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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의 내용은, 세력 사이에 적대적인 갈등이 극대화되었던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의 집권 시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사람들을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여, 끊임없이 ‘우리’가 아닌 ‘그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적대시했던 그의 행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난민들의 이민 금지를 추진’했고, 그 후속 조처로 ‘비백인 중남미 불법체류 노동자 수백만 명을 미국에서 추방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심지어 ‘아이들을 추방으로부터 보호하는 법률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저자는 트럼프가 내세웠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라는 슬로건이 실제로는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숟간으로 악용되었음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위대한 미국’이라는 실체가 무엇인지,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과거 혹은 여성에게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던 시절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따져 묻는다. 실제로 그의 참모였던 배넌이 “1930년대만큼 신날 것”을 언급했는데, 저자는 이 시기가 ‘요컨대 미국이 파시즘에 가장 동조했던 시대’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개개인의 인권이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 성차별과 인종갈등을 조장하고,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를 적대시하는 정책은 결국 ‘파시스트 정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파시스트 정치의 위협은 특정 방식으로 주민의 일부를 비인간화하는 데에서 생겨’나며, 특히 ‘소수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분명한 징후는 분열’이며, 구체적으로 파시스트 정치는 대중들을 ‘우리’와 ‘그들’로 분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파시스트 정치에 작동되는 신화적 과거와 프로파간다, 반지성주의와 비현실성, 위계와 피해자의식, 치안과 성적 불안, 그리고 전통에 대한 호소는 물론 공공복지와 통합의 해체 등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그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바가 많았는데, 특히 저자가 지적한 정치 행태가 2022년의 한국 사회에서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파시스트 정치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성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적 이해의 강력한 반복이자 확장을 담은 대담한 성명’인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의 평등을 가치 있게 여기자는 공통의 약속으로 모든 국가와 문화를 묶었으며, 식민주의, 대량학살, 인종차별, 세계전쟁, 그리고 파시즘에 맞부딪혀 황폐화되고 산산이 부서진 세계에서’ 널리 울려 퍼져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대체로 ‘파시스트 정치’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의 권력욕과 그릇된 ‘신념’의 결합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그래서 권력자를 국가와 동일시하면서, 그의 추종자들은 권력자의 어떠한 정책에도 맹종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경향이 강하다.
파시즘의 원류였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의 사례를 들 수 있으며, 근래에는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 등의 행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파시스트 정치를 추구하는 권력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먼저 존재하지 않았던 ‘신화적 과거’를 조작하여, 그것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대중들을 호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히틀러의 ‘아리안족의 순수성’이라는 산회가 그렇듯이, 트럼트 역시 ‘위대한 아메리카’라는 구호의 실체 역시 구체적인 내용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이후 이것을 널리 ‘선전(프로파간다)’하며 현실을 왜곡시키고, 구체적으로 ‘반지성’과 ‘비현실’에 기반한 행동으로 표출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권력자를 추종하는 ‘우리’와 비판 세력인 ‘그들’로 ‘위계(位階)’를 지우고, 자신들이 ‘그들’로부터 피햬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자의식’을 조장하는 행동이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트럼프 집권 시기 미국에서는 ‘백인’들이 흑인과 비백인 이민자들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적대시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들만의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확고한 ‘법질서’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중심의 가부장문화를 찬양하면서 여성을 차별하는 ‘성적 불안’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트럼프 이후의 미국 정치에서 이러한 분열의 행태는 심화되고 있으며, 대중들이 그러한 정확한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파시스트 정치’의 모습이 비단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이른바 ‘이대남’이라는 구호로 ‘성적 불안’을 조장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우며 집권 이후 현실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목도하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의 철학은 고사하고 그 방향성조차 가늠하기 힘든 행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노동자와 소수자들을 적대시하는 시각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정치권에서 시작된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여 상대를 적대시하는 행태가 ‘기레기(기자+쓰레기)’들에게 장악된 언론에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입장이 다른 이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배제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할 때 파시스트 정치의 조건이 갖추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기 위해, 현재 시점에서 모든 이들이 차별당하지 않는 조건을 만들자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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