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가지치기
사랑, 행복, 축복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일까요? 물론 사랑과 행복, 축복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이런 것을 누릴 수 있는 기초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관계입니다.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는 어느 누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친구관계, 직장동료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등이 있습니다.
관계가 생기면 친밀해집니다. 그러나 관계가 깨지면 친해질 수 없습니다. 좋은 관계가 되면 좋은 감정이 생깁니다. 사랑이 생기고 발전하고 행복해집니다. 부부관계가 좋으면 행복해집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좋으면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축복을 경험합니다. 반대로 관계가 없거나 관계가 깨지면 정반대 현상이 생깁니다. 얼굴을 붉히고 서로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고 불행해집니다. 그리고 자칫하면 저주로 끝나고 맙니다.
1) 농부 하느님과 포도나무 예수님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지면 다 깨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면 다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부모님께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관계가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당에 다니고 하느님을 잘 믿지만 하느님하고 살아 있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비참해집니다.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하느님과 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도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5,1)
왜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하셨을까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참포도나무라면 하느님은 농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포도나무 비유를 선택하셨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농부가 하느님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잘 되어 있으면 포도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농부의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 차고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포도나무라는 단어를 쓰면 빨리 알아듣습니다. 그들에게는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등이 토속적이고 익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를 조금 더 관찰해 보겠습니다. 포도나무를 말할 때 사람들은 나무를 생각할까요, 아니면 열매를 생각할까요? 열매입니다. 포도나무 자체는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포도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 때문입니다. 먹음직하고 옆에만 가도 단내가 납니다.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볼품이 없어도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한 것은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잎은 무성하나 열매를 못 맺는 가지
포도나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농부입니다. 농부가 관리하는 포도나무와 산에서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포도나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농부라고 한다면 나는 하느님이 잘 가꾸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15,2)
1절에는 농부와 포도나무가 나왔는데, 2절에는 가지가 추가로 나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나오는데, 이 가지가 누구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을 가리켜 가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가지는 따로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치 가지와 같이 스스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가지가 독립했을 때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 구절을 조금 더 관찰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나무에 붙어 있다고 다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잎이 무성해서 열매를 맺을 것도 같은데, 막상 가 보면 가지에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농부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가지를 쳐 버립니다. 이것이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나무에 붙어 있다고 다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당에 다닌다고 다 신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그분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당을 10년, 20년 다니고 무슨 회장입네 해도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면 아버지 하느님이 가지를 치신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가지를 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가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가지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예수님께 상처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지치기를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워하십니다. 가지를 사정없이 치는 분은 농부입니다. 농부는 왜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사정없이 치는 것일까요? 더 깨끗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가 설명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2)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