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퇴진' 대학생 학생 투쟁운동이 대구·창원 등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모를리 없을 텐데 윤 대통령과 정진석 비서실은 이를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 것인가?
특히 지금까지와 달리 대구와 창원은 사실상 전통적 보수의 本據地로서 윤 대통령 선출의 기반을 다진 지역에서 들고 일어났다는 것은 심각한 민심 소요라고 보이는데 정진석 비서실장은 윤 대통령을 모시면서 민심 동향이나 여론 동향을 파악하는 건지? 아니면 각급 정보기관의 정보를 보고받지 않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지금의 시국을 간과하지 않는지? 정말 머리털이 주삣 서는데도 이렇게 태평할 수가 있는지 정말 답답할 따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왜정 시대부터 국가의 중대 고비마다 대구에서 제일 먼저 시위가 일어났었고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항일운동 그리고 부정과 독재에 항거운동의 시발점을 대구에서 먼저 일어났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1운동도 대구의 국채 보상운동이 시발점이었다. 1907년 2월 서상돈·김광제·박해령 등 16명이 대구에서 조직한 국채보상기성회는 곧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확대되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제국신문·만세보 등 언론기관이 자금모집에 적극 참여했으며, 이를 위하여 단연운동이 전개되었고, 부녀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서 이에 호응했다.
그외에도 여성단체인 진명부인회·대한부인회 등에서는 보상금 모집소를 설치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일본까지 파급되어 800여명의 유학생들도 참여했다. 그리하여 이 운동이실시 된 이후 4월 말까지 보상금을 낸 사람은 4만여 명이고, 5월말까지 230만원 이상이 거두어졌다.
이에 대해 일제는 송병준 등 친일파가 지휘하던 매국단체 일진회를 이용하여 방해하고, 통감부에서 국채보상회의 간사인 양기탁을 보상금 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워 구속하는 등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결국 양기탁은 무죄로 석방 되었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더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좌절되고 말았다. 이 운동은 우리 민족의 강렬하고 자발적인 애국정신이 발휘된 국권회복운동으로 평가된다.
대구의 국채보상운동이 국권회복운동으로 평가되면서 선지자들이 이심전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민족정신이 곧 국권 회복운동으로 평가되면서 10여년이 지난 1919년 3월1일 전국각지의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으로 승화되는 단초가 되었다.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수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의 한인 밀집 지역에서 시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이자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다. '3·1 독립선언', '3·1 독립만세운동', '기미 독립운동' 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선지자들은 '조선 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앞세워 일본 제국의 武斷統治를 거부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이는 민간과 지식인의 반향을 일으켜 대규모의 전국적 시위로 발전하였다.
시위가 끝난 뒤에도 그 열기는 꺼지지 않고 각종 후원회 및 시민단체가 결성되었고 민족 교육기관, 조선여성동우회와 근우회 등의 여성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등의 무장 레지스탕스, 독립군이 탄생했으며 종래에는 현대 한국의 母體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낳은 운동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용한 대한민국 연호는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三一運動은 1919년 3월 1일부터 수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의 한인 밀집 지역에서 시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이자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다. '3·1 독립선언', '3·1 혁명'[6], '3·1 독립만세운동', '기미 독립운동' 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2019년 3월 1일에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참가자들은 '조선 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앞세워 일본 제국의 武斷統治를 거부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이는 민간과 지식인의 반향을 일으켜 대규모의 전국적 시위로 발전하였다.
시위가 끝난 뒤에도 그 열기는 꺼지지 않고 각종 후원회 및 시민단체가 결성되었고 민족 교육기관, 조선여성동우회와 근우회 등의 여성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등의 무장 레지스탕스, 독립군이 탄생했으며 종래에는 현대 한국의 母體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낳은 운동이다.
그러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최초로 부정선거와 폭압 정치에 항거는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일어난 2,28 민주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3,15 부정선거 규탄 4,19혁명으로 승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대통령·부통령 선거를 보름여 앞두고,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최대 정적인 장면 박사의 대구지역 유세가 예정된 날이었다.
학생들의 참석을 막기 위해 대구 8개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 지시가 내려졌고, 학생 2천여 명은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라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지난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올해 정부 대표로 참석한 한덕수 총리는 2·28 운동의 의미를 평가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본거지가 광주로 알려진 것은 광주사태로 조비오 신부에 의해 만들어진 광주항거가 부풀려 지면서 진보좌파의 본산으로 만들어 졌지만 사실상의 민주화운동은 여전히 대구가 시발지였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대구에서는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을 이어질 때 대구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끊이지 않았다, 서상일, 조재천, 한병채 이만섭, 김수환 등의 실질적 민주당의 리더들이 대구 출신들이다.
그런데 요즈음 대구와 창원, 경남 곳곳에서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촉구하는 투쟁이 열린 가운데 대학생들의 시국선언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지난 10월19일 대구에서는 민주노총과 '윤석열심판대구시국회의', '윤석열정권퇴진과 새로운사회를 위한경북시국행동' 등에 속한 123개 단체의 '대구경북시국대회'가 열렸다.
앞서 이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관계자는 시국선언문을 통해 "대통령 지지율 20%대는 심리적 불신임 상태"라며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며 "시민 뜻을 거스르는 자는 시민의 힘으로 끌어내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회날 전체 기조 발언을 진행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김예민 공동대표는 "대통령 하나 끌어내린다고 후퇴한 민주주의가, 파탄 난 민생이, 우리의 삶이 한 번에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박근혜 퇴진과 전 정부로 이미 체험한 바 있다"면서도 "썩은 뿌리를 잘라내고 밭을 갈아엎어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고 뜻을 전했다.
