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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五倫)’이란 유가(儒家)의 중심적인 사상으로서, 흔히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다섯 가지의 덕목을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오륜'은 부모와 자식(부자유친), 임금과 신하(군신유의), 부부 사이(부부유별),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장유유서), 친구 사이(부우유신)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역시 유가의 계통인 성리학(性理學)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였기에, 오륜의 이념을 강조하였다. 오륜의 덕목이 지닌 의미로만 본다면, 그 내용은 지극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륜’의 강조는 권력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인 통치 수단으로 삼고 있을 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곧 일방적으로 지위가 위에 있는 자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맥락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렇기에 아무리 부모가 잘못했어도 그 뜻을 따른다거나, 왕은 하늘이 내려준 존재이기에 그 말을 절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더욱이 나이에 따른 서열을 강조하는 ‘장유유서(長幼有序)’는 단지 나이에 따라 어린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나이든 사람을 공경하라고 강요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그릇된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보다, 그저 그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라는 논리로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서 ‘가족주의의 외피를 두룬 채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엄격한 신분질서를 전제로 했던 조선시대의 지배계층은 오륜을 민중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위해, 시조와 가사 등의 문학 작품에도 형상화하였다. 이처럼 ‘오륜’을 소재로 한 시가 작품들을 일컬어 ‘오륜시가’라고 명명하고, 이 책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그 역사적 흐름을 살피고 있다. ‘오륜’을 포함한 지배 계층의 이념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창작한 시가들을 일컬어, 달리 백성들을 가르친다는 의미로 ‘훈민(訓民) 시가’라고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훈민’의 핵심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오륜’을 다룬 작품들만을 ‘오륜시가’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단지 오륜시가의 역사적 전개만을 서술하기보다, 개별 작가나 시기별로 그것이 어떠한 맥락에서 향유되고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천착하고 있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였던 조선 전기에는 오륜이 굳건한 이념으로 정착되지 않았고, 저자는 오히려 지배계층에 의해서 ‘오륜의 발견과 상상적 완비(15세기)’가 구축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던 것이 신분질서에 의한 지배이념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던 16세기에 이르러, ‘오륜의 재인식와 현실적 소용의 담지’가 이뤄지면서 광범한 영역을 차지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오륜의 확산과 분화(17세기)’가 이뤄지고, 중세의 봉건체제가 이완되어 가던 18~19세기에는 ‘오륜의 통속화와 형식적 전환’이 이뤄졌다고 하겠다.
더욱이 이렇게 견고한 이념으로 자리를 잡은 오륜 이념은 근대 이후까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틀로 정착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거나 억누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조선시대 시가문학에서 다양한 양상을 살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책을 읽은 성과라고 하겠다. 아울러 현대사회에서는 오륜과 같은 특정 이념을 강요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지 경제력 혹은 권력을 가졌다거나,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배제하려는 행태는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시대 통치 이념으로 강요되었던 ‘오륜’의 의미에 집착하기보다 이제는 누구든지 보편적 인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그 의미가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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