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충재:충렬서원
제70대통제사 최 숙이 재유사(齋有司 : 관리자)를 두고 지방 청소년들에게 학문과 충의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1695년에 건립한 강당으로 충렬서원이라 불렀다. 1865년. 1867년 두 번에 걸친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이순신 사당 가운데 유일하게 존속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한산도야음(이순신장군의 친필)
水國秋光募 수국추광모 驚寒雁陣高 경한안진고
優心輾轉夜 우심전전야 殘月照弓刀 잔월조궁도
다도해에 가을빛 저무니 찬바람에 기러기떼 높이날고
나라근심에 뒤척이는 이밤 지는달만 활과칼을 비치누나
숭무당
통제영에서 파견한 장교 3명이 상주하면서
사우(祠宇:충렬사)와 위토전답을 관리하던 곳.
중문
외삼문과 내삼문의 사이에 있는 가운데 문으로 안으로 들어서면 동제와 서제가 있다. 입구 양쪽에 있는 고목은 목련과의 태산목이다. 태산목의 꽃은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부터 꽃이 피며 꽃의 크기가 손바닥이나 손바닥보다 좀 크며 꽃의 향기가 은은하며 충렬사 경내에 울려 퍼집니다.동제
향사를 앞두고 헌관(獻官 : 제관)과 집사(執事)들이 미리 여기에서 몸과 마음심을 깨끗이 하고 제복을 차려입는 곳으로 향사를 끝낸후 여기에서 음복(飮福)을 한다.
이순신장군의 친필
盟山草木知 맹산초목지
誓海漁龍動 서해어룡동
산에맹세하니 초목이 알고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한다
서제
향사에 쓰이는 제물을 장만하고 제기(祭器)와 제구(祭具)를 보관하는 곳. 전시된 거북선은 전라좌수영의 거북선 모형으로 제작년대는 1950년대로 추정된다.
내삼문
정당의 출입문으로 삼문 중 가장 안쪽의 문이다. 단아하면서도 정교한 건축양식으로 조선중기 삼문조형(三門造形)의 정화(精華)이다. 솟을삼문으로 신문(神門)의 양쪽 초석을 해태로 조각하고 안팎에 활주(버팀기둥) 8개로 지붕의 무게를 받혔는데 각 활주 아래의 석자는 8각 돌기둥이다. 통용문인 양쪽 협문(夾門)을 낮게 만든 것은 몸을 낮추고 삼가는 몸가짐으로 출입하기 위함이다. 익공식 맞배지붕에 겹처마이며 삼문의 창방 위를 화반(花盤)으로 장식하였고 신문 양쪽의 봉황은 연화단청문양(蓮花丹靑紋樣:단청으로 그린 연꽃무늬)으로 조각하여 꾸몄다. 제례가 시작되기 전에 헌관은 이 내삼문 단하(段下)에서 북향립(北向立:북쪽을 향하여 섬)하였다가 홀창(笏昌:제례의 순서부름)에 따라 집사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오른다. 앞 뜰에는 매년 공의 탄신제(4월 28일) 때 중요무형문화재 제 21호인 승전무(勝戰舞)가 시연(施演)된다. |
정당
정당은 민족의 수호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에 제사올리고 공의 정신과 위훈을 만대(萬代)에 기리기 위하여 제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선조(宣祖: 제14대)의 명을 받아 세웠다. 이충무공 한분의 위패를 모시고 역대 통제사가 약 300년간 제사를 받들어 온 가장 신성한 장소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1606년에 창건하였는데 정당의 후원은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기와지붕의 용마루에 새긴 주역(周易) 팔괘(八卦)는 음양의 조화(造化)와 만물이 화생(化生)하는 역(易)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제의(祭儀)는 정통 유교의 법식을 고수한다.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되어 관급(官給)이 끊어지고, 경술국치(庚戌國恥:1910년 한일병탄)를 당하여 제사를 받드는 주체가 없어지자, 이 곳 지방민들이 기미년 독립만세운동(1919)을 계기로 충렬사영구보존회(현 (재)통영충렬사의 전신)를 결성하여 제향의 맥을 이어왔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왜경이 장군의 위패를 칼로 부수고, 삼문의 태극문양에 덧칠하여 일장기(日章旗)로 바꾸고 또 제사를 올리지 못하도록 정당에 못질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천지창조 때 혼돈된 천지를 씨줄, 날줄로 짜세운 능력. 하늘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해를 씻어 빛을 낸 공적.
유물전시관에는 어제사기문, 명조팔사품, 통제영지, 수조도(수군조련도)등이 있습니다. |
어제사기문
정조(正祖)대왕께서 충무공의 우국충절과 훈공을 만백성이 알게 하기 위하여 국가사업으로 임진왜란 사료를 정리하여 이충무공전서를 편찬, 발간하여 통제사 이득제(李得濟:제174대)에게 한질을 내려보내면서 통영충렬사에 한질을 봉안하고 엄숙히 법도를 갖추어 충무공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자세히 지시한 제문이다.
명조팔사품
명의 수군도독 천린(陳璘)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명황제에 보고하자 명의 신종(神宗)이 그 전공을 치하하여 보내준 포상물이다. 팔사물·팔사품 또는 명조팔사품 등 여러 개의 명칭으로 불리어 왔는데 1966년 문화관광부에서 보물 제440호 「통영충렬사 팔사품」으로 명명(命名),지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