21일에는 경남대·경상국립대·창원대 등 경남지역 3개 대학 학생단체인 '경남 윤퇴진 대학생행동'과 '윤석열퇴진 경남지역 대학생시국모임'이 경남대와 창원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 경남지역 대학생 1000인 시국선언'을 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달 24일부터 10월 18일까지 교내 학생을 대상으로 '윤석열 퇴진 서명'을 받았다. 3개 대학에서 모두 1,207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대학생들은 "밥 한 끼 먹기 부담스러운 요즘 물가, 스펙과 학점에 매달려도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 기후위기와 전세사기특별법 거부, 의료대란, 채 해병 수사 외압 의혹 등 윤 정부가 청년, 대학생 세대에 미친 악영향은 어마어마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어떠한가. 믿음직한 고등학교 동문을 불러 모아 일을 맡기는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비리를 온 권력을 써서 막아주는 대통령. 이태원 참사에 국가 기능 작동 안 했다면서도 책임자는 무죄판결하는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은 3년은 더 두고 본다 해도 청년들의 목만죄일 뿐이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는 22일 오전 경상국립대 학생들은 시국선언을 앞두고 있다. 대학생들은 오는 11월 9일 서울에서 열리는 '청년학생총궐기'에 적극 참여를 예고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에서도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111차 촛불대행진 10월 전국 집중 촛불' 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최근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불거진 각종 의혹과 급격히 경색된 남북 관계 등을 짚으며 '윤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쳤다. 촛불행동 측은 이날 집회에 연인원 1만 2천 명이 참여 한걸로 추산했다.
시국 분위기가 이정도 됐으면 대통령실은 총의를 모아 험악한 시국 분위기를 잠재울 묘안을 찾고 당정이 원팀이 되어 총력경주 대응해야 함에도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21일 81분간 대면에도 사실상 '빈손'으로 끝났다는 것은 결국 공멸을 재촉하는 尹-한동훈 만남이라는 민주당에 빌미만 제공한 셈이 되었다
문제는 딱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81분 동안 대면했지만 정국의 뇌관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풀어낼 접점은 찾지 못해 이젠 당정의 해법을 찾기는 물 건너간 모양 새가 됐다. 민심은 더욱 윤 대통령은 나라의 위기보다는 자신의 부인의 위기를 감쌌다는 악평만 얻었다.
한 대표는 공언한 대로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을 포함한 ‘3대 요구’를 전달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전례 없이 브리핑을 취소하며 윤 대통령의 반응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사실상 ‘빈손' 만남에 그치면서 당정관계 악화를 넘어 여권 전체가 공멸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야외정원인 파인그라스에서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면담을 가졌다. 자리에는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유일하게 배석했다. 앞서 두 사람은 대통령실 참모들과 10분간 산책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지만 거기까지였다.
면담 이후 양측 모두 생경한 반응을 보였다. 한 대표는 김 여사와 관련 △대통령실 인적 쇄신 △대외활동 중단 △의혹사항에 대한 설명 및 해소 3가지를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이 전했다. 박 실장은 “한 대표는 나빠지고 있는 민심과 여론의 상황, 이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말했다”며 “(3대 요구 외에) 특별감찰관 임명 진행 필요성, 여야의정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 필요성을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대표 측은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응이나 입장에 대해선 함구했다. 박 실장은 “(한 대표로부터) 전달받은 바 없다”며 “대통령실에 취재해 달라”고만 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말을 많이 했지만 어떤 내용이라고 전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대표의 각종 요구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고 회피한 것으로 비치는 대목이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와 관련한 3대 요구 외에도 왜 이 사안이 문제인지 민심을 상세하게 전달했다고 한다.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서는 그간 여야 대치상황을 불발의 원인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당정이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문제 제기와 질문에 "구체적으로 확인된 의혹은 없지않느냐"는 취지로 적극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입장이 자신이 강조해온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여권에서는 향후 당정 관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한 대표의 3대 요구에 대해 윤 대통령이 제대로 호응하지 않으면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또다시 국회를 통과할 ‘김건희 특검법’이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국회 표결과정에서 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이탈표'가 늘어나 야당 주장에 가세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다만 윤 대통령이 민심과 여론에 대한 입장을 조만간 밝히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한 대표가 3대 요구를 면전에서 제기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바로 문제를 풀어 제출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면서 "한 대표에게 전달받은 민심과 관련해 복합적인 입장을 국민들과 나눌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면담의 최대 회두는 '김 여사 문제'였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명태균 씨 등 김 여사 주변인을 둘러싼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여권 전반을 짓누르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 지점마다 김 여사 문제가 빠짐 없이 등장하는 실정이다.
당초 여권에서는 이번 면담 성과가 미진할 경우 당정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친윤-친한계 간 면담 책임 소재를 두고 책임론이 심화할 경우 당 내부 계파 갈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독대 무산과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불기소 등에서 이미 불협화음 조짐을 보인 만큼 '빈손 면담'은 계파 전쟁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차 회담을 갖기로 21일 합의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로 불거진 당정 갈등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한 대표와, 여권을 흔들면서도 중도 확장에 나서려는 이 대표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면담을 불과 몇 시간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 대표 회동에 한 대표가 선뜻 응하면서, 윤 대통령을 향한 압박 차원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양당 대표는 지난 대표 회담에서 추후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한 바 있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한 대표에게 회담을 제의했고, 한 대표도 민생 정치를 위해 흔쾌히 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구체적 일정은 추후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만에하나 윤 대통령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윤 대통령의 고집도 문제지만 대통령실의 비서실장부터 그 책임은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의 정진석 비서실장부터 인적 쇄신이 가장 급선무라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