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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은 과거 흰 고래라는 뜻의 <백경(白鯨)>이라는 제목으로도 번역되었다.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내가 본 책의 제목도 <백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래에게 다리 하나를 잃은 선장의 집요한 복수를 위한 항해, 이것이 작품의 제목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하겠다. 오로지 흰 고래 ‘모비딕’만을 염두에 두고 선원을 모으고 항해를 지속하는 선장 ‘에이해브’의 집념 혹은 광기가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제재이다. 이렇듯 단순한 내용으로 기억하는 이 작품이 실상 19세기 미국 사회의 단면을 비유한 것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모비딕>이라는 작품의 의미와 평가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가 조금은 더 분명하게 이해되었다고 여겨진다.
난파한 고래잡이 배에서 살아남은 선원 이슈메일의 회상 형식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내용은, 고래에게 다리 하나를 잃은 선장 에이해브와 선원들의 항해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작중 인물을 통해서, 삶과 운명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방식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고래잡이 배 파쿼드호에 오른 다양한 인물들을 조명하면서,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와 방랑자 기질의 이슈메일을 대비하여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특히 이들의 이름이 성경에 등장하는 아합왕과 아브라함의 서자 이슈메일에서 차용한 것이며, 작가의 의도는 기독교적 교리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논하고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미국 사회에서 이 작품이 금기시되거나 저평가되기도 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작품이 인종갈등이 극심했던 19세기 미국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먼저 남성중심의 엄격한 가부장제도에 맞서 기독교를 선택하고, 시누이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사의식으로부터 해방된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그러한 외할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자신의 어머니, 어머니로 인해 ‘모태신앙’을 지니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저자의 기억을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적 삶의 방식이 지배적이었던 분위기에서 저자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배우고 익히면서, 외할머니가 자신의 삶의 선택했듯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채득했음을 밝히고 있다. 주어진 규범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아마도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시선은 광기가 서린 집념의 인물인 ‘에이해브’ 선장보다는 방랑자 기질이 자유로운 ‘이슈메일’로 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서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개척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지만, 내 기억 속의 <모비딕>은 집요하게 고래를 쫓는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어린 집념이 인상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만, 목표를 내세우며 거침없이 행동하는 그의 삶의 태도에 대해 극찬과 비판이 상존하는 것도 현실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상반된 삶의 방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오랜 동안 이 작품을 손에 쥐고 탐독하면서, 그 고민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작품을 오랫동안 읽고 고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결합시키는 독서 방식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돌아보고,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독자로서, <모비딕>이라는 작품의 문학적 함의가 그리 넓은지를 새삼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공이 한국문학이기에, 다른 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도 하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손에 잡을 수 있지만, 그러한 결심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이 책을 통해, <모비딕>이라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이 작품을 이해하는 저자의 독법에 공감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아울러 저자 나름의 독서 방식을 통해서, 작품을 이해하고 마침내 책으로 엮어낼 수 있었던 노력의 결과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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