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34회》
☆과유불급(過猶不及)☆
과유불급이란 정도가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조태후를 옹성으로 떠나보내고 여불위는 정사에 전념하였습니다.
섭정은 조태후가 떠났으므로 하태후가 맡았습니다. 그러나 하태후 역시도 정치에 아는바가 없으므로 이전과 같이 여불위가 "可"라면 "可"고 "不"라면 "不"였습니다.
먼저 착수한 일은 진나라에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도 독립을 하겠다고 껄떡대는 韓나라와 魏나라를 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몽오장군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또한번 韓과 魏를 제압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숨을 돌리는데 옹성에서 효리 영감이 찾아와 조태후가 출산을 했다는 것과 노애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를 죽이려고 진나를 이 잡듯이 수색을 했어도 못잡았는데 그곳에 나타났다고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여불위가 어떻게 조치 했느냐고 물으니, 효리 영감은 조치고 뭐고 할 것 없이 조태후와 붙어 있어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불위는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조태후로부터 "꼼짝 안하고 살테니, 눈감아 달라"는 애절한 부탁을 받고 연민의 정에 끌려 어쩌지를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여불위는 그렇게 하라고 하였는데 4년이 지난 후에 다시 효리 영감이 찾아와 조태후가 둘째 아이를 생산했다는 보고를 하면서 옹성에서 태후를 모시는 일을 그만두고 떠나야겠다고 하였습니다.
조태후는 노애가 있으므로 효리 영감은 별 필요가 없었습니다.
효리 영감 자신도 거지같은 노애 놈이 보기도 싫었던 것입니다.
여불위는 효리 영감에게 승락을 하고 얼마 안있어 하태후가 운명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임금 영정이 친정(親政)을 하려면 앞으로 3년이나 남아 있어 섭정을 할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할수없이 거리는 멀지만 조태후를 형식상 섭정으로 세웠습니다.
섭정의 권한을 주어놓으니, 조태후는 사람을 늘려달라, 노애를 제후로 봉해달라 등 등 요구사항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옹성에는 호위군사들도 배치되고 일하는 식구들도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화(禍)를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원인이었습니다.
장신후(長信侯)라는 벼슬을 붙여 주니, 노애가 건방을 떤 것이지요. 밑에 있는 하인들을 구타하고 툭하면 내가 여불위 보다 뭐가 부족하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내 아들도 왕이 될 수 있다고 까불었습니다.
어느덧 영정은 섭정의 굴레를 벗고 친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 벌써 영정에게 아부꾼들이 붙기 사작하였습니다.
그동안 옹성의 비밀을 알면서도 입을 봉하고 있던 촉새들이 영정에게 옹성의 비밀을 고해 받쳤습니다.
영정은 머리가 돌아버렸습니다.
영정은 여불위에게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따지며 당장 노애와 그 자식들을 능지처참 하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옹성은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조태후는 옹성에 유폐 시켰습니다.
노애의 일을 마무리 한 영정은
仲父고 뭐고 다 폐론하고 여불위를 그의 식읍인 하남으로 쫓아버렸습니다.
차마 죽일 수가 없어 그곳에서 숨소리도 내지말고 살다가 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지만 죽을 목숨을 살려놓으니, 간이 배밖으로 나온 노애와 조태후에게서 오늘의 한국정치를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