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31)
*가련과 보내는 밤
" 훈장 노릇이 그렇게도 괴로운 일 인가요? "
"안 해본 사람은 모르지. 그러니 훈장님 훈장님 하지말게."
"그럼 뭐라 부르지요?"
"자네 마음대로..."
"그럼, 서방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거 좋군!"
두 사람은 여기서 말을 멈췄다.
가까운 곳에서 밤 개가 짖는 소리가 나는듯한데, 그 소리가 무엇엔가 파묻혀, 아득하게 들린다.
이순간, 밖에서 눈이 내리는지 방안의 공기는 잠잠하고 촛불은 흔들림 없이 고요한 빛을 내고 있었다.
김삿갓은 갑자기 가련을 안아보고 싶은 충동이 불같이 일어났다.
"서방님, 서방님께서 지으신 시가 왠지, 소첩의 신세를 읊은 것 같아 눈물이 나려 하는군요."
"아니 그건 내 신세타령을 한 것인데 자네 처지와 같다니 그건 무슨 말인가? " 김삿갓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감정이 미묘해졌다. 그것은 가련이 입에서 나온, 서방님과 소첩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권주가를 부르고, 가야금과 장고 소리에 저의 꽃다운 시절이 모두 지나가 버릴 것 같아서요."
"허허, 그럴 법도 하군. 허나 사람들의 세상살이가 모두 다 그렇게 지나는걸 ..."
"그럴까요?"
"그렇다니까, 그러니 자기 생각대로 뜻있게 살아가면 되는 걸세."
"서방님, 소첩도 부모님 덕분에 시문을 좀 배워 알고는 있지만 서방님같은 시재는 만나뵙지 못했습니다. 서방님! 소첩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한 가지 있는데 들어 주시겠어요?"
"뭔가? 말하여 보게."
김삿갓은 가련이 기생의 몸이다 보니 말을 함에 있어, 해라를 하여도 될 것이나 혀가 돌아가지 않았다.
따라서 가련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엉거주춤한 반말이 되었다.
"서방님을 곁에서 모시면서 시문을 배웠으면 해서요 ..."
"이번에는 가련의 훈장 노릇을 하란 말인가? 하하하... 이러고 보니 다 뜻이 있어 날 불렀군 그래."
"달리 생각지는 마세요. 첫째로는 서방님이 좋으니까 곁에서 모시려고 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시가 좋아 배우려는 것이에요. 들어 주시겠어요?"
가련이는 말을 하며 엉덩이를 방바닥에 끌듯 붙여, 삿갓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앉는다.
"그러다간 이 안변 땅에서 쫒겨나기 십상이지."
"그건 또 왜요?"
"사또 자제의 훈장 노릇을 하는 것도 시기가 나, 나를 쫒아 내려는 사람이 많은데, 한 발 더 나아가 자네, 가련이와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나보게. 나를 기둥서방이라고 점찍어 배 아파 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닐걸세."
"서방님, 제가 누구에게 매인 몸이라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선 서 진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게야."
"서 진사가요? 호호호호 ..."
가련이는 간드러지게 웃었다.
"그 영감이 제게 침을 흘리고는 있지요. 하지만 그뿐이에요. 지난 봄에는 제 머리를 얹어 주겠다며
이천 냥을 줄테니 당신, 소실로 들어 오라고 며칠을 두고 치근덕 거렸지요."
"그래, 거절했단 말인가?"
"거절했지요. 누가 그런 영감탱이 한테 순결을 바치겠어요?"
"순결?"
삿갓은 눈이 크게 떠졌다. 기생이 순결이라니... 별스럽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러자 가련이 눈치를 채고,
"서방님은 기생에게는 순결이 없는 줄 아세요?"
"글쎄, 정절이라는 말은 들은 바 있으되 순결이라는 말은 아직 들은 바 없네."
가련이는 갑자기 샐쭉해지더니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기생이 순결을 말하다니 어떻게 생각하면 가당치 않지요. 하지만 소첩은 아직 동기(童妓)예요.
여자는 첫정을 준 남자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법이에요. 우리같은 기생들도 마찬가지죠.
그동안 머리를 얹어 주겠다는 사내들은 많았지만 어차피 사내들 틈에서 시들어 갈 몸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첫정 만큼은 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바치고 싶었어요."
김삿갓은 가련의 말을 듣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평생 처녀의 몸으로 늙어 가겠군."
"호호호 ..걱정 마세요. 가련이의 처녀성도 이제는 경각에 달렸으니까요."
