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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30) 통영 한산도 | |
바다 저 멀리 400년 전 함성 들리는 듯하고 한산섬 수루 올라 서니 충무공 숨결 느껴지는 듯… | |
사적 제113호 한산도충무공유적지 표지석.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한산도가’ -
1592년 7월 7일 조선을 침략한 왜군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충무공 이순신은 학익진(鶴翼陣)을 펼친 후 왜군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감행한다. 불화살이 치열하게 빗발치고 지자총통(地字銃筒)·현자총통(玄字銃筒)·승자총통(勝字銃筒)이 불을 내뿜는다. 불바다로 변한 한산도 앞바다는 조선수군의 승리의 함성소리만이 바다를 가득 메운다.
노량·명량해전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인 한산도대첩이 벌어진 격전의 현장 ‘한산도’(1175명·586가구, 147만7390㎡).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수군을 총지휘하는 조선시대 관직)였던 이순신 장군은 1593년 이곳 한산도에 제승당을 세우고 군력을 정비해 왜군을 물리쳤다. 또한 남쪽으로 만지도, 연대도, 오곡도, 비진도, 용초도 등 섬들에 둘러싸여 위세등등한 태풍의 위력도 피할 수 있는 천혜의 요건을 갖춘 요새이다. 또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출발지이기도 한 한산도는 지리적으로 굴곡이 심하고 남도 다도해에 속해 해상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미륵산에서 바라본 다도해는 크고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펼쳐진다. 통영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한 뉴파라다이스호는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를 가로질러 한산도로 향한다.
뱃길로 30여 분 거리의 한산도는 두억·염호·창좌·하소리 등 4개리와 대촌, 망곡, 신거, 외항, 문어포, 대고포, 소고포, 여차, 창동, 의암, 하포 등 17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한산도로 가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거북등대. 아담한 모습의 거북선이 여(암초) 위에 앉은 모습에서 이곳이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역사의 현장임을 알 수 있다. 한산도 두억리 선착장에 도착한 배는 이내 큰 입을 벌려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대부분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제승당’으로 향한다. 제승당 가는 길은 울창한 해송 숲과 바다를 따라가는 해안길이 일품이다.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해안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산문을 지나 제승당에 이른다. 아직도 대첩문 입구에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이 이용했던 우물이 남아 있는데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르지 않고 있다.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대첩문.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이 사용한 대첩문 입구에 있는 우물. 제승당(制勝堂·사적 제113호), ‘바다의 제해권(制海權)을 모두 제압하여 승리를 만든다’는 뜻이 담긴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장수들과 회의하며 전쟁을 지휘하던 공간이며, 1593년 7월 15일~1597년 2월 26일(음력) 이순신 장군이 한양으로 붙잡혀 가기 전까지 3년8개월여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총 1491일 분의 난중일기 중 1029일의 일기가 이곳에서 쓰여졌다고 한다. 본래 건물은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됐으나 그 후 142년이 지난 1739년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의미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1976년 재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먼저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충무사를 찾아 참배한 후 이 충무공이 부하들과 활쏘기를 연마했다는 한산정을 찾았다. 바다를 건너 표적지가 있는 국내 유일의 활터로 알려진 한산정은 활터와 과녁 사이의 거리가 145m. 이 충무공이 이곳에 활터를 만든 것은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해 해전에서 필요한 실전거리의 적응훈련을 위해 만들었다고 난중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해군작전사령관실과 같은 제승당 안은 이순신 장군이 장수들과 회의하며 전쟁을 지휘하던 공간으로 충무공 전적을 그린 벽화 5폭과 현자총통, 지자총통, 거북선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제승당 끝에는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 이순신 장군이 오르곤 했다는 수루가 있다. 수루에 오르니 잔잔한 바다 위로 나라를 위한 시름과 번뇌로 밤을 지새우던 충무공의 충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한산도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제승당을 찾아 이 충무공의 유적지만 둘러보고 돌아가기 일쑤다. 