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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국시대에 활동했던 맹자의 어록을 정리한 <맹자>는 주자에 의해 유가의 기본 경전인 사서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유학을 공부하는데 있어, <맹자>를 비롯한 사서는 필수적인 문헌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동양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위해서는 사서를 비롯한 유가 경전과 함께 다양한 고전들을 익혀야만 한다. 특히 <맹자>는 동양 고전과 한문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문헌이다. 나 역시 처음 한문 공부를 시작할 때, <맹자> 원문을 강독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지금까지 원문 강독만 10여 차례 독파했고,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면 찾아서 읽어보고 있다.
이 책은 동양 고전의 번역에 매진해 온 역자가 사서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출간한 번역서이다. 역자는 부제를 통해서 <맹자>의 성격을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이라고 평가하고 잇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맹자>는 공자를 계승했다고 하는 맹자의 어록을 제자들이 정리하여 엮은 책으로, 유가에서는 '사서'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논어>에서 공자가 주로 '인'을 강조했다면, 맹자는 이를 '사단'이라는 개념으로 확충해 '인 의 예 지'라는 이론으로 정립했다. 맹자는 공자에 의해서 개창된 유가의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고, 이 책을 통해서 논리적인 어조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이끄는 맹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여러 나라가 세력을 다투면서 이합집산을 하던 혼란한 시대를 일컬어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춘추시대를 살았던 공자도 자신의 이론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기 위해 중국 천하를 떠돌았지만, 맹자 역시 혼란한 전국시대에 이른바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당시의 제후들은 눈앞에 닥친 전쟁의 위기를 무시하고, 맹자의 이상적인 이론에 따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전쟁이 아닌 도덕에 기초한 왕도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맹자의 논리는 당시의 제후들에게 그야말로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따라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며 수많은 제후들이 다투던 전국(戰國)시대였기에, 인의(仁義)에 기초를 둔 왕도정치를 주창하던 그의 사상이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백성의 마음을 얻은 자가 천명을 얻는다는 주장은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당장 강대국에 의해 침략을 당해 망할지도 모르는 약소국의 제후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한문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여러 차례 강독을 해보았지만,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정독하면서 맹자의 논리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되는 면이 적지 않았다. 7개의 항목을 각각 상하로 나누어 모두 14편으로 구성된 <맹자>는 유가의 이론을 보다 정밀하게 가다듬은 문헌이다. 아마도 <맹자>라는 책이 있었기에, 주희 등에 의해 유가의 이론이 성리학으로 가다듬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맹자>를 비롯한 유가의 문헌들은 당대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권력자를 위한 이념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맹자의 이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군주를 쫓아내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논리로 작용되기도 했다. 이 책은 주자의 주석에 국한하지 않고, 정약용의 <맹자요의>는 물론 20세기의 중국학자인 양보쥔의 <맹자역주> 등 다양한 주석서를 참고하여 번역한 결과물이다. 다시 <맹자>의 강독을 하게 된다면, 이 책 역시 참고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매번 고전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이 책 역시 익숙하지만 또한 새롭게 다가오는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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