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입추였습니다. 이제 날이 조금씩 빨리 어두워지겠지요.
저녁을 먹고 따비를 나가는 시간에 해가 얼마나 누워있는지 가늠하다 보면,
세월이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느라 제영법사가 낮부터 바쁘게
지냈습니다. 어제 양평에서 홍경희 회원님이 전해주신 옥수수 200개를
모두 삶았습니다. 제영법사가 소금과 뉴슈가를 알맞게 넣어,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구입한 천도복숭아도 한 개 먹어보니, 역시
맛이 좋네요. 벌써부터 을지로 거사님들의 미소가 보이는 듯 합니다.
저녁 을지로에 나가니 평소보다 거사님들이 많았습니다. 눈으로 헤아려
대충 120여명쯤 되어 보입니다. 몇몇 거사님께 까닭을 물어보니, 다른
봉사단체에서 여름휴가로 급식을 쉰 탓에 여기로 모인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보시한 음식은 백설기 200쪽, 천도복숭아 250개, 옥수수 200개,
커피와 둥굴레차 각 100잔입니다. 떡과 복숭아와 옥수수가 두 손으로 다
받기가 벅차 얼굴이 환해지는 거사님들이 많았습니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고맙습니다. 여러 거사님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어제 비가 퍼붓는 중에도 옥수수를 전해주신 홍경희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보살행을 하신 봉사자는 모처럼 오신 하늘나리(윤서빈) 회원님과 따님
(지영)입니다. 그리고 해룡거사님, 병순거사님, 백발거사님 등 을지로 봉사단님들입니다.
지영 학생은 5, 6년 전만해도 고등학생이었는데, 벌써 어엿한 대학졸업반이네요.
그래도 어릴 적 앳된 모습은 그대로 입니다. 따비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녀의
모습이 참 다정해 보였습니다. 부처님 인연으로 이렇게 오래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몇 일 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오바마 미국대통령에게 족자를 선물했습니다.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족자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노자의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만물을 이롭게 합니다.
노자는 최상의 선은 이처럼 물과 같이 자신을 낮추면서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무주상 보시도 노자의 말처럼
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을지로 거사님과 작은손길 회원님들의 인연은 모두
고요한 마음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적멸(寂滅)은
최상의 행복입니다. 이 인연으로 모든 생명들이 깨달음과 해탈을 누리기를 발원합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