"경각이라니?"
"아이참, 서방님도 어쩜 그리 둔감하세요. 제 머리는 오늘밤 서방님의 손으로 정히 올려질 거예요."
이 말을 듣자 김삿갓은 가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련의 첫정의 상대가 되나? "
김삿갓은 어림없다는 말투로 대꾸했다.
"그건 외람되오나 제가 결정할 문제여요. 서방님, 부디 제 곁에 오래 있어 주세요. 제가 서방님을 편하게 모실 수 있어요. 싫다 하시면 기생질을 못해도 좋아요."
김삿갓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가련이와 정이 들더라도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냥 하룻밤 불장난이라면 모르겠지만...
김삿갓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련의 손을 잡았다.
보드랍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마음을 손에 쥐어 보는 것 같았다.
"헛참 이거 정말, 큰일이군!"
김삿갓은 이런 마음이 앞섰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따로 놀았다.
가련의 앵두같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 보았다.
가련의 입에서 흥건한 향기가 났다. 아니 그것은 자신이 마신 향기로운 술 냄새였다.
김삿갓은 가련의 목덜미를 자신의 팔로 감아 더욱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 자신의 혀를 가련의 입 속으로 넣었다. 코 끝에 가련의 깊은 숨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가련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속 숨을 아낌없이 교환했다.
"아아... 이러면 안되는데..."
김삿갓의 머리 속에선 가련을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끊임없이 샘솟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가련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가련이 삿갓의 손을 살며시 걷어냈다.
"서방님 잠깐만 .."
가련은 김삿갓의 성급함을 말렸다.
난데없는 가련의 제지로 김삿갓은 머쓱해졌다.
"상 좀 물리고 금침을 펼께요."
가련의 의도가 늦게나마 파악된 삿갓은 무안의 웃음을 지었다.
"자네로 향하는 마음이 너무 성급해 미안하네."
김삿갓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 가련은 눈동자를 위로하고
삿갓을 쳐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무안해진 김삿갓은 빠른 손놀림으로 주안상을 윗목으로 물리는 가련의 모습을 멍하고 보다가 술이 취한 척 그 자리에 벌렁 누워 버렸다.
"서방님, 서방님...!"
상을 물리고 비단금침을 펴놓은 가련은 술에 취해 잠든 척 누워있는
삿갓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자신의
입을 삿갓의 귀에 대고 소근소근 불렀다.
삿갓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성급했던 무안감 때문에 이제는 모든 것을 가련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아이참 .."
가련은 술 취한 척 누워있는 삿갓의 옷을 살금살금 벗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활활 타던 황촛불을 끄고 바스락 소리를 내며 옷을 벗더니 삿갓 곁으로 파고 들었다.
팔팔한 젊은 남녀가 자리를 같이 하니 열정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삿갓은 가련의 몸을 애무했다.
마치 비단잉어를 만지듯 가련의 몸은 매끄럽기 그지 없었다.
"내 언문 시조를 한수 읊을까?"
좀 전까지 취한 척했던 삿갓이 속삭이듯 가련에게 말했다.
"그러셔요."
이렇게 말을 한 가련의 입에서는 더운 숨이 뿜어져 나왔다.
"큰 솔밭 밑에 작은 솔밭 ..
작은 솔밭 아래 옹달샘 ..
옹담샘을 돌아가니 여우굴이 나왔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삿갓은 가련에 귀에 대고 소근소근 말을 했다.
"얼굴이지요. 큰 솔밭은 머리털이고
작은 솔밭은 눈썹일 테고,
여우굴은 콧구멍이 아니겠어요?"
"맞았다."
삿갓은 어둠속에서 빙긋이 웃었다.
삿갓이 가련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다가 살금살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 수 읊으랴?"
"농담하시면 싫어요."
가련은 샐쭉 눈을 흘겼다.
삿갓은 가련의 몸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나지막히 말을 했다.
"창 밖에는 동지섣달 함박눈이 내리는데 금침 속에서는 봄을 맞아 복숭아 두 알이 향기롭게 익었도다.
미끄러지듯 흘러내린 언덕아래 옹달샘은 월궁 선녀가 목욕하는 자리인가?"
김삿갓은 이렇게 읊조리며 가련의 옥문을 더듬었다.
"아이 ... "
가련은 몸을 꼬았다.
쌍심지에 불을 붙인 듯 활활 타오르는 삿갓의 욕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삿갓은 가련의 몸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