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遺傳子, gene)는 영자, 명자, 순자, 공자, 맹자 등등의 경우처럼 어떤 핵심적인 글자에 중국식, 혹은 일본식 접미사인 아들자(子)자(字)를 붙인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글자는 물론 ‘유전’(=궁극적으로는 기원)이다. 그리고 ‘유전’은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구별되기 힘든 것, 또는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과 확연히 구별되도록 해주는 ‘코드’다. 생물학자들이 처음에 생각한 ‘코드’의 비밀은 바로 염색체(chromosome)에 있었다. 염색체에 유전이 되는 고유 물질이 있다고 믿었는데, 현미경으로 염색체를 살펴보니 염색체는 호두처럼 생긴 핵(nucleic)의 산(acid)과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쥐를 이용한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 유전 물질은 단백질이 아니라 핵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핵산의 일부 유형인 DNA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DNA 뿐 아니라 단백질에도 유전되는 물질이 있다는 의미 있는 실험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맨 뒷부분에 다시 간략 언급)
DNA는 이중나선 모양으로 생겼다. 이를 밝혀낸 두 과학자 왓슨과 크릭은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왓슨과 크릭의 연구 뒤에는 플랭크린이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그녀는 유대인과 여성이라는 편견에 시달렸고 방사선을 이용한 실험에 몰두하다가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요절했다. 그 바람에 DNA 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죽은 사람은 노벨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DNA는 생물마다 다르고, 또 종에 따라 따르다. 인간의 경우 DNA 중 99.8%가 똑같지만 0.2%가 각각 다르다. 서로 다른 0.2%의 부분이 인간을 서로 구별되게 만든다. DNA가 다르다는 것은 “DNA를 구성하는 염기의 서열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DNA의 서열이 바로 인간의 특징을 이루는 ‘코드’인 것이다. 하지만 DNA의 서열이 인간의 특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다운증후군과 같은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알려지지 않았다. 즉 DNA 서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 뼈 등에 남은 DNA 서열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동안 유물과 유적으로 추정해 왔던 우리의 정체, 혹은 뿌리를 좀 더 분명하게 밝혀낼 수는 있다. 현대 인류의 기원은 여자의 경우 15,000년에서 25,000년 전의 인류인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남자들의 조상은 기껏해야 8,000년 전이 가장 오래 전의 조상이고, 그 이전의 뼈 흔적 등에 남은 DNA 서열은 현대 인류의 DNA 서열과 다르다. 남자의 기원이 여자보다 더 짧은 이유는 전쟁 등의 과정에서 여성은 생존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남자는 몰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가 미국과 프랑스로 각각 입양된 후 서로의 존재를 모르다가 나중에 만나는 일이 있었는데, 이들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쪽의 SNS 활동을 본 친구가 다른 쌍둥이에게 그 존재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똑같은 얼굴과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일란성 쌍둥이로서 DNA 서열이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쥐를 통한 실험 결과 DNA 서열이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라 하더라도 염색체에 들어 있는 단백질이 다르면 서로 다른 특징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DNA가 아직 연구할 게 많은 분야임을 말해준다.
과거 DNA는 주로 생물학과 화학의 커리큘럼을 공부한 사람들의 연구 대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컴퓨터와 전산을 공부한 사람들이 DNA 연구에 많이 참여한다. DNA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잠정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DNA는, 또는 DNA 내 염기 서열은, 물질이 아니라 정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각각 분열을 해서 새로운 세포로 탈바꿈한다. 보통 7년에서 8년의 주기로 내 몸의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마치 한강의 구성체인 강물이 계속 흘러가면서 지금의 한강은 과거의 한강과 구성요소가 완전히 다르지만, 사람들에게 한강은 늘 한결같아 보이고 나의 정체성 역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뱀의 발) 흔히 인문학은 두루뭉술하고 자연과학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연과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미궁에 빠지고 과학의 끝은 인문학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DNA가 ‘물질’이 아니라 ‘정보’라는 DNA 전문가 조규봉 교수님의 잠정적인 결론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의 배’―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의 배를 영구히 보관하기로 결정했으나, 배의 구성 재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완전히 새 것으로 교체가 되면, 나중에 그것을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를 두고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엘레야 학파 철학자들이 “세상의 본질은 질료가 아니라 형태(form)"라는 주장을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귀쫑 정기강좌에서는 당분간 ‘과학’을 다루고자 합니다. 좋은 과학자나 과학책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추전 해 주십시오.
첫댓글 일목요연한 강의정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