하지만 한산도를 제대로 알려면 이 충무공의 역사가 담긴 마을 곳곳을 돌아본 후 한려수도의 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망산에 올라야 한다. 선착장에서 왼쪽 해안로를 따라 가다보면 맨 처음 만나는 마을은 자연생태어촌마을인 대고포. 한산도에서 가장 큰 갯벌을 가진 대고포 앞바다는 임진왜란 당시 군수용 소금을 구워 병사들에게 나눠주던 염전이 있던 곳이라 하여 염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마을을 지나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길을 달리면 여차·관암·역졸마을이 나온다. 하얀 부이가 바다를 뒤덮은 여차마을과 역졸마을 앞바다는 말 그대로 흰눈이 바다에 내린 듯한 풍경이다. 전국 굴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는 통영에서도 한산도는 굴의 주요 생산지라고 할 수 있다. 굴 종패 채취를 위한 준비작업이 한창인 역졸마을 앞 작업장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굴껍데기를 엮는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역졸마을을 돌아나와 섬의 한가운데인 망곡을 지나 한산면 두억리 문어포(問語浦)로 향한다. 망곡 넘어 신기마을은 섬마을인데도 숲으로 둘러싸여 마치 깊은 산골 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전형적인 익곡만으로 게의 집게 형상을 한 한산도, 그 중에서도 왼쪽 집게발에 해당하는 문어포는 두억리의 잘록한 허리에 자리 잡아 서쪽으로 바다가, 동쪽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산도 내에서도 ‘섬 속의 섬’으로 인식될 정도로 외지마을에 속한다. 하지만 마을 초입의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푸른 바다와 점점이 박힌 섬들, 굴곡으로 이어진 마을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지명 속에 감추어진 이야기도 재미 있다. ‘두억리’라는 지명은 한산대첩 당시 바다에 떨어진 왜군의 머리가 1억개나 됐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고, 두억리 뒤편의 ‘개미목’은 왜군들이 도망치느라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리고 마을의 풍광이 아름다운 ‘문어포’는 패퇴하던 왜군이 문어포 개안에서 신선 같은 노인에게 ‘이리로 가면 넓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느냐’고 묻자 노인은 좁은 물길이 있는 개목 방향을 거짓으로 답해 왜군을 곤경에 빠트렸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마을의 이름이다. 여하튼 임진란 당시 이 충무공이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인 ‘제승당’을 세운 이유를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마을을 지나 언덕으로 이어진 숲길을 오르면 통영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한산대첩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산면사무소가 있는 진두마을과 하포, 장작지 마을 등 섬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치열했던 한산대첩이 펼쳐진 한산 앞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망산(293.1m)에 올랐다. 선착장 인근의 등산로를 따라 터널을 이룬 동백숲을 지나면 곧바로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완만한 산길을 걷는 동안 울창한 소나무 숲과 편백나무가 벗이 되어 산행길이 지겹지 않다. 한산도 최고봉인 망산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이곳에 올라 망을 보며 왜군의 동태를 살폈던 곳이란다. 산세가 부드러운 망산은 정상을 20여분 남겨놓고 가파르게 이어진다. 하지만 등산로 정비가 잘 돼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망산 정상에 서면 땀흘리며 산에 오른 수고가 일순간 환한 웃음으로 바뀐다. 사방으로 탁 트인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비경에 탄성이 절로 쏟아진다. 푸른 바다위에 점점이 박힌 섬들은 한폭의 산수화 같아 넋을 잃을 지경이다. ‘바로 이 맛에 많은 사람들이 망산을 찾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더욱이 망산에는 임진란 당시 이용했던 봉수터 등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 아이들과 이곳을 찾는다면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가는 길 통영여객터미널에서 오전 7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오후 6시까지 운항되며 겨울철에는 1시간 앞당긴 오후 5시까지 운항한다.(유성해운 ☏645-3329)
☞ 잠잘 곳 한산도는 가고파펜션식(☏641-8388), 한산도우리민박(☏644-2974), 바들향펜션(☏643-8891~2), 한산펜션(☏641-7811), 편의점낚시민박(☏641-4700), 해변민박(☏642-8051), 길모민박(☏642-8756), 황혼민박(☏641-4829), 정기아민박(☏642-8077), 가고파식당민박(☏641-8388) 등 섬을 찾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민박시설이 마련돼 있어 잠자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글·사진=이준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