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무곡 청소년 마을

난 어릴때부터 뭘 해도 왠만큼 했다. <strike style="font-size: 9pt; font-family: Gulim, 굴림, AppleGothic, sans-serif;">얼굴도</strike> 공부도 그냥저냥 했고, 음악과 미술같은 것도 좋아하고 잘한다 소리를 들었다. 싫어하긴 해도 운동도 도저히 못봐줄 정도는 아니였다.  삼무곡에 들어오고 나서도 스스로 운 좋다라고 느낀 일이 많았고 대체로 모든 일이 하나같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9월 21일은 이상하리만치 드럽게 운수 좋은 날이었다. 코앞의 돌덩이를 못보고 발로차서 상처가 나질 않나, 카레 옮기다 카레 흘리고, 마늘 옮기다 마늘 흘리고 심지어 "세수"하다가 핸드폰을 "빈" 변기에 빠뜨리기까지했다. 신속히 건져올렸지만 하얀색깔로 번쩍거리는 화면에 겁에 질렸다. 그래서 이렇게 간곡하게, 무엇을 말하려고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지 나는 너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쭙고 기다리고 뒤척이다 여쭙고를 반복하다 '마음이 기울어진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델포이 신탁같은 애매모호한 답에 해석하려고 했고 그저 기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나눔 시간, 인도자를 따라 뜻이딱 연결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어느정도 잘 했는데 반대로 어수룩하고 못하는 애들은 종종 웃음거리가 되었다. 만약 그 웃음이 나를 향한다면 나는 창피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언가를 못하는 건 어설픈 것이었다. 그리고 어설픈 것은 잘하는 게 아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새로운 반과 친구들을 만난 첫 수학 시간.선생님은 지금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당시엔 꽤 난이도가 있었던 문제 2개를 칠판에 내주시며 푸는 대로 검사맞으라 했다. 단. 2문제.새로운 환경을 만난것에 두근거리며 그 당시엔 발표도 잘하고 명랑했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문제를 풀어 1등으로당당히 선생님께 공책을 보여드렸다. 내가 푼 것을 천천히 보시던 선생님은 하나하나 나의 자만을 고이 접어가며 이래서 틀렸고 저래서 틀렸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 귀에 작은 소리로 말씀하시길... "이정민, 빵점!"우르릉 쾅쾅. 내가 좀더 여리고 몽글몽글한 심장을 가졌더라면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9살 평생 빵점이란 소리는 들어보지 못한데다 새 친구들도 내가 몽땅 틀렸다는 걸 눈치챌 것이고 당당히 걸어갔던 걸음이 축 늘어져버린 것을 보고 속으로 웃음지을 것 같았다. 게다가 단 두 문제 중에서 한 문제조차 맞추지 못했다는 것에 나의 부풀었던 프라이드는 공기가 빠져 쭈글거리게 되었다.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놀림받는다는 그때 마인드로는 용납할 수 없는 실수였던 것이다. 더욱이 놀림받는다는 것은 친구가 없다라는 것과 이어지는 것...  그 마인드는 거의 지금까지도 유지되었던 것 같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 관심을 주고 잘하지 않더라도 평균은 하면 못했을 때의 미운 관심이 오지 않는다는 것. 물론 관심과 사랑을 바랐지만 창피한 내 모습을 향한 관심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이런 나와 다르게 아빠는 어설픔을 달고 산다. 어설픔이란 이름으로 책을 냈을 정도니 정도가 어련할까.그리고 당연하게도 어설퍼서 웃음거리가 되고 뭘해도 잘 하지 못했다는 아빠는 나에게 늘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책에 어설퍼도 살아집니다라는 구절이 있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말이었다. 물론 살아지긴 하겠지만 남들에게 비웃음의 시선을 받으며 사는게 어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지.인도 여행을 갔을 때도 한글처럼 각이 딱딱 져있는 영어와 어설퍼서 가끔씩 꼬이는 일정을 맞을 때마다 아빠가 불편했었다. 때때로 눈살이 찌푸려지고 한숨이 세어나왔다. 조금 심하지만, 아빠가 옷을 입는 맵시도 어릴땐 많이 그랬다.  나에게 어설픔이란 거리가 먼 단어였다. 나는 어설퍼지지 않으려했다. 늘 사람들에게 잘하고 좋고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웰메이드한 모습을 보이려했었다. 삼무곡 들어오기전 심하게 그랬지만 지금도 어느정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다른이들에게 멋진 사람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폼생폼사로.나에게 실망하지도 않고 나와 친해지고 싶고 내가 뭔가 높은 수준의 사람. 잘하는 게 많으니 사랑받는 사람. 마음이 기울어진다. 아예 확 뒤엎어버리지 그래? 조금이라도 기울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사는게 그게 사는거냐. 나는 이제 남에게 평가받으려 살지 않는다. 남에게 칭찬받으려 행동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제발 그냥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걸 내가 좀 알았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물론 어설퍼도 살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