는 한나라에게 대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때 점령한 지역이 한반도이며 그래서 한반도에 낙랑군을 설치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낙랑군이 한반도에 설치된 것이라면
고구려는 후방을 공략당하여 한나라에게 와해되었던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5년 뒤 모본왕이 하북성 산서성 일원을 어찌 공략하였을까요?
5년전 고구려를 대파하고 한반도 일원에 낙랑군을 설치하였다면 고구려가 감히 하북성과 산서성을 점령하려고 출병을 할 수 있었을까요?
후방에 한나라의 낙랑세력이 버티고 있는데 감히 하북성과 산서성으로 출병할 수가 있는지요
과연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요
첫댓글 전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만일 고구려의 태원등지의 습격기사를 사실로 본다면 속도을 앞세운 침투기동으로 치고 역시 신속하게 빠져나온걸로 봐야할 것이고 이것은 대규모의 원정군이라기보다는 역시 소규모 정예의 기동화된 병력으로 이해가능합니다. 고구려가 후방을 포기할 정도의 주력을 쏟아부었다고 할수는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